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창세기 1:26-28, 2:7 ▣ 제목: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자
오늘 우리는 <창 1:26-28>과 <창 2:7>의 본문 말씀을 같이 보았습니다. 이 시간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자”라는 제목으로 오늘 말씀을 증거해 드리겠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드셨습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사람을 흙으로 만드셨습니다.
“사람이 사람이면 사람이냐, 사람 노릇을 해야 사람이지..”라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요즘 겉모양은 사람인데, 그런데 하는 행동거지를 보면 도저히 사람이라고 할 수 없는 그런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드셨습니다.
<본문 26절>에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자”라고 하셨고, <27절>에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고 했습니다. 여기, 하나님의 형상(26절, 모양, <히>떼무트)대로 사람을 만드셨다고 하는 말씀은, (1)사람을 하나님의 성품을 지닌 존재로 만드셨다고 하는 뜻입니다. (2)사람의 인격이 하나님을 닮게 만드셨다고 하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만물 가운데 유독 사람만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드셨습니다. 사람만 하나님의 성품을 지닌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사람만 그 인격이 하나님을 닮게 만드셨습니다. 오해하시면 안됩니다. 모습이나 형체가 하나님을 닮은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인격이 하나님을 닮게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영(靈)잇기 때문에 그 어떤 모양도 형체도 가지고 계시지 않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성품은 어떤 성품입니까?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고 죄를 용납하실 수 없는「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면서 또한「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이 두 가지가 하나님의 대표적인 성품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하나를 더하라고 하면「거룩성」을 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이런 성품을 하나님 혼자서만 간직하지 아니하시고 사람들에게도 심어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잘못을 저지르게 되면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만드셨습니다. 하늘을 두려워하며 살아가게 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지 않는 사람들도 심판을 두려워하고 죽음을 두려워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이 만드신 최고의 걸작품입니다. 인체의 신비에 대해서 지금까지 과학자, 생물학자, 의학자 할 것 없이 다만 감탄만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특별하게 창조하셨습니다. 사람을 존귀한 자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만 그 자녀로 삼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 외에 천사도, 그 어떤 것도 자녀로 삼지 않으십니다. 사람만 하나님과의 교제가 가능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만 구원하십니다. 사람이 얼마나 가치 있고 존귀한 존재인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나 아닌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그를 존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사람을 무시하고 멸시하게 되면 그것은 그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을 무시하고 멸시하는 것이 되게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멸시하는 것이기 때문에「신성 모독」에 해당됩니다. 그런가 하면, 각 사람은 각 사람대로 하나님께서 부여해 주신 사람의 이같이 고상하고 존귀한 위상을 실추시켜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사람들이 그렇게 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롬 1:22-23>에 “스스로 지혜 있다고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하나님께서 얼마나 슬퍼하시겠습니까? TV 저녁 뉴스를 보십시오. 모두 싸우고, 속이고, 남을 해치고, 죽이고 하는 그런 소식들로 가득합니다. 세상이 온통 거짓과 사기만 존재하는 것 같은 그런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제가 지금부터 할머니 얘기를 한 가지 해드리겠습니다. 어느 할머니가 택시를 탔습니다. 내리면서 운전 기사에게 얼마냐고 물었습니다. 운전 기사가 4.000원 나왔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2.000원을 내면서 더는 못 내겠다고 버티는 것이었습니다. 이유는, “나하고 운전수 양반 당신하고 둘이 같이 타고 왔으니까 반반 같이 내야 할 것 아니냐?”는데 있었습니다. 결국 2.000원은 못 받았다고 그러더라구요. 그렇지만 이건 사기는 아닙니다. 그냥 할머니니깐 그런 겁니다. 문제는 인면수심(人面獸心)의 사람이 많다는데 있습니다. 얼굴은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는데 속은 짐승이나 다름없는 그런 사람들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고 하는 데에 문제가 있습니다. 아니, 4살 자리 여아 겁탈이라니 그게 말이나 됩니까? 어디 무서워서 어린 여학생들이 엘리베이터 맘 놓고 탈 수 있겠습니까? 어린 여학생이 혼자 타면 뒤에서 얼른 누가 같이 탄다면서요? 신문에 난 것 보셨지요? 어느 협박범이 무작위로 공무원 600 명에게 전화해서 “당신이 남의 여자하고 여관에 들어가는 것 사진 찍어 놨는데 어떻게 하겠느냐?”