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목회자의 리더쉽
목회자의 리더쉽
1. 목회자의 지도력
목회자가 어떠한 유형의 지도력을 전개하느냐 하는 것에 따라서 교인들의 참여도가 결정되
어지기 때문에 목회자의 지도력의 문제는 교회 본질의 문제까지도 확장되어 생각할 수 있
다.전 통적으로 목회자의 지도이론은 다음 네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1) 전통적 지도력 : 이것은 카톨릭 교회에서 볼 수 있는 수직적인 지도력이다. 즉 이 지도
력을 가진 지도자는 조직체의 변화를 꾀하지 아니하고 현상을 유지하
는 것으로써 전통을 지키려고 하며 그의 기능은 유산을 지키는 일과
의식적인 일에 국한된다. 이러한 지도력이 전개되어 질 때 교회는 매너
리즘(Mannerism)에 빠지게 되어 발전하지 못하며 사회의 시대적 요구
에 결코 부응하지 못할 것이다.
2) 카리스마적 지도력 : 이것은 특별한 한 사람이 예언자적 감화력을 가지고 개인적인 호
소를 통해 지도하고 동기를 부여하는 지도력이다. 이 지도력의 주된
기능은 선포,해석 그리고 모든 교인이 선교에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일이다. 오늘날 대교회라고 불리우는 교회들의 목회자들이 대부분 카
리스마적 지도력에 바탕을 둔 사람들이다.
3) 인간관계에 바탕을 둔 지도력 : 이 지도력은 자기를 부각 시키지 아니하고 조직속에서
각 개인이 목표를 성취하도록 하는 것에 중점을 둔 지
도력이다. 이 지도력은 구성원의 요구에 민감하고 간접
적인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지도력이 교회안에 유입되
어질 때 기독교적 인간이해라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이
나 목표달성이라는 측면에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
요로 하는 어려움도 가지고 있다.
4) 체제이론에 입각한 지도력 : 이러한 것은 지도력이라고 보기 보다는 전문적 활동성을
가진 기능인 것이다. 이 지도력은 직책에서 비롯되는 권위
가 아니라 그룹내의 문제를 조정하고 동기를 부여하는 식
의 조직의 활성화 방식을 통하여 조직을 성장시켜 나가는
지도력이다. 이러한 지도력이 오늘날 교회에서 바람직한
지도력이 아닌가 싶다.
이러한 기본에서 본다면 우리 주위에서 볼 수 있는 지도자의 유형을 다음과 같이 구분할
수 있다.
1) 권위주의형 지도자 : 권위주의형 목사는 자신의 권위에 의하여 독단적으로 해결하는 형
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지도형은 어떤 사태를 능동적으로 대처하며
일을 빨리 처리하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일의 결과가 한
사람의 결정에 의하여 이루어지므로 잘못된 결과가 되어지는 경우
가 많다. 또한 많은 사람의 호응을 가지지 못하게 되므로 교회에
대한 무관심을 초래하는 경우가 될 수도 있으며 교인들의 불평 내
지는 반항 집단의 형성도 초래할 수 있을 것이다.
2) 자유방임적인 지도자 : 이것은 모든 것을 교인들의 의사와 능력에 상황을 내어 맡기는
것이다.이것은 교인들이 자율적으로 모든 교회의 사명을 수행하
여 나갈 때는 바람직한 것이 되겠지만 방임으로 흘러 버릴때는
교회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는 어려움을 겪게 된다.
3) 민주주의형 지도자 : 이것은 지도자가 의견을 제시하여 놓고 모든 교인들과 함께 그 의
견을 토의하고 공통적인 노력을 통하여 그 목표를 수행하여 나가
도록 하는 지도자이다.이것이 가장 성서적이고 바람직한 지도자상
이라고 보여진다. 그러나 이러한 것이 어떠한 상황에서도 다 적용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어느 경우에 있어서는 자유방임형의 지도력
이 좋을 수도 있고 어느 경우에 있어서는 민주주의 지도력이 좋지
아니할 때가 있다. 이러한 지도력의 관게를 도표로 보면 다음과 같
다.
위의 도표에서 보여지듯이 앞으로의 지도력은 자연 자유방임쪽으로 스타일을 바꾸어 갈 수
밖에는 없다. 바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그 기능을 다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인 각 교회 구성원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바람직한 것이다. 그러나 어떠한 때에는 목사
가 권위주의형의 목사가 되어야 교회에 이익이 있을 때도 있을 것이며, 어떠한 때에는 목
사가 민주주의적이거나 방임주의적인 때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무엇보다도
바람직한 목사의 지도력은 상황적인 지도자(Contextual Leader)이다.
