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등 의 치 유 ▣ 본 문 : 골 3:12-17
♧ 오늘 우리는 골3:12-17절의 본문말씀을 같이 보았습니다. 이시간 본문 말씀에 의지해서 갈등의 치유라는 제목으로 오늘 말씀을 증거해 드리겠습니다.
★첫째 : 내마음을 넓혀야 합니다. ★둘째 :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더라도 서로 용납해야 합니다. ★셋째 : 그리스도의 평강이 우리 마음을 주장하게 해야 합니다.
「갈등」이 무엇입니까? - 차잇점을 놓고 서로 힘을 겨루는것입니다. 신념의차이, 가치관의차이, 관심의차이등을 놓고 자기뜻대로 관철시키기 위해 씨름 하는것입니다.「갈등」에는 항상 힘(power)이 개입됩니다. 그러나 힘으로 밀어붙여 가지고는 결코 갈등을 치유할 수가 없습니다. 갈등은 사람과 사람사이에도 있고 그리고 내안에도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이「갈등」을 「치유」할수 있습니까?
󰊱 먼 저 : 내마음을 넓혀야 합니다.
12절에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받는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참음으로 옷입고” 라고 하였습니다. 여기보면, “옷입고”라고 하였습니다. 「옷」은 「외적치강」이면서 또한「보호수단」입니다. 「옷」은 그옷을 입는 사람의 “정신”과 “태도”에 막대한 영향을 줍니다. 옷은 그사람의 신분과 그리고 삶의내용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무슨말씀입니까?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참음」의 “성품”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자연스럽게 배어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매우중요합니다. - 왜냐하면, 이것이 있으면 우리가 「갈등」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세상을 힘들고 괴롭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불평도 많고 오해도 많고 다툼도 많습니다. 그것은 「환경적 영향때문」이기도 하고 「마음때문」이기도 합니다. 현대인들은 치열한 경쟁속에서 매일매일 바쁘게 살아가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다 보니까 지나치게 스트레스를 많이 받게됩니다. 「스트레스」는 우리말의 「강박관념」또는 「억압감」에 해당됩니다. 「경쟁」이 사람을 구속합니다. 오늘 현대인들이 피곤한것은 바로 이 경쟁때문입니다. 동기생은 올라가는데 나는 그대로입니다. 후배들이 밀치고 올라옵니다. 「허세」도 사람 마음을 구속시킵니다. 없으면 없는데로 살면 되겠는데 체면 때문에 그럴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관리비 감당이 당장 걱정이 되지만 - 큰평수를 선택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학교」에서 「1등」을 빼앗길가봐 하루도 편할날이 없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어떤학생은 새벽2시에 2등하는 친구에게 전화를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전화를 안받으면 마음놓고 자고 전화받으면 - 그것은 지금도 공부하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에 자기도 공부를 더한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구속입니다. 이런 구속을 받아가면서 자유할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조용한 시간을 만들어서 쉬셨습니다.
<눅4:42절>에 “날이 밝으매 예수께서 한적한 곳에 가시니”라고 하였습니다. ★ 사람들이 각종 병든자를 데리고 예수님을 찾아오는 바람에 예수님께서 쉬실틈도 없을정도였습니다. ★ 그래서 한적한곳으로 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 제자들을 향해서도 「좀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막6:31절>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 너희는 따로 한적한곳 에 가서 잠깐쉬어라”고 말씀했다고 하였습니다. ★「기독교」는 “쉼”을 매우 중요시 하고 있습니다. ★ 다른 종교에는 없는 「안식일의 법칙」을 가지고 있습니다. 「엿새」를 일했으면 하루를 쉬라고 말씀합니다. 「쉰다」는것은 - 「노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쉼을 통해서 - 건강한 삶을 살아가게 하려는데 그목적이 있습니다.
