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싸움(3) 당신은 성령의 검을 가졌는가?

엡6:17)



바울은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 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엡6:12-13)”고 말하면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의 삶가운데 전신갑주를 확인하시기를 바랍니다.

진리의 허리띠를 띠었나요? 우리의 삶이 부산하고 너저분한 것은 허리띠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진리의 띠로 두르면 용동하지 않는 신앙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엡4: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진리로 삶의 허리를 동여 매야 합니다.




여러분의 가슴엔 의의 흉배를 붙였나요?―우리의 감정의 자리에 주의 의의 피의 덮개를 덮고 모든 마귀의 화전을 막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발은 평안의 복음의 신을 착용하고 있습니까? -평안을 유지해야 정서와 이성이 말을 듣습니다. 우리의 평안을 깨는 것들이 무엇입니까? 분노, 미움, 시기, 다툼, 염려 근심에서 십자가를 통한 세상이 주는 것과 다른 환경과 조건에 관계없는 진정한 평안을 누려야 합니다.




이 모든 일에 믿음의 방패를 소유해야 합니다. 믿음은 그리스도를 온전히 신뢰 하는 것이고, 그분의 약속의 말씀을 붙드는 일입니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질 때 모든 악한 자의 화전을 소멸할 수 있습니다. 다음은 구원의 투구를 취해야 합니다. 구원은 그리스도 자신을 취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의 구원을 의심케 합니다. 우리 전체가 보호되고 우리의 분깃인 구원을 확신하고 난 때에야 성령의 검을 사용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고 말씀합니다. (엡6: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전신갑주가 방어용이었으나 검은 공격무기인 것입니다. 성령의 검은 하나님 말씀이며 성령의 검 하나님의 말씀 그 둘 다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의 검이라고 했습니다. 성령은 검 자체며 하나님의 말씀이 또한 검이란 말입니다. 검은 성령이며 성령은 말씀과 함께 임하며 역사합니다. 우리는 검과 성령과 말씀을 가졌습니다.




말씀은 성경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이 인쇄된 문자들이라면 그것은 성령도 아니고 검도 아닙니다. 17절의 말씀은 [레마]로써 어떤 상황에서 진리의 성령께서 오늘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에 항상 있는 말씀인 로고스가 직접적인 레마가 될 때 이 레마는 성령의 능력이 될 것입니다.“종말로 너희가 주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 지고” 이 능력의 검이 말씀인 것입니다. 말씀이 성령의 검으로 이 레마는 대적을 산산 조각내버리는 검이 됩니다. (요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그래서 말씀과 성령은 하나입니다. 말씀을 갖지 않고 성령을 갖는 다는 말은 틀리기 때문인 것입니다. 말씀을 취하지 않고서는 성령을 가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내가 살아 있는 방법으로 말씀을 접촉할 때 그 말씀은 내게 그영이 됩니다. 주 예수님은 그 영이신 동시에 말씀이십니다. 그분은 말씀 없는 성령님이 아니요 성령 없는 말씀도 아닙니다. 성령은 말씀 안에서 말씀에 의해서 말씀을 통하여 말씀과 함께 역사한다는 말입니다.




말씀을 대할 때 생각과 우리 영을 모두 사용해야 합니다. 읽음으로써 생각을 사용하고 기도함으로써 우리의 영을 모두 사용해야 합니다.



1.하나님 말씀을 무엇에 비유하고 있습니까?

베드로전서2:2(벧전2:2) \"갓난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갓난아이에게 있어 젖과 같이 중요하다. 갓난아이에게 있어 젖은 생명과 같고 성장함에 필수적인 영양분이다.




예레미아는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먹었사오니…….”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으면 마음의 기쁨과 즐거움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음식임으로 우리의 자양분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영으로 말씀을 만지고 접촉해야하는 것입니다.




2.말씀은 어떤 능력이 있습니까?

1)창세기 1:3/ 요한복음1:3

(창1:3)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요1: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우리의 삶은 운명이나 숙명론에 맡겨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말씀 안에서 새로운 창조의 삶가운데 살아갑니다. 말씀이 생각을 새롭게 하시며 마음을 새롭게 하시며 가치를 새롭게 하십니다. 물과 성령으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십니다. 우리의 기질을 변화되게 하십니다.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다. 만물이 말씀으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다.




2)베드로전서 1:23

(벧전1:23)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 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우리의 태생이 말씀입니다. 막 태어난 아이들이 물을 좋아합니다. 물속에 넣으면 본능적으로 헤엄을 칩니다. 아이들이 양수라는 물속에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생태환경이 말씀입니다. 말씀이 생명의 씨입니다. 말씀의 자양분을 먹어야 합니다. 말씀을 떠나서는 생존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거듭난 것이 말씀으로 되었다.




