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히 12:1-3 ⊙ 제목: 승리하는 경주자가 되라
새해 첫 주일입니다. - 금년 한 해동안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우리는 히12:1-3절의 본문 말씀을 같이 보았습니다. 이 시간 「승리하는 경주자가 되라」는 제목으로 말씀 드리겠습니다.
★첫째: 성도는 신앙의 경주자입니다. 경주자는 달려가는 목적과 목표가 분명해야 합니다. ★둘째: 경주자는 장애물을 뛰어 넘어야 합니다. ★셋째: 신앙의 경주자는 예수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본문은 믿음으로 사는 성도의 삶을 가리켜서 그것은 곧 「신앙의 경주」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구원 얻은 성도의 삶은 달리기 경주에 참가한 선수가 완주 후에 받을 상(賞)을 바라보면서 최선을 다해 나머지 구간을 달려가는 것과 같습니다.
1. 첫째: 성도는 신앙의 경주자입니다. - 경주자는 달려가는 목적과 목표가 분명해야 합니다.
1절에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라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성경은 인생을 경주자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성도는 「신앙의 경주자」입니다. 빌 3:14절에도 보면 “내가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 가노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고전 9:26절과 딤후 4:7절 에서도 성도를 가리켜서 「경주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내가 왜 “경주”를 해야 하는 것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경주」를 하는 목적과 목표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주전 776년 고대 「그리스」는 도시국가 형태로 되어있는데다. 나라가 방대해서 다스리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4년마다 한번씩 모든 도시의 대표들을 모아놓고 큰 잔치를 하면서 달리기 등 각종 경기를 하였습니다. 근대 올림픽, 그러니까 제1회 세계 올림픽도 이 「그리스」에서 열렸습니다. 그리스의 아테네에서 열렸습니다. 올림픽의 가장 큰 목적은 「일치와 화목」입니다. 그런데 독일의 「뮌헨 올림픽」때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때 대한민국 선수들은 금메달을 하나도 따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북한 선수는 금메달을 땄습니다. 북한선수가 사격에서 금메달을 땄습니다. 그러자 세계 여러나라의 기자들이 - 사격에서 금메달을 딴 북한 선수에게 - 어떻게 그렇게 「사격」을 잘할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그 북한 선수가 기가막힌 대답을 하였습니다. 「나는 위대하신 김일성 수령님께서 “교시”하신대로 「원수의 심장」을 쏘는 심정으로 방아쇠를 잡아 당겼습니다.」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것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올림픽 정신은 「화합과 일치」인데 어떻게 우리가 저런 사람들과 같이 경기를 할수 있느냐? - 북한 선수들을 추방해야 된다고 하는 여론이 거세게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 때문에 북한 선수단에서 공식사과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북한의 교육제도와 그 사회가 만든 파괴적인 인간상을 볼수 있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그리스도인」은 경기에 참여하는 정신이나 목적을 그런데 두어서는 않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삶의 목적」을 그런데 두어서는 않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삶의 목적을 「하나님의 영광」에 두어야 합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해야 합니다.”(고전 10:31) 그리고 목표를 천국 가는데 두어야 합니다. 빌 3:20절에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 본향을 찾아가는 나그네들입니다.- 천국시민이 된 여러분과 저의 이름이 하늘 생명책에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이 「사실」이 중요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바로 이 사실 때문에 기뻐 할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눅 10:20절>에서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 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라”고 말씀 했습니다. 오늘 본문 바로 앞장에 보게되면 그러니까 <히11장>에 보게되면 믿음의 선진들이 쭉 소개되어 있습니다. 아벨, 에녹, 노아, 아브라함, 사라, 이삭, 야곱 등 - 믿음의 선진들이 소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모두 더 나은 하늘에 있는 본향을 사모하면서 -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 살았습니다. (히 11:13-16) 히 11:10절에 “아브라함도 -하나님이 계획 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라보고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했다”고 하였습니다. 만약 그들이 이 땅에서의 삶으로 끝난다고 생각했으면 ... 그처럼 “부자”로 잘 살면서 「장막」그러니까 「천막」을 치고 살지는 않았을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주님께서 여러분과 저의 최조 안식처를 마련하실때에 - 「이땅」에다 마련하지 않으셨습니다. 저 「천국」에다 -여러분과 저의 영원한 안식처를 마련 하셨습니다.(요 14:1-3) 그러므로 천국이 여러분과 저의 최종 목적지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반드시 거기에 도달해야 합니다. 한사람도 낙오되는 사람이 없기를 바랍니다.
