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인생이란 무엇인가
오늘 우리는 <야고보서 4:13-17>의 본문 말씀을 같이 보았습니다. 이 시간 본문 말씀에 의지해서 “인생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증거해 드리겠습니다.
★첫째: 인생은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입니다. ★둘째: 인생은 나그네입니다. ★셋째: 인생은 질그릇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성경적 인생관」에 대해서 같이 생각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인생이란 무엇인가?”라고 하는 질문처럼 오래되고 또 바른 해답을 찾지 못한 질문도 없습니다. 이 질문은 인류 기원에서부터 지금까지 인류 전체가 물어온 질문입니다. 이 질문은 히브리인, 헬라인, 로마인 할 것 없이 인류 전체가 물어온 질문이고 지금도 묻고 있는 질문입니다. 사실 인간은「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특별한 존재」입니다(창 1:26). 지(知), 정(情), 의(義)를 갖춘 만물의 영장(靈長)입니다. 짐승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지 못했습니다. 오직 사람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이 만드신 최고의 걸작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은 내일 일을 알 수 없는 존재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런가 하면「성경」은「인생」을 가리켜서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요, 나그네요, 질그릇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성경은 “인생이란 무엇인가? 내가 왜 존재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명쾌한 답변을 해주고 있습니다.
인생이란 무엇입니까? ★첫째: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입니다.
여기 오늘 본문 <약 4:14>에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고 하였습니다. 본문을 자세히 보면「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안개」라고 하지 않았습니다.「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라고 하였습니다. 영어성경에서는 본문의 이「잠깐」이라고 하는 말을 “For a short time”이라고 쓰고 있습니다. 따라서 여기「잠깐」이라고 하는 말은 「덧없이 흘러가는 매우 짧은 기간」을 가리킵니다. 이처럼 인생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안개와 같습니다. 안개는 햇볕이 비쳐오든지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게 되면 금새 자취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맙니다. <시 39:5>에 “주께서 나의 날을 손 넓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의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마다 든든히 선 때에도 진실로 허사뿐이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어거스틴」은 인생을 가리켜서 죽어가는 삶이라고 해야 될지 살아가는 죽음이라고 해야 될지 말하기 어렵다고 했고,「셰익스피어」는 “사람의 일생이란 한낱 어른거리는 그림자에 불과하다.”고 말을 한 것입니다. 성경은 <시 90:10>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의 년 수가 칠십이요 강거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 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고 하였습니다. 나이가 칠십 몇이니, 팔십 몇이니 하는 것은 그나마 살기가 괜찮을 때 하는 얘기입니다. 여러분, 1945년 해방 당시 우리나라 사람들의 평균 수명이 얼마였습니까? 35세였습니다. 6.25가 끝나고 1950년대 중반이 되었을 때 그 때 우리나라 사람들의 평균 수명이 40세였습니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남녀 모두 평균 수명이 70을 넘고 있습니다. 거기다가 여자들은 몇 살씩 더 살고 있습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세월이 빠르기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세월이 쏜살같이 달려갑니다.「쏜 살」아시지요? 일단 활시위를 떠난 화살이 쏜 살입니다. 그런데 그 쏜 살이 얼마나 빨리 날아갑니까? 세월이 그렇게 빠르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잠을 자고 있을 지라도 쉬지 않고 가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죽음을 재촉하는 시간입니다. 어떤 분이 말하기를 30대 때는 시간이 30km로 달리더니, 40대가 되니까 시간이 40km로 달리고, 50대 때는 50km로 달리고 60대 때에는 60km로 달리더라고 했다던데 정말 실감이 가는 얘기입니다. 세월이 얼나마 신속리 가는지 그야말로 날아갑니다. 누군가가 인생은 5가지가 없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없고, 없고, 없고, 없다가, 없어지는 것이 인생이라고 했습니다. (1)어려서는 철이 없고, (2)한창 때는 정신없고, (3)중년이 되면 분주해서 틈이 없고, (4)늙어지면 형편없다가, (5)그러다가 아주 없어지는 것이 인생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생명을 이름하여 목숨이라고 부릅니다. 목구멍으로 숨 쉬고 사는 것이 목숨입니다. 그것을 생명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목구멍에서 숨 쉬는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면 그 사람은 죽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나마 우리가 땅에서 목구멍으로 숨 쉬고 살 수 있는 기간이 얼마 되지 않습니다. 그 기간이라는 것이 아주 보잘 것 없습니다. 여러분, “찰칵, 찰칵”하고 시계 돌아가는 소리가 무슨 소리인지 아십니까? 내 생명줄 끊어 먹는 가위소리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루를 살았다고 하는 것은 우리가 하루를 죽었다고 하는 말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모두들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인생들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언젠가는 모두 죽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인생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분이 있습니다. 그 분이「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요 5:24>에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미 예수를 믿는 분들은 영원한 생명이 바로 여러분의 것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예수사랑 초청잔치」가 열렸던 지난 주일과 오늘 새로 교회에 나오신 분들은 예수를 나의 구주로 영접하심으로 영원한 삶에 참여한 자가 되어 함께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인생이 무엇입니까? 둘째: 나그네입니다.
