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가지 돌 (요 8:1-11)
1) 인간은 다 죄인입니다.
미국에 명 설교가로 유명한 찰스 스윈돌 목사님이 계십니다. 이 목사님이 어느 날 말씀을 증거하면서 우리 그리스도琯俑?사회법을 잘 지켜야 된다는 말씀으로 많은 교인들에게 은혜를 받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예배를 끝나고 집으로 가시다가 생각에 집중하다보니 그만 교통신호를 위반하게 되었습니다. 이 모습을 그 교회 교우들이 보고 있어습니다. 집에 돌아가서 얼마 되지 않아서 그 교인들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목사님, 개인적으로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다른 것이 아니고 목사님 설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자, 그러면 조금 후에 식당에서 만납시다.\"라고 말한 후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런 후에 식당에 목사님이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목걸이를 하고 차 앞에는 \"나는 죄인입니다.\" 그렇게 썼습니다. 교인들이 보고 깔깔대고 웃었습니다. 그리고 뒤를 돌아서는데 보니 \"누구든지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여러분, 이 이야기는 아주 우스꽝스러운 이야기 같지만 우리가 깊이 받아야 될 교훈이 있습니다.
2) 사랑은 모든 허물을 덮습니다.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예수님께 데려온 유대인들에게 유대인들이 이 여인을 향해서 돌로 쳐 죽이려고 할 때에 하신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구든지 죄 없는 자가 저를 돌로 쳐라.\" 말씀하시면서 땅에 글을 썼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들은 유대인들이 그만 양심에 가책을 받아서 다 돌아갑니다. 그때 예수님이 홀로 남은 간음한 여인을 향해서 \"나도 너를 정죄치 아니하노니 이제는 다시 가서는 죄를 범치 말라.\"라고 말씀하시며 그 여인을 돌려보냈습니다.
3) 성경에 등장하는 돌이 있습니다.
여러분,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여러 가지 형 집행방법이 있었습니다. 그 방법 중 하나가 바로 돌로 쳐 죽이는 것이었습니다. 특별히 간음한 여인들을 돌로 쳐 죽이는 것은 유대인의 법이었습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돌 외에 눈에 보이지 않는 돌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눈에 보이지 않는 돌은 무슨 돌입니까?
1. 미움과 증오의 돌입니다.
이 돌을 들어서 간음한 여인을 쳐 죽이려고 하는 유대인들의 마음 속에는 범죄한 여인에 대한 미움과 증오가 가득 찼습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이웃을 미워하고 증오하고 이웃과의 관계에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해결하지 못하고 마음에 품고 있는 경우들이 많이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는 예수님의 교훈을 통해서 이것을 해결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성경은 미워하지 말고 정죄하지 말라고 우리에게 말합니다. (마 7:1) 보면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그랬습니다. (마 5:21)에 살인 죄와 똑같이 취급을 했습니다. \"살인치 말라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그랬습니다. (요일 4:30) 보면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 하는 자니\" 그랬습니다. 용서해 주어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용서해주게 될 때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받습니다.
왜 용서해 주어야 됩니까?
1) 우리가 하나님께 용서함 받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마 6:14-15) 보면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그랬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과실, 우리의 죄를 하나님께 용서함 받으려면 형제의 과실을 용서해 주는 것은 필수적입니다. 하나님께 용서받지 않고 어떻게 살아갑니까?
2)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엡 4:32)에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주님의 요구요, 명령입니다. 그런고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마음에 남을 미워하는 마음을 품고 있을 수 없습니다. 부부생활하면서 마음에 품고 있는 악한 마음들, 미워하는 마음들, 이것을 다 해결하고 용서해주시기를 바랍니다.
3) 사람의 과실을 용서할 때 하나님도 용서하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미국에 35세 된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젊은 목사님으로 텍사스주에 아주 큰 교회를 시무하는 목사님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목사님은 사냥을 매우 좋아하셨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사냥을 나갔다가 정 조준해서 동물을 쏘았는데 쏘고 나니 그것이 동물이 아니라 사람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총에 맞아 죽었습니다. 그 목사님 얼마나 마음에 고통을 가졌겠습니까. 그래서 목사님은 고통하고 절망하다가 사임을 하고 말았습니다. 사임을 하고 나자 교인들 중에서 말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젊은 목사를 내보내면 사람 죽인 목사를 어디서 받겠는가. 그러니 우리 이번이 참 중요한 기회다. 한번 목사님을 용서해주자.\"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온 교회가 합의를 하고 목사님을 다시 받아들였습니다. 그 목사님은 그 은혜가 너무 감사해서 그 다음부터 그 목사님의 삶의 철학은 용서였습니다. 용서에 대해서 설교할 때는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설교를 했습니다. 그가 미국 교회 중에 대 교회인 달라스 교회에서 시무하면서 90세까지 54권의 책을 쓰고 아름답고 멋지게 목회를 마무리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4) 용서할 대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때문입니다.
