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의 상

지도자상

주님의시선 카페를 통하여 주님과 말씀과 기도로 깊은 교제생활이 이루어 지기를 소망합니다.

서론

 

우리는 성경을 볼 때 여러 가지 측면에서 볼 수 있습니다.

예언적인 측면에서 볼 수 있고, 예수의 이름의 측면에서도 볼 수 있고, 구원론적인

면에서도 볼 수 있고, 또는 율법적인 면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만 지금은 우리 모두가

교회의 지도자들이기 때문에 지도자의 입장에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성경에 보면 주님께서 지도자(제자)들을 위해서 하신 깊은 말씀들이 많이 들어 있

습니다. 왜냐하면 지도자는 우리 주님이 직접 택하셔서 그 분이 하시고자 하는 일을

위하여 특별한 사람들을 골라서 쓰셨기 때문에 지도자들의 사고 방식과 그분들의 생활

방식이 상당히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마태복음과 사도행전을 보면서 우리 예수님께서 어떻게 지도자들을 훈

련시키셨으며, 지도자들을 어떤 관점에서 보셨으며, 또 지도자들이 어떻게 반응했는지

알아보고자 합니다. 그러면서 우리 자신을 한번들여다보고, 또 2천년대를 향한 한국교

회를 들여다보도록 하겠습니다.

 

1.구약시대의 지도자

 

성경에 보면 우선 하나님이 택하신 지도자는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해서 모세, 다

윗으로 연결되는데 하나님은 꼭 지도자를 통해서만 역사하셨습니다. 그중에서도 하나

님은 특히 모세의 리더십에 상당히 많은 기대를 하셨는데 모세는 민중을 끌고가는 힘

은 있었지만 교육하는 지도자로서는 좀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출애굽에서 광야 생활까지만의 지도자였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자기 밑의 사

람인 여호수아와 갈렙을 잘 훈련시켜서 여호수아가 가나안으로까지의 지도자가 되도록

했습니다.

요즈음의 경영학에서도 자기 밑의 사람을 자기보다 더 훌륭하게 교육시키는 것이

진짜 지도자라고 합니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모세는 대단한 사람입니다. 마음이 넓

은 사람이고 복음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를 보면 모세가 갖고 있던 훈련 부분에 비해 좀 약했습니다. 그는

자기 밑의 사람들을 훈련시키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가 죽은 후 이스라엘 민

족은 하나님을 잊어버렸는데, 그 이유는 대를 이어 민족을 이끌어 나갈 지도자를 훈련

시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사시대가 오면서 이스라엘 민족들이 어려움을 당

한 것입니다. 사사기에 보면 여호수아가 죽은 후 이스라엘 민족들이 하나님을 다 잊어

버렸다는 말이 나옵니다(삿2:10). 그 말은 지도자가 연결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큰 교회나 중간 교회를 갖고 있을지라도 자기

밑의 지도자들을 키우지 않고 자기 왕국(교회)만 크게 하다 보면 우리나라 교회는 앞

으로 10년, 20년 이상 못버팁니다. 그것이 우리나라만의일이 아니라 기독교 역사를 공

부해 보면 그렇게 되어 왔습니다.

성경에 나와 있는 지도자들을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모세, 다윗, 솔로몬, 12제자,

바울 등 그분들 하나하나를 살펴보면 그들마다 리더십의 특징이 다 다릅니다. 또한 우

리 주님은 다른 것을 원하셨습니다. 꼭 누구를 닮아갈 필요는 없습니다. 자신의 모습

그대로 정성을 다하여 원칙만 지키면 됩니다.

누가복음에 보면 주님이 갈릴리 지방 자기 고향 나사렛에 가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내 백성을 구하려 왔다\"라는 그 분의 의지가 이름 속에 서려 있다고 말씀했습니다(눅

4:12~19).

 

2.마태복음에 나타난 지도자의 자질

 

마태복음 4장을 보면 주님이 사역을 시작하려고 할 때 완전한 인간이시고, 완전한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마귀가 덤벼들기 시작한 사건이 나옵니다. 우리가 아무리 성령

충만하고 주의 영이 나와 함께 있어도 내가 하나님의 일을 조금 크게 하려고 하면 꼭

마귀가 덤빕니다. 그런데 덤비는 내용이 아주 특수합니다. 영광을 위해서, 출세를 위

해서, 물질적인 유혹을 위하여 아주 인간적인 면을 가지고 덤빕니다.

