본 문 : 왕상 17:8-16 제 목 : 사르밧 과부가 받은 은혜
♤ 오늘 우리는 왕상 17:8-16절의 본문 말씀을 같이 보았습니다. 이 시간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사르밧 과부가 받은 은혜」라는 제목으로 오늘 말씀을 증거해 드리겠습니다.
★ 첫 째 : 하나님께서 - 한 과부가 흉년의 때에 어린아들과 함께 너무너무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는 것을 기억하셨습니다. ★ 둘 째 : 하나님께서 - 엘리야를 통해 사르밧 과부로 하여금 순종하기 어려운 순종을 요구하셨습니다. ★ 셋 째 : 하나님께서 - 가뭄이 다 끝날때까지 3년 6개월 동안 주는이와 받는이만 알 수 있는 방법으로 그들을 돌보셨습니다.
아무도 찾아오는 이가 없는 사형수 감방에 일주일이 멀다하게 찾아오는 한 여성이 있었습니다.물론 그의 어머니도 아니었고 부인도, 누이도 아니었습니다. 친척도 아니고 아는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어느날 그 사형수가 물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오실 수 있는겁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랬을때 그 여성이 “저는 예수님의 사랑 때문에 여기 오고 있습니다”하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보면 아무도 돌보지 않는 한 사람이 나옵니다. 「사르밧 과부」였습니다. 이때는 극심한 가뭄으로 많은 사람이 먹을 양식이 없어서 고통 당하던 때 였습니다. 그러니 자기도 살기 힘든때에 누가 과부를 돌보겠습니까? 그러다 보니까 사르밧 과부와 그의 어린아들은 이제 죽을날만 기다릴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과부 모자를 하나님께서 기억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통해 그를 찾아 가셨습니다.
첫째 : 하나님께서 한 과부가 흉년의 때에 어린아들과 함께 너무너무 어려운 처지에놓여 있는것을 기억하셨습니다.
본문 9절에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유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엘리야가 일어나 사르밧으로 간 사실이 <10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때가 어느때 였는가 하면 이스라엘에 3년 6개월동안 비가 오지 않고 있던 때였습니다. 선지자 엘리야가 활동하던 시대의 이스라엘왕은 저 유명한 「아합」이었습니다. 악하기로 이름난 「바알우상 숭배자」「아합」이 「이스라엘 왕」으로 있었습니다. 바알 우상 숭배자들은 바알神이 하늘에서 비를 내려 주는 것으로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선지자 엘리야」를 이 「바알 우상숭배자」「아합」에게 보내셨습니다. 그것은 땅에 비를 내려 주실뿐 아니라 세상을 주관하시는 분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보여주시려는데 있었습니다. 선지자 엘리야를 아합왕에게 보내신 하나님께서 엘리야로 하여금 아합왕 앞에서 - 앞으로 내말이 있기전에는 수년동안 비가 오지 않을것이오! 하고 선언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아합」이 「엘리야」를 찾을수 없도록 「엘리야」로 숨어있게 하셨습니다. 그 말씀이 여기 <왕상17:1-7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엘리야가 처음에 가서 숨어 지낸곳은 요단앞 그릿 시냇가 였습니다(3。5절). 이때 까마귀들이 아침 저녁으로 엘리야에게 먹을것을 날라다 주었습니다(6절). 하나님께서 미물인 까마귀들을 사용하셔서 엘리야를 먹이셨습니다(4절). 그러던 중에 가뭄이 계속 되면서 그릿 시냇가도 말라 버리자 - 하나님께서 엘리야로 하여금 이번에는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게 하셨습니다. 얼핏보면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살리시기 위해서 그를 그곳으로 보낸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는 얼마든지 다른 방법으로 보살피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엘리야를 사르밧으로 보내셨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르밧에 사는 한 과부의 어려운 처지를 염두에 두셨기 때문이었습니다. 본문을 자세히 보면 하나님께서 염두에 둔 사람이 바로 「사르밧의 한 과부」인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9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네가 거기가면 한 과부를 만나게 될것이다」고 말씀하고 있는것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사르밧」은 이스라엘 북쪽 지중해 연안에 위치해 있는곳으로서 지금의 지명은 「사라펜드」(Sarafend)입니다. 그리고 이곳의 옛 지명은 「사렙다」입니다(눅4:25). <12절>에 보면, 엘리야가 그곳에 도착 했을때 “그동안 기근으로 인해 먹지 못하고 고생하던 한 과부가 아끼고 또 아끼면서 조금 남겨둔 「가루」를 가지고 마지막으로 아들하고 같이 음식을 만들어 먹고 죽을려고... 나뭇가지를 주으러 다니고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바로 이 사람들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그곳으로 보내셨습니다. 그래서 과부와 그의 아들이 더 이상 버틸래야 버틸 수 없을때...엘리야가 그곳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생명을 이어갈 양식을 계속해서 공급해 주리라”는 하나님의 약속과 함께 엘리야 선지자가 그곳에 나타난때는 바로 사르밧 여인과 그의 아들이 절망에 빠져 죽음을 기다리고 있던 때 였습니다. 사르밧 과부는 이방 여인이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엘리야」를 그곳으로 보내셨습니다.사르밧 과부에게는 이스라엘이 받은 언약의 특권도 없었고 하나님의 백성이 될 기회도 없었습니다. ㆍ그는 집안의 꽃이 아니라 울타리 밖의 꽃이었습니다. ㆍ그런데도 하나님은 엘리야를 그곳으로 보내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처음부터 편애하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게 되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예수 믿을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부터 120년전에 선교사님들이 이땅에 온것은 우리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시기 원하셨기 때문에 그들이 온 것입니다.우리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골고루 기회를 주십니다. 당시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에도 「과부」가 많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엘리야는 그 이스라엘의 과부중 한 사람에게 보내지지 않았습니다. 이방 땅 사르밧으로 보내셨습니다. 사르밧 과부에게 보내셨습니다. 여러분ㆍ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사랑한 것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여러분과 저를 사랑하셨습니다. <요일4:19절>에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사랑한것 아니요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다”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 (롬 5:6), 우리가 아직 죄인 그대로 있을때에 -. (롬 5:8) 우리가 하나님의 원수 노릇하고 있을때에 -. (롬5:10)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우리를 찾아 오셨습니다.
