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의밤 성공의 아침

제 목   실패의 밤, 성공의 아침
 
⊙ 본문: 누가복음 5:1-11
⊙ 제목: 실패의 밤, 성공의 아침

오늘 우리는 <눅 5;1-11>의 본문 말씀을 같이 보았습니다. 이 시간 본문 말씀에 의지해서 실패의 밤 성공의 아침 이라는 제목으로 오늘 말씀을 증거해드리겠습니다.


★첫째: 시몬을 비롯한 어부들은 밤이 새도록 수고를 하였지만 고기를 잡지 못했습니다.
★둘째: 거기 실패의 현장에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셋째: 시몬 베드로와 그 동료들이 주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그랬을때 고기가 많이 잡히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시몬이라는 사람은 시몬 베드로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게네사렛 호수는 흔히 갈릴리 바다로 불려지는 곳입니다. 오늘 본문의 상황은 베드로가 아직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전 이었습니다.





★첫째: 시몬을 비롯한 어부들은 밤이 새도록 수고를 하였지만 고기를 잡지 못했습니다.

<5절>에 “그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그 동료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를 하였지만 소득을 올릴 수 없었던 그 피곤한 현장에 친히 찾아 가셨습니다. 그때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고 있었습니다(2절). <본문 3절>에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거기 배 두 척이 있는 것을 보시고 그 중에 시몬 베드로의 배에 오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연히 그 배에 타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일부러 그 배에 타셨습니다. <요 1:40-42>에 보면, 베드로가 세례 요한의 제자였던 동생 안드레의 소개로 한번 예수님을 만나 뵌 일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오늘 본문에 예수님께서 갈릴리 바다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등을 찾아 가신 것을 보면(10), 그들이 예수님을 만나 뵌 후에도 여전히 생업에 연연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우연히 시몬의 배에 오르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시몬을 염두에 두셨기 때문에, 그리고 그 동료들을 염두에 두셨기 때문에 그 배에 오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제자로 부를 의사가 있었고 예수님께서 그들을 들어 쓰실 의사가 있었기 때문에 그 배에 오르셨습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처음 제자로 부르신 사람들이 모두 자기 일에 열심 있는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 사람들을 보게 되면 할일 없이 빈둥거리고 놀던 사람이 없었습니다. 다 자기 직업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을 이루실 때에 사람을 통해 일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일을 이루실 때에 놀고 있는 사람, 무위도식하는 사람,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은 쓰시지 않습니다.*하나님은 일하는 자의 하나님 이십니다. 특별히 우리가 오늘 본문에서 놓쳐서는 안 될 말씀이 있습니다. <2절>에 보면 “어부들이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는지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굉장히 중요한 말씀입니다. 어부가 그물을 씻는다고 하는 것은 곧 다음날 다시 도전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물을 씻지 않고 그대로 놔두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그물이 엉키고, 오물이 말라붙어 버리기 때문에 그물을 다시 쓸 수가 없습니다. 본문에 보면(5절) 그들은 지난 밤, 밤새도록 고기를 잡기 위해 애썼지만 고기를 잡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고기 잡는 일에 실패 했다고 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어부로써 잔뼈가 굵은 사람이었습니다. 갈릴리 바다라면 모르는 곳이 없을 정도로 속속들이 다 알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고기 잡는 일에 있어서 많은 상식과 경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기술도 있고. 열심도 있고, 인내심도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실패 했습니다.
그들은 초보자들이 아니었습니다. 숙련된 어부들 이었습니다. 때문에 밤이 맞도록 수고 했지만 얻은 것이 없었을 때「낙심」될 만도 했습니다. “풍부한 경험과 좋은 기술을 가지고 있는데 그리고 열심히 수고했는데 안 되도 이렇게 안 될 수가 있는가?”하고「낙심」할만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시몬 베드로는 과거에 대해 실망은 되었지만 미래에 대해서는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그것은 「단순한 실패」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은 “치욕”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실패는 그들의 잘못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별로 노력을 하지 않았는데도 많은 고기를 잡았다고 말하는 사람보다는 나는 밤새도록 수고를 했지만 고기를 잡을 수가 없었다고 말하는 사람이「더 훌륭한 사람」입니다. 여러분 노동이 사람에게 고통을 주지 않습니다. 실패를 하고 난 후의 좌절감이 고통을 줍니다. 시몬 베드로도 맥이 빠질 때로 빠져 있을 수 있었습니다. 아마 실망 속에 그물을 씻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물을 거두어 버리지는 않았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그래야 합니다. 넘어진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아 있어서는 안 됩니다. 실패라고 하는 단어에 마침표를 해서는 안 됩니다. 쉼표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나서 다시 도전해야 합니다!