주님이 마귀의 세력과 싸워 이기신 후 제자를 뽑는 장면이 나오는데, 다른 데 보면

정말 기도를 많이 하시고 뽑으셨습니다. 뽑으신 후 제자들한테 금방 유대인을 상대로

전도를 안 시키고 이방인들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기 시작하십니다.

지금 주님과 제자 사이는 금방 아이를 낳은 산모와 신생아 같은 사이입니다. 관계

성에서 볼 때 아직 유년기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께서는 리더십과의 관

계로 볼 때, 미숙한 제자 12명을 그 분의 이름 속에 들어 있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서 제자들을 훈련시켜, 자기의 파트너로 만들어서 땅끝까지 증인이 되는 수준까지 끌

어올리려고 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주님은 제자들을 사도행전 1장 8절의 말씀대로 주

님의 뒤를 이으려면 얼마 동안,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훈련을 시킬까 하고 연구를 하

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선 12명의 제자들에게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

들이고 또한 그들의 선생님이 누구인지 전혀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냥 성령에 이끌

려서 따라만 다니는 사람일 뿐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런 사람들을 사도행전 1장 8절

의 말씀대로 끌고 올라가려면 약 3년의 기간이 걸리겠다고 생각하셨습니다.

요새 경영학에서도 신입 사원이 한 회사의 직원이 되는 데는 적어도 3년이 걸린다

고 합니다. 그 다음에 인원수인데 인원수도 많이 뽑으면 좋을 것 같지만 서로가 서로

를 배우는 데 있어서 최대로 배울 수 있는 숫자는 12명이라고 합니다. 현대의 경영학

자들이 그렇게 얘기합니다.

마태복음 5장을 보면 그 유명한 8복이 나오는데 주님은 미래의 지도자가 될 제자들

에게 8복 강해라는 영적인 말씀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들이 아무리 미래의 영적 지도

자들일지라도 금방 태어난 어린아이들인데 알아듣겠습니까? 그래서 8복 강해를 통해서

비록 알아듣긴 힘들지만 체하지 않도록 미리 결론을 내려 주십니다.

8복 강해는 사도행전 1장 8절의 말씀인 \"너희들이 성령을 받으면 나의 증인이 될텐

데 내 증인이 되려면 너희들이 먼저 성령이 충만해야 한다. 성령이 충만하려면 은사를

받아야 되는데 은사는 은사로써 끝나는 것이 아니고 너희들이 거기서 열매를 맺어야

된다.\"고 하는 말씀의 결론입니다. 다시 말하면 제자들이 먼저 인간적인 면에서 인격

완성이 되어야지만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8복을 보시면 알겠지만 거의가 성령의 열매(갈5:22)에 대한 말씀입니다. 미래의 지

도자가 될 사람들은 이 열매가 정확하게 맺혀 있어야 합니다. 첫번째, 심령이 가난한

자는 누구입니까? 욕심이 없는 자입니다. 애통하는 자는 누구입니까?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마음의 정열이 있는 자입니다. 온유한 자란 훈련이 잘됐다는 말인데 제멋대로 노

는 사람이 아니라 훈련이 잘된 사람을 말합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주님을 무

지무지 갈망하여 주님 아니면 못산다고 하는 사람이고, 긍휼히 여기는 자는 다른 사람

을 보면 영적으로나 육적으로나 항상 정이 있는 사람입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어디에

가서든지 다른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것을 말합니다. 육적으로 싸움하는데 그

사람이 들어가면 싸움이 그치고, 영적으로는 하나님과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연결 시

켜 주는 전도, 증인의 역할을 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지도자의 자질을 갖춘

사람들입니다.

