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신을 벗으라

제 목   신을 벗으라
 
본문: 출애굽기 3:1-5
⊙ 제목: 신을 벗으라


오늘 우리는 <출애굽기 3:1-5>의 본문 말씀을 같이 보았습니다. 이 시간 본문 말씀에 의지하여 “신을 벗으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옛 사람을 벗어 버리라는 말씀입니다.
★둘째: 섬기는 자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셋째: 나와 함께 가나안 땅을 향해 나아가자고 하는 말씀입니다.

모세는 히브리인들이 아들을 낳아서는 안 되는 애굽에서 히브리인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주전(B.C) 1500년 전 당시 히브리인들은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모세의 아버지 아므람과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은 “사내 아이를 낳으면 죽이라!”는 애굽 왕의 명령을 어기고 모세를 숨겨서 길렀습니다(출 2:1-6). 모세가 40세가 되었을 때의 일이었습니다. 어떤 애굽 사람 하나가 히브리인들을 몹시 업신여기는 것을 발견한 모세가 격분하여 그 애굽 사람을 없애버렸습니다(출 2:11-15). 그리고는 그 사실이 알려지게 되자 목숨을 건지기 위해서 모세가 미디안 광야로 도망쳤습니다. 그 때부터 모세는 40년 동안 미디안 광야에서 이드로의 양을 치면서 지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의 나이가 80이 되게 되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모세를 호렙산(시내산)으로 인도하시고 떨기 나무 불꽃 가운데서 그를 부르셨습니다. 여기 <2절>의 “떨기나무 불이 붙어 있는 모습”은 환난 많은 세상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불이 붙었으나 나무가 타지 않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은 수난 중에도 결코 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입니다. 하나님꼐서 이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모세에게 소명을 주셨습니다. 소명을 주시면서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모세에게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말씀하셨을까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모세에게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첫째: 옛 사람을 벗어 버리라는 말씀입니다.

