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의기도

제 목   왕의 기도
 
본문: 역대하 6:12-21
⊙ 제목: 왕의 기도

오늘 우리는 <역대하 6:12-21>까지의 본문 말씀을 같이 보았습니다. 이 시간 “왕의 기도”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솔로몬 왕이 하나님께 손들고 기도하였습니다.
★둘째: 솔로몬 왕이 “하나님은 언약을 지키사 내 아버지 다윗에게 말씀하신 대로 이루신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하며 기도했습니다.
★셋째: 솔로몬 왕이 “나와 내 백성이 성전에서 기도할 때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솔로몬」하면 누구나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지혜”입니다. 그만큼 솔로몬의 지혜는 유명합니다. 그 지혜는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주신 것이었습니다. 솔로몬이 그의 아버지 다윗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고 나서 제일 먼저 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예배였습니다. 솔로몬이 일천번제를 드렸습니다(왕상 3:1-13). 하나님께서 그 예배를 기뻐 받으셨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전무후무한 지혜를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 역시 솔로몬이 예배 때 하나님께 드린 기도 내용입니다. 그의 아버지 다윗이 그처럼 소원했던 성전을 솔로몬이 건축하고 나서 하나님께 드린 기도입니다(대하 3:1-5:14). 그럼 지금부터 그 때 솔로몬이 어떤 기도를 드렸는지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솔로몬 왕이 하나님께 손들고 기도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13절>에 “솔로몬이 무릎을 꿇고 하늘을 향하여 손을 펴고 이르되”라고 하였습니다. 왕은 주로 두 가지 경우에 손을 듭니다. 하나는 항복할 때이고 하나는 백성을 축복할 때입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에 솔로몬이 손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오늘 성경에 솔로몬 왕이 대적 앞에서 손을 든 것은 아니었습니다. 솔로몬왕은 하나님 앞에서 손을 들었습니다. 솔로몬 왕이 왜 하나님 앞에서 손을 들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의 회개의 표시요, 언제나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 앞에서의 승리자의 몸짓 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또한 그가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고 하였습니다. 무릎을 꿇는 것 역시 왕이 전쟁에 져서 항복할 때 외에는 무릎을 꿇지 않습니다. 그런데 왕이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들고 기도를 드린 것입니다. <딤전 2:8>에 “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성도가 기도할 때 드는 손은 복된 손입니다. 남을 밀치고 때리기 위해 드는 손은 악한 손입니다. 그러나 기도할 때 드는 손은 복된 손입니다. 솔로몬이, 부왕 다윗이 남겨놓은 성전 건축의 꿈을 이룬 후에 하나님께 예배하는 가운데 제일 먼저 한 일은 성전에서 무릎을 꿇고 손들고 기도한 것 이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모세도 손들고 기도했다고 하였습니다.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통과할 때 아말렉이 그들을 공격해 왔습니다. 에서의 손자 아말렉의 후손들이 그들을 공격해 왔습니다(출 17:8-16). 그때 아말렉의 전력은 막강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아말렉의 상대가 못되었습니다. 아말렉은 전쟁에 능했지만 이스라엘은 서툴렀습니다. 여호수아가 이끄는 이스라엘 군대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모세가 아론과 훌을 데리고 산위로 올라갔습니다 (출17:10). 올라가서 손들고 기도 하였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항복의 표시요, 회개의 표시였습니다. “하나님! 나와 내 백성이 광야를 통과 하면서 불평하고 원망한 것 회개합니다.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라고 하는 회개의 표시였습니다. 그리고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주께서 저희를 박대하시면 우리가 어디로 가오리까?”라고 하는 절규요 호소였습니다. 여러분 이 기도가 필요합니다. <시 51:17>에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않으신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기도할 때 먼저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그래야 불쌍히 여김을 받을 수 있습니다. 또 한 가지 모세가 손들고 기도 한 것은 승리에 대한 확신의 표시였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실 것이기 때문에 틀림없이 우리가 아말렉을 이기게 되어있다고 하는 확신에 찬 몸짓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마치 만세를 부르는 것처럼 팔을 치켜들고 기도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에게도 이런 기도가 필요합니다. 성도는 아무리 상황이 절박하고 앞이 안 보인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마침내 나에게 승리를 안겨 주실 줄 믿고 손을 들고 기뻐할 줄 아는 믿음의 여유를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보시고 우리에게 승리를 안겨 주십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이 손들고 기도하기를 힘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무릎을 꿇고 기도 하기를 힘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습니다. 기도보다 더 생산적인 것은 없습니다. 세계 제2차 대전 때 독을 폭격기가 연일 영국 상공에 날아와서 런던과 영국 전역을 불바다로 만들었습니다. 그러자 처칠수상이 전 국민 기도의 날을 선포 했습니다. 그리고는 온 국민과 함께 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기도 할 때 전세가 역전이 되면서 영국이 독일을 이길 수가 있었습니다. <출 17:13-14>에 이스라엘이 아말렉과 싸울 때 모세의 팔이 뒤로 올라가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모세의 팔이 피곤하여 아래로 내려가면 아말렉이 이기더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아론과 훌이 모세를 도와서 모세의 팔이 내려오지 않게 해주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마침내 이스라엘이 아말렉을 이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감사한 것이 한 가지 더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때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들려주신 언약이었습니다. 그 언약이 무엇입니까? “나 여호와가 내 백성에게 맹세 하노라 이제 이후로 내가 대대로 아말렉과 더불어 싸우리라!”고 하는 말씀이었습니다(출17:16). 여러분 그 말씀은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의 대적과 싸우시겠다는 말씀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출 17:16>에 분명히 내가 대대로 아말렉과 싸우리라 그랬습니다. 대대로 싸우시겠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한번만 도우시고 마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대대로 도우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기도를 한번만 들으시고 그 다음에는 외면하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대대로 도우시고 대대로 이기게 해주십니다. 대대로 우리의 승리의 깃발이 되어 주십니다. 성도 여러분 손들고 이겨야 합니다. 기도로 승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손들고 승리하는 성도 기도로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되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솔로몬 왕이 “하나님은 언약을 지키사 내 아버지 다윗에게 말씀하신 대로 이루신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하며 기도했습니다.