13절 이하는 리더십을 구체화시킵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즉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니다. 소금은 죽는 것이며 빛은 강한 힘을 발

합니다. 다시 말해서 지도자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서 5장 마지막은 전부가 율법에 관련된 얘기입니다. 주님이 제자들에게 율법

에 관한 얘기를 하시는데 이것을 그들이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지도자들한테 일반적인

아이디어를 주시는 내용입니다. 제자들보고 구약에 나오는 율법대로 살지 말고 용서

안에서 살고, 은혜 안에서 살라는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가 온전하신 것같

이 너희도 온전하라는 것입니다. 서로 용서하며 은혜안에 살면서 다른 사람들을 정죄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제자들이 잘나서 뽑은 게 아니라는것입니다. 마음에 복음의 정

열을 가지고 서로서로 이해하고 도와주며, 아주 넓은 마음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율법

안에서 꼬집는 쪽집게 놀이하지 말고 사랑으로 감싸주라고 하십니다 이러한 것들이 리

더십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4복음서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군중이 많지만 주님이 군중들을 향하여 설

교하실 때 제자들은 항상 옆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듣는 사람들은 제자들이었

습니다. 우리 주님은 군중들에게 얘기하는 게 아니라 제자들을 훈련시키기 위해 3년

동안 군중들을 엑스트라로 사용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제자들을 미래의 지도자로 만들

기 위해 서였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인격체이시기 때문에 제자들이 잘못했을 때 직접 야단치시지 않고

항상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군중들한테 말씀하셨지만 제자들은 바로 옆에서 듣고만

있었습니다. 우리 주님은 사람을 건드리지 않으십니다. 특히 자기 일꾼들을 건드리지

않습니다. 그냥 살살 달래시면서 일을 하십니다. 우리도 그것이 참 필요합니다.

6장,7장은 계속 율법 안에서 살지 말고 용서 안에서 살라는 말씀으로 이어지고 있

습니다. 그러다가 7장 15절부터는 거짓 선지자들을 구별하는 방법에 대해 말씀하십니

다. 거짓 선지자는 열매를 보면 알 수 있는데 좋은 열매는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입

니다. 그분이 정확한 지도자냐 아니냐는 아버지의 뜻대로 사는 자이냐에 따라서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아버지의 뜻은 무엇입니까? 아버지의 뜻은 나가서 예수의 증인이

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의 증인이 되기 위해서는 성령의 열매가 맺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볼 때 \'저 사람은 아버지의 뜻대로 사는 사람이다.\'라는 것을 알 수 있어야 됩

니다. 성령의 열매가 안 맺혀 있다면 잘못하다간 마귀가 하는 행위와 꼭같습니다. 그

렇게 되면 다른 사람들이 보고 혼돈을 합니다.

나에게 성령의 9가지 열매가 없는 가운데 복음을 전하면 마귀가 들어가서 역사합니

다. 그러니 받는 사람들이 잘못하면 혼돈해 버립니다. 복음의 색깔은 변하므로 조심해

야 합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에 지은 지혜로운

자와 같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지혜로운 사람은 아버지의 뜻을 아는 자입니다.

8장에서도 보면 위와 같은 말씀을 하실 때 군중들을 향하여 하셨지만 실상은 제자

훈련을 시키는 것입니다. 이럴 때 군중들은 예수에 관한 인상을 말합니다. \'이는 가르

치는 것이 권세있는 자와 같다.\' 제자들도 분위기를 보면 저분이 \'권세있는 자답다.\'

라는 인상까지는 받았지만 이분이 누구인지 아무것도 모르고 따라다니는데 가끔 가다

군중들이 하는 얘기가 \'이분이 누구같다.\' 즉 \'권세있는 자같다.\'라고 하면 주님이 그

것을 받아서 \"옳다, 너희들이 말 잘했다.\"하시면서 작전을 바꾸십니다. 제자들로 하여

금 예수가 누군란 것을 다른 각도로 알려주기 위해서 병자를 고치기 시작하십니다.

8장에 보면 처음에 문둥병 환자부터 고치십니다. 그러니까 제자들이 깜짝 놀랍니

다. 주님은 제자들이 가지고 있는 예수에 대한 사고방식을 하나하나 고쳐 주기 시작하

십니다. 예수가 누구라는 것을, 이것은 하루 아침에 안 되고 3년이나 걸린다고 생각하

셨습니다. 우리가 제자 훈련을 시켜 봐도 마찬가지입니다. 1,2년 갖고는 안 됩니다.