특별히 성도는 - 「안식일」이되면 “주님”께 나와 예배하는 가운데 주님께서 공급해 주시는 “은혜”를 힘입어야 합니다! 「교회」는 우리의 「마음의 쉼터」입니다. 그러므로 무슨일이 있어도 「주일」에 “교회”에 나오셔야 합니다. 나와서 쉼을 얻고 생기를 얻고 「스트레스」를 다 날려버려야 합니다. 「스트레스」를 그대로 방치하면 안됩니다. 「스트레스」를 그대로 방치하면 안됩니다. 「스트레스」를 그대로 두게되면 몸과 마음에 저항력이 약해지면서 짜증스럽고 신경질적인 사람이 되게됩니다. 식욕도 떨어지고 잠도 잘오지 않고 일에대한 의욕도 저하됩니다. 신앙생활에 열심히 낼수없게 됩니다. 우울해 지게 됩니다. 「대인관계」가 나빠지게 됩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행복한사람」의것이 아닙니다. <신33:29절>에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같이 얻은사람이 누구냐?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은「행복한사람」입니다. 여러분 ㆍ「행복한사람」이 소유해야할 ”성품“은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참음을 옷입는데 있습니다. 이것은 「진리」입니다. <요8:32절>에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진리안에서 나를 억압하고, 나를 짓누르고, 나를 괴롭히는 「스트레스」를 다 날려버릴수있기를 바랍니다.
󰊲 다 음 :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더라도 서로 용납해야 합니다.
<13절>에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 하신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14절>에 “이 모든 것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는 「불만」(헬ㆍ몸페ㆍ)은 - 사람들과의 관계속에서 생겨나는 불평거리 또는 책망받아 마땅한 상대방의 실수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용납」은 - 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관용적 태도를 가리킵니다. 바로 이「용납」에-「용서」와「사랑」을 더해야합니다.(13절 6-14절) 우리가 그렇게 해야되는 이유는 - 주께서 나를 있는 그대로 용납하시고, 용서하시고, 사랑 하셨기 때문입니다.(13절) 우리가 이렇게 다른사람을 용납하고 용서하고 사랑하기 위해서는, <먼저> 나를 용납하고 나를 용서하고 나를 사랑할수 있어야 합니다. 「야구」를 보다보면, 타석에 나갔던 선수가 볼을 헛치고 들어오면서 - 냅다 방망이를 내던져 버리는 모습을 가끔볼수 있습니다. 그것은, 이바보야! 그것도 못쳐! 하면서 자기가 자기에게 화를 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일이 아니지요. 대신에 괜찮아! 너 잘할수있어! 라고 해야됩니다. 다음 타석에 나가서 치면 되잖아! 해야됩니다. 그렇게 할때 그선수가 자기 실력을 유지할수 있고 실력이 점점 향상될 수가 있습니다. 내가 나를 용납하지 못하면 다른사람도 용납이 되지 않습니다. 때문에 먼저 내자신을 용납할수 있어야 합니다. 먼저 나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출생, 성격, 생김새, 달란트, 환경, 처지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십시오. 그리고 내게있는것에 「감사」하는법부터 배우십시오. 그렇게 하면 모든 것이 다 내게 복이되게 됩니다. 그리고 나서 성경에서 “버리라”고 한것을 버리면 됩니다. -「성경」에서 무엇을 버리라고 하셨습니까?
