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새옷을 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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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션 \"\" 그리스도의 새옷을 입자 등록일 \"\" 2008-05-19
작성자 \"\" 관리자 (admin)
그리스도의 새 옷을 입자
본문 : 마 9:16-17


\"16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이는 기운 것이 그 옷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됨이요 17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

캘리포니아 주의 새크라멘토 도시를 지나는 99번 고속도로상에서 벌을 운반하던 트럭이 뒤집혀서 1,600만 마리의 왕벌들이 탈출해 도시 일대를 뒤덮고 주민들을 공포에 떨게 했습니다. 그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서 벌들이 뚫을 수 없는 방충복을 입고 수많은 경찰관들과 소방관들 그리고 양봉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7시간 동안 투입되어 겨우 수습할 수 있었습니다. 그 사태를 진압하는 동안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방충복을 입지 않고 아무 대책 없이 그곳을 지나가야 했던 오토바이 족들이었다고 합니다.
왕벌들이 새까맣게 우글거리는 가운데로 늠름하게 걸어 들어가서 벌들을 잡아넣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무엇이 저 사람들을 저렇게 침착하고 용감하게 행동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옷이었습니다. 얇고 투명하지만 벌들이 뚫을 수 없는 옷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갈 3: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고 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옷을 입어야 사단의 공격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 옷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믿음의 새 옷을 입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낡은 옷을 벗고 그리스도의 새 옷으로 갈아입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유대인들은 극도의 슬픔이나 억울한 일을 만나면 옷을 찢는 행동을 했습니다. 이러한 행동으로 자기의 의사표현을 하는 것입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죽임을 당할 뻔하고 애굽으로 가는 상인에게 팔려갑니다. 그리고 형제들은 아버지에게 사나운 짐승이 찢어 죽였다고 말하자 야곱은 창 37:34\"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로 허리를 묶고 오래도록 그 아들을 위하여 애통\" 합니다. 이러한 분함을 못이기는 그들의 표현에 대해서 하나님은 제사장이 될 사람들에 대해서 \"자기 형제 중 관유로 부음을 받고 위임되어 예복을 입은 대제사장은 그 머리를 풀지 말며 그 옷을 찢지 말며\"(레 21:10) 라고 하셨습니다. 요엘 예언자는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욜 2:13) 라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 때 \"대제사장이 자기 옷을 찢으며 가로되 저가 참람한 말을 하였으니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 보라 너희가 지금 이 참람한 말을 들었도다\"(마 26:65) 고 하였습니다. 자기들의 마음대로 옷을 찢는 행동은 올바른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새 포도주를 낡은 부대에 넣으면 저절로 그것이 터지는 것을 보게됩니다. 생베는 당기는 속성이 있어 낡은 가죽부대를 헤칩니다. 낡은 가죽부대에 새 포도주를 넣으면 가죽부대가 터져 버립니다. 낡은 부대는 새 것과 함께 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낡은 가죽부대는 전통적인 유대지도자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들은 형식에 빠진 율법주의자들이었습니다. 낡아빠진 그들의 정신과 생각으로는 예수님의 새 복음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늘 새로운 것입니다. 이것을 충만히 받으려면 낡은 가죽부대를 버리고 새 옷으로 갈아입어야 합니다. 찢어야 될 것은 자기들의 옷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주시는 새 포도를 그들은 담을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낡은 부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낡은 옷을 벗어버려야 새로운 하나님의 은총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낡은 옷을 입고있습니까? 우리가 벗어야 할 옷은 무엇이 있습니까? 우리가 진짜 찢어 버려야할 옷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첫째, 계산적인 신앙의 낡은 옷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신앙생활 몇 년이 되어도 낡은 옷을, 즉 계산적인 신앙의 옷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있는 이들이 있습니다. 예배와 헌금, 신앙생활을 계산적으로 하여서는 안 됩니다. 보상심리와 같은 것들은 계산적인 신앙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벳세다 광야에서 예수님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예수님이 무리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시자 곧 빌립이 말합니다. \"어림잡아 200 데나리온의 돈이 있어야 합니다.\" 그랬습니다.
수 천명의 사람들을 먹이려면 큰돈이 들어야 하는데, 그 돈은 우리에게 없다고 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다른 제자 안드레는 곧 먹을 것을 찾아 나섰습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고작이었지만 그는 주님 앞에 그것들을 가져왔습니다. 다른 이들은 이같이 어리석은 행동을 하는 안드레가 못마땅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런 안드레의 믿음으로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셨던 것입니다.
내가 최선을 다하면 다음에는 주님께서 해 주시는 것입니다. 모든 일을 내가 다 할 수 있으면 믿음이 왜 필요하겠습니까? 오천 명을 다 먹이고 나서 남은 광주리에 담기 떡이 12광주리나 되었습니다.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믿음은 계산적인 것을 버려야 올바른 것으로 소유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실 수 있도록 문을 열어 놓아야 합니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둘째, 편견의 낡은 옷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대 학자 나다나엘이 있었습니다. 빌립이 그에게 \"내가 예수를 만났다.\" 고 말했습니다. 그는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고 반발했습니다. 이것은 율법학자들이 \"온 세상을 구원할 구세주, 이스라엘의 왕은 예루살렘과 같은 수도에서 태어날 것이라는 생각과 편견을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지역이 작으니까 사람도 나오기 힘들겠다는 편견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편견이 있습니다.
\"저희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여 하나니 곧 그 차는 경문을 넓게 하며 옷술을 크게 하고\"(마 23:5) 자신들은 꾸미면서 다른 사람은 무시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갈릴리 지방의 어부 출신들을 제자로 삼았습니다. 유명한 랍비들이라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편견을 가지고 계시지 않았습니다. 방금 예수님을 믿었다고 해서 그 믿음이 약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보라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있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도 있느니라 하시더라\"(눅 13:30).
편견은 오히려 배운 사람에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유대지도자들은 배운 사람들입니다. 율법주의자들, 서기관들도 배운 사람입니다. 사회 지식층입니다. 자기가 아는 것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아는 것이 모두 정답처럼 생각합니다. 무지개 색깔이 몇 개인지 배우지 않은 사람은 무지개 색깔을 다시 세어볼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7개라고 배운 사람은 다시 세어볼 생각은 하지 않고 7개라고 우기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편견입니다.
유대 지도자들은 여자에 대한 편견이 있었습니다. 어린아이에 대한 편견이 있었습니다. 사마리아에 대한 편견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떤 편견도 가지고 계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나아오려는 모든 이들에게 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그 누구도 막지 않았습니다.