다음에 5절부터 보면 가버나움에 백부장이 나타납니다. 백부장은 이방인이었습니

다. 제자들은 유태인이기 때문에 주님은 \'유태인에게만 관심이 있을 것이다.\'고 생각

했지만 주님은 이방인에게도 관심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시기 위해서 백부장의 하인을

고쳐 주십니다. 백부장과 만나 이야기하면서도 그 백부장의 믿음을 보시고 이만한 믿

음은 이스라엘 사람 중에서도 만나보지 못했다. 이스라엘 사람보다도 이방인이 더 낫

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주님은 제자들의 사고방식을 고쳐 주셨습니다.

14절에는 주님이 베드로의 장모를 고쳐주시는 장면이 나오고, 23절에는 자연을 정

복하는 장면이 나오고, 28절에는 귀신들린 자를 쫓아버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29절에 보면 제자들이 주님이 행하신 이적을 보고 정신이 혼미해져 있는데

귀신이 예수님더러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군요.\"라고 말합니다. 주님은 일부러 귀신

이 말하는 것을 허용하셨스비낟. 그러나 옆에서 들은 제자들은 전혀 그런 생각을 한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귀신이 한 말은 \"아마 저게 미쳐서 그랬겠지.\"하고 한쪽 귀로 흘

려버렸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을 따라다니기만 했지, 전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는 생각

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9장에 보면 주님은 \"이제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걸 너희도 들었지?\"하

시고는 중풍병자에게 \"네 죄가 사함받았다.\"라는 엄청난 말씀을 하십니다. 조금 영적

인 단계를 올린 것입니다. 그랬더니 제자들도 놀랬지만 거기 있던 이스라엘 서기관들

은 참람(僭濫)하다고 하며 덤벼듭니다. 어찌 이럴 수 있느냐며 제자들도 말은 안하지

만 가만히 듣고만 있었습니다.

한번 그 당시를 생각해 보십시오. 제자들이 어떻게 생각했다는 말은 전혀 안 나옵

니다. 그냥 따라만 다니는데 너무도 놀라서 말도 못했다고 합니다. 8절에 보면 무리가

보고 두려워했다고 했습니다. 또한 9절부터는 제자를 데리고 악명높은 세리 마태의 집

에 가서 마태를 제자롤 만드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것은 \"너희들이 율법 안에 있으면

마태 같은 사람은 날 따라다닐 수 없지만 용서 안에 있기 때문에 따라다닐 수 있는 것

이다.\"하며 마태복음 6,7장에서도 제자들을 향한 훈년이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다가 18절에 들어가면 한 단계 더 높여서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과거에는 감기든 베드로의 장모를 고쳤고, 자연도 정복해 보시고, 귀신도

쫓아내고 하시다가 제자들이 그래도 깨닫지 못하니까 죽은 사람을 살리십니다. 27절부

터는 소경 된 자의 눈을 뜨게 합니다. 그러니까 31절에 그 소문이 온 땅에 퍼져버렸다

고 했습니다. 여기서 제자들의 1차 훈련기간이 끝납니다.

훈련이 끝나고 난 후에야 제자들을 내보내셨습니다. 처음에는 이방인한테 보냈다가

다시 훈련시켜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또 훈련시켜서 이방인들한테 보내는 장면이 10장

에 나옵니다.

제자들이 다녀온 후 주님 하시는 말씀이 다음과 같지 않습니까? \"내가 너희한테 화

평을 주려고 온 줄 아느냐. 너희들은 추수꾼이고 영적인 싸움을 하는 게릴라 요원이기

때문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아야 한다. 너희는 이제 완전히 자기 삼을 희생하

고 나를 좇아야 된다.\"라는 훈련 각서를 그들한테 주십니다. 이제 너희는 나의 증인이

되기 때문에 저희들을 영접하면 나를 영접하는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훈련을 계속 시키는데 11장을 보면 옥에 같혀 있던 요한이 12제자가 훈련받

는다는 소식을 듣고 자기의 제자를 불러서 \"예수가 도대체 누구냐? 이사야 40장에 나

오는 그분이 맞느냐?\"고 묻는 장면이 나옵니다.

