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수잇거든이 무슨말이냐

제 목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본문: 마가복음 9:14-29
⊙ 제목: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오늘 우리는 <마가복음 9:14-29>의 본문 말씀을 같이 보았습니다. 이 시간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라는 제목으로 오늘 말씀을 증거해 드리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믿음을 보시고 역사하십니다.
★셋째: 하나님께서 기도하는 사람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께서 변화산에 올라가 계시는 동안 산 아래서 일어났던 일과 예수님께서 산에서 내려오신 후에 있었던 일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변화산에 올라가 계실 때 산 아래서는 벙어리 귀신이 들려 간질병을 앓고 있는 아들을 그의 아버지가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와서 좀 고쳐달라고 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의 제자들로서는 고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산에서 내려오시자, 병든 아이의 아버지가 예수님에게 아들의 병을 좀 고쳐달라고 하였습니다. 고쳐달라고 하면서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겨 도와 달라.”고 말했습니다(22절). 그러자 그 말을 들으신 예수님께서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23절). 책망을 들은 아이의 아버지가 당황해서 용서를 빈 다음에 “내가 믿나이다.”라고 말합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그의 아들의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여러분,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첫째: 하나님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무한한 지혜와 능력을 소유한 전능자이십니다(행 17:24-25). 하나님은 만물의 창조주이시며 운행자이십니다. 하나님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십니다. 그러면,「예수님」은 어떻습니까? 예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계십니다(마 28:18).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가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사탄의 권세를 이기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은 나사로도 살려 내시고 바람과 바다도 잔잔케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히 13:8).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도 살아 역사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그의 약속도 변함이 없습니다. 그의 능력도 변함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은 곧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이번에는「성령의 능력」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슥 4:6>에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영)으로 되느니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일들이 많지만 그러나 성령의 능력으로는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고 말씀했습니다.
성령의 능력을 가리키는 성경 원어(헬라어)는「두나미스(θ&#8016;ναμ&#7984;σ)」입니다. 영어의「다이나마이트(dynamite)」라고 하는 단어가「두나미스」에서 파생되었습니다. 다이나마이트는 주로 험산 준령의 바위를 부숴서 길을 내는데 사용됩니다. 그만큼 엄청난 폭발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산테 박사는 말하기를 “「에네르기(Energy)」가 그 자체 내에서 존재하는 세력이라면,「두나미스」는 외부에서 나타나는 세력이다.”라고 했습니다.「두나미스」는 곧 「영적 폭발력」입니다. 신적 능력입니다(롬 1:20). 성령이 권능있게 역사하게 되면 바위 같은 세력이 산 같은 엄청난 세력도 그 앞에 무릎을 꿇게 됩니다(사 41:14-16). 이 권능은 하늘로부터 오는 권능이기 때문에 핵폭탄보다도 더 강력한 위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권능 있는 성령의 출처가 어디입니까?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요 14:26>에 “보혜사 곧 하나님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리라 그가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요 14:6)”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성부, 성자, 성령, 이렇게「성삼위일체」께서 동일한 능력으로 역사하십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능력이 나와 함께 하실 때에는 성령으로 내 속에서 역사하십니다. 이 능력은 바로 성도가 세상을 이기는 힘입니다. 오늘도 죽은 사람이 사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꼭 죽을 수밖에 없는 자리에서 살아나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것은 주께서 그의 권능의 손으로 붙들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냥 지나가는 사건이 아닙니다.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역사와 섭리하심 때문입니다. 이적과 기적은 오늘날에도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개미와 지렁이의 이야기를 다시 한 번 해드리겠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가 기적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더없이 좋은 예가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비가 그친 여름날 시골집 마당에 개미들이 나와서 열심히 겨울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개미들이 일을 하고 있는 그 앞에 기차만한 소시지가 보였습니다. 지렁이가 보였습니다. 개미들은 “야! 이것만 있으면 올 겨울은 잘 날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대대병력, 연대병력 다 동원해서 덤벼들었습니다. 지렁이가 조금씩 움직였습니다. 그 때였습니다. 지렁이가 귀찮다는 듯이 힘을 한번 쓰면서 꿈틀댔습니다. 그러니까 개미들이 다 나가자빠졌습니다. 부상병이 속출했습니다. 다리 부러진 녀석, 허리 망가지 녀석, 머리에 부상을 입은 부상병이 속출했습니다. 그래도 개미들은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또 덤벼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지렁이가 또 내팽개쳐버렸습니다. 그 광경을 가만히 보고 있던 사람 하나가 개미들을 좀 도와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 자리에 그대로 앉은 채 손으로 옆에 있는 나뭇가지를 꺾어가지고 그걸로 젓가락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는 그 젓가락으로 지렁이를 집어가지고 개미들이 사는 구멍 입구에다 놔주었습니다. 개미들이 볼 때 그것은 기적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볼 때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었지만, 개미들이 볼 때에 그것은 기적이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사람들이 볼 때는 기적이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보실 때에는 아무 것도 아닌 일들이 우리에게 너무도 많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아주 쉽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한번 말씀하시면 그 말씀대로 되고 맙니다. <눅 1:37>에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능치 못하심이 없는 하나님이십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믿음을 보시고 역사하십니다.

