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 해야할 이유

용서해야 할 이유 (창 45:1-10)

[요약] 누구나 억울하고 분해서 복수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러나 성경은 용서하라고 하신다. 용서해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 내가 하나님께 용서함 받기 위해서다(마6:14-15). 곧 자신을 위해서인 것이다. 우리가 원수 갚아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롬12:17). 우리의 주는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만이 원수 갚으실 권한이 계시다. 하나님께서 먼저 본을 보여주셨기 때문이다(엡4:32). 예수님도 원수를 사랑하시고 기도하셨다. 그래야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이다(마5:44-45). 모든 것은 변장된 축복으로 하나님의 은혜였기 때문이다.


[설교]
이 시간 “용서해야 할 이유”라는 제목입니다. 어느 군인의 복수라는 제목의 글입니다. 한 남자가 입대해 전방으로 갔습니다. 몇 달 후 여자 친구의 한 통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우리 이제 헤어지자, 그러니 내 사진을 돌려보내줘\" 화가 났지만 군대에 있는 몸으로 어떻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부대 동료들의 여자 친구 사진을 죄다 모아서 다음과 같은 편지와 함께 보냈습니다. \"어떤 게 네 사진인지 기억이 안 나네. 네 것만 빼고, 다른 사진은 빨리 돌려보내!\" 나름대로 기발한 생각으로 복수한 이야기입니다. 누구나 인간관계 속에서 억울하고 분해서 복수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교훈은 그렇지 않습니다.

요셉의 이야기가 그것입니다. 17살 나이에 이복형제들에게 죽임을 당할 번하다가 노예로 애굽에 팔려가 종이 되고 감옥에 갇히는 등 온갖 이 참담함을 다 당한 요셉이 하나님의 은혜로 애굽의 총리가 되어 자기를 판 형제들을 복수하지 않고 다 용서하고 사랑으로 형제와 가족을 먹여 살린 그 이야기는 유명합니다. 그가 그렇게 용서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모든 것이 자기를 위함이고 또 총리 삼아 가족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였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용서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말씀드립니다.

1. 우리가 용서함 받기 위해서입니다.

마6:14-15에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하셨습니다.

얼마나 두려운 말씀입니까? 타인은 용서 못하면서 내가 용서 받길 원한다면 바른 양심일 수 없습니다. 일만 달란트 빚진 신하 이야기가 있지요. 왕에게 그 큰 빚을 탕감 받고서도 자기는 수하의 동관 하나가 작은 빚 갚지 않는다고 가두고 때렸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임금이 민망하여 탕감함을 무효화 시키고 다시 갚도록 옥졸에 붙였다는 말씀입니다.

용서는 자신을 위해서입니다. 미국 위스콘신대 연구논문을 보면 인간은 용서하지 못할 때 우울증 고혈압 위경련 격렬한 분노 편집증 등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복수는 자기 인생을 파괴하는 일입니다. 미워할 때 당장 자기 건강에 적신호가 옵니다. 그리고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행복하지 않고 사단이 역사하기 시작합니다. 원치 않는 일들이 생겨납니다.