12장을 보면 주님께서 제자들한테 율법을 말씀하시면서 \"안식일의 주인이 나다.\"라

고 하십니다. 그리고는 손마른 사람의 손을 고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보여주는 게

아니라 안식일에 직접 일을 하셔서 안식일의 주인임을 보여주셨습니다.

16절에 보면 \"자기를 나타내지 마라.\"경계하셨는데 아직까지 3년 기간이 안 되었기

때문에 말하지 말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13장부터 다시 훈련시키는 장면이 나오는데 주님께서 제자들을 보니 그들의 생각이

여러 가지입니다. 어떤 사람은 집안 걱정하고, 어떤 사람은 자기들끼리 싸우고 보통

복잡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주님이 비유로 무리들을 향하여 얘기를 해도 제자들이

바로 옆에 있기 때문에 제자들 보고 들으라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씨뿌리는 자의 비유

인데 어떤 사람은 마음이 길가에 있고, 어떤 사람은 돌밭에 있고, 어떤 사람은 가시떨

기에 있는데 좋은 땅에 있어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제자들의 마음이 지금 이렇

다는 것을 비유로 보여 주신 것입니다.

23절에 보면 좋은 땅에 뿌렸다는 것은 결실이 30,60,100배가 되는 것으로 리더십에

대해 훈련 받은 대로 하기만 하면 나중의 세계 선교의 열매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24절부터 더 구체적으로 말씀하시는데 복음은 농사짓는 것과 같다고 하십니

다.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

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이요, 가라지를 심는 이는 마귀라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나가서 일을 하다보면 마귀의 시험도 있고 여러 가지 일들을 다 겪을텐데

그걸 준비하려면 복음이 농사와 관계된다는 비유의 말씀으로 가르치면서 겨자씨와 누

룩의 얘기를 하십니다.

복음은 겨자씨나 누룩처럼 퍼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초장기의 씨뿌

리는 단계라 복음 전파가 무척 힘들지만 조금만 있으면 겨자씨가 누룩처럼 퍼지게 되

니까 참고 예수만 따르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시면서 감춘 보배 같은 천국에 대하여

말씀하시고 복음의 핵심을 알고 나면 제자들의 사고방식이 바뀌어진다는 것을 말씀하

십니다. 이렇게 훈련시키는 데 1년 반 정도의 기간이 걸렸습니다.

16장 중간에 보면 주님이 제자들을 데리고 가이사랴 빌립보로 올라 가십니다. 12제

자만 데리고 가십니다. 그곳에서 주민은 12명을 않혀놓고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생각

하느냐고 물어보십니다. 그랬더니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선지

자 중의 하나라고 대답합니다. 이 말은 그들도 그러게 생각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물어보시는데 하나님이 베드로의 입을 사용해서 주

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대답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쓰시려

고 하는 피조물의 입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한 것은 베드로가 처음입니다. 하

나님이 일부러 피조물의 입을 통해서 11제자가 듣게끔 하신 것입니다.

그랬더니 우리 주님이 너무나 기분좋아서 베드로를 축복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20절에는 자기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말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아직

제자들을 충분히 훈련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21절은 마태복음의 분수령이 되는데 이때부터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

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과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가르치십니다. 제자들은 주님이 그리스도라고 한 베드로를 축복하시다가

또 돌아가신다고 하니까 정신을 못 차립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죽지 마옵소서.\"하니

까 \"사탄아 물러가라.\"그러지 않습니까?

주님은 제자들을 한 단계 올려보려고 생각해보니 12명의 개성이 다다릅니다.성격이

다르고 지도자로서의 자질도 다릅니다. 그래서 성격이 다른 제자들을 어떻게 쓰셔야할

지 고민하십니다. 그래서 그중에서 제일 나은 베드로, 요한, 야고보를 뽑아서 한 단계

앞선 훈련인 천국을 보여주십니다. 그러자 다른 제자들이 시샘을 합니다. 목사님들간

의 인간 관계가 복잡하듯이 제자들끼리의 인간 관계도 아주 복잡합니다. 큰 교회의 사

람일수록 목이 곧아집니다. 그걸 꺾어야 된는데 안 꺾고 점점 곧아지다 봄년 나중에는

뒤로 넘어집니다.