★둘째: 거기 실패의 현장에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4절>에 “에수께서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말씀 하셨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주님은 우리가 실패하고 주저앉아 있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주님은 언제나 인류를 위해서 선한의도를 가지고 계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실패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받아들이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실패했을 때 우리가 아파하는 그 이상으로 아파하십니다. 주님께서 베드로의 사정을 훤히 알고 계셨습니다.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한 그의 처지를 아시고 그에게 다가 가셨습니다. 다가 가셔서 먼저 말씀을 들려주시고 그리고 해결책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본문 <1절>과 <3절>에 보게 되면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의 배에 오르셔서 그 배를 강단삼아 해변에 모여 있는 무리들을 가르치실 때에 시몬베드로가 그물을 씻으면서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던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또 5절에 보게 되면,「그가 말씀에 의지해서 그물을 내렸다」고 하였습니다(6절). 저와 여러분도 먼저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에게 복이 되어 돌아옵니다. <시 19:7-8절>에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자로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고 하였습니다.
말씀을 듣게 되면 사람에게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인생관과 가치관이 바뀌어 지고 생활이 바뀌고 인격이 성숙되어 집니다. 때문에 사업에 바쁜 사람일수록 주일 예배에 나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말씀 듣는 시간은 절대로 시간낭비가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 전날 밤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했던 베드로와 그의 동료들이 말씀을 듣고 말씀에 의지해서 그물을 내렸을 때 상상도 못할 엄청난 고기가 잡혔다고 했습니다. 주의 말씀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해줍니다. 우리의 삶의 현장을 풍요롭게 해 줍니다. 우리를 안식과 평화로 인도해 줍니다. 말씀이 우리를 지혜롭게 해 줍니다.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합니다(고전 11:25). 그분은 명철이 한이 없으십니다. 땅 끝까지 창조하신 하나님은 피곤치 않으시며 곤비치 않으십니다. 피곤한 자에게는 힘을 주시고 무능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십니다(사 40:29). 그러므로 소년이라도 피곤하고 장정이라도 넘어지고 자빠질지라도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습니다.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이 힘을 낼 수 있습니다!(사40:31).