2. 둘째 : 경주자는 장애물을 뛰어 넘어야 합니다.
본문 1절에 “모든 무거운것과 얽메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서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라고 하였습니다. 달리기 선수는 우선 복장이 간편해야 합니다. 모든 무거운 것들을 벗어버리고 달려야 합니다. 마라톤 선수는 배낭을 메고 달리지 않습니다. 무거운 신을 신지 않습니다. 손에 무엇을 들고 달리지 않습니다. 가장 가벼운 몸차림을 하고 달립니다. 달리기 선수가 이처럼 가벼운 몸차림을 하는 이유는- 모든 무거운 것들이 그가 꼴인지점을 향해 달려가는데 방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오늘 성경에 우리 성도들이 무엇을 벗어 버려야 한다고 하였습니까? 「얽매이기 쉬운죄」벗어버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성도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죄 씻음을 받았습니다. - 그러므로 성도는 과거에 지은 죄에 대해서 계속해서 죄짐을 지지 않아도 됩니다. 그런가 하면 여기 「죄를 벗어 버리라」고 한 말씀의 원문의 뜻 가운데에는 - 죄를 하나씩 단절 시키라는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마침내 죄를 끊어 버리라는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과거의 죄에도 얽매이지 말고 그리고 앞으로 죄지을 생각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죄와 관련된 것은 하나씩 하나씩 다 끊어 버려야 합니다. 세상에 대한 과도한 애정도 끊어 버려야 합니다. 또한 염려와 근심과 비애와 고통의 짐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내려 놓으십시오, 미래에 대한 짐도 내려 놓으십시오, 염려를 다 주께 맡겨버리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면, 모든 무것운것들로부터 해방되어 질수가 있습니다. - 그렇게 하면 남아있는 구간을 가볍게 달려갈수가 있습니다. 그 다음 「신앙의 경주자」는 우리 「예수님」처럼 「인내」로써 경주 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짧은 생을 보게 되면 - 인내로서 점철 되어 있습니다.- 그는 이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오셔서 가진 수모를 다 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까지 「인내」하시면서 가셨습니다. 우리는 흔히 「인내」라고 하게되면 정적 혹은 수동적인 뉘앙스를 느끼게 됩니다. 몸에 병이 들었을때 침상에서 이를 악물고 참아 내는 것을 인내라고 생각할때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여기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는 「인내」에 씌여진 성경원문(헬) 「휘포모네」라고 하는 단어는 그런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로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니래를 가리킵니다. 어쩔수 없어서 참는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2절에 “예수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 하셨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그 앞에 있는 기쁨」은 무엇을 말합니까? 저와 여러분이 「구원」받는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구원」받는 것을 바라 보시면서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기쁨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 때문에 그의 십자가 보혈을 인하여 구원 받을것을 내다 보시고 그 일이 너무너무 기쁘셔서 고통을 고통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부끄러움을 부끄러움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십자가를 참으신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이것이 「휘포모네」의 「인내」입니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주님의 인내”입니다. 이 「인내」를 우리가 배워야 합니다. 여러분 가운데 어려운일 당하신분 있습니까? 상황이 너무 않습니까? 그런분은 지금 내가 인내하는 훈련을 받고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약 1:12절에 “시련을 참는자가 복이있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인내를 바로 배우기만 하면 세상이 감당할수 없는 사람이 되게 됩니다. 「인내」하는 사람은 못당합니다. 「진주」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다 아실것입니다. 「조개」가 자기 몸속에 “모래”같은 이물질이 들어오게 되면 그것을 자기 몸에 품습니다. 물론 아프지요, 상처도 나고 고통스럽습니다. 그렇지만 「진액」으로 그 “이물질”을 덮습니다. 그렇게 계속 씨름하다보면 나중에는 그것이 영롱한 진주가 되게 됩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는 사람도 이와 같습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룰때 보석같이 소중한 사람이 될수 있습니다. 약1:4절에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고 약1:12절에 “시험을 참는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뎌낸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들에게 약속하신 -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것이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3. 셋째 신앙의 경주자는 예수를 바라 보아야 합니다.