여기 보면 똑같습니다. 베드로가 그중 세 사람들 중에서도 최고입니다. 주님이 중

요한 것은 베드로한테 물어보셨습니다. 그러니까 제자들이 보기에 주님은 몇몇에만

관심이 있고 나머지한테는 별 관심이 없다고 본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들 안에서 일

어나는 갈등을 다 알고 계시지만 아무 말도 안 하십니다. 그냥 내버려두십니다. 그랬

더니 자기들끼리 시비가 붙었습니다.

18장에 보면 제자들이 주님께 물어봅니다. \"천국에선 누가 제일 큽니까?\"그랬더니

주님은 평소에 그들이 생각하던 리더십과는 정반대의 말씀을 하십니다. \"크리스찬 지

도자는 세상에서 지도자 관념을 가지면 안 된다. 앞으로 세상에 나가서 크리스찬 지

도자가 될 사람들은 이 땅의 사람들과 똑같아서는 안 된다. 적은 자가 봉사하는 것이

고 밑에 있는 자가 지도자를 하는 것이다.\"고 하시며 리더십의 자질을 말씀합니다. 제

자들은 이런 사고방식을 갖지않으면 사도행전 1장 8절의 주님이 나중에 주실 비밀의

말씀을 제자들이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리더십의 자질에 대해 이때부터 철저하게 훈련시키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아직까지 잘 모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자세한 비유를 들어 주십니다.

6절에 보면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

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라고 하셨습니다. 만약

지도자들이 자기보다 조금 낮은 사람이 있다고 해서 깔보고 목이 곧아서 그 사람을 우

습게 알면 나중에 하늘에 올라가서 다 두드려맞는다는 것입니다. 나 때문에 저 사람

이 마음 아파 했고, 내가 너무너무 잘되니까 밑의 사람들이 샘나서 마음 아파한 것도

남을 실족게 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을 왜 샘나게 만들어 놓습니까? 지도자들은 나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샘나게 해선 안 됩니다. 겸손해져야 합니다. 이런 것은 세상 사

람들의 리더십 스타일입니다.

8절을 보면 \"만일 네 손이나 네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이건 보통

중요한 말씀이 아닙니다. 나의 중요한 곳까지 잘라버린면서까지도 이것을 지켜야 된다

는겁니다. 만약에 교회 건물이 크다는 것을 가지고 남을 아프게 하거나 밑의 사람에게

교만하게 하면 교회를 떠나든지 아니면 조그만 교회 하는 게 오히려 낫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사고방식은 세상 사람과 달라야 합니다.

12절에 보면 잃어버린 소자를 얘기하기 위해서 양을 비유하십니다. 우리는 다 99마

리의 양입니다. 사랑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그중의 어떤 사람이 조그만 교회에서 아주

고생하고 있지만 아무도 그 사람에 대해서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에

관심이 있는 베드로에게 우리 주님은 적나라하게 말씀하십니다. 그것 때문에 그들을

지도자로 세우시는 것이 아닙니다. 리더십의 사고방식을 바꾸라는 것입니다. 세속적인

사고방식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그것으로도 부족하시니까 15절부터 실족에 관한 예화를 또 듭니다. 형제 중 한 사

람이 실족했을 때는 인격적으로 우선 그 사람과 얘기합니다. 다음에는 두세 사람에게

하고 다음엔 전교회에 말하고, 그래도 말을 듣지 않으면 이방인과 세리처럼 여기는데

그것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그 사람을 용서해 주고 사랑해 주고 껴안아 주어야 하

는것입니다. 그 적은 자를, 마음 아파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해 주고 사랑해 주라는 것

입니다. 용서를 끝없이 해주는데 용서를 받을 만한 약한 자에게는 지도자들이 그만큼

더 돌보아 주어야 합니다. 작은 교회 하는 목사들이 마음 아파하고 마음 답답해 하고

큰 교회 하는 분들을 보면 마냥 부러워할 때 그 사람들을 위로해 주어야 합니다. 위로

는 커녕 무시해 버리면 안 됩니다. 같은 하나님 나라의 건설을 위하여 일하는 동역자

들인데 결코 계급사회가 아닙니다.