<엡4:31-32절>에 (31)“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냉과 떠드는것과 비방하는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32)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 하심과 같이 하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악독」은 독기있는 말로 남의 마음을 상하게 만드는것을 말합니다. 「노함」은 순간적으로 격발하는 노여움입니다. 핏대를 올리면서 신경질을 내는것입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떠듬」은 - 노여움이 밖으로 표출된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비방」은 남을 헐뜯는것을 말합니다. 이런것들은 모두 「악의」에서 나온것들로 그속에 치명적인 독이 들어있는것들입니다. 그래서 「버리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좋아하는것도 닮지만 미워하는것도 닮습니다. 왜미워하는 사람을 닮을까요? 밤에도 그사람을 미워하면서 생각하고 낮에도 그사람을 미워하면서 생각하고 하면서 -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닮는것입니다. 어떤사람이 어렸을때 - 자기「아버지」가 꺼떡하면 밥상을 둘러엎는것을 보면서 자랐습니다. 그래서 자기는 절대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수없이 다짐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보니까 자기가 똑같이 - 옛날의 그 아버지처럼 하고있더라고 하였습니다. 이 「이야기」는 「아버지학교ㆍ간증」때 자주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요. 「아버지학교」에서의 “간증”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도무지 용서가 되지않던 그 「아버지」를 어느날 용서하고 나니까 그렇게 기쁠수가 없더라는 말로 간증이 끝나고는 하였습니다. 어렸을때의 그 「분노」가 내힘으로는 풀리지 않았는데 성령의 도움을 받으니까 아버지가 용서가 되더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를 용서하고 나니까 그렇게 기쁠수가 없더라」고 했습니다. 과거에 아버지가 잘못했다면 아버지를 용서하시기 바랍니다.그 아버지에게서 태어난 나 자신을 부끄럽게 생각할것이 아니라 우리 아버지가 몰라서 그랬지...하고 용서하셔야 합니다. 내속에 주님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내힘으로는 용서 할수없어도 성령의능력 으로는 그누구의 그어떤잘못도 용서할 수 있습니다.
★ 용서는 내가 사는길입니다. ★ 용서는 상대방도 살게하지만 ★ 용서는 나를 살게합니다.
용서는 우리주님의 절대적인 사랑의 표현입니다. 「성경」은 - 인간의 모든 악독을 고치고 변화시키는 유일한 처방은 바로 「용서에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것은 내자신속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담아 - 남을 끊임없이 「용서」하는것입니다. 이 「용서」가 있을때 부부간의 갈등, 동료간의 갈등, 형제간의 갈등, 고부간의 갈등 등 모든 갈등을 “치유”할 수가 있습니다.
★ 내마음에 기쁨이 회복되게 됩니다. ★ 내마음에 평강이 찾아오게 됩니다. ★ 나의 삶이 「행복한 삶」으로 바뀌게 됩니다.
바라기는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고 그위에 사랑을 더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어서 - 주님이 주시는 은혜와 복을 다 받아 누리는 여러분과 제가 되어질수 있기를 바랍니다!
󰊳 셋 째 : 그리스도의 평강이 우리 마음을 주장하게 해야 합니다.
<15절>에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몸으로 부르심을 입었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자가 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은 - 그가 십자가를 앞에 놓고도 아무 동요함 누리셨던 「평강」입니다.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요14:16), 주님께서 친히 누리셨던 「평강」입니다. ★ 우리 모두는 바로 이평강을 받아 누리기 위해서 한몸으로 부름받는 사람들 입니다. ★ 이 평강은 전혀 갈등이 없는 평안입니다. ★ 이 평안은 어느한사람만을 위한것이 아니라 우리모두를 위한「선물」입니다. ★ 그러므로 이평강이 우리모두를 주장하게 해야 합니다!