용서는 귀한 것입니다. 용서하게 될 때에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그 심령 속에 넘치게 됩니다. 용서하게 될 때에 하나님의 영이 여러분을 사로잡습니다. 용서하게 될 때에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여러분에게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용서의 사람들 그 사람들이 은혜의 사람이고 그 사람이 기쁨의 사람이고 축복의 사람입니다. 미움과 증오의 돌을 던지지 마십시오.
2. 비판과 판단의 돌입니다.
여러분, 오늘 비판과 판단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특징을 갖고 있는가 하니 아주 자연스럽게 쉽게 범할 수 있는 잘못이고 또 수시로 마음 놓고 범할 수 있고 별 가책 없이 범할 수 있는 죄, 그것이 바로 비판입니다. 교회 분쟁과 분열의 원인의 대부분은 바로 비판에서부터 오는 것입니다. 성경은 어떤 상황에도 비판하지 말라고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을 (롬 2:1)에서 뭐라고 말합니까?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무론 누구든지 네가 핑계치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판단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고 했습니다.
비판의 원인이 무엇입니까?
1) 교만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약 4:12)에 \"형제들아 피차에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자로다 입법자와 재판자는 오직 하나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관대 이웃을 판단하느냐?\"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 말씀의 내용은 무엇인가 하면 우리가 이웃을 판단하게 되면 스스로 우리가 법을 만든 입법자가 되고 재판자가 된다는 말입니다. 재판자와 입법자는 오직 하나님 한 분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남을 비방하고 판단한다는 것은 내가 스스로 하나님이 되어서 하나님의 보좌 위에 올라가 앉아 있는 교만입니다.
2) 자기를 모르기에 비판하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 성경을 보면 여기 비방하고 판단한다는 히브리 원어의 내용이 이렇습니다. 그 원어는 왜 어떻게 사용되게 되었는가 하면 \"라켈\"이라고 하는 말은 향로를 가지고 장사꾼들이 이집 저집 돌아가면서 향로를 팝니다. 팔면서 그냥 파는 것이 아니라 수근수근하면서 이 사람 저 사람 비난하면서 다니는 것입니다. 그때 당시에는 그런 일들이 흔히 있었답니다. 아인스워드라는 사람이 이 점에 대해서 분명히 밝혀놓았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슴을 우리들이 준행하게 될 대에 거기에 복이 따라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이론적으로 객관적으로 아는 것은 별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비판을 바든 사람들의 자세가 세가지 있습니다.
①독수리 형입니다.
비판을 받아도 낙심하지 않고 성내지 않고 계속해서 신앙이 독수리처럼 올라갑니다. 그 속에서 하나님의 섭1) 인간은 다 죄인입니다.
미국에 명 설교가로 유명한 찰스 스윈돌 목사님이 계십니다. 이 목사님이 어느 날 말씀을 증거하면서 우리 그리스도琯俑?사회법을 잘 지켜야 된다는 말씀으로 많은 교인들에게 은혜를 받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예배를 끝나고 집으로 가시다가 생각에 집중하다보니 그만 교통신호를 위반하게 되었습니다. 이 모습을 그 교회 교우들이 보고 있어습니다. 집에 돌아가서 얼마 되지 않아서 그 교인들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목사님, 개인적으로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다른 것이 아니고 목사님 설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자, 그러면 조금 후에 식당에서 만납시다.\"라고 말한 후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런 후에 식당에 목사님이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목걸이를 하고 차 앞에는 \"나는 죄인입니다.\" 그렇게 썼습니다. 교인들이 보고 깔깔대고 웃었습니다. 그리고 뒤를 돌아서는데 보니 \"누구든지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여러분, 이 이야기는 아주 우스꽝스러운 이야기 같지만 우리가 깊이 받아야 될 교훈이 있습니다.