베드로가 이 말을 듣고 자기 사고방식과 주님의 사고방식이 너무나 반대라서 약간

불평조롤 말합니다. \"주님, 몇 번 용서해야 됩니까? 7번 까지 해야 됩니까?\"하니 주님

이 베드로의 마음을 아시고는 \"아직 멀었구나. 70번씩 7번이라도 하라.\"고 하십니다.

그래도 못알아들으니 또 비유를 하십니다.

나중에 베드로가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가 되었을 때도 리더십의 개성이 상당히

권위적이고 강하고 생각이 좁고 자기밖에 모릅니다. 주님이 돌아가신 후 약 30년 동안

복음 사역할 때도 자기 성격이 남아 있어서 무척 고생을 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

를 보면 지도자들한테 자기의 경험을 얘기하면서 어떻게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는지를

쓴 것이 5장인데, 거기에 보면 맡기운 자들에게 권위주의로 하지 말고 오직 양무리의

본이 되어 지도자의 삶을 보여주라고 했습니다. 초창기에는 이런 말을 안 했습니다.

알다시피 주님한테 덤벼들곤 했습니다. 그러나 30년 사역 후 두드려맞고 배운 것입니

다.

재미있는 것은 12명의 제자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갈등이 있었습니다. 우리도 우리

끼리 내적인 갈등이 있는 것하고 똑같습니다. 그런 문제는 다 있는데 그걸 어떻게 해

결하느냐가 문제입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의 문제를 알기 때문에 요한복음 13장을 보

면 자기가 돌아가시기 하루 전날 만찬회를 하시면서 무척 괴로워하셨습니다. 주님이

보실 때 제자들 훈련은 다 시켰는데 아직까지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습니다. 자기

들끼리 갈등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놓고 올라갈 수가 없어서 새 계명을 주셨습

니다. \"너희들은 나의 증인이 될 지도자들인데 너희끼리 갈등이 있으면 어떻게 하느

냐. 너희가 삐딱하면 사탄이 들어와 너희들 사이를 이간질시킬텐데 그러면 너희는 증

인 역할 할 기회가 없어진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주노니 너희들은 서로 사랑하

라. 그렇지 않으면 내게 걱정거리가 생긴다. 너희들이 사랑해서 하나가 되었을 때 다

른 사람들이 보고 과연 너희들이 나의 제자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단다.\"하시면서 심

각한 리더십의 자질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그리고는 마태복음 28장에 가서 소위 말

하는 주님의 지상 명령을 내리시면서 제자들한테 맡기신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마태

복음은 끝이 납니다. 그런데 이 마태복음은 사도행전과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3.사도행전의 지도자

 

(1)베드로

사도행전은 예수를 안 사람들이 성령 세례를 받은 후 예수의 증인이 되라는 말씀인

데 그분들이 증인이 되는 과정을 보면 성령 충만을 받아서 완전히 새 사람이 됩니다.

2장에 보면 주님의 수제자 되는 베드로가 성령을 충만히 받고는 완전히 변화된 사

람이 되어 설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베드로가 몇천 명 앞에서 설교하는 것을 보고

\"저들이 술먹었구나, 저들이 이상하다.\"고 조롱하는데 설교 내용을 들으니 더욱 기가

막힙니다.

베드로는 성경을 모르는 사람인데 올라서서 하는 소리가 \'우리는 술취한 게 아니

다. 유대인들이여\'하면서 요엘서 2장 28절 이하, 시편16편을 인용합니다. \"시편 16편

8절의 그 말씀이 누군지 아느냐. 그분이 예수라는 분이시다.\" 그러면서 \"저쪽에 다윗

무덤이 있지. 다윗 무덤은 너희들이 해마다 제사지내러 가지 않느냐. 50일 전에는 거

기에 예수라는 분이 계셨다. 50일 전에 예수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는 건 이 조

그만 동네인 예루살렘에선 다 아는 얘기가 아니냐. 그 사람 지금 어디 있느냐? 너희들

이 듣고 다니는 시편 16편 말씀인 저 무덤을 두고 얘기하는 것이다. 다윗의 뼈가 아직

거기 있지 않느냐.\"베드로가 논리적으로 설교를 하니 이 사람들의 마음이 찔려 너희가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는 말에 3

천명이 그 자리에서 회개했습니다. 그리고는 떡을 떼고 예배드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3천명의 남자만 회개했다고 가정하면 하루아침에 교인이 5,6천명이 모이는 교회의 지

도자가 되는 것입니다.