<갈5:1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말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믿기전에는 우리가 죄의종이었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롬6:17-18절>에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종이더니....죄에서 해방되어 의의종이 되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을때 ㆍ그때 죄가 세상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들은 들키지도 않았으면서도 동산 나무뒤로 가서 숨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두려웠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이 죄의 속박입니다. 국제공항에 근무하는 세관원들은 모든 승객의 짐을 다 뒤지지 않습니다. 가끔 한사람씩 짐을 조사합니다. 어떤사람의 짐을 조사하느냐 하면 폐쇄회로를 통해 볼때 걸음걸이가 부자유한 사람의짐을 조사하게 됩니다. 그렇게 하면 틀림없이 그짐속에 밀수품이 들어있다고 합니다. 죄를 짓게되면 - 걸음걸이부터 부자유해 진다고 합니다. ★죄는 속일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사람이 사는동안 가장큰 십자가가 양심의 고통입니다. 죄책감입니다. 「하나님」은 「죄책감」으로 죄지은 사람들을 「형벌」하십니다. 「수양대군」은 형문종이 죽자 그의 충신 여섯명을 죄없이 죽였습니다. 그리고 조카 「단종」을 죽이고는 자기가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러면 행복할줄 알았습니다. 그렇지만 마음편할날이 하루도 없었습니다. 밤마다 흉한꿈을 꾸며 불안하게 하루하루를 살았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불교에 귀의하면 편해질것이라고 해서 불교도 믿어보고 - 파고다 공원에 절을지으면 편안해 질것이라고 해서 절도 지었습니다. 그렇지만 마음이 편안해 지지않았습니다. 수양대군은 하루도 편안하게 살지 못하고 왕이된지 10년만에 죽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께서 그의 십자가의 보혈로 이 무서운죄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또한 죄인들이 받아야 하는 「죄책감의 형벌」에서 우리를 자유케 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죄의짐을 지지않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여러분 ㆍ사람은 마음에 자유함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은ㆍ「전철」을 탔다가 혹 「노인석」에 앉아본적 있습니까? 노인분들 말고 - 젊은이들 가운데 말입니다. 젊은이가 그 자리에 앉으면 그 자리가 비어 있어서 앉았다고 하더라도 마음이 편할 수가 없습니다. 만약 「노인석」에 앉아있으면서도 마음이 편하고 거기서 한잠자도 괜찮고 그런사람이 있다면 그사람은 뭘모르는 사람입니다. 젊은 사람이 「전철」이나 버스의 「노인석」에 앉아 있게되면 - 몸은 좀편한데 마음은 안편해야 그것이 “정상”입니다. 여러분ㆍ몸은 좀 불편하더라도 「그리스도의 평강」이 나를 주장하게 해야 합니다. 「안이숙」여사가 쓴 「당신은 죽어요. 그런데 안죽어요.」라고 하는 책이 있습니다. 그책에 보면 「숯불사랑」이라는것이 있습니다. 경자와 순애는 아주 가까운 친구사이였습니다. 그런데 경자가 결혼을 한후 남편이 미국회사에 취직이 되어서 같이 이민을 갔습니다. 혼자 남은 순애는 계모 밑에 살기도 힘들고 경자가 너무너무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미국으로 계속 편지를 보냈습니다. 드디어 경자가 비행기표를 마련해서 순애를 미국으로 초청했습니다. 그런데 불법으로 오래있게 할 수가 없어서 경자가 이혼한것처럼 하고 대신 순애가 자기남편의 부인이 된것처럼 서류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랬는데 순애가 경자를 배신하고 그남편과 사랑에 빠져서 경자를 내쫓고 말았습니다. 경자는 그 고통을 달랠길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한 부유한 미국노인이 그를 돌봐주었습니다. 그 노인은 혼자였습니다. 그래서 그노인과 결혼했습니다. 그런 어느날 경자와 전 남편의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교통사고로 둘다 생명이 위독하다고 했습니다. 병원으로 달려가 보니까 두사람다 「의식불명」이었습니다. 얼마후에 순애가 의식을 회복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평생”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하는 「장애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렇지만 경자가 장애인이된 순애를 이번에도 돌봐주었습니다. 자기집에 데려다가 같이 살았습니다. 이것이 「숯불사랑」이라는 이야기의 줄거리입니다.
★이제 오늘말씀의 끝을 맺겠습니다★ 「원수」라도 “용서” 하고 “사랑”하는 바로 여기에 진정한 “화해”가 있습니다. 이런곳에는 그어떤 「갈등」도 있을수 없습니다.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이사랑을 배울수 있어야 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