고 했더니 좀 봐달라면서 그 중 53명이 당장 1억원이 넘게 송금을 해주더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습니까? 우리 모두 하루 빨리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복음서에 보게 되면, 예수님이 자기 자신을 가리킬 때 가장 많이 사용하신 단어가 인자였습니다.「Son of Man」이라고 하는 단어였습니다.「사람의 아들」이라는 단어였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우리와 달리 신성(神性)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면서 특별히「참 사람」이 되셔서 오셨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주님께서 신성(神性)을 가지고 계시면서 참사람이 되어 이 땅에 오신 것은 우리를「참 사람」으로 회복시켜 주시려는데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구원을 얻고 새로운 피조물(고후 5:17)이 되게 하신 것도「참 사람됨」을 “회복”하는데 있습니다. 인간의 본성을 “휴머니티(Humanity)”라고 부릅니다. 보통 줄여서 “인간성(人間性)”이라 그럽니다. 인간성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인간답게 사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런 것 없이는 인간이 참다운 의미에서 인간이라고 할 수 없게 되는 것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시편 25:8>에 “여호와는 선하시고 정직하시니 그러므로 그 도를 죄인을 교훈하시리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정직하게 살아야 합니다. 사업에 성공한 한 장로님이 다른 교회의 초청을 받아 정직에 대해 간증을 했습니다. 그런 다음날 마치 차가 고장이 나서 BUS로 출근을 하게 되었습니다. BUS요금이 600원 할 때였는데, 1.000원 짜리를 냈더니 거스름돈을 500원을 주더랍니다. 그래서 일단 받아 가지고 자리에 가서 앉기는 앉았는데, 영 마음이 찜찜하더랍니다. 그래서 100원 도로 갖다 줄까 하다가 “이따가 내리면서 주자.”하고는 그냥 앉아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내리면서 100원을 돌려주려고 하는데 운전 기사가 하는 말이 “장로님 안녕하세요? 장로님 어제 저녁 간증 잘 들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장난기가 들어서 100원을 더 거슬러 드려 봤습니다. 100원 도로 가져오셨네요!”라고 하더랍니다. <행 11:26>에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고 하였습니다.「그리스도인(크리스챤)」이라는 이름은 믿지 않는 사람들이 붙여준 이름입니다. “저 사람들은 정말 예수를 닮은 사람들이다!”해서 붙여 준 이름입니다. 안디옥 지방의 이방인들이 자신들과는 젼혀 다른 정직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정말 사람다운 사람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렀습니다. 소금은 불과 7%의 염분을 가지고도 온통 바다로 바다가 되게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땅에는 그리스도인의 수가 전체 인구의 20%가 넘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우리는 이 땅을 변화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까?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다워질 때 이 나라에 소망이 있습니다. 먼저 예수 믿는 우리부터 달라져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사람을 흙으로 만드셨습니다.
여기 오늘 본문 <창 2:7>에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고 하였습니다. 단단하기로 하면「강철」이 더 단단하고, 비싸기로 하면「금」이나「다이아몬드」같은 보석이 더 비쌉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이런 재료들을 사용하셔서 사람을 지으시지 않으시고 흙으로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흙으로 사람의 육체를 지으신 다음에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심으로 비로소「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여기「생기」라고 하는 말에 사용된 히브리어「네솨마」는 영혼. 호흡, 기운이라고 하는 뜻입니다(잠 20:27, 사 2:2, 욥 33:4).「흙」자체만으로는「사람」이 될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흙을 가지고 사람의 육신을 만들어 놓으신 다음에 그 코에 생명의 근원이 되는 하나님 자신의「기운」을 불어 넣으셨기 때문에 비로소「사람」이 될 수가 있었습니다. <창 5:1-2>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담 자손의 계보가 이러하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고 하였습니다. 히브리어「아담」이라고 하는 말은「사람」이라고 하는 뜻입니다. 성경에 56-회에 걸쳐서「아담」이라는 단어를「사람」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 말을「명사」로 바꿔서「아다마(Adamah)」라고 하게 되면, 그 때는 이 말이 다시 흙이라는 뜻이 되게 됩니다. 「인간」을「휴머니(Human, Humany)」라고 부르는데 이 말은「흙 같은 존재」라고 하는 뜻입니다.「겸손」을 영어로「휴밀리티(Humility)」라고 합니다. 라틴어「휴므스」에서 나온 단어입니다. 이 말 속에는 자신이 본래 “흙 같은 존재”였음을 깨달을 때 겸손해질 수 있다는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인간성을「휴머니티(Humanity)」라고 부르는 이유도 다 이런데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인간의 근본 실체는 흙입니다. 성경이 이처럼 사람은 흙으로 지어졌다는 사실을 밝히 증거해 줌으로 해서 인간의 한계를 뚜렷이 알 수 있게 해주고 있습니다. 흙으로 된 인간이 하나님께서 그 코에 생명의 숨결을 불어 넣으심으로 해서 비로소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가 된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교훈을 던져줍니다. 