<벧전 1:17>에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성경은 우리를 「나그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그네는 어떤 사람입니까? 제 고향에서 떠나 사는 사람입니다. 고향을 떠나서 길 가는 사람이요 일시적으로 타향에 머무는 사람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우리 모두는 고향을 더나 나그네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 동네서 태어난 아이들 빼고는 모두다 나그네들입니다.「나그네」는 길가는「순례자」입니다. 앞으로 50년의 세월이 흐른 후에 과연 이 가운데 이 자리에 남아 있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아마 많지 않을 것입니다. 나그네는 일시적으로 머무는 사람입니다. 언젠가는 떠나야 될 사람입니다. 언젠가는 떠나야 될 사람이기 때문에 그래서 나그네입니다. 야곱이 130세 때에 한 말이 <창 47:9>에 나와 있습니다. 거기보면 “내 나그네의 길의 세월이 일백삼십년이니이다 내가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땅에서의 삶에는 고통과 괴로움이 따르게 됩니다. 누가 한 번 내리는 비를 향해서 “비야 비야 좀 물어보자. 너 내리는 곳에 인생의 눈물이 없는 곳이 있더냐?”하고 한번 물어보십시오. 그런데는 한군데도 없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 유명한 나폴레옹이 세인트헬레나 섬에 유배되어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남긴 말 가운데 이런 말이 있습니다. “육대주 불어오는 바람은 천만인의 한숨이요 오대양 넘실거리는 바닷물은 백만인의 눈물이로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인생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나그네의 행로에는 어려움이 따르게 마련입니다. 산도 넘어야 하고 강도 건너야 합니다. 때로는 외롭고 쓸쓸할 때도 있습니다. 나그네 인생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죄악으로 어두워진 세상, 환난풍파가 쉬지 않는 세상을 순례자가 되어 살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순례자 이러한 나그네에게는 반드시 인도자가 필요합니다. 보호자가 필요합니다. 그러면 인생 나그네 길을 걸어가고 있는 저와 여러분의 인도자와 보호자가 누구입니까?「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분을 모시고 걸어야 성공적인 순례자의 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그 분을 모시고 살아야 내게 부족함이 없습니다. 여러분「만족」이라는 말 아시지요? 만족이라는 말은 길가는 나그네와 깊은 관련이 있는 말입니다. 만족이라고 할 때「족」자가 무슨「족」자인가 하면,「발 족」자 입니다.「찰 만(滿)」자,「발 족(足)」자를 씁니다. 발이 편안하면 모든 것이 편안하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나그네의 길을 바르게 인도해 주실 이는 우리 예수님 밖에는 없습니다. 주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우리를 만족케 하실 이도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밖에는 없습니다. 내가 어디를 가든지 무슨 일을 만나든지 주께서 나와 동행하시고 보호해 주시고 인도해 주십니다. 세상 끝날 까지 나와 함께 계십니다. 천국까지 나를 인도해 주십니다. 천국이 저와 여러분이 돌아가야 할 본향입니다. 그 동안의 우리의「고향 개념」은 우리가 어린 시절에 뛰놀던 곳, 그리운 추억이 담긴 곳, 어머니의 따뜻한 사랑이 감싸주던 곳으로「과거의 세계」였습니다. 우리가, 내가 태어나고 내가 자라난 고향을 그리워하는 이유는 거기에 나를 반겨줄 부모 형제가 있고, 정든 고향 산천을 다시 한 번 보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고향에 간다고 하더라도 전혀 옛 모습을 찾아볼 수 없고 아무도 나를 반겨줄 사람이 없다고 하면 무엇 하러 고향에 가겠습니까? 성도 여러분, 예수 믿고 돌아간 내 부모님은「천국」에 가야 다시 만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성경에서 말씀하는 본향은 다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고향은 우리가「미래에 살 고향」입니다. 오직 우리의 시민원은 하늘에 있습니다. 우리의 최종 목적지는「천국」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 없이 사는 사람들의 시골집 주소는 “그렇군 죽으면 끝나리”이지만, 예수 믿는 사람들의 주소는 좀 다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의 주소는 “그렇군 감사면 기쁘리”입니다.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이「미래에 살게 될 고향」을 소망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천국은 땅에 있는 고향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곳입니다. 특별히 거기에 사랑하는 우리 주님이 계십니다. 이처럼 나그네는 나그네이지만 돌아갈 본향이 있는 저와 여러분은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인생이 무엇입니까? 셋째: 질그릇입니다.