3)히브리서4:12

(히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 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말씀은 좌우에 날선 검으로 관절과 골수는 물론 보이지 않는 영혼을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생각과 뜻을 감찰합니다. 혼과 영을 쪼개는 말씀입니다. 영은 혼 안에 깊은 곳에 있습니다. 관절과 골수를 쪼개려면 주로 관절을 깨뜨려야 합니다. 같은 원칙으로 영과 혼을 나누기 위하여서는 혼을 깨뜨리는 일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혼은 우리의 자신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혼인 자기 자신을 부인하여야 합니다. 영과 혼이 나누어지지 않는 사람들은 사단이 진을 칩니다. 우리의 옛본성이 혼 안에 있습니다. 옛뱀의 속성이 혼 안에 주입되어 있기에 영에 속한 그리스 도안이냐 육에 속한 그리스도인이냐는 말씀의 검으로 영적인 것과 혼적인 것을 쪼개야 합니다.




4) 디모데후서 3:16-17

(딤후3:16-17)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한 인격이 되게 합니다.




5)성령의 검-영적 공격무기

(렘23:29)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말이 불 같지 아니하냐 반석을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 망이 같지 아니하냐\"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의 검을 어떻게 사용하여 마귀를 대적하였는가를 본보기로 보여준 예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4장 1절부터 11절의 말씀을 펴보시기를 바랍니다.




에덴동산의 옛뱀이 예수님이 세례를 받고 공생애를 시작하려는 찰나에 십자가의 사건을 무산시켜 여자의 후손의 발뒤꿈치를 물려하고 있습니다. 이 옛뱀은 예수님이 베들레헴에 태어날 때 헤롯왕을 통해 2살이하의 유아살해 사건으로 예수님의 생명을 노렸습니다.



(마4:1-2)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2)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그 때에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나갑니다. 세례 받으실 때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하실 때 시점을 마귀가 노렸습니다. 금식한 후에 주린 것을 알고 그 약점을 시험합니다.




육신의 정욕/생활의 문제/먹는 문제/의식주의 문제입니다. “(마4:3)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가서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앞서 하나님이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말씀을 의심케 하여 아들임을 증명해 보라는 시험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주려서는 되겠느냐는 육신의 정욕을 향하여 시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과 그 뜻에 순종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힘에 의해서 스스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마귀의 목적입니다. 마귀는 아들의 능력을 하나님을 위하여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하여 사용하도록 유혹한 것입니다.




마귀는 동일하게 오늘날 우리에게 이런 유혹을 던집니다. “성공하고 유명해지기 위하여 너의 능력을 사요하라, 너의 똑똑함, 너의 천부적인 재주,그길고 너에게 주어진 부유한 가정과 환경의 모든 유리한 조건들은 네가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이 특권을 누리는 것은 합리적이고 당연하다”고 유혹해 옵니다. “하나님 없이도 너는 행복할 수 있고 돈도 벌수 있고 권력도 얻을 수 있다”고 하는 그런 종류의 시험입니다.



(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우리 주님은 말씀의 검 성령의 검을 들어 마귀를 대적합니다. “기록되었으되” 신명기 8장 3절의 말씀을 검으로 사용하십니다. (신8:3)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우리 주님은 육체의 필요을 인정하고 영적인 양식도 동시에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만족을 위해 산다면 동물과 다름이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영적인 갈증을 해갈해야 합니다. 우리의 문제는 의식주의 문제가 아니라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는 문제입니다. 그리하면 이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약속하셨습니다.







두 번째의 시험은/이생의 자랑/종교적인 문제입니다.

(5)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6)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하였으되 저가 너를 위하 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말씀의 검을 사용하니까 마귀도 말씀을 들고 나옵니다. (시91:11-12)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네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12) 저희가 그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그러나 사단은 적용을 잘 못하였습니다. “모든 길에”를 빼먹었습니다. 마귀는 자기 마음대로 말씀을 끌어다 댑니다. 이단들이 그렇습니다.




마귀는 재차 공격합니다. 성전 꼭대기로 대리고 올라갑니다. 약140m가 넘은 높입니다. 두 번째는 정신적인 문제입니다. 마귀는 높은 곳을 좋아합니다. 높은 곳은 위험한 곳입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네가 하나님의 아들임면 하나님의 힘을 빌릴 것이 없이 네 자신의 능력을 사용하여 이 위기를 벗어나라하는 유혹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네 자신 네 경험 네 능력 네젊음을 이용하여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라고 유혹하고 있습니다. 네가 뛰어 내리면 메시야임을 증명하는 것이 될터이니 명예에 대한 시험입니다. 마귀는 인기주의를 자극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신명기 6장 16절의 말씀을 인용하여 말씀의 검을 사용합니다.

