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살고 싶은 부부에게

제 목   잘 살고 싶은 부부에게
 
⊙ 제목: 잘 살고 싶은 부부에게
⊙ 본문: 고린도전서 7:3-5

오늘 우리는 <고전 7:3-5>의 본문 말씀을 같이 보았습니다. 이 시간 “잘 살고 싶은 부부에게”라는 제목으로 오늘 말씀을 증거해 드리겠습니다.

★첫째: 남편과 아내는 각자 자기의 할 일을 하십시오.
★둘째: 받을 것부터 생각하지 마십시오. 양보하고 참고 져주십시오.
★셋째: 상대가 달라지기를 바라지 마십시오. 대신에 자신이 먼저 달라지십시오.

겉으로는 잘 나타나지 않지만 요즘 부부 사이에 갈등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 부부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그런가 하면, 아예 체념한 채「불만」 속에 살아가고 있는 부부가 너무나 많습니다. 차마 이혼을 못하고 있을 뿐, 어쩔 수 없이 그냥 살아가고 있는 부부들이 참 많습니다. 그러나 언제까지고 그렇게 살아갈 수는 없는 일입니다. 없으면 아쉽고, 있으면 실망스러운 그런 부부로 계속 살아갈 수는 없는 일입니다.「부부 십계명」이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성경에 나와 있는 것은 아니고요,
어떤 예수 믿는 분이 작성한 것인데 소개를 해드리겠습니다.
<부부 십계명>
(1) 두 사람이 동시에 화를 내지 말라.
(2) 화가 났을 때, 큰 소리를 내지 말라.
(3) 눈은 허물을 보지 말고, 입은 실수를 말하지 말라.
(4) 아내나 남편은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라.
(5) 아픈 곳은 긁지 말라.
(6) 분을 품고 침상에 들어가지 말라.
(7) 처음 사랑을 잃지 말라.
(8) 갈등이 있어도 결코 단념치 말라.
(9) 숨기지 말고 정직하자.
(10) 부부는 하나님의 섭리로 됨을 믿자.





그러면, 지금부터 성경 교훈을 좇아 잘 살고 싶은 부부를 위해 세 가지로 요약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첫째: 남편과 아내는 각자 자기의 할 일을 하십시오.

남편은 남편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고, 아내는 아내로서의 의무를 다하십시오. <본문 3절>에 분명히 “남편은 그 아내에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남편에게 그리할지라”고 하였습니다. 남편은 남편으로서 자기의 할 일이 있고, 아내는 아내로서 자기의 할 일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먼저 기본에 충실해야 합니다. 내가 마땅히 해야 될 일은 하지 않으면서 요구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부부의 하나됨을 해치는 요소들이 몇 가지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1)무책임」입니다. 남편이 남편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궂은 일 하기가 싫어서 빈둥빈둥 노는 것, 저녁에 늦게 집에 들어오거나 정당한 이유 없이 외박하는 것, 폭언, 구타, 밖에서 다른 여성들에게는 잘 해주는데 유독 아내에 대해서는 냉정한 것 등을 들 수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아내가 아내로서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도 문제입니다. 예를 들면, 살림을 엉망으로 하면서 고부간의 갈등, 형제간에 불화를 일으키는 당사자가 되는 것, 천박하고 부도덕한 행실로 사람들의 입방아의 대상이 되는 것, 낭비벽이 심하고 남편이 되었든 지압 어른이 되었든 안하무인이 되는 것, 조금도 양보하지 않은 뿐 아니라 싸움보다 무서운 냉전을 선택하는 것 등을 들 수 있습니다.
부부의 하나됨을 해치는 또 다른 요소는「(2)이기심」입니다. 모든 사람은 자기 중심의 본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기적인 본능은 배우자의 약점에 집중하게 되고, 그것을 비판하게 됩니다.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서 배척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자기 중심적인 이기주의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 다음에, (3)가정에 희생이 따르더라도 사회적으로「성공」하면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사회적인 성공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사회적으로 성공을 하더라도 가정이 무너지면 그것은 실패입니다. 반대로 사회적으로 성공을 못했다고 하더라도 가정이 건강하면 실패자가 아닙니다. 따라서 사회적 성공이나 재산은 삶의 수단이지 목적은 될 수 없습니다.
그 외에 (4) 부부 싸움, 관계 거절, 가치관의 차이, 재정 집행에 따른 갈등, 서로가 상대를 변화시키려는 태도 등이 부부의 하나됨을 해치는 요소가 되고 있습니다. 부부싸움을 안하고 살면 좋기는 하겠지만 전혀 다투지 않고 살기란 쉽지 않습니다. 부부싸움이 제일 좋은 대화법이라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부부싸움은 반드시 링 안에서 해야 합니다. 문제의 핵심에서 벗어나지 말아야 합니다. 자존심을 건드리는 마지막 한마디의 말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애들이 보지 않을 때 싸우고, 같은 일로는 다시 싸우지 말아야 합니다.
「관계 거절」도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어느 쪽이 되었든 부부관계의 요구를 거절당하게 되면 밀도 높은 수치심을 느끼게 되고, 매우 화가 나게 됩니다. 때문에 한 쪽이 사정을 하게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사실, 오늘 본문의 핵심이 바로 이 부분을 지적하는데 있습니다. 나는 누구에게도 속박되지 않겠다는 것은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가지는 자유에 대한 이념입니다. 그러나 인간에겐 속박되는 자유라는 것도 있습니다.「속박되는 자유」라고 하는 것은「부부라고 하는 틀 안에서의 자유」를 말합니다. 결혼이란 어떤 점에서 피차 묶이는 것입니다. 사랑이 있으면 묶이는 것을 아늑하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부부라고 하는 틀 안에서 각자 자기의 할 일을 하는 남편이 되고 아내가 되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받을 것부터 생각하지 마십시오. 양보하고 참고 져주십시오.

