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토 아비 집을 떠나라

제 목   본토 아비 집을 떠나라
 
▣ 본문: 창세기 12:1-5
▣ 제목: 본토 아비 집을 떠나라

오늘 우리는 <창 12:1-5>의 본문 말씀을 같이 보았습니다. 이 시간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는 제목으로 오늘 말씀을 증거해 드리겠습니다.

★첫째: 아브라함을 선택하시고 그를 부르신 하나님께서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약속이 있고 보장이 있습니다.
★셋째: 아브라함의 믿음생활은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순종 하는데서 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본문은 유명한 아브라함의 소명과 그의 가나안 이주에 대한 기사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믿음의 조상의 비젼을 주시고 복의 통로의 비년을 주십니다. 그랬을 때 아브라함이 말씀을 좇아 떠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아브라함을 선택하시고 그를 부르신 하나님께서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절에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제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여기 보면,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라고 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①믿음의 조상이 되게 하고, ②하나님의 복의 통로가 되게 하고, ③그의 후손을 통해 메시아 예수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기 위해서 그를 선택하시고 그를 부르셨습니다.

지금까지 <창1-11장>까지 인류전체를 대상으로 일반은총에 의해 전개되던 하나님의 구원역사가 셈족의 후예 중 한 사람인 아브라함을 통해 새롭게 전개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인간적인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수행하기 위한 도구로 선택된 아브라함에게서 어떤 특별한 자격을 발견하기는 어렵습니다. ①아브라함은 당시 우상의 본거지 갈데아 우르에서 죄악된 관습에 젖어 살고 있었습니다. ②그의 아버지 데라도 우상 숭배자였습니다. ③또한 아브라함은 아내를 누이라고 속일 정도로 용기가 없는 인물이었습니다(창 12:12, 13:20).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하나님의 구원역사의 도구로 선택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구원역사가 인간의 재능이나 능력에 의해 이뤄지지 않고 철저하게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잘 나타내 보여 줍니다. 여기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라고 한 말씀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될 사실은 아브라함이 먼저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아브라함을 부르셨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소명”이라 그렇게 부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만 부르신 것 아니었습니다. 모세도 부르시고, 다윗도 부르시고, 예수님의 제자들도 부르시고, 여러분과 저도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실 때에 그를 비천한 상태에서 부르셨습니다. 다윗도 부름을 받을 당시 목동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들은 절반 이상이 어부들이었습니다. 바울은 똑똑 하기는 했지만 죄인 중에 괴수 노릇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그를 도구로 쓰시기 위해 부르셨습니다. 우리는 죄인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부를래야 부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먼저 저와 여러분을 불러 주셨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여기에 대한 감사가 있어야 되고 여기에 대한 감격이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을 부르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무엇이라고 말씀 하셨습니까?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당으로 가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여기 떠나라고 한 말씀을 주의 깊게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떠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믿음의 시작은 떠나는 것이고, 믿음의 완성은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곳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저와 여러분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저와 여러분도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 떠나고 하나님의 약속하신 곳까지 가는 그런 인생이 되어 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기, 본토(本土)는 저 메소포타미아에 있는 아브라함의 고향 “갈대아 우르”를 가리킵니다. “갈대아 우르”는 우상숭배가 만연한 곳 이었습니다. 그리고 여기 친척과 아비 집은 우상을 숭배하던 아브라함의 혈족과 그의 부모형제를 가리킵니다(수 24:2). 따라서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는 말씀은,「죄악의 관습에 젖어있던 과거의 보든 인연과 삶을 청산하라!」는 말씀입니다. 이와 같이 아브라함을 부르신 하나님께서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게 하셨습니다. 지금까지 자기가 살던 곳을 떠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거기에 생활 기반이 있고, 거기에 일가친척 친구들이 다 살고 있는데 갑자기 한번도 가보지도 못했고 알지도 못하는 곳으로 떠나기란 쉽지 않습니다. 더욱이 아브라함의 경우는 외국으로 이민을 떠나야 되는 그런 상황 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떠나라는 것 이었습니다. 왜 떠나라는 것입니까? 떠나지 않으면 시작이 없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이 겪는 신앙의 갈등은 옛사람을 벗어버리지 않고 새사람이 되려는데 있습니다. 버리지 않고 출발하려는데 있습니다. 하나님이 제시 하신 새로운 세계로 가려하기 보다는 현재의 삶이 부숴 지지 않게 하려하고 있습니다. 