시성(詩性) 단테(Dante)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인간의 최고의 공포이다”라고 했습니다. 학업의 실패, 결혼의 실패, 사업의 실패, 건강의 실패, 대인관계의 실패, 그리고 나의 인생이 실패작으로 끝나지 않을까 하는 염려와 두려움에 눌려 사는 것이 인간입니다. 이 두려움에서 벗어나려고 인간은 많은 방법을 씁니다. 술에 취하거나 환각제를 쓰기도 합니다. 재물을 모으거나 사회적인 지위와 이름을 얻어 대치하려고도 합니다. 윗사람이 되거나 권력을 얻어 큰소리치고 명령함으로써 실패의 공포를 무마시키려고도 합니다. 사람의 행동은 허다한 잠재의식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과격한 행위, 지나친 반응, 과대광고나 소심한 침묵, 필요 이상의 고함소리나 자기 자신을 불쌍히 여기는 한숨 소리 등 수 많은 행위가 사실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들입니다. 일본의 야구선수「이찌로」가 한일전 1.2차전에서 모두 지고 나서 알 수 없는 괴성을 지른 이유도 거기 있었습니다(2006년 3월 초).
여러분이 잘하는 테레사의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테레사가 인도에 가보니 인도인들이 굶거나 병들어 죽는데 그 시체를 누구하나 돌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 죽어 가는 인도 사람 옆에서 눈을 감겨 주고 앉아 있는 그것이 큰 위로가 됩니다. 아무 얘기도 하지 않더라도 말입니다. 캘커타의 테레사는 혼자 죽어 가는 인도 사람에게 눈을 감겨 주고 미소를 띄워 주면서 같이 있어 주는 그 일을 한 것입니다. 테레사가 어느 날 고아들을 위해 큰 고아원을 건축할 것을 발표 했습니다. 기자들이 몰려와 물었습니다. “테레사님 준비된 자금은 얼마나 됩니까?” 이 말에 주머니를 뒤져 보이는데 손위에 3실링이 놓여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더니 기자들이 폭소했습니다. 그러자 테레사가 말하기를 “이 3실링이 테레사와 있을 때는 아무 것도 못하지만, 이 3실링이 하나님과 있을 때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면 됩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발명품이고 한 번의 실험에 성공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에디슨의 전기도, 그레함 벨의 전화기도, 스티븐슨의 기차도, 라이트 형제의 비행기도, 모두 실패를 밑거름으로 한 투지의 결정품들이었습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했습니다. 유명한 에이브라함 링컨 대통령은 마흔 살이 될 때까지 한 번도 성공을 해 본적이 없습니다. 실패와 실패의 연속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배우지도 못한 링컨은 계속해서 도전하여 그 실패가 교육이 되며, 훈련이 되고 성장, 성숙하게 하는 기회가 되어 나중에는 노예 해방에 앞장서는 위대한 일을 해내게 되었습니다.
뉴욕 브루클린 정육점을 하는 윌리엄 디바인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장사하다가 강도를 무려 네 번이나 만나게 되어 생명의 위협을 많이 받았습니다. 놀란 그는 방탄조끼를 사서 입었습니다. 이웃에서 장사하던 사람들이 자기들도 강도 만날까봐 그 방탄조끼를 어디서 샀느냐고 입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방탄조끼를 원하니까 이 주인은 생각을 바꾸어 방탄조끼를 만드는 사업으로 전환했습니다. 그래서 공장을 차리고 40개 판매 대행사를 만들어 방탄 조기로 말미암아 기업이 번영하여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어떻게 큰 기업주가 되었느냐는 질문에 그는 “강도를 네 번 만난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릅니다.”라고 답했습니다. 강도를 만난 것이 도리어 「성공」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실패의 골자기에 우리를 헤매게 하지 않으시고 새로운 새벽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결과」에 너무 민감하지 말아야 합니다! 현재 전개되고 있는 상황만 보고 낙심해서는 안 됩니다. 실패처럼 보이는 그때는 하나님께서 나를 다듬고 계시는 때입니다. 그러므로 낙심해서도 안 되고 포기해서도 안 됩니다. 우리가 경계해야 될 세 가지 단어가 있는데 그것은 “①부족, ②상실, ③한계”입니다. “①나는 능력이 부족하다. ②나는 기회를 잃었다. ③나는 한계에 달했다.”고 하는 말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어려움을 당할 때 그 때는 우리가 더욱 말씀을 의지해야 할 때입니다.