스가랴가 본 환상 가운데 슥 3:3-5 \"3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섰는지라 4 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 자들에게 명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과를 제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기로 5 내가 말하되 정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소서 하매 곧 정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며 옷을 입히고 여호와의 사자는 곁에 섰더라\" 여호수아가 비록 하나님께 순종한 사람이지만 그에게 죄가 있어 더러운 옷을 입고 하나님께 갈 수는 없었습니다. 더러운 옷을 벗고 아름다운 옷으로 갈아입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새 옷을 입으라.

예수님이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산에 올라가 기도하실 때 예수님의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습니다(마 17:1-2). 이것은 예수님이 죄가 있어서 옷이 희어진 것이 아닙니다.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깨끗한 분인 것을, 죄가 없는 분임을 하나님이 보여주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7:4 \"그 여자는 자주빛과 붉은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것 들이 가득하더라\" 고 했습니다. 디모데도 이미 딤전 2:9에서 이미 지적한 바 있습니다. 하나님께 심판을 받을 음녀입니다. 세상의 것으로 꾸며진 사람입니다. 자신이 아름답다고 생각한 옷을 입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옷을 입고는 저주의 대상이 될 뿐입니다.

하나님은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한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말씀하시기를 계속 이런 식이면 토해 버리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들이 살 수 있는 방법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계 3: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깨끗한 흰옷을 입어야 합니다. 이것을 어찌 살 수 있습니다. 구원을 돈주고 살 수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로마서 13:14에서 바울이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옷을 갈아입는다는 것은 완전한 거듭남을 의미합니다. 이전 것은 지나간 것입니다. 그것은 죄악의 세상에서 입고 있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