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마태복음 25:14-30 ▣ 제목: 충성스런 일꾼
오늘 우리는 <마 25:14-30>의 본문 말씀을 같이 보았습니다. 이 시간 본문 말씀에 의지해서 충성스런 일꾼이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다섯 달란트 받았던 사람과 두 달란트 받았던 사람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다음: 한 달란트 받았던 사람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세 번째로: 일꾼이 “어떻게 충성해야 하는가?” 그리고 “충성하면 어떤 상급이 따르는가?”에 대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오늘은 우리 교회에「직분자 선출」이 있는 날입니다. <딤전 1:12>에 “긍휼에 풍성한 하나님이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셨다.”고 하였습니다. <고전 4:1-2>에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군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마 25:21, 23>에 “착하고 충성된 종아 - 잘하였도다”고 하였습니다. 성경은 이처럼 일꾼에게 가장 요긴하게 요구되는 것이 “충성”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가 얼마나 유능하느냐를 묻지 않고 있습니다. “그가 얼마나 잘 났느냐? 그가 얼마나 배웠느냐? 그의 가문이 어떠하냐? 직업이 무엇이냐? 그가 신앙 생활을 누구누구보다 더 오래 했느냐?” 등을 묻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그에게 믿음이 있느냐? 착하고 충성된 사람이냐? 과연 죽도록 충성할 수 있는 사람이냐?(게 2:10)”를 묻고 있습니다. 여기 오늘 성경에 씌여진 “충성”이라는 말의 헬라어 원문 “피스토스”라고 하는 말은「신실」이라고 하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신실한 사람을 찾으십니다. 제비는 사람이 뽑지만 작정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잠 16:33>에 “제비는 사람이 뽑으나 모든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 그럼 먼저: 다섯 달란트 받았던 사람과 두 달란트 받았던 사람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본문 14절과 15절>에 보면,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가면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맡기고, 한 사람에게는 금 두 달란트를 맡기고, 한 사람에게는 금 한 달란트를 맡겼다고 했습니다. 본문은「비유」입니다. 여기 어떤 사람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소유주 되시고 만물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그리고「종」은우리를 가리킵니다. 오늘 성경에 우리를 종으로 표현한 이유는 “하나님의 뜻에 절대 순종해야 할 자”는 뜻이고, “너희는 하나님의 것을 맡은 자”라고 하는 뜻입니다. 복습하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으로부터 우리가 무엇을 받았습니까? 직분을 맡았습니다. 재능을 맡았습니다. 물질을 맡았습니다. 시간을 맡았습니다. 자녀를 맡았습니다. 생업을 맡았습니다. 생명을 맡았습니다. 모든 것을 다 맡았습니다. 모든 것을 임시로 맡았습니다. 임시가 언제까지 입니까? 하나님께서 나보고 그만 살고 오라고 하실 때沮?입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다섯 달란트 받았던 사람이 어떻게 했습니까? 그것으로 감사해서 다섯 달란트를 더 남겼습니다. 그래서 주인으로부터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하는 칭찬을 받았습니다. 두 달란트 받았던 사람은 어떻게 하였습니까? 두 달란트 받았던 사람도 그것으로 장사해서 두 달란트 더 남겼습니다. 그래서 주인으로부터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하는 칭찬을 받았습니다. 다섯 달란트 받았던 사람하고 두 달란트 받았던 사람하고 칭찬을 똑같이 받았습니다. 글자 하나도 틀리지 않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면 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얼마나 큰일을 했느냐를 보시기보다 내가 얼마나 성실하게 임했느냐를 보십니다. 단, 하나님은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하십니다.
★이번에는: 한 달란트 받았던 사람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묻겠습니다. 한 달란트 받았던 사람은 어떻게 했습니까? 주인이 타국에 가고 없는 동안에 그 한 달란트를 땅에 묻어 두었다고 주인이 돌아오자 그것을 고스란히 그대로 내놓았습니다. 그러면,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이 그걸 왜 땅에 묻어 두었습니까? 24절에 보면, 한 달란트 받았던 사람이 주인은 굳은 사람이고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분이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는데요. 이것은 답이 아닙니다. 이것은 그 사람의 변명입니다.「답」은 26절에 나와 있습니다. 26절에 보면, 주인이 그 한 달란트 받았던 종에게 “악하고 게으른 종아!”하고 말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사람이 그 받은 한 달란트를 땅에 묻어 두었던 이유는 악하고 게을렀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우선 주인이 자기에게 한 달란트 밖에 맡기지 않은 것 때문에 기분이 나빴습니다. 또 한 가지는, “주인도 없는 이런 때 놀지 않으면 언제 놀아!”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 한 달란트를 땅에 묻어두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주인이 한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맡기고,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맡기면서 유독 이 사람에게 한 달란트를 맡긴 이유가 어디에 있었을까요? 그것은 주인이 이 사람에 대해서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온전하신 지혜와 그의 주권과 그의 사랑으로 우리 각 사람에게 가장 알맞게 모든 것을 맡겨 주십니다. 때문에 만약 한 달란트 받았던 사람이 또 한 달란트를 남기기만 했더라면, 이 사람도 똑같은 칭찬과 상급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이 사람이 그 한 달란트를 땅에 묻어 둔데 있었습니다. 결국 이 한 달란트 받았던 사람은 주인에게 호된 책망을 받고 쫓겨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26-30).