그러나 진정 용서하고 평안한 맘 가지면 마귀는 떠나고 맙니다. 중국의 문학작품 중에는 원수 갚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자기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무술을 연마하면서 일생을 허비합니다. 그러나 원수를 갚으려다가는 내가 먼저 망합니다. 한 순간의 복수를 위해 일생 동안 타인의 삶에 매달려 시간을 허비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늘 이 시간 예수님의 이름으로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2. 용서는 우리가 원수 갚아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롬12:17에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고 말씀합니다. 또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12:19∼21)고 했습니다. 잠20:22에도 “너는 악을 갚겠다 말하지 말고 여호와를 기다리라 그가 너를 구원하시리라”고 교훈합니다. 성경 어느 곳에도 우리가 원수를 갚아야 한다는 말씀은 없습니다. 성경에 보면 이스라엘의 원수들을 하나님께서 다 갚아주셨습니다. 최고의 복수는 사랑입니다. 여기에는 부작용도 없어요. 승리만이 있습니다.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하루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이웃집에 가서 낫을 빌려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빈손으로 돌아왔습니다. 며칠 뒤 그 이웃이 호미를 빌리러 왔습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호미를 챙겨주었습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아버지! 저 사람은 우리에게 빌려주지 않았는데, 우리는 왜 빌려주어야 하나요?\" 아버지는 \"아들아! 그 이웃이 우리에게 도움을 주지 않았다고 우리도 그렇게 한다면 그것은 복수요 증오란다. 하지만 상대방의 행동이 어떠했든지 상관없이 필요할 때 도울 수 있는 것은 용서이자 사랑이란다.\"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3. 하나님께서 먼저 본을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영상자료를 보니까 엄마가 혀를 내미니까 난지 얼마 안 된 아이지만 아이도 따라서 혀를 내밀었습니다. 이처럼 인간이 나서 받는 최초의 교육법이 따라서 하는 본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본을 보여야 할 사람들이 본이 되지 못한다면 큰 죄악입니다. 자기와 같은 복사판을 수없이 만들어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엡4:32에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자기를 죽이는 원수들을 위해 아버지께 기도하셨습니다. 이 본을 스데반 집사는 그대로 본받아 자기를 돌로 치는 원수들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미국에는 살인자를 용서해 달라는 피해자 가족들의 탄원이 많습니다. 그래서 위대한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두 아들을 죽인 공산당을 용서하고 아들 삼은 손양원 목사의 이야기도 유명합니다.

일본 도쿄를 최초로 폭격한 미 공군 중위 ‘드 샤저’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는 일본의 진주만 공격 시 잃은 아내의 원수를 갚기 위해 폭격대원에 지원했습니다. 그러나 도쿄 폭격을 마친 후 귀환하다가 엔진 고장으로 불시착해 일본군의 포로가 됐습니다. 그는 포로수용소에서 예수를 영접하고 종전 후 원수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일본 선교사로 가서 맨 먼저 진주만 폭격기 편대장 후지타 대위를 전도했습니다. 이러한 참된 용서의 모범을 보이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4. 그래야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출23:4-5에 \"네가 만일 네 원수의 길 잃은 소나 나귀를 만나거든 반드시 그 사람에게로 돌릴지며 네가 만일 너를 미워하는 자의 나귀가 짐을 싣고 엎드러짐을 보거든 삼가 버려두지 말고 그를 도와 짐을 부리울지니라\" 하였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택한 자녀들의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마5:44-45)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사랑이시니 우리도 사랑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용서이시니 우리도 용서여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잘못된 모습입니다.

요일3:10에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나타나나니 무릇 의를 행치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했습니다. 복수의 마음을 가진 체 거울을 보세요. 마귀의 모습이 따로 없습니다. 그러나 용서하고 거울을 보세요. 하나님의 모습이 거울에 나타납니다. 용서하지 못하면 마귀는 하나님 앞에서 고자질합니다. “하나님 저기 나 닮은 자가 있습니다. 저 것은 내 것이니 손대지 마십시오.” 얼마나 두려운 일입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오.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 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용서가 안 된다면 자기 믿음이 그것밖에는 되지 않음을 한탄하시고 누구도 용서할 수 있는 참 믿음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5.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기 때문입니다.

본문 5-8절에 “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로 바로의 아비를 삼으시며 그 온 집의 주를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치리자를 삼으셨나이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말씀입니다. 요셉이 모든 것을 종합해 보고 이모로 저모로 시험해 본 결과 내린 결론입니다. 고난은 변장된 축복입니다. 나를 정금 같이 연단하시려는 특별한 은혜였습니다. 그러므로 그 악역을 담당한 사람들은 모두 나를 위해 수고한 사람들이며 나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고 믿고 용서는 물론 감사해야 합니다. 사랑하고 축복해야 합니다. 신령한 눈으로 볼 때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죄로 인해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리게 하시기까지 끝없이 용서하시고 구원해주셨습니다. 이 사랑을 받은 우리들이 용서하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래야 우리가 삽니다. 그래야 복을 받습니다. 우리 모두 용서의 본을 보여주신 예수님의 그 사랑 본받아 진실로 용서하고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