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심의 퇴치법

제 목   근심 퇴치법
 
본문: 요한복음 14:27, 16:33
⊙ 제목: 근심 퇴치법



오늘 우리는 <요한복음 14:27, 16:33>의 본문 말씀을 같이 보았습니다. 이 시간 본문 말씀에 의지해서 “근심 퇴치법”이라는 제목으로 오늘 말씀을 증거 해드리겠습니다.

★첫째: 근심하지 마십시오. 근심은 백해무익합니다.
★둘째: 담대하십시오. 그리고 웃으십시오.
★셋째: 기도하고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성도는 기도하고 맡길 때까지만 근심하는 사람입니다.

현대를 가리켜서「불안의 시대」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을 인식하고 불안해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근심과 걱정을 처리하는 방법을 몰라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측 불허의 불확실성 시대를 살면서 자신의 의지나 능력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본래 근심걱정은 개념일 뿐 실체가 없는 것들입니다. 남산처럼 우뚝 서 있는 것도 아니고, 소포나 택배로 부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근심을 형체도 색깔도 모양도 냄새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 근심걱정이 머리를 점령하고, 온 몸을 점령하고, 생활을 점령하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 근심하지 마십시오. 근심은 백해무익합니다.

여기 오늘 본문 <요 14:27> 하반절에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말씀하였습니다. 본문 말고도 성경에 근심하지 말라는 말씀이 많이 나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 14:1)”고 말씀합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 할 수 있느냐(마 6:25,27)”고 말씀합니다.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마 6:34)”,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 4:6)”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성경 말씀이고, 이것이 우리 주님의 말씀입니다. 여러분! 근심이 무엇입니까?
(1) 근심은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불신앙입니다. 믿음이 없을 때 근심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하는 불신앙에서 나온 것이 근심입니다. <창세기 3장>에 보면, “뱀”으로 위장한 마귀가 아담과 하와의 가정을 무너뜨리고 죄에 빠지게 한 기사다 나옵니다. 그 때 뱀은 하와로 하여금 하나님을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게 하고 말씀과 약속을 의심하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하와가 의심하다가 넘어지고만 것입니다. 의심은 모든 분야를 파고듭니다. 의심은 물불을 가리지 않습니다. 대상이 누구냐가 상관이 없습니다. 남편이 아내를 의심하면 의처증이 되고 아내가 남편을 의심하면 의부증이 됩니다. 그리고 신자가 하나님을 의심하게 되면 불신앙이 되는 것입니다. 믿음과 신뢰는 모든 것을 쌓아 올리고 건설하지만 의심은 무너뜨리고 파괴합니다. 만일 성도가 매일매일 근심에 싸인 채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면 그 사람은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고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근심, 걱정, 염려가 습관화된 사람은 결코 온전한 신앙생활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근심은 믿음에 손해를 끼칩니다. 하나님을 의심하게 만들고, 믿음이 자랄 수 없게 만들고, 믿음을 끌어 내립니다. 근심은 마귀가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2) 다음에, 근심은 마음을 상하게 합니다. 근심은 생의 즐거움을 뺏어가고 마음을 불안하게 하는 주범입니다. 근심은 사람의 마음을 한시도 편하게 놔두지 않습니다. <잠 17:22>에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고 말씀하였습니다.
(3) 그 다음, 근심은 불순한 감정을 조장합니다. 시기, 질투, 혈기, 불평, 불만 이러한 것들은 모두 근심에 편승해서 기승을 부리는 악한 감정들입니다. 근심 안될 것을 생각하게 하고 부정적인 말을 하게 합니다.
(4) 또 있습니다. 근심은 건강에도 해를 끼칩니다. 신경성 질환, 소화기 계통의 질병, 심장병 등은 모두 근심·염려·걱정·불안·공포·분노 등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질병입니다. 근심· 걱정·염려는 정신신경학적으로 스트레스로 인한 노이로제 증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노이로제가 지속되면 각종 질환에 시달리게 됩니다. 오늘날 전 세계 의사들은 두통·위장병·고혈압·류마치스·신장염·시력저하·관절염 등 모든 질병의 70%가「염려와 근심」때문에 발생하게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암도 심리적으로 불안하고 근심 걱정이 많은 사람 가운데서 더 많이 발생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가만히 보면 자기가 무슨 걱정 전문가라도 되는 것처럼 사서 근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미리 가불해서 걱정합니다. 어떤 사람은 아예 작정을 하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걱정합니다. 그래서「걱정도 팔자」라고 하는 말이 나왔나 봅니다.
“우리 집에 강도가 들면 어떻게 하나? 나도 모르게 어느 날 갑자기 암에 걸리면 어떻게 하나? 내가 길을 지나가고 있는데 갑자기 술 취한 트럭 운전사가 나한테 돌진해 오면 어떻게 하나? 우리 동네에도 홍수가 나면 어떻게 하나?” 별 염려를 다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내일에 대한 염려를 제대로 하려면 한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내일 일어날 모든 가능성을 생각해내야 되고 그 모든 가능성에 완벽하게 대응해야 하는데 그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내가 근심한 것과 상관없는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그걸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꿈 가운데에도 개꿈이 70%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근심은 이보다 더 심합니다. 쓸데없는 근심이 92%나 된다고 합니다. 통계에 의하면 결코 일어나지 않을 일을 놓고 근심하는 경우가 전체의 40%, 근심해도 되돌릴 수 없는 과거 일을 가지고 하는 근심이 전체의 30%, 시시콜콜한 잡동사니를 놓고 하는 근심이 전체의 10%, 불필요한 걱정이 전체의 12%... 이렇게 해서 모두 92%를 차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까 정작 근심해야 될 문제를 놓고 근심하는 경우는 전체의 8%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나머지 8%도 별로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근심은 그리스도인의 것이 아닙니다. 근심은 믿지 않는 이방인의 것입니다. 근심은 쓸데없는 일입니다. 오히려 근심하면 근심하는 데로 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근심을 아무리 한 들 과거를 한 치도 돌려놓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미래도 마찬가지입니다. 근심한다고 해서 일이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근심」은「백해무익」합니다.