안주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삶은 그것을 허락지 않습니다. 움직이기를 원하고 떠나기를 원합니다.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려면 기득권과 옛사람을 포기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문제는 -떠나지 않고 그 자리에서 그냥 시작하려는데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꾸만 덧칠 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지금 있는 건 건드리지 마시고요, 지금상태 보다 잘 되게 해주세요!”라고 요구하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기초가 잘못된 집은 허물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옛사람이 죽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러난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옛사람은 죽어야 합니다. 우리의 과거가 무너져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새로운 신앙인의 길을 떠나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약속이 있고 보장이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떠나라고 하실 때는 언제나 적극적인 대안을 준비해 놓으시고 떠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애굽을 떠나라고 말씀 하실 때도 보면 광야에 만나와 메추라기와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준비해 놓으시고 애굽을 떠나게 하셨습니다. 뺏기 위해서 떠나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떠나는 것이 유익하고, 버리는 것이 유익하고, 더 큰 영광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떠나라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아브라함에게 떠나라고 하시면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약속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약속입니까? (2절)에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너로 볼의 통로가 되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3절)에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다윗의 자손으로 이 땅에 오실 메시아 예수그리스도를 통한 복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게 하심으로 그로 하여금 땅의 모든 족속의 복의 근원이 되는 영예를 얻게 하시겠다고 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처럼 엄청난 복을 약속하십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름을 받을 당시 한 가정의 평범한 가장에 불과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그에게 엄청난 복을 주시겠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떠나라고 말씀하시면서 포기하라고 말씀 하신 것은 세 가지였습니다. 본토, 친척, 아비집 이렇게 세 가지였습니다. 그런데 약속하신 복을 보게 되면 그 배가 됩니다. 큰 민족, 이름의 창대, 복의 근원, 축복과 저주권, 땅의 모든 족속이 얻게 될 복 등, 배나 될 뿐 아니라 비교도 안될 만큼 엄청나게 큰 복들을 약속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와 같이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마땅히 포기해야 될 것을 조금만 포기해도 저와 여러분에게 엄청난 복을 안겨 주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느 아프리카 부족의 이야기입니다. 이 부족의 추장이 나이가 많아지자 이제 새로운 추장을 세워야겠다. 생각을 하고 세 사람의 젊은이를 오게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그 세 사람을 산으로 올려 보냈습니다. 그들이 한 번도 올라가 보지 않은 산으로 올려 보냈습니다. 산으로 올려 보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는 산 정상까지 올라가야 한다. 산 정상까지 올라가서 내게 가장 귀한 선물이 되겠다 싶은 것을 가져 오너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세 청년이 산 정상까지 올라갔습니다. 올라가서 한 청년은, 거기서 귀한 보석을 캐다가 추장님께 드렸습니다. 또한 청년은, 거기서 사람이 장수 할 수 있는 신비의 약초를 캐다가 추장님께 드렸습니다. 그런데 한 청년은 그냥 빈손으로 내려왔습니다. 추장이 그 빈손으로 내려온 청년에게 너는 어째서 그냥 내려왔느냐고 물었습니다. “너는 내게 줄 선물을 준비하지 못했느냐?”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청년이 말하기를, “저도 오늘 추장님께 드릴 선물을 하나 준비해 왔습니다. 저는 추장님께서 왜 우리에게 한 번도 올라가 보지 않은 산 정상에 올라가게 하셨는지를 알았습니다. 그 산 정상에 올라가 보니까 여기 말고 또 다른 세계가 보였습니다. 광활한 총원과 넓은 세계가 펼쳐져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이제 추장님의 뜻을 알겠습니다. 저는 우리 추장님에게 비전을 선물로 드리겠습니다!”하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생각에 이 세 사람 가운데 누가? 추장의 후계자가 되었을 것 같습니까? 두말 할 나위 없이 세 번째 청년이었습니다. <롬 8:17>에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라고 하셨습니다.「후사」란 한문으로 뒤 후(後)자에 이을 사(嗣) 자(字)로서 대를 잇는 아들, 또는 상속자라고 하는 뜻입니다. 무슨 말씀입니까?「하나님」께서 「그리스도예수」안에서 저와 여러분을 부르셔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게 하셨습니다. 자녀이면서 또한 하나님의 후사가 되게 해주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처럼 엄청난 복을 받게 된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온갖 좋은 것들과 영원한 나라가 다 여러분과 저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오늘 본문(3절)에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하나님」께서 제3자로서 성도를 도와주시는 것이 아니라 아예 성도와 한 편이 되어 주시겠다고 하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셋째: 아브라함의 믿음생활은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순종 하는데서 부터 시작되었습니다.

