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중에 부른 찬송

제 목   밤중에 부른 찬송
 
밤중에 부른 찬송


오늘 우리는 <사도행전 16:19-34>의 본문 말씀을 같이 보았습니다. 이 시간 본문 말씀에 의지해서 “밤중에 부른 찬송”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증거해 드리겠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부른 찬송은
★첫째: 한밤중에 부른 찬송이었습니다.
★둘째: 고통 중에 드린 찬송이었습니다.
★셋째: 한밤중의 찬송으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어떤 집사님이 교회에 나온 지 얼마 안 되는 한 형제에게 다짜고짜 “한밤중에 찬송할 수 있습니까?”하고 물었더니 그 형제가 대답하는 말이 “밤중에 찬송하면 주민들이 떠든다고 경찰에 신고해서 안돼요. 그리고 저는 원래 목소리가 안 좋은데다가 밤에는 더 소리가 안 나와요”하고 대답하더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오늘 성경에 바울과 실라가 밤중에 찬송을 불렀다고 했습니다.





★첫째: 한밤중에 부른 찬송이었습니다.

<25절>에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에 보면 밤에 대한 몇 가지 상징적인 표현들이 나옵니다. (1)먼저, 우리가 잠을 자야 하는 시간, 그러니까 해가 지고 어두워진 때를 가리켜서 밤이라고 하였습니다(행 20:7). (2)다음, 무지와 불신앙과 죄로 어두워진 세상을 가리켜서 밤이라고 하였습니다(롬 13:12). (3)또,역경의 때를 가리켜서 밤이라고 하였습니다(사 21:12). (4)그리고, 죽음을 가리켜서 밤이라고 하였습니다(요 9:4). 이 가운데 본문에서 말씀하는 밤은 (1)번과 (3)번에 해당됩니다. \'잠을 자야 하는 한밤중을 가리키면서 동시에 역경의 때\'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왜 이런 밤을 맞이해야 했습니까? 그것은 낮에 빌립보에서 전도활동을 하던 바울과 실라가 귀신들린 여종을 고쳐내자 그 여종의 주인들이 점치는 여종을 통한 수입이 끊어진데 대한 앙심을 품고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다가 관원들에게 넘겨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 감옥에 갇혀 있는 중이었습니다. 관원들은 바울과 실라를 그냥 가두지 않았습니다. 옷을 벗기고 마구 친 후에 착고에 채워가지고 감옥에 가두었습니다(22-24). 그것도 깊은 감옥에 가두었습니다(24). 로마 관리들은 바울과 실라의 말은 아예 들어 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여기 <24절>의「깊은 옥」은 내옥에 해당되는「지하 감옥」을 가리킵니다. 로마제국의 감옥은 내옥이 있고 외옥이 있었습니다. 중죄인은 내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러니까「깊은 옥」곧 지하에 있는 내옥에 가두었습니다. 이처럼 그들은 바울과 실라를 중죄인 취급을 하였습니다.
사실, 바울과 실라에게 무슨 죄가 있었습니까? 귀신들인 여종 고쳐준 것이 죄입니까? 아니었습니다. 그것은「선한 일」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도 없이 당해야 하는 바울과 실라로서는 이 점이 더 감당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람이 고난을 당할 때 보면 사실은 육체적인 고통보다는 정신적인 고통이 더 큽니다. 실제로 잘못이 있어서 그 벌로 고생을 하면 덜 서럽고 덜 고생스럽습니다. 그러나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그와 아무 상관없이 고통을 겪게 되면 그 때는 더 슬프고 더 억울하고 더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바울과 실라는 바로 그러한 때를 믿음으로 잘 이겨냈습니다. 그들은 감옥에 있으면서도 기도하고 찬송했습니다. 그들은 지하 깊은 옥에 갇혀있었지만 그들의 믿음까지 갇힌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영혼까지 갇힌 것은 아니었습니다. 특별히 그들과 함께 하시는 주님도 옥에 갇힌 것이 아니었습니다. 때문에 그들은 거기서도 기도하고 찬송할 수 있었습니다.
오래 전에 영등포 시장에 큰 불이 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시장 안에, 남편은 세상을 떠나고 3남매를 데리고 장사하는 여집사님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여집사님의 가게도 불에 타게 되었습니다. 시장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이 모두 발을 동동 구르면서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그렇지만 이 여집사님은 달랐습니다. 뜻밖에도 그는 고요히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 때 큰 불길을 잡기 위해 출동해 있던 미8군 소방부대 지휘관이 이 집사님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너무 감동을 받은 미8군 소방부대 지휘관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분의 가게를 내가 다시 열게 해주고 저분의 살집도 내가 지어드리겠소.”하고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그「약속」을 지켰습니다. 그렇습니다. 과연 그 대 미8군 소방서 지휘관이 큰 감동을 받아서 자식들을 데리고 혼자 사는 여집사님이 가장 어려울 때 그를 도와 준 것이 정말 귀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그것은 배후께서 하나님께서 그 여인의 찬송하는 모습을 보시고 미8군 소방서 지휘관을 통해서 역사하신 줄로 믿습니다.
성경에 보면 욥도「역경의 밤, 흑암의 밤」을 통과할 때「감사 찬송」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욥 1:21>에 보면, 모든 것을 잃게 된 욥이 “주신 이도 여호와시오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하고「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였다(욥 1:20)」고 하였습니다. <마 26:30>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으심을 앞두고 감람산으로 가시면서 찬미하면서 가셨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도「역경의 때」에 이처럼「찬송」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바울과 실라처럼 듀엣으로 하든, 아니면 홀로 부르든 인생의 밤중을 만났을 때에도 찬송하십시다. 하나님께서 그 찬송을 특별한 찬송으로 받으십니다.