(7)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하신대“(신6:16) \"너희가 맛사에서 시험한 것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시험하지 말고\"하셨습니다.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는 유혹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시험이 숨어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의심케 하는 데 시험의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대로 믿고 신뢰하여야 합니다.







마귀는 안목의 정욕을 시험합니다. “(8)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9) 가로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마귀는 한번 공격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마귀는 장소를 바꿉니다. 지극히 높은 산입니다. 천하만국과 그 영광이 보이는 산입니다. 안목의 정욕의 시험입니다. 우리의 진급 성공 정상이 우리의 목적이 될 수는 없습니다. 이 세상을 주관하고 있는 모든 주권을 물려 줄 테니 마귀에게 굴복하라는 말입니다. 마귀는 하나님께 경배한 대신 나에게 경배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대신에 나에게 순종하면 이 모든 것을 너에게 주겠다. 하나님이 약소한 것보다 더 좋은 것을 하나님이 약소한 것보다 더 빠르게 주겠다“고 유혹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귀는 ”네가 지금 나에게 무릎 꿇고 경배만 하면 이 모든 어려운 ! 과정 고통 오해 피 흘림을 생략하고 지금 모든 것을 네게 주겠다는 시험입니다. 사단을 경배하면 인기를 주겠다. 사단을 경배하면 권력을 주겠다. 사단을 경배하면 돈을 주겠다“ 마귀의 시험입니다.






주님은 신명기에 있는 말씀의 검을 사용하십니다. 마귀의 유혹이 오면 적절한 말씀이 생각이 나서 성령의 검을 사용해야 합니다. 늘 우리 생각을 그리스도에게 말씀에 복종해야 합니다. (10)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이 말씀은 신명기에 기록된 말씀입니다.(신6:13)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섬기며 그 이름으로 맹세할 것이니라\"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만 섬기라“는 말은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으면 마귀를 경배한다는 말입니다. 주일날 예배 안 드리면 무슨 이유로든지 딴이를 할 것입니다. 성경 읽을 시간에 성경을 읽지 않으면 무엇인가 딴 짓을 하고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으면 세상을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가 시중들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귀와 천사가 임무교대를 합니다. (11)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사단을 패배하게 한 승리는 아담이후 최초로 사단을 이긴 승리입니다. 마귀는 떠난 것이지 멸망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못 박힐 때까지 마귀는 지속적으로 예수님을 공격합니다. 그러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하여 마귀가 치명타를 입고 최후에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영원한 형벌에 들어갈 것이 마귀의 운명입니다.




(요일2:15-17)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인류의 시조 아담과 하와는 육신의 정욕 먹음직도 하고 안목의 정욕 보암직도하고 이생의 자랑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로 한 나무인지라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고 남편에게도 주어 모든 인류를 죄와 사망가운데 몰아넣습니다. 둘째 아담 예수 그리스도는 말씀의 검 성령의 검으로 마귀의 세 가지 시험,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요 ,이생의 자랑인 시험을 넉넉히 이기고 이 이김의 면역체를 승리자의 말씀의 검 성령의 검을 사용하여 대적하게 한 것입니다.







어떻게 말씀의 검을 잘 사용할 수 있습니까?




성경은 기록된 말씀(written word)/태초에 계신 말씀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살아있는 말씀을 날마다 먹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살아있는 말씀 (living word)입니다. 요6:51)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 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하시니라\" (요6:54-55)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말씀을 읽고 듣고 공부하고 암송하고 묵상하는 다섯 가지의 말씀을 먹는 방법을 잘 사용해야 합니다. 사단은 공격을 개시하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을 펼쳐 들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까지 기다리지 않습니다. 사단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 때를 기다립니다.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는 자는 죄인에 길에 서지 않고 악인의 꾀를 쫒지 않습니다. 오만한 자리에 앉지 않습니다.




말씀을 심령에 가득 채우고 말씀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자에게는 성령께서 늘 말씀으로 검을 삼아 사단의 진을 파하는 강력히 되는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고전15:57)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찌니라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약4:7)




마귀는 우리의 생각 속에 마음속에 의지 속에 불화살을 쏘아댑니다. 의심 두려움 염려 근심 불안 외로움의 마음과 생각을 불어 넣습니다. 그럴 때 성령의 검인 말씀을 붙들고 그 말씀 안에 내 생각과 마음을 올려놓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십자가를 통하여 이루어 놓으신 마귀의 일을 멸하고 승리하신 그 위치에 서는 것입니다. 이것이 말씀의 검 성령의 검으로 마귀를 물리치는 것입니다. (엡6: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