<본문 23절 하반절>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믿음을 보시고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믿음이라고 해서 다 같은 믿음이 아닙니다. 커 보이지만 죽은 믿음이 있고, 작아 보이지만 산 믿음이 있습니다. <약 2:26>에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주님의 언약, 주님의 권세, 진리의 말씀에는「가정(假定)의 개념」이 없습니다. 성경에 말씀한 그대로입니다. 그것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히 11:1>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주 안에서 믿는 것들은 상대적인 것들이 아닙니다. 허상이나 꿈도 아닙니다. 절대적인 것들이요 반드시「현실화될 것」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 주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셨다고 했으면 우리가 “아멘”해야 됩니다. 성경에 부활과 영생이 약속되어 있으면 반드시 그렇게 될 줄로 믿어야 합니다. 그래야 살아있는 믿음의 소유자가 될 수 있습니다.
본문의 병행구절인 <마 17:19-20>에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조용히 예수님께 묻는 장면이 나옵니다. “선생님! 어째서 저희들은 그 아이에게서 벙어릴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습니까?”라고 묻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너희에게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저기로 옮겨지라 하여도 옮겨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겨자씨는 가나안 땅에서 제일 작은 씨앗입니다. 우리나라의 깨알보다 더 작습니다. 그렇지만 겨자씨 그 자체만 보면 안 됩니다. 작은 것 그 자체만 보면 안 됩니다. 겨자씨는 작지만 그 속에 알찬 생명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일단 심어 놓으면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자꾸만 자꾸만 자랍니다. 여기에 “겨자씨의 승리”가 있습니다.
「춘원 이광수」하면 우리나라 사람이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 대단한 문인이었습니다. 그가 쓴「흙」이라는 소설은 너무도 유명합니다.「마의 태자, 단종애사」등도 그가 썼습니다. 그는 일제시대 때 안창호를 도와 임시정부에서 활약하던 독립 운동가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가서는 안타깝게도 친일파로 변절을 하고 말았습니다. 삼일 독립선언문을 기초로 한 육당 최남선도 훗날 친일파로 변절하였습니다. 그들이 변절한 이유가 어디에 있었습니까? 역사를 보는 눈이 잘못되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의 현실만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보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 가장 문제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22절>에 나오는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라고 한 이 말입니다. 이 말이 왜 문제가 되는 것입니까? 그것은 이 말 속에 확신 대신 의심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의심, 부정, 이런 것들이 문제가 되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부정은 긍정보다 강하게 작용하게 됩니다. 사람들을 더 많이 이끌리게 하는 것은 긍정적인 말이 아닙니다. 부정적인 말입니다. “거 어렵겠는데요..”라고 하는 말이 “잘 될 겁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라고 하는 말보다 심정적으로 훨씬 더 지지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어느 예수 믿는 사람 집에서 앵무새를 길렀습니다. 이 집의 앵무새가 가장 잘하는 말은 “사랑해요! 승리하세요!”라고 하는 말이었습니다. 어느 날 친구가 이 집에 놀러 왔다가 보고는 자기 집 앵무새 교육 좀 시켜야겠다면서 빌려갔습니다. 그랬다가 며칠 후에 돌려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앵무새가 돌아오자마자 대뜸 한다는 말이 “망할 놈의 자식 나가 뒈져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부정은 언제난 긍정보다 강합니다. 오늘 성경에 주님께서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야!”고 하신 말씀은 의심과 부정에 익숙해 있는 우리에 대한 주님의 책망의 말씀입니다. 사탄은 언제나 우리에게 “그 일 어렵다.”고 말합니다. 안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할 수 있으니 해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고, 주님께서 내게 능력 주시면 내 힘으로는 못해도 주님의 능력으로는 할 수 있습니다. <빌 4:13>에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내 능력」만 보면 안 됩니다.「주님의 능력」을 바라봐야 합니다.「주님의 능력」을 힘입어야 합니다.
성도는 자신의 작은 모습만 보지 않습니다. 믿음은 내 능력 이상의 것을 하게 합니다. 좌절을 소망으로,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어 줍니다. 나의 적은 믿음이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될 수 있는 것은 믿음이 나를 그리스도 안에 머물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주장하실 수 있도록 모든 것을 그 분에게 맡겨야 합니다. 여러분, 이 믿음이라야 합니다. 이 믿음이라야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어 놓을 수가 있습니다. 태산보다 더 큰 장애물을 능히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불가능을 가능케 할 수가 있습니다.





