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직한 효도 (창 22:6-13)

  말세가 다가오면서 여러가지 말세의 특징이 있지만 그 중에서 몇가지를 소개해드린다면

1. 위계질서가 무너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부모를 섬기는 일, 또 아내가 남편을 섬기어 복종하는 일, 또 학생들이 선생님을 존경하고 배우는 일, 지도자와 윗사람을 존경하고 그 분을 받들어드리는 일, 이것들이 지금은 모두 거꾸로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부모가 자식 눈치를 봐야하고, 또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순종해야 되는, 또 선생님이 학생들 비위를 맞춰야 되는 아주 이상한 시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말세의 또다른 특징 중 하나는

2. 윤리적, 도덕적으로 아주 타락되어 간다는 것입니다.
온 땅 위에 음풍이 가득해서 얼마나 타락되고 난무한지 무질서합니다. 오늘날처럼 한국이 타락된 때가 또 어디 있었습니까? 그래서 전국 방방곡곡에 러브호텔이 집중되어 있어서 그곳에서 많은 범죄가 이루어지고 그 러브호텔이 범죄의 도구로 사용되어진다는 것은 이미 우리가 다 잘 알고 있습니다.

말세의 특징 중에 또 한가지를 말한다면

3. 감사할 줄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사랑을 받고 있는, 모든 것 다 가지고 위해주고 양육해주고 돌봐주어도 그것을 고마운 줄을 모르고 감사할 줄을 모릅니다. 오히려 은혜를 원수로 갚는 그런 경우들이 오늘 우리들 주위에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특별히 부모님이 우리들을 키워주고 양육해준 그 은혜와 그 사랑을 깨닫고 또한 존경하고 경외하는 마음이 아니라 오히려 부모님의 사랑을 원수로 갚고 부모님을 업신여기고 멸시하는 이런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성경에 나타난 수없이 많은 위인들 중에서 오늘 이 세상에 태어났던 수없이 많은 사람들 중에서 가장 완전한 효도라고 할 수 있는 효자 한 사람을 소개해드립니다. 그 사람이 바로 누군가 하면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이었습니다. 본문에 이삭은 어떻게 효도했습니까?


1. 아버지와 동행하는 효도입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을 보면 아브라함이 이제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산으로 갑니다. 왜 그런가 하면 하나님이 아들 이삭, 100세에 낳은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명령을 하셨기 때문에 아들을 데리고 모리아산 그곳으로부터 사흘 길이나 되는 머나먼 곳으로 가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본문의 모습 속에서 이삭이 어떻게 효도했는가를 살펴볼 수가 있습니다.

1) 함께 동행했습니다.
이삭이 아버지와 더불어 걸어가면서 본문 6절을 보니 \"아버지와 동행하더니\" 그랬습니다. 여러분, 부모에게 효도한다는 것은 부모님과 함께 있는 것이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입니다. 물질로 봉양하는 것도 좋습니다. 대우를 잘해드리는 것도 좋지만은 그것보다도 중요한 것은 부모님과 함께 있는 것이 그게 효도 중의 효도입니다.

2) 대화하며 동행했습니다.
부모님과 더불어 대화를 많이 나눠드리는 것. 그것이 바로 효도라는 말씀입니다. 오늘날 많은 자녀들이 부모님 모시기를 참 싫어합니다. 부모님이 계시면 거북하고 또 간섭하는 것 같고 불편하고 그래서 부모님 모시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장남은 인기가 없습니다. 왜요? 부모님 모신다고 해서죠. 그래서 부모님을 모실 것인가 안 모실 것인가 그것을 보고 신랑감을 결정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여러분, 그것은 효도가 아닙니다. 특별히 우리 며느리들, 그 며느리도 곧 늙어서 시어머니가 될 때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됩니다. 효도란 무엇인가 하면 부모님과 늘 함께 될 수 있으면 함게 있어드리는 것 그게 바로 효도입니다.


2. 결박당한 효도입니다.