★둘째: 담대하십시오. 그리고 웃으십시오.

여기 오늘 본문 <요 16:33>에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여기 보면, 우리 주님께서 우리 모든 성도들에게 “담대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이 말씀은 나가서 싸우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걱정하지 말아라! 힘내라!”고 하는 뜻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 예수님께서 세상을 이기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사단의 세력을 멸하려고 오셨으며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기 위에서 죽으셨다가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심으로「승리」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찔리고 상하심으로 죄를 이기시고 무덤에서 부활하심으로 죽음의 세력을 이기셨습니다. 주님은 패자처럼 지고 이기셨고, 죽음으로 이기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넘어뜨리고 짓밟고 무찔러야 이긴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매 맞고, 찔리고, 상처입고, 죽으심으로 승리하셨으며 우리를 치료하셨습니다. 자신이 천대받고 멸시받으심으로 우리를 존귀케 만들어 주셨습니다. 자신이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부활과 영생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전략이 전혀 다릅니다.
세상을 이기신 주님께서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말씀하십니다. “근심하지 말라, 겁내지 말라, 힘을 내라,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모든 성도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께 속해 있는 이상 마귀는 우리를 이기지 못합니다. 세상은 우리를 이기지 못합니다. 죽음의 권세도 우리를 이기지 못합니다. 지금 무슨 일로 걱정하고 있습니까? 과거가 괴롭습니까? 믿음이 없는 까닭입니다. 오늘의 문제를 놓고 근심하고 있는 사람 있습니까?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이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롬 8:28). 앞으로의 일이 걱정이 되십니까? 믿음의 주요 또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히 12:2) 주님께서 붙들어 주시고, 책임져 주시고, 인도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근심 대신에 도리어 기뻐해야 되는 것입니다. 쉬지 말고 기뻐해야 합니다. 범사에 감하해야 됩니다(살전 5:16-18). <빌 4:4>에도 보면,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하였습니다. 빌립보서는「옥중서신」입니다. 바울 사도가 전도하다가 붙잡혀서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 기록한 서신서입니다. 그는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기쁨을 빼앗기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히려 밖에서 자유롭게 지내는 사람들을 향해서 “기뻐하라!”고 권면했습니다. 이것이「그리스도인」입니다. <롬 14:17>에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말씀했습니다. 따라서 기쁨은 주 안에 있는 자들의 것입니다. 우리의 기쁨의 원천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는 저와 여러분의 얼굴은 어떤 얼굴입니까? 아니면 인상만 팍팍 쓰는 얼굴입니까? 늘 미소 짓는 얼굴입니까? 아니면 성난 얼굴입니까? 제 아무리 돈을 많이 주고 성형을 했더라도 성난 얼굴은 예쁘지 않습니다. 반대로 그 얼굴이 성형을 하지 않은 주름진 얼굴이라도 웃으면 그 얼굴은 매력이 넘치는 얼굴입니다. 개(犬)는 기분이 좋으면 꼬리를 흔듭니다. 사람은 기분이 좋으면 웃습니다. 내 영혼이 기뻐하면 기쁨이 얼굴에 나타납니다. 얼굴은 내 얼굴이지만 내 얼굴을 보는 사람은 다른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웃는 것이 좋습니다. 웃음을 주고받으십시다. 우리 가정, 우리 교회, 우리 사회를 웃을 수 있는 곳으로 만듭시다.