★셋째: 시몬 베드로와 그 동료들이 주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그랬을때 고기가 많이 잡히게 되었습니다.

본문 <6절>에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 지라”고 하였습니다. 주님께서 그들의 필요를 채워 주셨습니다. 단한마디의 말씀으로 그의 필요를 충족시켜 주셨습니다. 고기가 너무 많이 잡혀서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배가 잠기게 될 정도로 많은 고기가 잡히게 해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밤새도록 내 기술과 노력과 지혜로 힘써 보았으나 아무 것도 잡지 못해 빈손으로 돌아오더라도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대신에 순종할 준비만 되어 있으면 됩니다. 본문에 보면 「시몬 베드로」는 배에서 자신들을 가르치신 이로부터 명령이 내려지자(4절) 아무 이의도 제기하지 않고 즉각 순종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본문 4-5절>에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말씀 하시자 시몬 베드로가 즉각 순종 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시몬 베드로」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습니까? 그것은 그가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완전히 무시해 버리고「말씀」만을 의지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는「말씀」을 저울질 하지 않았습니다.「말씀」앞에서 그 어떤 이의도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기술을 의지 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냉소하거나 비난하지 아니하고 내 경험과 내 생각을 버리고 오직 말씀만을 의지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순종을 하고 있습니까? 혹시 나 나름대로의 생각과 나 나름대로의 이성(理性)과 철학을 가지고 주님을 따르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의 얕은 수단과 머리로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지 말아야 합니다. 「파스칼」은 말하기를「믿음」이란 이성(理性)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라고 하였고, 칼빈은 믿음이란 눈을 감고 귀를 기울이고 무조건 따르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베드로가 주님의 말씀에 무조건 따르기로 결심하는 순간 지금까지의 그의 경험가 그의 상식은 바람에 흩날리는 티끌과 먼지에 불과 하였습니다. 사실「시몬아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어부인 시몬으로서는 선뜻 응하기 어려운 말씀 이었습니다. 어부들에 의하면 너무 깊은 곳에는 고기들이 잘 모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또한 고기를 밤에 잘 잡히고 빛이 비취는 아침에는 고기가 잘 잡히지 않는다고 합니다. 때문에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은 어부인 베드로의 상식으로는 맞지 않는 것이었습니다.「시몬 베드로」가 누구 입니까? 그는 그 날의 일기와 물결만 보고도 고기떼의 음직임을 훤히 알 수 있는 전문가였습니다. 더구나 어젯밤 밤을 세워가며 오른쪽 왼쪽 수없이 그물을 던져 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베드로」였지만 주님의 말씀에 무조건 순종 했던 것입니다.
본문 5절에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하고 즉각 순종 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랬을 때 어떻게 되었습니까? 대성공이었습니다. 상상을 초월한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고기가 많이 잡혔습니다. 배가 가라 앉으려고 할 정도로 고기가 많이 잡혔습니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고기가 많이 잡혔습니다. 다른 배에 있는 동무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고 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고기가 많이 잡혔습니다. 이것이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린 결과 였습니다.「순종」해야 되겠습니까? 안해야 되겠습니까? 순종해야 합니다. 이 놀라운 경험은 우리가 말씀에 의지해서 순종할 때에만 우리의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저 깊은 영적세계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신비로운 일들이 참으로 많이 있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말할 수 없는 풍성함이 있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상식에 벗어난 명령을 통해서 그리고 순종할 때 나타난 역사를 통해서 주님의 말씀은 어떤 말씀이 되었든 믿을 만 하다는 것을 입증해 주셨습니다. 우리 모두 주님이 주시는「풍성한 은혜」를 받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이제 오늘 말씀의 끝을 맺겠습니다. ★

예수님께서 우연히 베드로를 찾아 가신 것이 아니었던 것처럼 주께서 우연히 여러분과 저를 부르시거나 우리가 우연히 예수 믿게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저를 위해서도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풍성한 은혜를 준비해 놓고 계십니다. 때문에 때론 우리의 삶이 피곤하고 일이 뜻대로 잘 되지 않고 혹 실패 했다 하더라도 두려워하거나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은 베드로를 위해서 좋은 계획을 가지고 계셨던 주님께서 여러분과 저를 위해서도 풍한은혜를 준비해 놓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시몬의 그물이 넘쳤던 것처럼 얼마든지 여러분과 저의 그물도 넘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부요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고후 8:9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자로서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 했습니다.
주님께서 함께 하시면 실패한자가 실패를 딛고 다시 일어 설수 있습니다. 병든 자가 다시 강건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주님에게 있기 때문입니다(마 28:18).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면 낙심한자가 기쁨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