남편과 아내는 결혼에 의해서 하나가 되었기 때문에 남편도 그 아내의 몸을 주관할 수 있고, 아내도 그 남편의 몸을 주관할 수 있습니다. <4절>에 “아내는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그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의 강조점은 남편과 아내는「동등한 인격체」요「평등관계」라고 하는데 있습니다. 남편과 아내에게는 동등한 권리와 권위가 있다고 하는데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남편과 아내는 결혼에 의해서 서로에게 묶인 관계가 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자기 몸을 자기가 주관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라고 하는데 있습니다. 그래서「로버트슨」은 이 구절에 대해서 남자나 여자는 일단 결혼 생활에 들어가면 그때부터 자기의 소유권은 없다고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남편과 아내는 그 누구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동등한 인격체입니다. 그러므로 서로를 존중히 여겨야 합니다. 협력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어느 한 쪽이 자꾸 요구조건만 늘어놓아서도 안 됩니다.
그럼 여기서 “남편들은 언제 부인을 예뻐하고 고마워하는가? 그리고 아내들은 언제 남편에게 고마움과 존경심을 갖는가?”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가정사역 연구소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와 그룹토의 결과를 토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남편들은 언제 부인을 예뻐하고 고마워하는가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1) 우울하고 실의에 빠져있을 때, 상냥한 상대자가 되어 남편의 자존심을 상하지 않게 위로해 주고, 단점도 보완해 주고, 격려도 해주고 할 때 고맙게 느껴진다.
(2) 자녀의 건강관리와 교육에 열과 성을 다하고 있는 것을 볼 때 고마움을 느낀다.
(3) 바가지 긁힐 각오를 단단히 했는데, 오히려 관대하게 아량을 보일 때와 아무리 억지를 부려도 고분고분 순종할 때 더없이 고맙고 예쁘게 느껴진다.
(4) 살림을 규모 있게 하고, 사치하지 않고, 검소하며, 시부모와 시집식구에게 관심과 성의를 다할 때 참으로 고맙고 예쁘게 느껴진다.
(5) 신앙생활 잘하고, 자녀들과 가정 예배드리고, 성경 읽으며, 늦게까지 자지 않고 남편 기다리는 것을 볼 때 고맙고 예쁘게 느껴진다.
다음, 아내들은 언제 남편에 대해서 고마움과 존경심을 갖게 되는가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1) 남편이 부부동반으로 교회에 나올 때, 남편의 믿음이 점점 깊어질 때, 솔선해서 가정 예배를 인도할 때,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녀와 부인의 잘못을 훈계할 때, 고마움과 존경심을 느끼게 된다.
(2) 경제적 문제, 자녀 교육 문제, 사회생활의 갈등, 직장에서의 문제 등을 의논해 올 때 고맙게 느껴진다.
(3) 청소, 병간호 등 집안의 힘든 일을 도와 줄 때 고마움을 느끼게 된다.
(4) 웃는 얼굴로 퇴근하여 자녀들의 친구가 되어 주고, 부인의 옷차림에 관심을 보이며, 여행 중 수시로 편지와 전화로 연락을 줄 때 고맙고 존경스럽게 느껴진다.
(5) 아내의 마음을 읽어줄 때, 둘만의 시간을 만들어 줄 때, 자녀들 앞에서 엄마를 칭찬해 줄 때, 식구들과의 갈등 때 편들어 줄 때 고맙게 느껴진다.
(6) 부부 싸움 후에 먼저 사과하고, 실패한 음식이나 소홀했던 식탁을 대하고도 관대함을 보이고 맛있게 식사할 때 고맙고 존경스럽게 느껴진다.
(7) 부인의 사회 참여, 취미 생활, 봉사 활동 등을 후원해 줄 때, 고맙게 느껴진다.
(8) 묵묵히 어려움을 인내하며 가정을 잘 이끌어 나가는 것을 볼 때 고맙고 존경스럽게 느껴진다고 하였습니다.
이번에는, 남편은 언제 아내에 대해서 섭섭해 하는가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1) 남편의 고민, 어려움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오해하고 말하고 행동할 때 섭섭하였다.
(2) 시부모 내지 시댁에 소홀하고 불화하며 이웃에 대해서 냉정하며 언행이 감정적이어서 그리스도인답지 못할 때.
(3) 자녀를 편애하고 아이들에게 화풀이하듯 감정을 표현할 때.
(4) 인내심과 안정감이 없고, 초조해 하고, 짜증부릴 때.
(5) 남편과 심각하게 지적하고 요청한 일을 반복해서 무시할 때.
(6) 외출이 잦고, 분수에 맞지 않는 물건을 즉흥적으로 구입할 때.
(7) 다른 남자를 칭찬할 때, 남편이 무능하다고 말할 때, 게으른 모습을 볼 때, 남편을 불신할 때 섭섭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아내들은 언제 남편에 대해서 섭섭했는가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1) 여자를 전혀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무관심하며, 여자는 감정도 자존심도 없다고 생각하며 무시할 때 섭섭하였다.
(2) 생일, 결혼기념일을 잃어버렸을 때, 약속을 지키지 않을 때.
(3) 의논 없이 여행을 떠날 때, 친정에는 혼자 다녀오라고 할 때.
(4) 아이들 앞에서 엄마의 권위를 떨어뜨릴 때. 부인을 불신 할 때.
(5) 결혼 생활이 불행하다고 말할 때, 잘 하려고 한 일인데 오히려 핀잔할 때.
(6) 기다린 사람 놔두고 자기 혼자 밥 먹을 때.
(7) 부인의 감정은 전혀 상관하지 않을 때.
(8) 부인의 의견을 묵살할 때 섭섭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얻는 교훈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취나 결과에 행복이 있는 것이 아니라 과정에, 살아가는 과정에 행복이 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부부화음의 비결이 무엇입니까? 소리의 양보입니다. 서로의 의견충돌이 있을 때는 남편이든 아내이든 먼저 져주십시오. 져주는 것은 양보하는 미덕이지 결코 항복하는 것이 아닙니다. 항복했다고 생각ㄷ하지 마십시오. 부부사이가 무슨「적」입니까? 항복하게요. 자식 낳고 고와 낙을 같이하는 인생 동반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냥 양보하는 것입니다. 양보하고 내가 지기 위해서는 날마다 죽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고전 15:31>에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날마다 죽을 수만 있으면 그 다음에는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셋째: 상대가 달라지기를 바라지 마십시오. 대신에 자신이 먼저 달라지십시오.