<14절> “천지에 주와 같은 신이 없나이다 주께서 주의 종들에게 언약을 지키시나이다”고 하였고, <15절>에 “주께서 주의 종 내 아버지 다윗에게 하신 말씀을 지키셨나이다”고 하였습니다.「하나님의 언약」에 대해서 알고 계시지요? 「하나님의 언약」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에게 약속하신 것 또는 맹세하신 것을 가리킵니다.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 내 자녀가 되리라 너희가 어디로 가든지 무슨 일을 만나든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고 하신 것입니다(창 17:7, 출 4:5). 하나님께서「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 언약을 하셨습니다(엡 1:7). 지금도 그 언약에 따라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천국까지 우리를 인도해 주십니다. 이것이「하나님의 언약」의 중심 내용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말미암아 행위언약이 파기된 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새롭게 언약을 체결하셨습니다(창 17:6).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체결하실 그 때에 아브라함에게 아무런 자격이나 공로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와 언약을 체결하셨습니다. 그 언약이 바로「은혜 언약」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그 언약이 바로 저와 여러분에게 하신 언약입니다. 성경에「아브라함의 믿음의 후손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말씀했습니다(롬 4:16). 솔로몬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자기 아버지 다윗에게도 그대로 적용되고, 그리고 자신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솔로몬이 언약을 지키시는 신실한 하나님을 의지할 마음을 가지고 기도를 드렸던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솔로몬이 한 가지 더 알고 있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냥 언약을 지켜주시는 것이 아니라, 은혜를 베풀어 주심으로 언약을 지켜주셨다고 하는 사실이었습니다. <14절> 맨 끝에 보면 나와 있습니다. 여기 보면,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셨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사랑하신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에게 흠이 없거나 죄가 없기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다윗에게도 죄가 있었습니다.
“다윗의 죄가 무엇입니까?”라고 묻게 되면, 대부분 사람들이 그가 밧세바를 범하고 그의 남편 우리아를 죽인 것만을 말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다윗의 중대한 범죄가 그것 말고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인구 조사」입니다. 인구 조사가 왜 그처럼 중대한 범죄 행위가 되었습니까? 그것은 전쟁할 때마다 이긴 것과 나라가 부강해진 것이 모두 다윗 자신이 잘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그가 가졌기 때문이요, 다윗이 하나님보다 막강한 군사력을 보면서 마음 든든하게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다윗의 인구조사를 매우 불쾌하게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치셨습니다. <대상 21:7>에 “하나님이 이 일을 괘씸히 여기사 이스라엘을 치시매”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다윗은 잘못한 것보다 잘한 것이 더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이 잘한 것이 무엇입니까? (1) 즉시 회개한 것입니다. 밧세바를 범했을 때도 그랬고, 인구 조사를 했을 때도 그랬습니다. 책망을 받고 즉시 회개했습니다. 회개하니까 하나님께서 진노를 거두셨습니다. 우리도 그래야 합니다. 잘못했을 때는 즉시 회개해야 합니다. 그래야 멀어졌던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 회복할 수 있습니다. 회개해야 하나님께서 진노를 거두십니다. (2) 언제나 먼저 하나님과 의논하고 하나님께서 하라는 대로 한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가라고 하면 가고, 가지 말라고 하면 안 갔습니다. 하나님이 하라면 하고 하지 말라고 하면 안 했습니다. 그 예를 한 가지 들겠습니다. 다윗은 성전을 짓고 싶었습니다. 돈도 있고, 기술자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너는 안 된다.”고 그러셨습니다. 하나님의 그 말씀에 다윗이 두말없이 순종했습니다. (3) 또 한가지 다윗은 정직했습니다. 성경에 열왕들을 평가할 때 보게 되면 선한 왕에 대해서는 “그가 다윗의 모든 행위를 본받아 정직히 행하여(왕상 18:2)”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6.25 동란이 일어날 무렵 동대문에서 동흥 상회라고 하는 상점을 가지고 장사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전쟁이 터지니까 사람들이 모두 피난 가기에 바빴습니다. 그런데 이 동흥 상회의 주인은 좀 달랐습니다. 피난 가지 않고 대신에 외상값 갚으러 다녔습니다. 사람들이 피난 가려면 돈도 있어야 되고 서로 헤어지고 나면 돈을 못 갚을 수도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피난가기 전에 어서 갚아야 된다면서 돈을 갚으러 다녔습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그 후 다시 서울이 수복되면서 가게 문을 다시 열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거래처마다 이 동흥 상회를 마음껏 밀어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큰 부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정직해야 됩니다.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죄를 회개해야 하고, 하나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께서 은혜 위에 은혜를 더해 주십니다.