<고후 4:7>에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여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어떤 그릇이 질그릇입니까? 흙으로 그릇 모양을 만들어 가지고 그것을 불에 구워서 만든 그릇이 질그릇입니다. <창 2:7>에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셨다”고 했습니다. 우리 가운데「아담」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아담」이라고 하는 말이 무슨 뜻인가 하면「흙」이라는 뜻입니다(히브리어/아다마(명): 흙). 여러분은 질그릇하게 되면 무엇이 생각나십니까? 어떤 분은 “뚝배기보다 장맛이다!”라는 말이 생각난다는 분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거 생각해 내느라 수고하셨다고 그랬습니다. 질그릇은 우선 잘 깨집니다. 볼품이 없습니다. 값이 쌉니다. 귀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이것이 질그릇입니다. 사람이「질그릇」이기 때문에 가시 돋힌 말에 쉽게 상처를 받는 것입니다. 사람은 병균에도 약합니다. 강한 것 같으면서도 약한 것이 사람입니다. 원기 왕성하던 젊은이가 뜻하지 않은 사고로 평생을 식물인간으로 지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있습니다. 금방 늙습니다. 사람은 25세를 기점으로 피부가 노새화의 길로 접어들게 됩니다. 그래서 여자 나이 25세가 넘게 되면 금값에서 은값, 동값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25살이 넘은 사람은 너무 비싸게 내 놓으면 안 됩니다. 이런 모든 사실을 우리가 인정하고 싶지 않더라도 인정을 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질그릇은 질그릇이지만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보배를 담은 질그릇」입니다. <고후 4:7>에 분명히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보배」는 누구를 말합니까? 이「보배」는「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참 보배 되시는 주님을 가리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참 보배 되신 주님을 모실 수 있게 되었습니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영접함으로 해서 우리가 보배되신 주님을 모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겉사람」이 중요하지 않습니다.「속사람」이 중요합니다. 외모보다 인격이 더 중요합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지만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삼상 16:7). 우리의 겉사람은 세월이 흐를수록 늙어 갈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속사람은 얼마든지 날로 새로워 질 수가 있습니다. <고후 4:16>에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날로 낡아지지만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나」는 과거「나」혼자 있을 때와 다른 것입니다. 나는 지금 승리하신 주님을 모시고 있기 때문에 나는 지금 값으로 환산할 수 없는 엄청난 가치를 지닌 새로운 존재가 된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보배를 담은 질그릇은 주님의 능력이 역사하는 질그릇입니다. <빌 4:13>에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주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모든 일을 내 능력 이상으로 감당해 낼 수가 있습니다. <고후 12:9>에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 짐이라”고 하였습니다. 비록 나는 약할지라도 주님은 강하시기 때문에 온전한 능력이 나타나게 됩니다. 주님께서 내게 힘주심으로 해서 내가 시험을 이길 수 있습니다. 마귀도 이기고 죄도 이길 수 있습니다.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강한 손 편 팔로 저와 여러분을 붙들어 주십니다. 우리 주님은 온전하신 분이십니다. 우리 주님은 부요하신 분이십니다. 그 주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부요케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저와 여러분이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승리하는 자」되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