4절에, “이에 아브라함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갔고 -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날 대에 그 나이 칠십오 세였더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떠날 대의 아브라함의 나이는 75세였습니다. 그리고 이때까지도 아브라함에게는 자식이 없었습니다. 또 앞으로도 자식을 낳을 가망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아브라함에게 어서 -하나님의 약속은 실효성이 없어 보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갔습니다. 여기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갔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액면 그대로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은 어디로 가야할지 구체적인 방향을 알지 못했습니다. <히 11:8>에도 보면,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 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나갔으며”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갈 바를 알지 못했지만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실 줄 믿고 길을 떠났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한 마디에 자기 인생을 걸었습니다.
아브라함의 결단은 보통 결단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장차 살게 될 땅에 대해서 설명해 주신 일이 없었습니다. 어떤 환상을 보여 주신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냥 가라고만 하셨습니다. 걱정하지 말고 그냥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말만 믿고 그냥 떠났습니다.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떠났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순종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면 우리 안에 믿음이 생기게 됩니다. 그리고 순종하는 만큼, 행동하는 만큼 믿음이 자라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떠날 때에 나이가 75세였다고 했습니다. 그 때는 오늘날과 달리 장수하던 때였기 때문에 그다지 늙어보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길을 떠나는 사람으로서 고생은 각오해야 했습니다. 그는 이제 미지의 당에서 고달픈 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6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가려고 하는 가나안 땅에 벌써 다른 사람들이 들어와 살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때문에 그들과 충돌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가 떠나는 데는 위험이 따랐습니다. 그 길은 모험의 길이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더욱 더 믿음이 필요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인생을 쉽게 살려고 하는 것은 근본부터가 잘못입니다. 고생하지 않고 쉽게 성공해 보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고생하지 않고 편하게 살려고 하는 데서 협잡이 생기고부정부패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사람은 용기와 담력을 가지고 고생을 각오하고 길을 나서야 합니다. 온실에서 곱게 자란 화초는 생명력이 약하고 향기도 적습니다. 그러나 들판에서 모진 비바람을 맞으면서 자란 화초는 생명력이 강하고 향기도 매우 짙습니다.
<4절>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여기 보면, “롯도 그와 함께 가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아브라함이 떠나고, 롯도 떠나고, 두 사람 다 떠나기는 떠났는데, 떠난 동기는 서로 다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떠났고, 롯은 아브라함이 떠나니까 같이 따라 나섰습니다. 여러분, 사람을 좇아가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행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여러분, 엉터리 믿음이 언제 들통 나는 지 아십니까? 시련의 때에 들통 나게 됩니다. 그리고 교회가 큰 일을 할 때 들통 나게 됩니다.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가는 믿음이 사람들이다 되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가면 하나님의 약속이 이뤄지고 영광된 미래가 도래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