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싸움(6) 당신은평안의 복음의 신발을 신었는가?

엡6:10-17)




로마의 군인들은 반군을 진압하거나 혹은 새로운 영토를 진압하기 위해서 머나먼 길을 행군하였습니다. 로마의 군인들은 기동성의 편의를 위해서 \"날카로운 못이 박힌 두꺼운 신발을 신는 버릇이 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율리어스 시이저는 적들이 아직 적절한 방어태세를 갖추기 전에 선제공격을 해서 많은 성공을 거두었다고 하지요, 잘 맞는 신발이 군인들에게 기동성을 가져다 주는 것입니다.

사람은 발이 편해야 무슨 일이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 고무신을 신고 초등학교에 다녔습니다. 신이 다 닳아서 비포장 도로를 걸을 때 작은 모래 알갱이가 신발에 들어오면 걸을 수가 없습니다.

군인들은 험산 준령을 넘고 가시밭을 헤처지나다가 지뢰를 밟아 발목이 잘리기로 합니다. 병사들이 발이 불편하거나 신발이 불편하면 전투를 할 수가 없는 것처럼 영적인 전투에서도 평안의 신발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군인은 육중한 군화를 신습니다. 군화는 보기에는 그렇게 육중한데 군화를 신으면 발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습니다. 군인은 그 신발만 신으면 어디든 갈 수 있습니다. 돌짝밭, 가시밭, 산길, 들길, 사막지대를 막론하고 어디를 가도 발이 보호됩니다.

신앙인도 이 신발을 신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평생 아스팔트길만 걸어갈 수는 없습니다. 더구나 꽃길만 갈 수도 없습니다. 때로는 가시밭길이나 험한 돌짝밭이라도 가야만 할 때가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평생 형통만 있는 것이 아니고 때로는 실패도 하고 수난도 당하고 눈물도 흘리고 좌절도 겪게 됩니다. 그리고 어떤 때는 운명적인 일을 만날 때도 있습니다. 그러면 속수무책으로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라하게 됩니다. 그때를 극복하려면 평안의 복음의 신발을 신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속에 평강이 없고 불안하면 정서가 흔들립니다. 감정이 흔들립니다. 정서가 안정이 안되면 이성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판단력이 흐려집니다. 수험생이 평안이 없으면 아무것도 생각이 안 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 사람들은 샬롬, 평강이 매일의 인사 말이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 엡6장 15절 말씀을 보시기를 바랍니다. (엡6:15)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본문에서 예비, 준비가 아닌 \"견고한 기초\" 라고 번역을 해야 합니다. 복문은 복음을 준비하여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평안의 복음으로 서기 위한 것입니다. 공동번역에서는 \"발에는 평화의 복음의 신을 갖추어 신고\"라고 원어에 가까운 번역을 하였습니다.

\"견고한 기초를 위한 평안\" 서기 위한 안전한 발판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평안은 견고한 발판이며 견고한 기초인 것입니다. 우리가 마귀에 전쟁을 할 때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평안이 우리의 발의 견고한 기초인 것입니다.

1. 평안의 복음의 신발은 무엇입니까?
이 본분을 이해하기 위하여 에베소서 2장 12절부터 19절까지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엡2:12)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13)\"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와졌 느니라(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15)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17) 또 오셔서 먼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19)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1)그 때에/예수 믿기 전에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와졌 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가 우리의 화평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피로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신 것입니다. 이제는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성도와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하셨습니다. 바로 이 죄사함과 구속의 은혜 속에서 이루신 화평이 우리의 신발로 취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중간의 막힌 담을 헐고 새사람으로 지으셨습니다. 율법의 요구들을 다 이루시고 화평을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보혈의 피로 인하여 율법,죄,옛사람,사탄,세상,규례를 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시고 자유를 주셨습니다.

바울 사도는 우리의 신분을 이렇게 선언합니다. (롬8:1-2)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정죄함이 없는 무죄석방의 해방, 자유가 우리의 평안입니다. 이 평안은 기쁜 소식 바로 복음입니다. 평안의 복음은 우리를 하나님과 하나되게 하고 이방의 믿는 이들과 유대인의 믿는 이들과 하나되게 하려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성취하신 평안은 우리의 복음입니다.

2)이 평안은 어떠한 평안입니까? 우리 주님께서 요한복음 14장 27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 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조건과 환경에서 얻는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조건, 환경에 상관없는 내 속에서 샘솟는 평안을 말씀합니다.