2) 사랑은 모든 허물을 덮습니다.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예수님께 데려온 유대인들에게 유대인들이 이 여인을 향해서 돌로 쳐 죽이려고 할 때에 하신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구든지 죄 없는 자가 저를 돌로 쳐라.\" 말씀하시면서 땅에 글을 썼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들은 유대인들이 그만 양심에 가책을 받아서 다 돌아갑니다. 그때 예수님이 홀로 남은 간음한 여인을 향해서 \"나도 너를 정죄치 아니하노니 이제는 다시 가서는 죄를 범치 말라.\"라고 말씀하시며 그 여인을 돌려보냈습니다.
3) 성경에 등장하는 돌이 있습니다.
여러분,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여러 가지 형 집행방법이 있었습니다. 그 방법 중 하나가 바로 돌로 쳐 죽이는 것이었습니다. 특별히 간음한 여인들을 돌로 쳐 죽이는 것은 유대인의 법이었습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돌 외에 눈에 보이지 않는 돌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눈에 보이지 않는 돌은 무슨 돌입니까?
1. 미움과 증오의 돌입니다.
이 돌을 들어서 간음한 여인을 쳐 죽이려고 하는 유대인들의 마음 속에는 범죄한 여인에 대한 미움과 증오가 가득 찼습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이웃을 미워하고 증오하고 이웃과의 관계에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해결하지 못하고 마음에 품고 있는 경우들이 많이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는 예수님의 교훈을 통해서 이것을 해결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성경은 미워하지 말고 정죄하지 말라고 우리에게 말합니다. (마 7:1) 보면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그랬습니다. (마 5:21)에 살인 죄와 똑같이 취급을 했습니다. \"살인치 말라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그랬습니다. (요일 4:30) 보면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 하는 자니\" 그랬습니다. 용서해 주어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용서해주게 될 때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받습니다.
왜 용서해 주어야 됩니까?
1) 우리가 하나님께 용서함 받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마 6:14-15) 보면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그랬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과실, 우리의 죄를 하나님께 용서함 받으려면 형제의 과실을 용서해 주는 것은 필수적입니다. 하나님께 용서받지 않고 어떻게 살아갑니까?
2)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엡 4:32)에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주님의 요구요, 명령입니다. 그런고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마음에 남을 미워하는 마음을 품고 있을 수 없습니다. 부부생활하면서 마음에 품고 있는 악한 마음들, 미워하는 마음들, 이것을 다 해결하고 용서해주시기를 바랍니다.
3) 사람의 과실을 용서할 때 하나님도 용서하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미국에 35세 된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젊은 목사님으로 텍사스주에 아주 큰 교회를 시무하는 목사님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목사님은 사냥을 매우 좋아하셨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사냥을 나갔다가 정 조준해서 동물을 쏘았는데 쏘고 나니 그것이 동물이 아니라 사람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총에 맞아 죽었습니다. 그 목사님 얼마나 마음에 고통을 가졌겠습니까. 그래서 목사님은 고통하고 절망하다가 사임을 하고 말았습니다. 사임을 하고 나자 교인들 중에서 말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젊은 목사를 내보내면 사람 죽인 목사를 어디서 받겠는가. 그러니 우리 이번이 참 중요한 기회다. 한번 목사님을 용서해주자.\"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온 교회가 합의를 하고 목사님을 다시 받아들였습니다. 그 목사님은 그 은혜가 너무 감사해서 그 다음부터 그 목사님의 삶의 철학은 용서였습니다. 용서에 대해서 설교할 때는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설교를 했습니다. 그가 미국 교회 중에 대 교회인 달라스 교회에서 시무하면서 90세까지 54권의 책을 쓰고 아름답고 멋지게 목회를 마무리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4) 용서할 대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때문입니다.
용서는 귀한 것입니다. 용서하게 될 때에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그 심령 속에 넘치게 됩니다. 용서하게 될 때에 하나님의 영이 여러분을 사로잡습니다. 용서하게 될 때에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여러분에게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용서의 사람들 그 사람들이 은혜의 사람이고 그 사람이 기쁨의 사람이고 축복의 사람입니다. 미움과 증오의 돌을 던지지 마십시오.
2. 비판과 판단의 돌입니다.
여러분, 오늘 비판과 판단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특징을 갖고 있는가 하니 아주 자연스럽게 쉽게 범할 수 있는 잘못이고 또 수시로 마음 놓고 범할 수 있고 별 가책 없이 범할 수 있는 죄, 그것이 바로 비판입니다. 교회 분쟁과 분열의 원인의 대부분은 바로 비판에서부터 오는 것입니다. 성경은 어떤 상황에도 비판하지 말라고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을 (롬 2:1)에서 뭐라고 말합니까?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무론 누구든지 네가 핑계치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판단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고 했습니다.
비판의 원인이 무엇입니까?