둘째 : 하나님께서 - 엘리야를 통해 사르밧 과부로 하여금 순종하기 어려운 순종을 요구 하셨습니다.
<10-13절>에 보면, 사르밧으로 간 엘리야가 거기서 한 과부를 만나게 됩니다. 나뭇가지를 주으러 다니는 한 과부를 만나게 됩니다. 사르밧 과부가 왜 나뭇가지를 주으러 다녔습니까? 이제는 더 이상 버틸수가 없어서 그동안 아끼고 또 아껴온 가루통에 조금 남은 가루와 기름병에 조금 남은 기름으로 마지막으로 빵을 만들어서 어린 아들하고 같이 먹고 그 다음에는 죽을려고 나뭇가지를 주으러 다녔습니다(12). 그런데 이 과부에게다 대고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그럼 그걸로 빵을 만들어서 먼저 내게 가져오라! 그럽니다.
왜 그랬습니까? ◇ 내 형편은 어떻든지 - 성도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무조건 먼저 공궤 해야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었습니까? ◇ 아니면, 사르밧 과부가 어떻게 나오나 한번 보기 위해서 였습니까? 둘다 아니었습니다. ◇ 또, 엘리야가 너무 너무 배가 고파서도 아니었습니다. 과부의 가진것을 뺏고 싶어서 그렇게 한것은 더더욱 아니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가끔 이런 이해할 수 없는 요구를 하실때가 있습니다.
그 예를 우리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에서 찾아볼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네 아들 이삭을 내게 바쳐라」 그랬습니다. “네가 100세에 낳은 - 독자 이삭을 내게 번제로 드리라”그러셨습니다 <창 22:2>. 여러분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이삭은 어떤 존재였습니까? 자기 생명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더 없이 소중한 존재 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이삭을 바치라고 하시니 그때 아브라함의 심정이 어떻했겠습니까? 우리가 그의 심정을 헤아리기 어렵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아마 하늘이 무너지는것 같은 느낌을 받았을 것입니다. 심장이 멎는것 같은 느낌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때 「이삭」이 죽었습니까? 안죽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대신 수양을 준비해 놓고 계셨드랬습니다. 그때부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더 큰 은혜를 내리시게 됩니다. 그것은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르밧 과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걸로 빵을 만들어서 - 그걸 내게 가져와서 나로 먹게하라는 엘리야의 요구가 너무 지나쳐 보입니다.부당한 요구처럼 보입니다. 사르밧 과부의 입장에서 볼땐 그건 말도 안되는 소리였습니다. 얼마든지 「차라리 벼룩이 간을 빼먹으시오!」하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당신이 두눈으로 똑똑히 보지 않았습니까? 하고 항변할 수 있는일 이었습니다. ㆍ그 「요구」는 사르밧 여인으로서는 선뜻 응하기 어려운 부당한 요구였습니다. 그렇지만 엘리야가 - 그것을 뺏기 위해서 그렇게 말한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것이 여인과 그 여인의 아들을 살리는 길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말했던 것입니다. <14절>에 보면 나와 있습니다. 여기보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마르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엘리야가 그렇게 말한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이 사르밧 과부와 그의 어린아들을 살리는 길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사르밧 과부로서는 결단하기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인간적인 계산으로 볼때 그 약속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약속 이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사르밧 여인의 처지가 너무 곤고했습니다. 그런것을 따져 볼 여력조차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이 사르밧 여인이 어떻게 했습니까? 그런 가운데서 믿음으로 순종했습니다! 사르밧 여인은 여력이 있어서 드린것이 아니었습니다. 가진것이 있어야 드리기도 하고 봉사도 한다는 생각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하나님은 가끔 「나에게 먼저 가져오라」는 요구를 통해서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실 때가 있습니다.그럴때 대게 우리가 어떻게 반응합니까? 드려야 될줄 알면서도 안드릴때가 많습니다. 하나님께 드려야 될줄 알면서도 안드리고 있으면 그것이 내것이 되게 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나도 쓰지 못하고 다 없어져 버리고 맙니다. 사르밧 여인이 드린 그 빵한개는 어떻게 보면 하찮은 것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굶주림에 시달려온 그들에게 있어서 그것은 결코 하찮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빵은 그들이 가진 소유의 전부였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드렸습니다. 사르밧 과부는 너희가 마지막으로 먹으려고 준비하고 있는 그 빵을 나에게 가져오라는 엘리야 요구에 「순종」했습니다. 사르밧 여인은 정말 하기 어려운 순종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에게 이런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은 어려운 처지에서의 순종을 기뻐하십니다. 할만해서 하는 순종이 아니라 정말 어려운 처지에서 하는 순종을 기뻐하십니다!