★셋째: 솔로몬 왕이 “나와 내 백성이 성전에서 기도할 때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21절>에 “주의 종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이 곳을 향하여 기도할 때에 주는 그 간구함을 들으시되 주께서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들으시사 사하여 주옵소서”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 우리가 앞으로 이 성전에서 기도하겠습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옵소서! 그리고 지방에 사는 사람들이 이 예루살렘 성전까지 올 수가 없어서 다만 거기서 이 성전에 마음을 두고 기도할 때에도 그들의 기도를 들어주옵소서!”하고 기도했습니다. 물론 솔로몬도 하나님을 성전에만 가두어 둘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18절>에 보면, “하늘의 하늘도 주를 용납 못하겠거늘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이오리까”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우리가 성전에서 기도할 테니 기도를 들어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성전은 하나님께서 그 이름을 두신 곳이기 때문입니다. 성도가 예배할 때 하나님께서 그 예배를 받으시는 곳이기 때문입니다.「만민의 기도하는 집」이기 때문입니다(막 11:17). 그렇기 때문에 이곳 성전에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들으신다는 것을 그는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대하 6장에 있는 말씀을 보았습니다만 다음 장인 대하 7장을 한번 보겠습니다. <역대하 7:15-16>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는지 한번 보겠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이제 이곳에서 하는 기도에 내가 눈을 들고 귀를 기울이리니 이는 내가 이미 이 성전을 택하고 거룩하게 하여 내 이름을 여기에 영원히 있게 하였음이라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여기에 있으리라” 여러분, 이 말씀이 솔로몬 왕의 기도에 대한 응답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저희들이 성전에서 기도하면 꼭 들어주셔야 되요! 아셨죠!”하고 기도했던 솔로몬 왕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의 집인 교회당에 나와서 기도하는 것이 정상이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여러분들도 실제로 그런 것을 느끼실 것입니다. 집에서도 기도할 수는 있지만, 그러나 교회당에 나와서 기도하면 기도가 더 잘된다고 하는 사실을 여러분들도 인정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기도원에는 왜 가끔 가는 것입니까? 기도를 집중적으로 하기 위해서입니다. 며칠 머물면서 기도를 집중적으로 하고자 할 때는 생활 현장보다 조용하고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기도원이 좋습니다. 그래서 기도원에 가는 것입니다. 기도는 기도원에 가서 해야 되기 때문도 아니고, 기도는 기도원에 가서 해야 정상이기 때문에 기도원에 가는 것도 아닙니다.
여러분! 기도는 어디서 해야 정상입니까? 만민의 기도하는 집에서 해야 정상입니다. 교회당에서 기도해야 정상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이 늘 교회당에 나와서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교회당에 나와 손들고 기도하기를 힘씁시다. 무릎 꿇고 기도하기를 힘씁시다. 교회당에 나오기가 여의치 않을 때는 이곳에 마음을 두고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께 기도합시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그 기도도 기쁘게 받아주십니다. 나무나 돌로 깎아 만든 우상은 천만번 소리치고 빌어도 아무 소용없습니다. 나무나 돌로 깎아 만든 것들은 다 죽은 것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릅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하나님은 들으시고, 말씀하시고, 응답하시고, 역사하십니다.





★ 이제 오늘 말씀의 끝을 맺겠습니다. ★

신앙도 기도도 자세가 중요합니다. 의사의 말에 따르면 앉는 자세, 그러니까 앉는 습관에 따라 척추 모양이 새우등형, 반달형, S자형, 곡괭이형 등으로 변한다고 합니다. 제일 좋은 것은 바른 자세입니다. 바른 기도의 자세를 배웁시다. 하나님께서 기쁘게 응답하신 왕의 기도를 배웁시다. 교회당에서 기도합시다! 무릎을 꿇고 기도합시다! 손들고 기도합시다! 저와 여러분이 교회당에 나와서 무릎을 꿇고 회개하면서 기도하고, 감사하면서 기도하고, 승리를 확신하는 가운데 손들고 기도할 때 하나님의 놀라운 응답의 역사가 있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