1) 교만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약 4:12)에 \"형제들아 피차에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자로다 입법자와 재판자는 오직 하나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관대 이웃을 판단하느냐?\"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 말씀의 내용은 무엇인가 하면 우리가 이웃을 판단하게 되면 스스로 우리가 법을 만든 입법자가 되고 재판자가 된다는 말입니다. 재판자와 입법자는 오직 하나님 한 분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남을 비방하고 판단한다는 것은 내가 스스로 하나님이 되어서 하나님의 보좌 위에 올라가 앉아 있는 교만입니다.
2) 자기를 모르기에 비판하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 성경을 보면 여기 비방하고 판단한다는 히브리 원어의 내용이 이렇습니다. 그 원어는 왜 어떻게 사용되게 되었는가 하면 \"라켈\"이라고 하는 말은 향로를 가지고 장사꾼들이 이집 저집 돌아가면서 향로를 팝니다. 팔면서 그냥 파는 것이 아니라 수근수근하면서 이 사람 저 사람 비난하면서 다니는 것입니다. 그때 당시에는 그런 일들이 흔히 있었답니다. 아인스워드라는 사람이 이 점에 대해서 분명히 밝혀놓았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슴을 우리들이 준행하게 될 대에 거기에 복이 따라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이론적으로 객관적으로 아는 것은 별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비판을 바든 사람들의 자세가 세가지 있습니다.
①독수리 형입니다.
비판을 받아도 낙심하지 않고 성내지 않고 계속해서 신앙이 독수리처럼 올라갑니다. 그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바라봅니다.
②황소 형이 있습니다.
황소처럼 뿔로 받습니다. 즉 나를 비판하는 사람에 대해서 대항하고 같이 싸우고 보복하는 그런 사람입니다.
③풍선 형이 있습니다.
풍선처럼 기운이 폭 빠져서 속이 텅 비었지 않습니까? 그래서 터져버리는 것처럼 낙심하고 절망의 상황에 들어가는 그런 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3. 원망 불평의 돌입니다.
원망, 불평은 우리가 죄성을 가진 인간이기 때문에 쉽게 하기 좋은 그러한 눈에 보이지 않는 무서운 돌입니다. 이 돌은 스스로 파멸케 하는 돌입니다. 상대방을 파멸케 하는 돌입니다. 원망, 불평하던 12정탐꾼도 그 자리에서 죽었고, 원망, 불평하던 이스라엘 민족도 광야 40년을 방황하다가 모두 죽음을 당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원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더는 말씀드리지 않습니다. 오늘 예수님 앞에 나와서 돌을 들고 간음한 여인을 공격하여 죽이려고 하던 유대인들이 바로 나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고 내가 오늘날까지도 얼마나 많은 돌을 던지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고통스럽게 하고 괴롭게 했는가 생각해야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미움과 증오의 돌, 비판과 판단의 돌, 원망과 불평의 돌, 이제부터 우리 다 거두어 서로 내 몸처럼 사랑하는 사랑의 사람이 되어서 은혜 가운데 복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리를 바라봅니다.
②황소 형이 있습니다.
황소처럼 뿔로 받습니다. 즉 나를 비판하는 사람에 대해서 대항하고 같이 싸우고 보복하는 그런 사람입니다.
③풍선 형이 있습니다.
풍선처럼 기운이 폭 빠져서 속이 텅 비었지 않습니까? 그래서 터져버리는 것처럼 낙심하고 절망의 상황에 들어가는 그런 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3. 원망 불평의 돌입니다.
원망, 불평은 우리가 죄성을 가진 인간이기 때문에 쉽게 하기 좋은 그러한 눈에 보이지 않는 무서운 돌입니다. 이 돌은 스스로 파멸케 하는 돌입니다. 상대방을 파멸케 하는 돌입니다. 원망, 불평하던 12정탐꾼도 그 자리에서 죽었고, 원망, 불평하던 이스라엘 민족도 광야 40년을 방황하다가 모두 죽음을 당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원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더는 말씀드리지 않습니다. 오늘 예수님 앞에 나와서 돌을 들고 간음한 여인을 공격하여 죽이려고 하던 유대인들이 바로 나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고 내가 오늘날까지도 얼마나 많은 돌을 던지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고통스럽게 하고 괴롭게 했는가 생각해야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미움과 증오의 돌, 비판과 판단의 돌, 원망과 불평의 돌, 이제부터 우리 다 거두어 서로 내 몸처럼 사랑하는 사랑의 사람이 되어서 은혜 가운데 복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