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화목하라

제 목   하나님과 화목하라
 
본문: 욥 22:21-22
⊙ 제목: 하나님과 화목하라


우리는 오늘 욥22:21-22절까지의 본문 말씀을 같이 보았습니다. 이 시간 본문 말씀에 의지해서 「하나님과 화목하라」는 제목으로 오늘 말씀을 증거 해 드리겠습니다.

★ 먼저 : 하나님과 화목하지 못한 자에게 기다리고 있는 것 2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 다음: 하나님과 화목한 자에게 주어지는 은혜 2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 세 번째로: 하나님과 화목의 조건 2가지와 화목의 결과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람이 다른 사람과 좋은 관계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평소 다른 사람과의 좋은 관계를 인해 6.25때에는 사상도 사상이지만 평서 서로 감정이 좋지 않던 사람들끼리 서로를 죽이고 - 죽고 한 적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평소 좋은 관계를 유지하던 사람들은 죽을 자리에서도 살아났습니다. 그런데, 사람보다, 우선해서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할 대상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오늘 성경에 “너는 하나님과 화목하라”고 말씀합니다.(21절) -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라 그리하면 복이 네게 임하리라“고 말씀합니다. 본문의 「하나님과 화목하라」(히. 사칸)는 말씀은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평안하라」(히. 살롬)는 말씀은 - “화목의 결과”로서의 「평안」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면 평안의 복이 임하게 된다」고 말씀입니다. 불화는 저주입니다. 불화는 삶에 있어서 가장 악한 적입니다. 불화는 모든 것을 파괴합니다. 관계를 파괴하고 마음의 평화를 파괴하고 감정을 파괴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과 불화하게 되면 손해가 이만 저만이 아닙니다. 부모와의 관계, 형제간의 관계, 동료와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가 아무리 좋아도 - 하나님과의 관계가 나쁘면 -- 다른 관계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이 세상 최고의 화목은 하나님과의 화목입니다. 이것은 근본적인 화목일 뿐 아니라 복의 원천입니다.