3장의 내용은 조그만 마을에 예루살렘 성전이 있고 인구도 많지 않으니까 베드로와

요한의 이름이 온 동네에 퍼졌습니다. 그분들에게 능력이 있는 줄 아는 동네 사람들은

그냥 와서 병을 고쳐달라고 했을 때 손만 대기만 하면 병이 낫고 기적이 일어났습니

다.

4장에는 병고친 얘기, 표적이 일어난 얘기가 계속 나오고 은혜받은 바나바가 등장

하며 5장에는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사건을 통해 더욱 힘있는 지도자가 된 베드로의 얘

기가 나옵니다. 당시 베드로는 보통 힘이 있는 지도자가 아니었기 대문에 이분 지나가

는 곳의 그림자만 밟아도 나을 것 같다면 그림자만 따라다니는 사람도 있을 정도였습

니다. 이런 상태의 예루살렘 교회는, 우리나라 교회하고 비슷한 면이 많이 있습니다.

이제 교인이 많아지다 보니 여러 가지 파도 많이 생겼습니다. 헬라인,유대인,이방

인이 들어가 있고, 돈많은 사람, 돈없는 사람 등 교회안이 복잡하게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교회 조직을 구성하게 됩니다. 집사를 7사람 뽑는데 전부 이방

인입니다. 이 교회가 그때부터 지방색이 있었고 소위 민족간의 갈등이 있었습니다. 유

대인들은 전부 다 높은 사람들이고 집사들은 이방인이라 인종 갈등이 있었으며 또 계

급적인 차원뿐만 아니라 일하는 것도 완전히 갈라 놓았습니다. 유대인들은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에만 전념하고, 이방인들은 교회 청소하고 연보 걷는 등 잡동사니

일만 하도록 하였습니다. 교회는 커졌지만 그 안에 계급 차이가 있고 권위주의가 들어

간 것입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 했습니다. 점차 교회가 썩아가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주님이 12제자, 120문도, 500여명에게 하신 \"너희들이 성령을 받고 권능을 받으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나의 증인이 되라.\"는 이 말씀을

다 잊어버렸습니다. 예루살렘의 증인이 되라는 것까지만 기억하고는 다 자기 교회를크

게 하는데만 신경을 썼습니다. 이 사람들이 복음을 들고 사마리아로 가야 되는데 교회

의 힘이 커지고 권위가 생기고 능력이 나타나니까 나갈 생각은 안하고 \"여기가 좋습니

다.\"하고 주저앉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령께서는 몹시 답답해서 기도중에 알려주어

도 이분들이 알지 못하니 주님이 당분간 이들을 안쓰는 방법으로 바꾸십니다. 지도자

들이 분명히 말씀 전하고 기도한다고 해놓고 아무것도 안 하니까 새 사람을 등장시키

는데 그가 바로 6장 8절에 나오는 스데반입니다.

스데반은 집사입니다. 그는 그 조직 안에서 설교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7

장을 보십시오. 스데반이 설교할 수 없는 평신도 집사지만 성령 충만해서 그 무서운

사람들 앞에서 이스라엘 역사를 설명하고 또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합니다. 얼마나 멋

있게 설교를 합니까?

8장에 보면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이 영적으로 완전히 어두워져서 안에서 싸움을 자

리싸움만 하고 있으니 보다 못한 하나님은 이들이 아끼는 스데반의 피를 흘리게 하는

데 그래도 그들은 깨닫지 못합니다.

스데반이 피를 흘린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핍박이 일어나게 해서 주

님은 지도자들을 강제로 유대와 사마리아로 흩어지게 하십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다른 사람들은 다 흩어졌는데 사도들은 두드려맞으면서도 권력을 놓기 싫어서 그냥 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