4) 상황적인 지도자 : 상황적인 지도자란 급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나 완급한 결정을 내려
야 할 때나 교인들의 의사에 끌려 다니지 아니하고 교인들의 의사를
충분히 고려하면서 결정하는 지도력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지도자는
때로는 과감하여야 하고 때로는 완만하여야 하며 타고난 민감성과
창의력을 가져야 한다.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특성들이 훈련
에 의하여 얻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지도자들은 이러한 상
황적 지도력을 가지도록 평소에 훈련하여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오늘날의 지도력에서 또 하나 바람직한 것은 \"공동지도력(Shared ledership)\"
이다. 지도력을 요청하는 모든 직업이 그렇듯이 목회도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고도로 전문화된 기능들이 목사의 기능을 앞선다. 다시 말하면 전문화된 경
영인은 경영이라는 측면에서는 목사보다도 앞선다. 그러므로 교회의 경영 부분에서는 이
전문 경영인의 지원을 받아 교회의 경영을 합리화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바로 목사가 과
감히 다른 사람과 같이 일할 수 있도록 일부분을 포기하는 지도력이 필요한 것이다.이러
한 것을 피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목사의 권위가 상실된다 하는 것을 들 수 있으나 오히
려 이러한 협조를 통하여 자기에게 주어진 임무를 완전하게 수행함으로써 그에게 주어지
는 권위가 훨씬 더 클 것이다.목사의 권위가 다른 사람의 관계성 속에서 상실도 되고 회
복도 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회고할 때 이러한 공동지도력의 개발을 시급히 서두르는
것이 좋을 것이다.
2. 지도자가 겪는 어려움
성경에 쓰여져 있는 지도자들의 배경을 공부할 때 우리는 지도자의 문제점이라는 주제와
관련된 많은 교훈을 배울 수가 있다. 성경에 기록된 지도자들의 간증은 우리에게 좋은 본
보기를 제시해 준다. 예를 들면 모세는 왕궁에서 살면서 애굽의 모든 지혜를 배웠다.그러
나 모세가 애굽에서 장성할 때 얻은 경험이 그의 지도력에 도움을 주었는지는 모르겠다.
이러한 경험들은 크리스챤의 지도력에 있어서는 매우 제한적으로만 사용될 뿐이다.왜냐하
면 거기에는 성령 하나님의 역사가 빠져 있기 때문이다.반면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교역
자들이 매일 당면하고 있는 문제점들에 대해서 가르쳐 주고 있다.따라서 세상에서 가르치
고 있는 심리학 같은 학문을 연구할 때는 성경과 비교해서 우리가 받아 들일 수 있는 것
을 잘 선별해야만 한다.
성경을 통해서 우리는 두 가지의 중요한 사실들을 발견할 수 있다.
1) 성격적인 약점 : 야고보서 5장 17정을 보면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라\"고
고 적혀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많은 실망을 하고 고
통을 당하며 극단적인 여러가지 경험을 가졌던 사람이다.
한편 디모데는 엘리야와는 아주 다른 성격의 소유자였다. 디모데는 매우 예민한 사람
이었다. 그는 수줍음이 많고 조그만 일에 쉽게 당황하는 그런 사람이었다.또한 디모데는
위가 좋지 못해서 소화를 잘 시키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디모데는 대체로 좋은성
격을 가졌던 인물로 평가된다.
모세는 자신이 지도자로서 부족한 인물이라고 느꼈던 사람이었다.모세의 성격적인
약점은 세가지로 나타나고 있다.그는 성을 잘 내는 사람이었고,또한 어떠한 도전을 받
았을 때 회피를 잘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는 일을 적절한 사람들에게 배분하고 경
영하지 못하고 맡겨진 일을 혼자서만 다 감당하려고 한 사람이었다.
반면에 베드로는 리더쉽을 타고난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는 성격이 급한 사람이었다.
성격이 급한 사람은 지도자로서는 많은 위험요소를 가지고 있다.베드로는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가 반드시 배워야 할 것을 배울 수 있게 되었다. 베드로는 자기
가 필요로 했던 좋은 성격을 세속에서 배울 수가 없었던 것이다.