1. 그럼〈먼저〉하나님과 화목하지 못한 자에게 기다리고 있는 것 2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성경은 크게 3가지 화목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1). 하나님과의 화목(요일 1:6-7)
(2). 가족(부모형제)과의 화목 (딤전 5:8)-(믿음의 가족포함)
(3). 이웃과의 화목(마19:19)
이렇게 세 가지 화목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무엇보다 우선해야하고 무엇보다 잘 이뤄져야 할 관계는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 무엇보다 부모와의 관계가 좋아야 합니다. 부모는 나의 의 사와는 상관없이 일방적으로 주어진 관계입니다. - 이「말」은 하늘이 맺어준 관계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마땅히 화목을 이뤄야 합니다. 〈딤전5:8〉에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않는 자는 믿음을 배반한자요 불자보다 더 악한자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영적인 부모는 누구일까요? 영적인 부모는 나이와 상관없이 자기가 출석하는 교회의 「목사」가 되게 됩니다. 그런데 보십시다. 자기가 출석하는 교회의 목사와 불화하는 성도가 있다고 가정합시다. 그 성도의 신앙생활이 잘 되겠습니까? 잘 않됩니다. 그 사람교회 나오는 것이 재미가 있겠습니까? 별로 재미가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는 - 「목사와의 관계」도 좋아야 합니다.
그 다음에 「부부사이가 좋아야 된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부부는 서로의 부족을 채워주고 도와주면서 사는 관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왜 저 사람은 저 정도 밖에는 못할까? 라는 생각을 하지 말아야 됩니다. 부부는 배우자를 남으로 의식하지 말고 자기 자신과 동일하게 여겨야 합니다. 부부는 배우자를 남으로 의식하지 말고 자기 자신과 동일하게 여겨야 합니다. 내가 편하기 위해서 부부로 같이 사는 것 아닙니다. 그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같이 사는 것입니다.
부부화목의 비결이 무엇입니까? 「소리의 양보」입니다. 합창과 중창에서의 화음의 비결이 소리의 양보에 있는 것처럼 부부화목의 비결 역시 소리의 양보에 있습니다. 자기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데 있습니다. 부부의 인격은 거의 동등합니다. 그러므로 서로 존중하고 서로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단,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는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내가 아닌 남편을 그 가정의 가장으로 세우셨습니다. 이것은 유교에서 말하는 남존여비 사아하고는 다릅니다. 그리고 불교에서 말하는 여자는 죄인이라고 말한 것과도 다릅니다. 옛날 우리나라에서는 남편은 하늘이라고 그랬습니다. 요즘도 그렇게 말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자연히 여자는 「땅」이 되게 되는 줄 압니다. 그런데요 요즘 땅값이 좀 비쌉니까? 그래서 그런지 요즘 - 남편 앞에서 큰 소리 치는 부인들 참 많습니다.
요즘 우리나라 땅값이 얼마나 비싼지... 미국 50개주 가운데 - 1개주의 반의반도 않되는 것이 「대한민국」 땅덩어리인데도 우리 「남한」만 팔아도 미국의 절반은 살수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미국」에서 않판다고 해서 그게 「문제」입니다.
형제간에도 우애해야 합니다. 형제간에 우애 하면서 사는 것만으로도 부모님께 효도가 되고 부모님께 기쁨이 되게 됩니다. 집안 형제들 간에 우애하고 그리고 믿음의 형제들과 우애해야 합니다. 「믿음의 형제」는요 천국에서 영원히 같이 살 사람들입니다. 굉장히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또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이웃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고 하였습니다. 아무리 경쟁사회라고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달라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더불어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처럼 부모공경하고 부부간에 화목하고 형제간에 우애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이 모든 일들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과의 화목」입니다.
눅 15:11-24절에 보면 「탕자의 비유」가 나옵니다. 작은 아들이 아버지에게 재산을 나눠달라고 그럽니다. 그래서 받아가지고 먼 나라로 떠납니다. 왜? 먼 나라로 떠납니까? 아버지의 간섭도 없고 종교의 굴레도 없는 그런 곳에 가서 마 음편하게 자기 멋대로 살고 싶어서 먼 나라로 갔습니다. 그런데 거기 가서 어떻게 됩니까? 허랑 방탕합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거지꼴이 되게 됩니다. 아무도 그를 반겨 주지 않습니다. 돼지들이 먹는 지엄 열매로 배를 채우려고 해도 그것조차 제대로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서야 이 탕자가 아버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버지 생각을 하고는 이제 아들 자격은 없고 품꾼으로라도 써달라고 해야 겠다! 하고는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랬을 때 아버지가 돌아온 그 아들을 보고 너무너무 좋아 합니다. 잃었던 아들을 찾았다고 좋아하면서 동네 방네 잔치를 벌이게 됩니다. 그러면 이 탕자의 아버지는 누구를 비유합니까?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탕자」는 누구를 비유합니까? 자유로와지고 싶다면서 하나님을 떠나 사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을 떠나 살지 못해 안달하는 사람들 많습니다. 그러데 보십시오. 하나님을 떠나 사는 그 사람들에게 진정한 마음의 평안이 있을 것 같습니까? 절대 없습니다. 그 이유가 성경에 나와 있습니다. 시 7:12-13절에 보면 나와 있습니다. 우리한번 같이 읽겠습니다. “사람이 회개하지 아니하면 그가 그의 칼을 가심이여 그의 활을 이미 당기어 예비하셨도다. 죽일 도구를 또한 예비하심이여 그가 만든 화살은 불화살이로다”(시 7:12-13) 이 말씀을 보면 하나님을 떠나 사는 사람들이 왜 불안해 할 수밖에 없는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과녁삼아 지금화살을 당기고 계시기 때문에 그런 것 입니다.
여러분 왜 오늘 성경이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과 화목하지 않는 삶에 있어서 절대로 평안이란 있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과 화목하지 못한 자에게 기다리고 있는 것은 「평생불안」과 그리고 「멸망」뿐입니다.

2. 이제 〈두번째로〉하나님과 화목한 자에게 주어지는 은혜 2가지에 대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하나님」과 화목한 자에게 주어지는 은혜는 하나님과 화목하지 못한 자가 받는 것 과 정 반대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과 화목한 자에게 주어지는 두 가지 큰 은혜는 하나는 「평생평안」이고 하나는 「영생복락」입니다. 그러면 이 은혜가 어떻게 해서 우리에게 주어졌습니까? 한마디로 말해서 저와 여러분이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됨으로 해서 우리에게 임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아닌 유대인들을 선민으로 삼으셨드랬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거역했습니다. 그 말씀이 〈마22:1-14절〉에 나와 있습니다. 임금이 잔치를 배설하고 그들을 초대 합니다. 그런데, 나로 새로 밭을 사서 못가겠습니다. 나는 소를 길들여야 하기 때문에 못가겠습니다. 나는 장가들어서 못가겠습니다 하고 여러 가지 이유와 핑계를 대면서 초청에 불응합니다.(눅22:10) 그래서 많은 사람이 잔치 집에 모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에서 「잔치 집」은 「교회」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초청한 「임금」은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먼저 초청 받았던 사람들은 「유대인」을 가리키고 나중에 초청 받은 사람은 저와 여러분을 가리킵니다. 이와 같이 나중에 초청받은 것이 저와 여러분 인데요 그러면 저와 여러분이 초청받을 그때 우리가 어떻게 하고 있었습니까? 하나님께 불순종했습니다.(엡2:2) 그때 우리는 공중권세를 잡은 악의 영들을 따랐습니다. 그때 우리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자들 이었습니다. 〈엡2:1〉에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긍휼에 풍성하신 그 큰 사랑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살리셨도다“(엡2:4-5)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이 받은 「구원의 은혜」는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의 은혜로 받은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한가지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예’하고 응답하고 나옴으로 해서 자동으로 해결 받게 된 은혜가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속에서 「불안」을 제거하시고 대신 「평안」을 심어주신 것입니다.
임금이 오라고 하는데도 가지 않은 사람들이 필연적으로 느낄 수밖에 없는 부담감과 불안감을 하나님께서 다 제거해 주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이처럼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함으로 구원받고 우리에게 평안의 복이 임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오라고 부르실 때 그 초청에 응해야 합니다. 그래야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야 거기에 평안이 있고 기쁨이 있고 행복이 있습니다.