★둘째: 그 찬송은 고통 중에 드린 찬송이었습니다.

본문에 보면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차꼬에 든든히 채웠더니(23)”라고 하였습니다. 로마당국에서는 식민지 백성들을 매질할 때 아홉 갈래로 된 가죽 끈 끝에「쇳조각」이 붙어 있는 채찍으로 때렸습니다. 그래서 매를 맞을 때에「살점」이 묻어나고 뼈가 드러나기 일쑤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 지실 때에 그런 매를 맞으셨습니다.「바울과 실라」도 그런 매를 맞았습니다. 그것도 많이 맞았습니다(23). 그리고는「차꼬」에 채워져 깊은 옥에 던져졌습니다.「차꼬」는 송판에 겨우 발이 들어갈 수 있을 만큼의 구멍을 뚫고 그 구멍에 날카로운 쇳조각들을 붙여 놓음으로 움직일 때마다 고통을 가하도록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바울과 실라로서는 아픈 것을 생각하면 신음만 나오고 저들의 불법을 생각하면 분하고 전도가 중단된 일을 생각하면 낙심할 만도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과 실라는 “여기에도 무슨 뜻이 있겠지... 우리가 이렇게 된 데에도 하나님의 숨은 뜻이 있겠지... 하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그 시간에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롬 8:28>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듯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하였습니다.「바울과 실라」는 그 말씀을 믿었습니다. 그랬을 때 그들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찬송할 마음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찬송할 수 있는 힘을 주셨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환난 중에도 찬송할 수 있는 것은 이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로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환난이란「의외성의 고통」을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다보면 전혀 예측할 수 없었던 환난을 만나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때에도 하나님은 반드시 나를 찾아오십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내 곁에 와 계십니다. 찾아오셔서 나를 위로해 주시고 나의 힘이 되어 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후 1:3-4>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찬송하리로다 우리의 모든 환난에서 우리를 위로하시는 위로의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환난이나 고난은 힘듭니다. 짐이 무겁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내게 오셔서 나를 위로해 주시면 견뎌 낼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밤같이 어둡고 무서운 고난의 때를 만났을 때 내 지혜로 그 문제를 해결 하려고 하고, 사람들을 만나서 애걸하고 그렇게 하지 마십시오. 그야말로 희망이 안 보이고 소망의 햇볕이 보이지 않는 밤 같은 때야 말로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야 할 때입니다. 하나님의 위로를 받아야 할 때입니다. <시 42:8>에 “낮에는 여호와께서 그의 인자하심을 베푸시고 밤에는 그의 찬송이 내게 있어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언제 우리가 기도하고 찬송해야 합니까? 답은「편안할 때든지, 곤고할 때든지」입니다. 밤 같은 때에도 기도하고 찬송해야 합니다. 소망의 불빛이 보이지 않는 때에도 기도하고 찬송해야 합니다. 모든 일이 잘 될 때 하는 찬송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일이 잘 안될 때 하는 찬송은 아무나 할 수 없습니다. 모든 일이 잘 안될 때 하는 찬송은 오직 믿음으로 사는 성도들만 할 수 있습니다.
“하루 길을 가다 보면 소도 보고 말도 본다.”고 하는 옛 말이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살다보면 소도 보고 말도 보게 되겠지만 저와 여러분이, 특별히 그 가운데서, 그 사건 속에서「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왜 내가 이 사람을 만나게 되었는가? 왜 내개 여기 있는가? 여기서 내가 할 일이 무엇인가?”를 깨달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깨닫고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찬송」이 무엇입니까?「찬송」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높여 드리는 것이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고, 그를 기뻐하는 것입니다.「찬송의 본질」은 지금 내가 어떤 처지에 놓여 있다는 것을 말하는데 있지 않습니다.「찬송의 본질」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면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하는데 있습니다. 우리가 바로 이 찬송을 하게 될 때에 하나님께서 그것을 찬송으로 받으십니다.
우리는 몇 년 전「9.11 테러」로 그 어마어마한 미국 뉴욕 무역센터 건물이 한 순간에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거기서도 하나님의 메시지를 읽어야 합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미국무성”에서는 “미국만큼은 안전하다!”라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을 지켜주시지 않으면 그 어디에도 안전한 곳은 없습니다(시 127:1). 이 세상은「하나님」이 통치하십니다. 이 세상은 통치하시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가운데 고난을 겪고 있는 분 있습니까? 환난으로 인해 힘드십니까? 내 가까이 와 계시는「주님」을 붙드시기 바랍니다. 그 분의 위로를 받으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을 혼자 있게 내버려 두시지 않으십니다.