1) 구속을 받아도 효도하는 것입니다.
여기 이삭을 보면 이제 아브라함이 이삭을 꽁꽁 묶었습니다. 꽁꽁 묶어서 제단에 올려놓습니다. 왜요? 이것을 잡아 죽여서 하나님께 제물로 받치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삭은 저항하지 않습니다. 청년이 저항하면 아버지를 넉넉히 이길 수도 있었겠지요. 그러나 저항하지 않습니다. 요즘 같으면 아마 그런 경우를 당했으면 아들이 묶이기는커녕 아버지가 묶일 것입니다. 우리 아버지 미쳤다고, 당신이 하나님 믿는다고 광신자가 되었다고, 아마 어떤 아들은 정당방위라고 해서 아버지를 죽일 수도 있습니다.
이 효도는 어떠한 효도인가 하면 꽁꽁 묶이는 효도입니다. 다시 말해서 구속을 당하는 효도입니다. 구속을 당합니다. 여러분, 부모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에 구속처럼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좀 가만 내버려뒀으면 내 마음대로 하겠는데 구속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 구속처럼 느껴지는 말을 우리가 듣고 따르고 순종하게 될 때에 그 말이 우리의 인격을 성숙시키게 되고 그 말이 하나님의 축복을 가져오게 하고, 그 말이 현실을 잘 타개하고 난관을 승리할 수 있는 지혜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2) 제물로 묶이는 효도입니다.
결박당한 효도라는 것은 무슨 말인가 하면 바로 헌신의 효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왜 결박을 당했습니까? 제단 위에 올려놓고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기 위해서 헌신하기 위해서 그래서 결박을 당한 것 아닙니까. 우리 부모님들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세상에서 돈 잘 벌고 성공하고 그것도 좋지마는 그보다 더 먼저 우리가 하나님을 잘 믿기를 원하십니다. 부모님들이 여러분의 신앙을 위해서 충고를 할 때에도 우리들은 그것을 구속으로 여기지 아니하고 잔소리로 듣지 아니하고 잘 듣고 그것을 받아들이고 수용해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3) 강제적인 것도 참는 효도입니다.
여러분, 결박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하면 이것은 강제적인 것입니다. 자, 결박한다는 것은 이제 재물로 바쳐서 칼로 찔러죽인다는 것과 똑같은데 무엇을 가르칩니까? 그것은 강제성이 있는 것, 죽기 원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삭은 전부 묶여주었습니다.
여러분, 오늘 부모님의 말씀이 때로는 우리에게 강제적인 것처럼 될 때도 있습니다. 좀 자유롭게 했으면 좋겠는데 강제성이 있는 것 같아서 그게 불편하게 느껴지고 내가 나이가 들었는데 그럴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에 자랑스러운 일이 하나 있습니다. 이혼율이 세계에서 제 1,2위를 다툰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혼율이 50%라고 하는 참 창피한 중에 창피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 생기는가 하면 그전처럼 부모님을 모시고 살면 그런 일이 별로 없습니다. 왜요? 부모님이 그들을 타이르고 부모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부모님이 계시기 때문에 어른들 때문에 말하고 싶은 것도 조심하고 성내고 싶은 것도 조심하는 가운데 그 가정이 행복하게 되고 일어날 여러가지 사건들과 비극들이 일어나지 않게 된다는 말입니다.


3. 칼 앞에서 효도입니다.

1) 전적 신뢰, 무저항의 효도입니다.
칼 앞에서 효도라는 말은 이제 아브라함이 결박해놓고 칼을 들어서 아들 이삭을 찔러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삭은 놀랍게도 가만히 있었습니다. 이런 효자가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여러분, 보통 같았으면 자녀들이 가만히 있었겠습니까? 결박 당하고 칼 앞에서도 참고 인내하는 이삭의 모습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2) 인내의 효도입니다.
오늘 우리가 부모님을 섬길 때에 잘 참고 인내해야 됩니다. 말하고 싶어도 참고 이해가 되지 않아도 참고 성이 나도 참고 잘 참고 인내하면서 부모님을 섬겨야 합니다. 왜요? 부모님이 우리를 키울 때 얼마나 수고와 고생을 많이 했습니까. 얼마나 많이 참고 인내했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오늘 우리가 부모님을 섬길 때에 잘 참아야 합니다. 할 말도 참아야 합니다. 이해가 되지 않아도 참아야 합니다.

3) 희생의 효도입니다.
노인들을 여러분들이 관심을 가지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됩니다. 몸에 병이 들면 병원으로 속히 모시고 가야 합니다. 잘 살펴야 됩니다. 왜요? 노인이 되면 참 서러운 것이 많습니다. 우선 늙는 것도 서럽고 몸이 점점 쇠약해지는 것도 서럽고 사람들에게 점점 소외되니 서럽고 서러운 것이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그런고로 잘 위해드리고 위로해 드리고 힘을 줄 수 있는 그런 자녀들이 될 때에 우리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오늘 우리들이 이 세상을 살면서 어느 누구나 늙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내가 지금 젊어도 나도 머지 않아 장래야 곧 늙어버립니다. 성경을 보면 다른 모든 말씀들이 많이 있는 중에도 유독 효도에 대한 부모님을 경외하는 일에 대해서는 축복과 저주가 뚜렷하고 크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축복도 크지마는 저주도 무서운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이제 모두 지난날 부모님께 불효했던 것을 회개하고 이제부터 우리의 부모님들을 잘 섬기고 공경해서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는 복을 받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