(1)근심과 두려움을 이깁니다.
이 평안을 소유하면 우리 마음에 두려움을 이겨냅니다. (요일4: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며 용납하시며 우리를 위하여 생명을 주시기까지 사랑하심으로 주도적인 사랑으로 우리를 보호하십니다. 이 사랑을 바울은
내가 아직 연약할 때도 사랑하셨고 내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도 십자가로 사랑을 확증하셨고 내가 아직 원수 되었을 때도 나를 벌하시지 않고 참으시며 사랑을 베푸신 그 긍휼하심으로 온전한 사랑을 이루신 것입니다. 이 사랑을 확증한 사람을 더 이상 두려움 없습니다. 그 사랑이 두려움을 몰아냅니다.

(2)마음과 생각을 지키십니다. 주님이 주신 평안은 우리 마음과 생각의 요새를 지키십니다. (빌4:5-7)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 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본문에서 평안을 누리려면 먼저 관용해야 합니다. 용서해야 합니다. 주님이 나를 관용하신 것처럼 용납하고 관용을 알게 함으로 우리 마음이 편안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다음은 우리의 모든 것을 기도와 간구로 주님께 항복하는 것입니다. 감사함으로 기도하지 않으면 평강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 마음과 생각을 붙들어 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3)환난을 이기게 합니다. 주께서 주신 평안은 모든 환난을 이기게 하는 능력입니다. (요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 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주께서 우리에게 평안의 복음을 주신 것은 평안을 누리도록 하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갈망은 우리가 평안을 누리는 삶입니다. 환난을 있습니다. 그러나 넉넉히 환난을 이기신 주님을 우리의 평안의 신으로 신을 때 넉넉히 환난을 이긴다는 말입니다.

어떤 부부 배를 타고 항해를 하다가 큰 폭풍을 만났습니다. 아내가 불안해 하고 안절부절 하는 모습을 보고 남편이 아내에게 칼집에서 칼을 들이대고
아내를 향하여 겨누면서 \"이거 무서워\" \"이거 무서워\" 하였습니다. 그 아내는
빙그래 웃으면서 하나도 안무서요..이 칼이 도둑놈이 들었다면 도적질하고 죽이려하기 때문에 무섭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손에 있는데 뭐가 무서워요\"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의 하나님이 우리를 연다하시기 위하여 환난을 주시고 그 환난을 통하여 연단 하신 후 정금같이 나오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풍랑 속에서도 주무시는 주님의 평안을 누리도록 하신 것입니다.


4)어떻게 평안의 신발을 신을 수 있을까?

우리의 모든 생각을 굴복시켜야 합니다.
(고후10:5)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롬8: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이 있고 영의 생각이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는 육신의 생각을 영의 생각에 굴복한 대표적인 사건입니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입니다.

주의 법을 사랑해야 합니다.
(시119:165)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平安)이 있으니 저희에게 장애물(障碍 物)이 없으리이다\"


그러면 화평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롬5: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그렇습니다. 이제는 하나님과 화목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웃과 화평을 누려야 합니다. 할 수 있으면 이웃과 늘 화목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 자신과 화평해야 합니다. 자신을 소중한 주님의 사랑을 받는 존재로 용납하고 용서하고 받아들일 때 화평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주님이 십자가를 통하여 이루신 평안의 복음의 신입니다.

평안의 복음으로 견고한 기초를 갖추고 서면 이렇게 살 수 있습니다.
첫째는 안정성-안정감을 줍니다. (엡4: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둘째로 균형감-군화 한 짝만 신고 싸움터에 나가는 군사는 없습니다.
균형 잡힌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균형을 잃으면 넘어지는 것입니다.

셋째로 이동성-(순발송)-무장한 군인이라 할지라도 한곳에 머물러 있다면 죽음을 면키 어려울 것입니다.
넷째로 기회-사역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하십니다. 영적으로 서서 싸우는 것뿐만 아니라 복음을 들고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사52:7)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 리 아름다운고\"

마음의 평안을 깨는 마귀와 싸워 승리하려면 평안의 복음의 신을 신어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과 우리의 이웃과 나 자신에게 평안을 상실했다면 실족하고 넘어질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우리의 진리의 띠로 우리의 의의 흉배로 평안의 신발로 취할 때 우리는 능히 대적하며 서며 모든 일을 하고 능히 설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이 평안의 신발을 다 갖추어 신고 서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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