★이제 세번째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일꾼이 “어떻게 충성해야 합니까?
(1) 작은 일에 충성해야 합니다. 왜 작은 일에 충성해야 합니까? 작은 일에 충성하는 사람이라야 큰 일에도 충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 21절>에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 지어다”라고 하였습니다. 본문의 “네가 작은 일에 충성했다!”는 말씀은 “네가 맡은 일에 성실한 자세로 임했다!”는 뜻입니다. “주인이 보지 않는 가운데에서도 네가 맡은 일에 성실한 자세로 임했다!”고 하는 뜻입니다. 주인도 알아주고 사람들도 알아주는 일, 폼나는 일, 재미있는 일, 표시 나는 일, 힘 안 드는 일에는 앞장서고, 이름도 없고 빛도 나지 않는 일, 힘든 일은 외면하는 일꾼은 충성된 일꾼이 아닙니다. 일꾼은 하나님께 인정받기 전에 먼저 사람에게 인정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2) 말로만 충성해서도 안 되고 말이 많아서도 안 됩니다. <살후 3:8>에 보면 “도무지 일은 하지 아니하고 만드는 자들이 있다!”고 지적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교회에 그런 사람들이 있어서 그것이 문제라고 하였습니다. 한 번 따라서 하겠습니다. “말로 일하지 말고 일로 말하자!”
(3) 누가 보든지 안 보든지 충성해야 합니다. 쥐하고 새하고 서로 사랑해서 결혼해 가지고 제주도로 신혼여행 갔는데 어떻게 갔다고요? 쥐도 새도 모르게 갔다고 그랬습니다. 나무는요 노출된 부분이 10m이면 뿌리도 10m라고 그럽니다. 뿌리는 보이지 않습니다. 교회 안에 이런 숨은 일꾼이 필요합니다. 일꾼이 가장 힘든 것이 무엇입니까? 이러쿵 저러쿵 하는 사람들의 입방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꾼은 귀 훈련이 잘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럴테면 그러시오! 나는 하나님께 판단 받겠소이다!”라고 묵묵히 일을 할 수 있어야 됩니다(고전 4:3-4).
(4) 믿음으로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딤후 1:5>에 “디모데는 거짓 없는 믿음의 소유자였다.”고 했습니다. <행 6:3>에 “교회 일꾼은 성령과 지혜가 충만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믿음으로 일해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믿음으로 일해야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믿음 없이 일을 하게 되면 일을 해 놓고 자기 알아 달라고 하게 됩니다. 소리를 내게 됩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일을 해야 합니다.
(5) 주님의 일에 우선을 두어야 합니다. <마6:33>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말씀했습니다. 모든 성도가 다 그렇지만 특별히 직분자는 주일 성수 안하면 큰일 나는 줄 알아야 됩니다. 금요일에 구역 예배 준비하고 기도회 나오는 것만 해도 그렇습니다. 그 시간은 그냥 비워 둬야 됩니다. 집에 일이 있으면 못 나오고 일 없으면 나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일에 우선해서 참석해야 합니다.
(6) 덕이 되게 일을 해야 합니다. <벧후 1:5>에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믿음에 덕을”이라고 하였습니다. 믿음에 덕을 더해야 된다고 했습니다.「믿음」에「덕」을 더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믿음은 내가 가진 것 같은데 성경에 보면 사실은 믿음도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고 했습니다(엡 2:8-9).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래서 그 믿음으로 구원받고, 세상의 썩어질 것을 피하고, 하나님의 품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믿음에 더해야 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덕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덕은 한마디로 도덕적 탁월성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닮아 가는데 있습니다. <벧전 4:11>에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7) 처음부터 끝까지 충성해야 합니다. <계 2:10>에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죽도록 충성해야 될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피로 값 주고 저와 여러분을 사셨기 때문입니다. <롬 14:8>에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고 하였습니다.
★끝으로: 그러면 충성된 일군에게는 어떤 상급이 따르게 됩니까?
(1) 하나님께서 보시고 칭찬하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딤전 3:13). <21절>에 “잘하였도다”고 칭찬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 있습니다. <시 101:6>에 “ 내 눈이 충성된 자를 살펴 그로 나와 함께 살게 하리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주께서 충성된 자를 기억하십니다. 그와 동행하시고 그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2) 그 다음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게 됩니다. 본문 <21절>에 “잘 하였도다 네가 작은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주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고 하였습니다. 여기 “너로 즐거움에 참여하게 해주겠다!”고 하는 말씀은 파격적 대우에 대한 선언입니다. 무슨 말씀인가 하면, 주인의 잔칫상에 같이 앉게 해주겠다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너를 가족으로, 아들로 대우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롬 8:17>에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요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라고 하였습니다.
(3) 면류관의 상급을 받게 됩니다. <계2:10>에「생명의 면류관」을 주시겠다고 했습니다. <딤훈 4:1>에「의의 면류관」을 주시겠다고 했습니다. <살전 2:1>에「영광의 면류관」을 주시겠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면류관을 얻을 수 있는 성도가 되고 직분자들이 되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