그것은 이간이 다른 피조물과는 달리 하나님을 떠나서는 생명을 누릴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인간의 영혼은 하나님께서 직접 주셨습니다. <겔 18:4>에 “모든 영혼은 다 하나님께 속했다고 하였습니다. 인간 영혼의 출처는 하나님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이 죽으면 그 영혼이 하나님께 돌아가게 됩니다. 그러나 다 돌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그냥 죽는 것으로 끝납니다. 그 영혼이 지옥에 떨어지게 됩니다. 그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 12:7-8>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 여러분, 살아 숨 쉬는 동안에「창조자」를 기억할 줄 모르는 인생은「헛된 인생」입니다. 우리는 저녁때가 되면 “오늘 또 하루를 살았구나!”하게 됩니다. 그러나 “내가 하루를 살았다!”고 하는 말의 다른 말은 “내가 하루를 죽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매일 매일의 삶을 살아가는 것은 죽음을 위해 하루하루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고후 4:7>에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사람을 흙으로 만든『질그릇』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흙으로 만든 질그릇이『보배』를 소유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성도가「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비로소『새로운 가치, 엄청난 가치』를 지닌 존재가 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그러면, 이제 우리 성도들이 어떻게 해야 됩니까?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 드려야 합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는 세계에서 가장 열심 있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모여서 기도하고 하나님께 예배하는 그 열심을 따라올 나라가 없습니다. 이제 그 열심을 가지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 백성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데 앞장서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사람 되어지는 것입니다. 먼저 사람이 되어질 때 비로소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있고, 좋은 어머니가 될 수 있습니다. 사회가 사람 사는 사회다운 사회가 될 수 있습니다. 흙으로 빚어진 사람은 흙에서 나는 것을 먹고 삽니다. 초식동물 육식동물 할 것 없이 모두 흙에서 나는 것을 먹고 삽니다. 어족도 마찬가지입니다. 물을 담고 있는 밑바닥 역시 흙입니다. 흙에서 나는 것은 먹고 살던 인생은 언젠가 떠나야 합니다. 그 날이 언제 일는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그 때는 알 수 없지만 떠나야 되는 것은 기정사실입니다. 그 때까지 우리는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흙은 정직합니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납니다. 흙은 거짓말을 모릅니다. 그러므로 흙으로 만들어진 사람도 정직해야 합니다. 하나님은「불의」,「거짓」을 미워하십니다. 인간성을 회복하는 것은 곧「정직」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흙은 낮은 자리에서 봉사합니다. 흙은 언제나 사람의 발밑에 있습니다. 높은 산에 있는 흙도 사람이 밟고 올라섭니다. 흙은 사람이 무엇을 버리든 다 수용합니다. 배척하지 않습니다. 자기 품에 품습니다. 함께 더러워집니다. 사랑으로 용납합니다. 그리고「정화」시켜 줍니다. 흙이 이 세상의 쓰레기를 받아들여 주지 않는다고 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 그 동안 얼마만큼의 음식물을 소화시키셨습니까? 그리고 그것을 다 어디다 버리셨습니까? 그런데 그것을 한두 사람이 그렇게 하고 있습니까? 흙은 인간을 위한「봉사의 도구」노릇을 합니다. 온갖 식물이 자라도록 품고 양분을 공급하면서 추수 때까지 길러 줍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수많은 자원을 공급해 줍니다. 흙으로 만든 인체는 봉사를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우리가 봉사를 망각하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자꾸만 추해져 가고 있습니다. 받을 것만 생각하고 살아가니까 사람이 자꾸만 추해질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참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섬김의 가치」를 회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제 오늘 말씀의 끝을 맺겠습니다◈
사람은 흙으로 지어졌지만 하나님께서 생명의 근원이 되는 자신의 기운을 그 코에 불어 넣으심으로 가장 귀중한 존재인 사람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오늘 저와 여러분을 찾고 계십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고 부르고 계십니다. <창 3:9>에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고 하신 말씀은 곧「사람아 네가 어디 있느냐?“는 말씀입니다. 우리 각 사람을 부르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너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물으시는 말씀입니다. 몰라서 물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다 아십니다. 다 아시기 때문에 이제라도 돌아서라고 촉구하시는 말씀입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저와 여러분이 먼저 사명을 자각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기대의 대상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나서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나서서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해드려야 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