본문에 보면,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나무가 타지 않는 것을 보고 이상히 여긴 모세가 그 광경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서 가까이 다가서려고 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고 그러십니다(4-5절). 왜 그랬습니까? 모세가 죽을까봐 그랬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과 죄악된 인간 사이에는 좁힐 수 없는 간격이 있습니다. <출 33:20>에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실제로 그랬습니다.「웃사」라고 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궤를 붙잡다가 죽은 사실을 <삼하 6:6-7>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을 의지하고 나온 사람은 죽지 않습니다. 언제든지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올 수 있습니다. <엡 2:13>에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님과 가까워졌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여기 오늘 본문에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5절)”라고 한 말씀에 대해서도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거룩은 하나님의 속성입니다(계 4:8). 오직 하나님만이 절대 거룩하십니다(사 43:3,14). 그러나 피조물도 일단 하나님과 관계를 맺게 되면 그것 역시 거룩해지게 됩니다. 따라서 모세가 서 있는 곳이 거룩한 땅이 된 이유는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거기서 모세를 부르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세는 거기서 그가 신고 있던 신을 벗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왜 신을 벗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까?「신」은「불결」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신을 신고 갈 데 안 갈 데 다 다닙니다. 밟을 것, 밟지 않을 것 다 밟고 다닙니다. 그래서「신」은「불결」의 상징입니다. 이 「신」을 그대로 신고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불결」을 제거하고 나가야지 그대로 하나님 앞에 나갔다가는 죽습니다. 그래서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때 묻고 더러운 모습 그대로 가지고 나오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이제 옛사람을 벗어버리라!”고 하는 하나님의 요구입니다.
<엡 4:22-24>에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고 말씀했습니다.「옛사람」은 육신의 요구를 따라 살던 나를 가리킵니다.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쫓아 살던 나를 가리킵니다. 그리고「새사람」은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사람입니다. “성령 안에서 새롭게 된 나”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감사한 것은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저, 모두를「새사람」으로 대우해 주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고후 5:17>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 말씀했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러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롭게 된 내가 해야 될 일이 무엇입니까? 새사람으로 사는 것입니다. 죄를 버리는 것이고 죄를 이기는 것이고 주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이처럼「신을 벗는 것」은 지금까지의 삶에서 떠나 새롭게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이력서라는 말을 한문으로 풀이하면 “밟을 이(履), 걸어올 력(曆), 글 서(書)”라고 해서 지금까지 밟아온 내력을 쓰는 것을 말합니다. 내 발로 어떻게 세상을 밝고 살아왔는가를 쓰는 것이「이력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하신 것은 다른 뜻이 아닙니다. 이제부터 너는 새로운 이력서를 써나가라고 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모세에게만 하셨습니까?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에게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저와 여러분에게는 새로운 이력서를 써나가야 할 책임이 주어져 있습니다. 우리가 신을 벗고 맨발로 서는 것은 그 동안 우리가 행한 바 추하고 더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새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 모두 신을 벗으셨습니까? 잘하셨습니다. 그럼 이제부터 저와 여러분이 새로운 이력서를 잘 써나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여기 “신을 벗으라는 말씀은, ★둘째: 섬기는 자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옛날에「종」은「신」을 신지 못했습니다. 옛날에「종」은「짐승취급」을 받았습니다. 종이 가져서는 안 되는 것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는 신이고 하나는 이부자리였습니다. 그저 짚북더기 위에서 거기서 돼지처럼 소처럼 살았습니다. 종에게는 없는 것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종은 ①자기 의사(意思)가 없습니다. ②자기 소유(所有)가 없습니다. 종에게는 ③지위가 없습니다. 종은 그냥 종일뿐입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께서 모세를 하나님의 종으로 들어 쓰시기 위해서 그를 부르셨다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모르고 있었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르고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벌써 80년 전부터 모세를 염두에 두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애급하수에 던져진 그를 바로의 공주로 하여금 건져내게 하셨습니다. 40년 동안 당시 세계최고의 학문을 애굽 궁중에서 일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미디안, 광야로 보내셔서 거기서 또다시 훈련을 시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80년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그리고는 오늘 부르신 것입니다. 부르셔서 이제부터 새 이력서를 써나가라, 너는 나의 말을 들으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선거가 있을 때마다 우리는 좀 깨끗한 사람, 의로운 사람, 경륜 있고 덕이 있는 사람을 뽑고 싶어 했었습니다. 특별히「청와대 주인」은 좀 그런 사람이 되기를 우리는 바랬습니다. 그렇지만 정치가 중에 그런 사람은 없었습니다. 역사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때문에 처음부터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처음부터「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서는 그런 것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오늘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모세는 새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종이 될 것임을 굳게 결심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그는 지금까지 역경의 세월을 살아와야만 했었습니다. 그러나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하나님을 만나는 순간 잃어버렸던 과거가 새로운 의미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의 삶은 하나의 훈련이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들어 있는 하나의「과정」이었습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실패한 과거는 없었습니까? 기억하고 싶지 않는 그런 과거는 없었습니까?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그것까지도 협력하여 선을 이루게 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모세」는 이제 보다 적극적인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붙들린 자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에는 아직도 마귀에게 붙들려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물질에 붙들려서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사람에게 붙들려서 사람의 종노릇하고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다른 어떤 것에도 붙들리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붙들린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모세의 앞으로의 40년의 생애는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시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에게 사는 길이 열리고, 지도자의 길이 열리고, 승리의 길이 열리게 되어 있었습니다. 단,「모세」가 해야 될 일이 한가지 있었습니다. 그것은「하나님」께 대한 순종이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가끔 우리 성도들을 향해「종」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마 25:21)”라고 그랬습니다. <골 4:12>에 보면, “그리스도 예수의 종인 너희에게 이르노니”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성도들을 다 종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종」이라고 하는 말 때문에「부자유」나「억압」을 느낄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말씀하는「종」이라고 하는 말은 “나는 하나님의 듯에 절대 순종해야 될 사람”이라고 하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내가 가진 모든 것에 대한 소유권이 하나님께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물리학자가 한 평생 과학과 더불어 씨름을 하였습니다. 이제 나이 많아졌을 때, 그는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의 결론을 이렇게 내렸습니다. “하나, 과학 안에는 구원이 없다. 하나, 이 땅에 도덕적 부흥이 필요하다. 사람이 바로 되어야 한다. 물질 가지고는 안 된다. 하나, 생명을 주는 종교 없이는 도덕적 부흥이 있을 수 없다.” 이렇게 세 가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한 평생 연구했지만 그 연구 결과를 쓸데없는 것으로 돌리고, 겸손한 자세로「생명」을 살리는 예수 그리스도 우리「주님」없이는 구원도, 부흥도, 변화도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이러한 겸손한 자세라야 합니다. 그래야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십니다.
40세 때의 모세는 애굽 궁중에서 당시 세계 최고의 학문을 익혔을 때였습니다. 그때 모세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만큼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때 모세를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를 다시 미디안 광야로 보내셔서 거기서 40년을 고독과 싸우게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장차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통과해야 할 시내산 일대와 시내 반도의 지형과 기후의 특성들을 익히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고 나서 모세가 이제 80세가 되었을 때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그를 부르셨습니다. 그때「모세」는 겸손해져 있었습니다. 오히려 문제가 있다면 “이제 저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라고 하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문제 될 것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실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미 하나님께서는 앞으로 40년 동안 모세를 아주 귀하게 사용하실 계획을 세워 놓고 계셨습니다. <신 34:7>에 “모세가 죽을 때의 나이 120세였으나 그의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 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모세는 그 40년 동안을 하나님 앞에서 온전히 순종하는 삶을 살아드렸습니다. 우리도 그래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을 위하여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막 10:45)”고 말씀했습니다.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도 우리 주님의 본을 받아 섬기는 자들이 다 되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신을 벗으라는 말씀은, ★셋째: 나와 함께 가나안 땅을 향해 나아가자는 말씀입니다.