셋째 : 하나님께서 - 가뭄이 다 끝날때까지 3년 6개월 동안 주는이와 받는이만 알 수 있는 방법으로 그들을 돌보셨습니다.
<16절>에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 같이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엘리야는 사르밧 과부에게서 지금까지 이스라엘에서 볼 수 없었던 놀라운 믿음을 보았습니다. 그가 참으로 어려운 처지에서 믿음으로 순종 하는것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될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르밧 과부가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가 전하는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 들였다는 것입니다.“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자매님과 자매님의 아들을 살게 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하고 전하는 그말을 그가 액면 그대로 믿었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때에 사르밧 과부가 자기 형편만 생각하고 그가 지금 가지고 있는 그것을 놓지 않으려고 발버둥 쳤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것 같습니까? 꼼짝없이 죽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사르밧 과부가 자기의 형편을 하나님께 내어 맡기고 믿음으로 자기의 가진것을 하나님의 사람 앞에 내놓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의 남은날들을 책임져 주셨던 것입니다. 사냥꾼들에게 쫓기던 곰이 더러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질때가 있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사냥꾼들이 그때를 놓치지 않고 얼른 달려 들어 그물을 덮어 씌어서 곰을 잡는다고 합니다. 곰을 잡게되면 - 곰의 가치는 웅담에 있기 때문에... 바로 잡아서 쓸개를 꺼내보면 쓸개집이 비어있다고 합니다. 웅담이 없다고 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곰이 자가 치료를 위해서 웅담을 자기가 다친곳에 쓰기 위해서 비상조치로 웅담을 빼돌려 놓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다시 사르밧 과부 얘기로 돌아가겠습니다. 만약 그때 사르밧 과부가 자기 형편만 생각하고 그가 가지고 있는것을 내놓지 않을려고 발버둥 쳤더라면 그는 꼼짝없이 죽고 말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배워야 될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도가 정말로 하기 어려운 순종을 하게 되면, 믿음으로 정말로 하기 힘든 순종을 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참으로 놀라운 방법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사르밧 과부에게 어떤 은혜를 주셨습니까? 가뭄이 다 끝날때까지 가루통에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기름병에 기름이 마르지 않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도 - 비록 희망이 전혀 보이지 않을때라고 할지라도 믿음의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을때에도 -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아멘! 하실수 있기를 바랍니다. 믿음으로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이 믿음만 있으면 우리도 아무리 힘든세상이라 할지라도 넉넉히 이길수가 있습니다. <요일1:4>에 “세상을 이기는 이김은 이것이니 곧 우리의 믿음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이제 오늘의 말씀의 끝을 맺겠습니다.
인간의 끝은 하나님의 시작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엘리야가 사르밧으로 간것은 그곳의 한 과부를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르밧 여인을 돌보실때에 주는이와 받는이만 알수 있는 방법으로 그들을 보살펴 주신것은 당시 거의 모든 사람이 굶주리고 있었기 때문에 -. 누가 쌀을 가마니로 쌓아놓고 있다는 소문이 나는 날에는 생명까지 위협을 받을수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은혜는, 본문에 나오는 가루통의 가루와 병속의 기름과 같이 결코 다함이 없는 은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생명은 청춘이 가거나。 건강을 잃거나。 실패 하거나。 힘을 잃거나。 거기에 손상을 받지 않는 생명입니다. 이 은혜로 말미암아 언제나 어느때나 승리하는 여러분과 제가 다 되어질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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