2) 환경으로 인한 어려움 : 성경에 나타난 지도자들의 배경을 볼 때 그들이 살고 있는 환
경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것을 볼 수 있다. 구약의 선지자들과 신약의 사도들은 당
시 세상으로부터 핍박을 많이 받았다.오늘날 우리가 보는 바와 같이 교회의 목회자들도
교회내에서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사도 바울도 그러한 경험을 많이 했다. 성경에 나타
난 지도자들이 배경을 보면 그들의 가정안에서도 많은 문제점이 있었다. 엘리제사장의
예를 들 수 있다.엘리는 하나님의 종이었지만 그의 자녀들은 신앙생활을 못해서 성적으
로 문란한 생활을 했었다.또한 호세아는 창녀가 된 아내가 있었다.
목회자의 가족에 대한 문제는 다른 문제보다도 더 심각하다. 어느 한 목사는 딸이 결혼
하기 전에 임신한 적이 있었다.그래서 그는 딸의 일로 인해 목사직을 사임하게 되었다.
은행에서 중요한 자리에 있는 어떤 교인도 같은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은
행에서 사임하지 않았다.
* 지도자들이 가진 어려움을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사용하시는가?
3. 성경적 지도자론
오늘날 지도자가 된다는 말은 비판받는 사람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가 급격하게 빠
른 속도로 민주화 되어가고 모든 사람의 모든 것이 공개되는 정보시대가 되어 가면서 우리
는 이른바 지도자의 노출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사도 바울은 지도자가 된다는 것은 선한
일을 사모하는 것이라고 말한다(딤전 3:1). 새로운 영어 성경인 NEW ENGLISH BIBLE은
이 구절을 \"지도자됨을 열망하는 것은 명예로운 야망이다(To aspire to leadership is an
honourable ambition)\"라고 옮기고 있다.
필자는 \'영적 지도력(spiritual leadership)\'과 \'세속적 지도력(secular leadership)\'의 이원
적 구분을 본질적으로 거부한다.우리가 지도력을 행사하는 영역에 따라 지도력의 영성
(spiritual)이 결정된다고 보지 않는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가진 목사라는 신분이
곧 우리의 영적 지도자됨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오히려 우리가 우리의 지도력을 행
사하는 동기와 태도가 지도력의 영성을 드러낸다고 본다. 그렇다면 우리가 \'영적 지도자\'임
을 자긍하기에 앞서 우리가 소위 \"영적 지도자됨\"을 인식하는 근거가 무엇임을 먼저 물어
야만 한다. 참으로 하나님의 영광 \"때문에\"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역의 자리
에 설 때 비로소 우리의 지도력의 영성을 말할 수가 있다고 믿는다. 지나간 구약시대의 지
도자 느헤미야는 설교자도 전도자도 아니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영적 지도력을 말
할 때 그를 천거하지 않을 수가 없다.그는 한 시대를 살아간 분명한 역사적 인물이면서도
그의 모본(example)은 실로 시대를 초월한다. 그의 투명하고 견고한 그림자에서 우리는 참
된 영적 지도력을 만난다. 그리고 그가 살아 있는 몸으로 시연(시연)한 역사의 무대 위에서
우리는 성경적 지도자론의 정체를 벗겨 보기로 한다.
1) 기도의 사람
이 말은 단순히 그가 기도를 하는데 많은 시간을 바친 사람이라는 뜻이 아니다.물론 그는
기도를 많이 했으리라고 믿는다.그러나 그가 기도의 사람이었다는 말은 그보다 더 근본적
인 의미를 지닌다. 기도는 \"바라봄\"이다. 진실로 느헤미야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세상을
바라본 사람이었고 하나님의 자리에서 그 세상에 대한 해답을 바라보고 있었던 사람이었
다. 우리가 표리적으로 기도하는 성자(성자)를 생각할 때 우리는 무엇보다 눈을 감고,귀를
닫고,산에 엎드린 고행의 수사(수사)를 연상하게 된다. 그러나 느혜미야의 기도의 출발점은
그가 아침에 읽은 조간신문의 뉴스였다. 그는 그의 사랑하는 조국 예루살렘의 형편을 소식
으로 \"듣고\" 훼파된 에루살렘의 참상을 \"보고\" 기도를 시작한다(느1:2-4).그는 닫힌 귀가 아
닌 열린 귀의 소유자였고,닫힌 눈이 아닌 열린 눈의 소유자였다. 우리는 흔히 기도할 때 \"
이 세상 일을 다 잊어 버리게 하옵시고...\"라고 말한다. 그것은 기도가 아니라 도피의 주문
에 불과하다. 역사의 현장을 떠난 곳에 기도는 설 자리가 없다. 그러므로 기도는 곧 역사의
식(력사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처한 역사에 대한 올바른 상황인식은 우리로 하여
금 책임의 자리에 서게 한다. 여기서부터 기도는 출발한다. 기도의 사람은 우리가 처해 있
는 \'그 현실에 응답하는 사람들(people responding to reality)\'이다.느헤미야의 기도의 눈물
은 역사적 현실에 대한 \'지각(지각)의 눈믈\'이었던 것이다. 그는 자기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기도하며 \"나와 나의 아비 집이 범죄하여...\"라고 자복한다(느1:6).존 화이트는 이것
이 느헤미야의 \"공동체적 책임감각(a sense of corporate responsibility)\"이며 우리가 기도
할 때에 반드시 터득해야 할 \"동일시의 원리(the identification principle)\"라고 일컫는다
(John White,Excellence In Leadership,p.23).