어떤 서양 사람에게 “한국에 와서 한국 사람들을 보고 처음 느낀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그가 다음 세 가지를 말하더라고 했습니다. ①사람들 걸음걸이가 왜 그렇게 빠른 지 전쟁난 줄 알았다고 했습니다. ②그 다음에, “우리는 밥 먹을 때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먹는데 너희는 왜 그렇게 죽어라고 밥만 쑤셔 넣느냐?”고 그랬습니다. 그게 맞는 얘기거든요. 옛날 우리 어른들은 식중불언(食中不言)이라고 하면서 밥 먹으면서 말을 못하게 했습니다. 밥 먹으면서 말하면 복(福) 달아난다고 호통을 쳤습니다. ③또 한 가지, 왜 그렇게 인상들을 쓰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모두가 다 “어디 날 건드리기만 해봐라 한 대 치고 말테니깐...”하고 벼르고 있는 사람들 같더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어느 외국인이 우리나라에 와서 처음에 한국 사람을 보고 느낀 첫인상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잘 웃지 않습니다. 어른들 중에 많이 웃는 사람이 하루에 열다섯 번 웃는다고 합니다. 그런가하면 하루에 한 번도 안 웃는 사람도 많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다릅니다. 아이들은 하루에 4백번을 웃습니다. 갓난아이들은 “까꿍!”하면 웃습니다. 그렇지만 어른들은 웬만해선 웃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희락을 강조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우리가 웃으면서 살아야 될 이유가 참 많이 있습니다. 사람이 웃게 되면 (1) 생리적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웃으면 잠든 에너지가 살아납니다. 신체리듬이 되살아나고 기분이 좋아지면서 신체의 활동이 원활해집니다. 신경성 질환이 치료되고 원기를 회복하게 됩니다. 그 다음에 웃으면 (2) 분위기가 바뀌게 됩니다. 집안 분위기가 바뀌고, 교회 분위기가 바뀌고, 직장 분위기가 바뀌게 됩니다. 직장 분위기가 바뀌게 되면 일의 능률이 오르고 생산성이 향상되게 됩니다. 떠 있습니다. 웃으면 (3) 우리의 몸도, 마음도, 믿음도 건강해 지게 됩니다. 주님께 대한 믿음이 확실하면 구태여 한숨 쉬고, 낙심하고, 절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믿음의 태도가 바뀌면 인생이 바뀌게 됩니다. 내가 웃으면서 산다는 것은 내 믿음의 태도가 바뀌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화내는 대신에 웃어야 합니다.
화를 내게 되면 많은 손실이 따르게 됩니다. 화를 내는 본인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에게 미치는 후유증도 엄청납니다. 화가 나면 전후 판단이 안 되기 때문에 작은 일을 크게 확대시킬 때가 많습니다. 하버드 의대「월터」교수에 의하면, 사람이 화가 잔뜩 나게 되면 피가 머리끝까지 솟구치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호흡이 깊어지고,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혈압이 올라가고, 피가 위와 창자로부터 심장 근육과 중추신경으로 옮겨가면서 소화 작용이 멈추게 되고, 간에 비축되어 있던 당이 배출된다고 했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아기 엄마가 신경과민으로 늘 웃고, 징징대고, 화내고, 자증부리면 아이도 닮게 됩니다. 그러나 엄마가 늘 웃고 기뻐하고 플러스 발상을 하게 되면, 아이도 늘 웃고 기뻐하고 플러스 발상을 하게 됩니다. 저와 여러분이 언제나 플러스 발상을 하기 바랍니다. 힘을 내시기 바랍니다. 웃으십시오.