2절에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이인 예수를 바라보자”고 하였습니다. 해마다 「새해」가 되면 동해안쪽에 해돋이 구경인파가 수십만명씩 몰리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거기에 간 대부분의 사람들이 새해 첫날 솟아 오르는 「해」를 향해서 「소원」을 비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그러나 「해」는 사람이 소원을 빌어야 할 대상이 아닙니다. 그것은 피조물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것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이 운행하고 계십니다. 과거 「로마제국」에서는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로마황제」를 「주님」이라고 부르라고 강요 하였습니다. 「가이사」를 주(主)라고 부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초대교회 성도들은 말하기를 예수님만 우리의 「주님」이시다 「가이사」는 우리의 주님이 아니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것 때문에 더 많이 박해를 당하고 그것 때문에 더 많이 죽었습니다. 오늘 우리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오직 우리 「주님」은 -「예수님」한분 밖에는 없습니다. 확실히 <11장>에 나오는 모든 믿음의 선진들은 믿음의 경주를 잘한 훌륭한 분들입니다. 그들은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서 ..., 우리로 하여금 믿음의 경주에서 승리할수 있도록 큰 교훈과 위로와 용기를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들보다 더 「주목」해야 될 분은 믿음의 주요 또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모든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마음을 집중 시켜야 합니다.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에게 마음을 고정하고 살아가는 사람은 반드시 믿음의 선한 싸움에서 승리할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믿음의 주」입니다. 이분을 믿는 믿음에 흔들림이 있어서는 않됩니다. 불신앙은 그나마 있던 믿음까지 끌어 내립니다. 믿음이 자랄수 없게 만듭니다. 본문 1절 하반절에서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라고 하는 「말」에 씌어진 단어(헬 ηρἑχωμεν)를 보게 되면 「현재동사」로 되어 있습니다. 「지금 달리는 중에 있다」하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이 지금 은혜 가운데 있지 않으면 않됩니다. 그리고 우리의 믿음이 점점 더 좋아져야 됩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의 생활은 「전진하는 생활」입니다. 비행기가 다른 교통수단하고 다른것은 날아가다 말고 서 있을수 없다는데 있습니다. 비행기가 그 자리에 서 있을려고 하다가는 추락하게 됩니다. 비행기는 그 자리에 서 있을수도 없고 뒤로 「후퇴」할수도 없습니다. 앞으로 전진하든지 위로 올라가든지 해야 비행기를 안전하게 운행할수 있습니다. 성도의 신앙도 이와 같습니다. 성도의 신앙은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어서는 않됩니다. 성도의 신앙은 전진하는 신앙 향상하는 신앙 발전하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믿음의 주요 또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이이신 「예수」를 바라 보아야 합니다!」 옛날에 어느 나라에 한 「젊은 재상」이 있었습니다. 어느날 이 젊은 재상이 임금님 에게 한가지 「질문」을 하였습니다. 임금님! 어떻게 하면 유혹을 피하고 깨끗한 재상이 될수 있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임금」이 대답은 않하고 컵에 물을 가득채워 가지고 오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명령을 내리시기를 너는 지금부터 그 물컵을 들고 앞으로 「세시간」안에 어디까지 갔다가 돌아와야 한다. 만약 물을 조금이라도 흘리거나 시간이 늦게되면 큰 벌을 내리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창과 칼을 든 군사들을 딸려 보냈습니다. 젊은 재상은 임금님께 질문 한번 했다가 큰 곤욕을 치르게 되었습니다. 겁이 덜컥 난 젊은 신하는 조심조심하는 가운데... 땀을 뻘뻘 흘리면서 무사히 제시간안에 e로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임금님이 그 신하에게 질문공세를 퍼붓기 시작했습니다. 자네가 거기 갔다오는 동안 젊은 여자를 보았는가? 못보았습니다. 그럼 술집은 보았는가? 못보았습니다. 길에 사람은 많던가? 못보았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본것이 없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임금님이 껄껄 웃으면서 바로 그걸세! 내가 맡은 일에 열중하다보면 하지 않아도 되는 시시한 일은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는법이라네 하고 「임금님」이 「말」했다고 합니다.
「학생」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노라면 하지 말아야 될 일은 자연히 하지 않게 됩니다. 「어른」도 마찬가지입니다. 마땅히 해야 될일에 열중하지 않기 때문에 해서는 않될 일들이 나를 유혹하고 시험하는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주님」만 바라볼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참된 「위로」가 있습니다. 세상이 주지 못하는 「평화와 기쁨」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참 만족」이 있습니다. 「참 소망」이 있습니다. 이 예수님을 바라볼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사명」에 「충실」할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달려갈길 다가고 선한 싸움 마친후에 「주님」앞에서서 면류관과 함께 큰 상(賞)을 받을수 있는 여러분과 제가 다 되어질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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