왜 모세가 신을 벗어야 했습니까? 그것은 모세가 신을 벗어야만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동행하실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모세가 회개 없이 옛사람의 모습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 그 불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와 동행하실 수가 없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너는 신을 벗으라고 하신 것은 “이제 우리 같이 가자!”는 말과 같았습니다. “우리 같이 살자!”는 말과 같았습니다. 본문이 들어 있는 여기 <출 3:8> 말씀을 한번 보겠습니다. 여기 보면, “내가 너와 네 백성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데려가려 하노라”라고 그랬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너는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말씀하시고 나서 바로 그 다음에 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네가 신을 벗으면 내가 너와 네 백성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데려가겠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신을 벗는 일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세의 뒤를 이어 백성의 지도자가 된 여호수아도 그 백성을 이끌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서 그 발에서 신을 벗어야 했습니다. <수 5:15>에 “여호와의 군대 대장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하니 여호수아가 그대로 행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수아도 신을 벗었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메시지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이 말씀을 우리에게 적용하게 되면 “너희는 너희 발에서 신을 벗으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와 천국까지 동행하겠다.”고 하는 말씀이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도 유형에 따라서 세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애굽 신자, 광야 신자, 가나안 신자 이렇게 세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애굽 신자」는, 믿기는 믿어도 아직도 세상에 매여 사는 사람입니다. 세상의 종노릇하며 사는 사람입니다.「광야 신자」는 세상에서 하나님 편으로 나오기는 했지만 그러나 아직도 한 발은 교회에, 한 발은 세상에 딛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교회에 나와서는 “주여!”하고, 교회에서 나가면서는 “나여!”하는 사람입니다.「가나안 신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오직「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한 사람입니다. 항상 기도하고, 항상 감사하고, 항상 기뻐하는 사람입니다(살전 5:16-18). 자기 발에서 신을 벗은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애굽 신자」도 아니요,「광야 신자」도 아닌「가나안 신자」가 되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이제 오늘 말씀의 끝을 맺겠습니다. ★

전에 어떤 여자 분이 자기 연애할 때 얘기를 해서 웃은 적이 있습니다. 자기는 시골에서 살았는데 약혼자는 서울에서 살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서울에 와서 데이트를 하는데, 한 번은 이발 소 입구에 뱅글뱅글 돌아가게 만들어 놓은 것 구경하다가 남자를 놓친 적이 있고, 한 번은 극장에서 아주 멋 적은 일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둘이 같이 극장엘 갔는데 극장 바닥에 카펫이 갈려 있어서 신을 벗어야 되는 줄 알고 신을 벗어 들고 남자를 쫄쫄 다라 다녔더니 그 남자가 하는 말이, “신은 이따 집에 가서 벗지 왜 여기서 벗고 그러세요.”라고 하더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오늘 성경은 어디서 신을 벗으라고 하였습니까?「하나님」앞에서 신을 벗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서 신을 벗고 그의 사랑을 받으며 그와 동행하며 날마다 승리하는 역사가 있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