★셋째: 한밤중의 찬송으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26절>에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 터가 움직이고 문이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 진지라”고 하였습니다. 보십시오. 바울과 실라가 고난 가운데서도 기도하고 찬송하니까 이런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까?「차꼬」가 풀리고 「옥문」이 열렸습니다. 큰 지진이 일어났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처럼 고난 중의 기도와 찬송은 하나님의 이적을 부르는「소리」입니다. 그들은 너무 많이 맞은 것 때문에 신음 섞인 찬송을 드렸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들의 이중창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이것은 아무리 칠흙 같은 절망의 때라고 할지라도 성도가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송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의 능력으로 함께 해주신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야곱은 얍복강을 건널 때에 그의 인생의 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거부가 되어 돌아오고 있었으나 그의 형「에서」가 400명의 군대를 이끌고 야곱을 죽이려고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그 때「야곱」이「하나님의 개입」을 요청했습니다. 환도뼈가 부러져 나가면서도 하나님의 사자를 붙잡고 놓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 그를 도와주셨습니다.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 주셨습니다(창 32:24-29).「히스기야」왕도 어려운 환난의 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중병에 걸려 죽을 위기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히스기야」왕도「하나님」을 의지하였습니다. 전국을 다 뒤져서 좋은 약을 구해오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전국에서 가장 용한 의사를 데려오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오직「하나님」만을 의지하였습니다. 그「히스기야」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의 기도를 들었고 너의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라(왕하 20:5)”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면 되는 것 아닙니까? 한국 전쟁의 영웅인「맥아더 장군」이 트루먼 대통령에 의해 유엔군 사령관직에서 해임될 때의 일이었습니다. 그는 물러나면서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노병은 죽지 않고 사라질 뿐이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그를 지켜본 그의 측근은 말하기를 “나는 오랫동안 장군을 모셔왔지만 오늘처럼 장군이 위대해 보인 적은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참된 인격과 신앙은 역경의 대에 드러나게 됩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도「한밤중」과 같은「인생의 역경」이 닥쳐온다 하더라도 결코 믿음에 손해를 보아서는 안 됩니다.「찬송」을 잃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바울과 실라는 고난의 깊은 밤에 하나님을 찬송하였습니다. 이유 없이 당하는 고난에도 항변하지 않고 찬송했습니다. 그「찬송」이 기적을 낳았습니다. 지진이 일어나고, 차꼬가 풀리고, 옥문이 열린 것만 기적이 아니었습니다. 간수와 가족이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면서 전도의 문이 열렸습니다. 어쩌면 이「간수」는 낮에 쇳조각이 달린 가죽채찍으로 바울과 실라를 때렸던 사람일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런 간수가 이제 예수 믿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러므로 이것도 하나의 기적이었습니다(30~34절). 바라기는 오늘「바울과 실라」의「한밤중의 찬송」이 여러분과 저의 찬송이 되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제 오늘 말씀의 끝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찬송」하십시다. 기쁘고 즐거울 때에도 찬송하고 극심한 고난의 밤에도 찬송하십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다고 눈물만 흘리고 한숨만 토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우리를 방치하시지 않습니다. 우리의 문제에는 답까지 함께 있습니다.「하나님」을 의지하면 답이 됩니다. 문제의 답이 되시는 하나님께「기도」하고「찬송」하면 됩니다. 기도하고 찬송할 때 나를 괴롭히는 착고가 끊어지고, 자리가 진동하고, 문이 열리고, 형통의 역사가 전개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