★셋째: 하나님께서 기도하는 사람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9절>에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산에서 내려오신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서기관들이 변론하는 것을 보셨습니다(14절). 변론이 왜 생겼습니까? 그것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벙어리 귀신들린 아이를 고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면, 유대교 지도자들인 서기관들은 좀 나았습니까? 그들도 똑같았습니다. <28절>에 보면, 서기관들이 떠난 다음에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조용히 물었습니다. “선생님, 어째서 저희들은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랬을 때 예수님께서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변화산에 올라가셔서 모세와 그리고 엘리야와 함께 장차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의논하실 때, 산 아래 있던 제자들이 한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장차 예수님이 이스라엘 나라의 왕이 되시면 서로 좋은 자리를 차지하겠다며 다툰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모든 관심을 세상 영광에 집중시킨 채 서로에 대한 시기심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들은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들에게서 귀신을 쫓아낼 수 있는 능력이 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귀신을 쫓아내는 일은 영적인 싸움이요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야 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도 제자들은 기도하지 않고, 다만 자신들의 힘으로 귀신을 쫓아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실패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강하다고 자부하고, 잘났다고 뻐기고, 능력 있다고 큰소리치는 사람을 돕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사랑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성도를 도우실 때 언제 도우십니까? 성도가 기도할 때 도우십니다. <야고보서 1:5-7>에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고 말씀했습니다. 그것은 고난당할 때나 병들었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야고보서 5:13-16>에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라고 말씀하였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성도에게는 기도할 수 있는 특권이 있습니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불교」에서는 인간은 고생하기 위해서 태어났다고 말합니다.「생노병사」라고 하는 것이 인생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나는 인생에게 생명을 주고, 그 생명을 더욱 풍성하게 하기 위해 왔다(요 10:10).”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주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주님 안에서 천국 시민권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명을 주신 주님께 감사하고, 그리고 기뻐하고, 그 분께 찬양과 영광을 돌려 드려야 합니다. 성도에게 표징이 있다면 그것은「기쁨」입니다. 성도는 기쁘게 태어나서, 기쁘게 살아가며, 기쁘게 봉사하다가, 기쁨으로 천국에 가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우리 주님께서 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건강의 능력, 소망과 기쁨의 능력, 봉사의 능력, 전도의 능력을 주시고, 우리로 힘 있고 복되게 살게 해주십니다.





★ 이제 오늘 말씀의 끝을 맺겠습니다 ★

우리 하나님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나는 할 수 없어도,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내 능력 이상으로 일할 때가 언제입니까? 주님께서 나와 함께 하실 때입니다. 겨자씨가 큰 나무로 자라는 것처럼, 저와 여러분의 믿음이 놀랍게 성장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의 대장들이 되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세상을 이기고, 죄르 이기고, 마귀를 이길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훌륭한 그리스도인들이 다 되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