★셋째: 기도하고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성도는 기도하고 맡길 때까지만 근심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 <요 14:27> 상반절에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 “끼친다(αφ&#8054;ημ&#8055;).”는 말씀은 어원적으로 “①유산으로 물려주다, ②뒤에 남겨두다”라고 하는 뜻입니다. 여러분 우리 예수님은 그가 친히 누리셨던 평안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다라서 이 평안은 하나님의 아들이 누리는 평안입니다. 주님께서 아버지와 함께 누리시던 하늘 평안입니다. 사단을 이기신 능력자가 가진 평안입니다. 그러므로 이 평안은 특별한 평안입니다. 이 세상에서 얻는 평안과 같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가지신 평안은 그가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므로 주어진 평안입니다. 참된 행복을 맛보신 평안이요 하늘에서 가져오신 평안입니다. 이 평안은 변덕을 모르는 평안입니다. 이 평안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이 평안은 돈 주고 사는 평안이 아닙니다. 이 평안은 우리의 마음을 윤택하게 해줍니다. 이 평안은 환경에 구애받지 않는 평안입니다. 막힌 담이 없는 평안입니다. 온전한 평안입니다. 그래서 “예수 믿으니까 이렇게 좋구나!”하고 탄성이 절로 터져 나오는 평안입니다.
주님께서 이런 평안을 여러분과 저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환경이 아무리 우리를 힘들게 하더라도 절대로 이 평안만큼은 빼앗겨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우리가 이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까? 염려를 하나님께 맡기면 됩니다. <벧전 5:7>에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권고」라고 하는 말은, “관심을 가지고 자상하게 돌아보다(attend with care)\"입니다. 여러분, 주님께서 우리를 자상하게 돌보아 주시는 것보다 더 좋은 해결책은 없습니다. 일단, 문제를 만나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나 최선을 다했는데도 문제가 해결이 안 될 때에는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한나가 그랬습니다(삼상 1:18). 그리스도인은 문제가 발생하면 하나님께 기도하고 결단할 때까지만 걱정하는 사람들입니다. 그 다음에는 걱정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믿는 사람이고, 이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모든 것을 다 내가 나서서 해결해야 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근심과 염려와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는 사람들입니다. 맡기면 하나님께서 권고해 주십니다. <시 37:5-6>에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정오의 빛같이 나타내시리라“고 말씀했습니다.





★ 이제 오늘 말씀의 끝을 맺겠습니다. ★

오늘 우리는 우리 주변에서 사람들이 세상 근심으로 땅이 꺼지는 것을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치, 불경기, 사업문제, 북한의 핵문제, 미사일 문제, 일본의 도발, 지진, 태풍 등 모두가 다 지나간ㄴ 역사의 돌풍입니다. 365일 폭풍우가 몰아치고, 365일 지진이 일어나고, 365일 토네이도가 부는 것이 아닙니다. 다 지나가는 것들입니다.「근심」은 쓸데없는 일입니다.「근심」은 다 주께 맡겨버리고 언제나 주님의 평안으로 충만한 여러분과 제가 다 되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