3. 이제 〈세번째〉로: 하나님과 화목의 조건 2가지와 화목의 결과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기 위해서 먼저 우리 예수님께서 해주신 일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그의 몸을 십자가에 내 주신일입니다. 엡2:14-16에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그의 십자가로 원수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 우리로 하나님과 화목케 하셨으니 라고 하였습니다. 또 한 가지는 우리 편에서 그러니까 내편에서의 회개입니다. 요일 1:9절에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케 하실 것이요”라고 하였습니다.(시66:18) 이렇게 두 가지 입니다. 우리 예수님이 우리위해 십자가 지신 것 하고 내가 예수 믿고 회개하는 것하고 이렇게 두 가지 입니다. 이것이 없는 사람에게는 구원도 없고 그리고 평안도 없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믿지 않는 사람들은 불안감에서 해방될 수가 없다고 하는 말씀입니다. 믿는 사람이라도 지은 죄를 회개하지 않으면 마음의 평안이 달아납니다. 정신분석학자인 S.「프로이드」(1856-1939)는 말하기를 ‘사람에게 여러 가지 신경증세가 나타나는 것은 불안한 마음을 회피해 보려는 자아 방위본능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이 「자아방위본능」에서 나타나는 것이 자기멸시, 자기비하, 성깔내기, 공포증, 긴장과 가등, 과시욕, 완전벽 따위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심한 경우는 이것들 때문에 불면증에 시달리게 되고 머리가 아프고 자꾸만 불안해지고 식은땀이 나고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니 이런 짐을 평생 안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불쌍합니까?
그러면, 오늘 성경에 이에 대한 해결책이 무엇이라고 하였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과의 화목」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과 화목하면 모든 것이 평안해 질수 있습니다. 우리주님께서 요14:27에서 말씀하셨습니다. “평안을 너희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그랬습니다. 「끼친다」고 했습니다. 「끼친다」는 말은 「유신으로 물려주다」의 뜻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친히 누리시던 그 평안을 여러분과 저에게 유산으로 물려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따라서 이 평안은 하나님의 아들이 누리는 평안입니다. 주님개서 아버지와 함께 누리시는 하늘 평안입니다. 사탄을 이기신 능력자가 가진 평안입니다. 그러므로 이 평안은 특별한 평안입니다. 이 세상에서 얻는 평안과 같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가지신 평안은 그가 아버지의 뜻에 순종함으로 주어진 평안입니다. 참된 행복을 맛보신 평안이요 하늘에서 가져오신 평안입니다. 이 평안은 변덕을 모르는 평안입니다. 이 평안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이 평안은 돈 주고 사는 평안이 아닙니다. 이 평안은 우리의 마음을 윤택하게 해 줍니다. 이 평안은 환경에 구애받지 않는 평안입니다. 막힌 담이 없는 평안입니다. 온전한 평안입니다. 이 평안은 세상이 알수 도 없고 세상이 줄수 도 없는 평안입니다. 그래서 예수 믿으니까 이렇게 좋구나! 하고 탄성이 저절로 터져 나오는 평안입니다. 주님께서 바로 이런 평안을 여러분과 저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환경이 아무리 여러분과 저를 힘들게 하더라도 절대로 이 평안 만큼은 뺏겨서는 않됩니다.

이제 오늘 말씀의 끝을 맺겠습니다.
평안 중에서도 가장 복된 평안은 우리 주님이 주신 「평안」입니다. 이 평안은 「하나님과 화목한 자」만 누릴 수 있습니다. 이 평안은 「근본적 평안」입니다. 이 평안은 「근본적 복」입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과 화목하고 이 평안의 복을 누릴 수 있게 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