상대방을 아예 뜯어 고쳐보겠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남편이나 아내는 잔소리나 바가지나 고상한 이론이나 냉전 등에 의해서 바뀌지 않습니다. 상대 쪽에서 바뀌기를 바라기 보다는 내 쪽에서 먼저 바뀌는 것이 훨씬 쉽고 빠른 방법입니다. 상대방을 바꾸어 놓으려면 오랜 세월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그것도 아주 조금 밖에는 달라지지 않습니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분이 기혼 여성들만 모여 있는 자리에서 한 가지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아직 미혼이라고 한다면, 그래서 다시 결혼을 한다고 하면 지금의 그 남편과 다시 결혼 하시겠습니까?”라고 물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안하겠다!”고 하더랍니다. 그런데 그 중 할머니 한사람이 “나는 지금 같이 살고 있는 영감과 다시 결혼하겠다!”라고 대답하더랍니다. 그래서 “할머니는 영감님이 그렇게 좋으십니까?”라고 물었더니, 그 할머니가 하는 말이 “좋아서가 아니에요. 남자들은 다 거기서 거기잖아요. 그러니 수십 년 간 길들여 놓은 사람이 그래도 더 낫지 않겠어요? 새로 길들이려면 그만큼 또 고생을 해야 되잖아요”라고 말하더랍니다. 그렇습니다. 상대를 바꿔놓고 말겠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그런데도 부부문제에 대한 상담을 해보면 거의가 다 상대방이 달라지지 않으면 곤란하다고 말하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그러나 그보다는 내가 달라지면 문제가 쉽게 해결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달라질 때 상대방도 달라지게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달라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나 역시 완성된 존재가 아니고 되어져 가는 존재요 성숙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여자든 남자든 다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왜 이 말씀을 드리는가 하면요, 전에는 여자의 마음은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와 같다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남자의 마음도 많이 변했다고 합니다. 요즘 남자의 마음은 흔들리는 갈대 위에 앉은 메뚜기와 같다고 합니다.





★이제 오늘 말씀의 끝을 맺겠습니다.

누군가에게 말하기를 결혼은 왕자가 천사에게 입 맞추는 것으로 시작해서 대머리의 사나이가 뚱뚱한 여인과 마주 앉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여자가 뚱뚱해지고 볼품없어지더라도, 남자가 대머리가 되고 볼품없어지더라도, 그때까지 부부로 같이 살 수 있다면 그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뭐 그리 대단한 존재라고 남편 앞에서, 아내 앞에서 자존심을 세워야 합니까?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마 11:29).” 말씀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저와 여러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