왜 기도하는 사람이 지도자가 될 수 있는가? 자기의 책임을 알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십자가를 바라보자. 예수님의 십자가가 우리의 허물과 죄를 담당하심이라고 얼마나 우리는
자주 고백하여 왓는가. 그는 친히 우리의 책임을 자기의 책임으로 떠맡으셨다. 그래서 우리
의 주님이 우리의 지도자가 되신 것이 아닌가? 그의 십자가는 인류가 경험한 가장 처절하
게 벌거벗은 \"기도의 자리\"였다. 그는 기도의 사람이었기에 십자가의 사람일 수 있었다. 아
니 십자가을 짊어진 사람이기에 진실로 기도의 사람일 수 있었다. 오늘 이 시대의 목회자
들인 우리는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사람인가? 우리의 머리에 씌워져 있는 것은 가시 면류관
인가? 황금의 면류관인가?
2) 사람을 움직일 줄 아는 사람
사람을 움직일 수 없었던 이를 지도자라고 부른 일은 없었다. 지도자(leadr)라는 단어 자체
가 \'인도한다\'(lead)는 뜻이 아닌가? 그러면 지도자는 마땅히 사람을 리드해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어떻게 움직이는냐?\"이다. 단순히 \"내가\",\"내 뜻대로\" 회중을 움직이고자 할 때 이
는 종종 인간에 대한 조작(manipulation)이나 이용일 수 있다. 다시 중요한 것은 지도자의
지도동기(motives)와 결과(results)라 할 수 있다. 제임스 번스(James M. Burns)는 지도자
를 두가지 형태로 나눈다. 하나는 \"교환형의 지도자(the transacting leader)\"요, 다른 하나
는 \"감동형의 지도자(the transforming leader)\"라고 말한다. 교환형의 지도자는 서로 서로
\'주고\' \'받는\'지도자이다. 그는 가치를 흥정하고 교환하는 자이다. 원색적으로 말하자면 \'이
용하는 관계\' 즉 무엇인가를 위해 무엇인가를 주고 받는 관계라 할 수 있다. 오늘날 대부
분의 지도자와 피지도자의 관계가 이런 유형이라면 지나친 진단일까? 번스는 바람직한 새
시대의 지도자상으로 \"감동형의 지도자\"를 천거한다. 이 감동형의 지도자는 피지도자의 필
요를 공급하여 그를 감동시켜 따라오게 함으로 피지도자와 지도자를 궁극적으로 함께 유익
하게 하는 지도자이다. 그가 먼저 앞세울 관심은 자신의 필요이기보다 피지도자의 필요이
어야 한다. 피지도자의 필요가 지도자의 최고선(최고선)으로 존재하는 \'지도력의 스타일
(leadership style)\'을 의미한다. \"교환형의 지도자\"는 대부분 공동체를 유지(maintain)하는
자이나,\"감동형의 지도자\"는 공동체를 자라게(build)한다. 느헤미야의 최고 최대관심은 \'지
도자가 되는 일\'이 아니었다. 그의 궁극적 관심은 이스라엘 백성의 보금자리인 예루살렘성
의 중건(중건)이었던 것이다.그는 이것이 주 앞에 순수하고 투명한 목적일진대 하나님이 그
일을 축복하실 것을 믿었다.그리하여 그는 주께서 주께서 친히 그 일에 관계된 사람들을
주님 자신이 움직여 주십사고 기도했다. 그는 자신이 사람을 움직이기 보다 하나님으로 하
여금 사람을 음직이게 하신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백성들이 \"일어나 건축하자 하고 모두
힘을 내어 이 선한 일을 하고자 함\"(느2:18)을 볼 수 있었다. 이 얼마나 바람직한 지도자상
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