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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시선 카페를 통하여 주님과 말씀과 기도로 깊은 교제생활이 이루어 지기를 소망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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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어떤 것은 부러져 있기도 하였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늘어지고 부러진 가지들에는 아주 커다란 열매들이 주렁 주렁 달려있는 것이었습니다. 그제서야 스펄젼 목사님은 알 수 있었습니다. 그 가지들은 그만 자신들에게 매달려 있는 열매의 무게를 견디지 못했던 것입니다. 풍요로움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요? 모든 이들이 원하고 끊임없이 추구하는 풍요로움, 겉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좋아보이고 최고인 것처럼 여겨지는 그것이 바로 파멸을 자초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풍요로움에 대한 환상에서 깨어나 그것을 경계하고 선을 도모하는 지혜를 소유해야 할 것입니다.
편리를 극도로 추구하고, 부유함을 위해 살고 있는 것 같은 현대의 사람들, 그러나 지금의 세계를 보라. 그 결국이 어떠한가?
(시 52:7) 이 사람은 하나님으로 자기 힘을 삼지 아니하고 오직 그 재물의 풍부함을 의지하며 제 악으로 스스로 든든케 하던
이단과, 사이비종파들, 배금주의, 세상적 쾌락, 음란의 영들이 하나님의 자녀와 교회를 미혹케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알곡 고르기 작업의 시작이 아닌가 싶습니다. 끝까지 견디는 자가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자신과 교회와 이 민족이 구원받는 알곡이 되도록 기도합시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특별히 요즈음 사탄이 목회자들을 음란의 영으로 무너트리는 악령의 역사가 곳곳에서 들려오고 있습니다. 목회자님들은 더욱 기도하셔야 할 것이며 회원님들도 힘껏 기도해주셔서 악령의 역사를 물리쳐야 할 것입니다.)
그동안 회원님들과 합심하여 기도하였던 이치유선교사의 비자의 문제가 대학에 입학 허가로 1년간 허락되었습니다. 기도에 응답하신 대단하신 하나님을 찬양드리며 회원님들의 기도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1. 의료로 최전방지역을 침투하여 마을마다 가정교회를 세우도록 2. 연합하여 아름다운 사역팀을 이루게 하시고 신변의 보호와 언어의 진보가 있도록 기도요청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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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의 참된 헌신
우리가 마리아의 헌신에 있어서 먼저 생각할 것은 마리아의 헌신은 힘을 다한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8절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저가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사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8절)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이전의 제자들과 원수들에게는 한가지 공통 된 측면이 있는데 그것은 모두 \"힘을 다하여\" 자기들의 목적을 이루려는 것이었습니다. 가룟 유다 역시 예수님을 팔기 위 해 힘을 다하여 기회를 엿보았습니다. 최대의 희생과 최대의 배반이 다같이 \"힘을 다하여\"이루어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의미있는 것은 마리아는 재물을 쓰려고 힘을 다하였고, 유다는 재물을 벌려고 힘을 다하였다는 것인데 마리아는 곧 죽을 사람에게 투자한 셈이고, 유다는 산 사람을 잡아 주고 돈을 벌려고 자신의 죄와 정력을 투자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표준에서 본 최선의 노력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 여하에 따라 최악의 노력에 그칠 수 있습니다. 주님에 대한 충성과 사랑이 결여된 나 자신만을 위한 최선의 노력들은 가장 비겁하고 사악한 행위가 될 수 있습니다. 나는 지금 어떤 일에 힘을 다하고 있습니까? 그 일이 혹시 주님께 대한 충절과 헌신을 배제한 나의 헌신은 아닙니까? 또한 내 자신의 유익이 됨에는 틀림이 없는데 우리 주님을 어려움에 처하게 하는 그런 류의 헌신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아래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눅 10:39) 그녀는 자신의 향유로 주님의 발에 부었고 고운 머리털까지도 주님의 발에까지 낮추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가장 귀한 것들을 주님의 발밑에 내려놓았습니다. 그녀는 예수님이 십자가로 가시기 직전에 가장 가까이 주께로 나아갔던 자였습니다. 사실상 마리아는 자기의 인생 전부를 예수님의 발아래 내려둔 자였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바울이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교육을 받았다는 표현은 문자대로 옮기면 \'발아래\'에서 배웠다고 하는 표현입니다. 성경 말씀이 우선되지 않은 봉사는 한 갖 인간의 열심에 그치고 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깨달은 다음에 하나님의 뜻을 분간하는 일이 선행되지 않으면 개인의 삶이나 교회의 삶에 시행착오가 발생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리아처럼 말씀을 놓치지 않으려는 부단한 관심과 마음의 집중이 있어야만 내게 진정한 능력과 거룩한 열심을 일으키게 하는 감동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마르다 처럼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눅 10:40)하면 예수님의 말씀을 마음에 담아 두기가 어렵습니다. 가슴에 주님의 말씀이 담겨져 있지 않는 자의 봉사는 거룩한 열심이 아니고 \"구습을 좇는 옛사람\' (엡 4:22)의 욕심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달리기 전에도 그 곳에 있어야하고 달린 이후에도 그 곳으로 되돌아가야 합니다. 주님의 발은 우리 모두의 출발지이며 종착지입니다. 마리아의 참된 헌신의 비결은 자신을 늘 예수님의 발아래 둔 것이었습니다. 아니면 나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기 위한 것입니까 ?
우리는 \"주의 발아래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던 마리아보다는 부엌에서 부지런히 식사 준비를 하느라고 수고했던 마르다를 더 닮아 가려는 경향이 있습니다(눅 10:39,40) 주님의 평가는 어떤 것이었습니까?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다는 것입니다.(눅 10:42) .
그렇습니다. 평소에 하나님이 말씀을 잘 듣고 배우는 자는 마음이 새로워지므로 옛사람 의 가치관이나 관점에 변화가 생깁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롬 12:2)하게 됩니다. 그래서 무턱대고 분별없이 열심을 내거나 장소와 때를 가리지 않고 일을 밀고 나가거나 혹은 안달을 하며 성화를 부리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은 주님의 발 아래서 인내와 정숙의 자세를 다듬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인도에 따라 침착하게 움직이고 할 일을 잘 살펴서 처리하는 지혜와 믿음을 소유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열두 제자들에게 일차 이차 삼차에 걸쳐 거듭 수난을 예고하셨습니다. 그러나 누구 한 사람도 예수님의 장례를 위해 무엇을 준비한 자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예수님의 말씀에 연합된 자였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예수님의 수난 의 말씀을 받아들였고 깨닫게 되어 십자가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의 뜻을 받들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그 귀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동조하여 자신을 헌신하였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분별하고 조용한 확신 속에서 날마다 준비하는 참된 믿음의 헌신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대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지려는 결정적인 시기에 마리아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하나의 필연적인 사건으로 보고 자신의 옥합을 깨뜨렸습니다.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주님의 말씀을 마리아처럼 평소에 잘 듣고 새기면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분별하며 주님을 섬기는 일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마리아의 옥합 사건은 단순히 그녀가 희생적으로 값진 향유를 예수께 부어 드렸다는 사실 이상의 깊은 의의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은 곧 마리아가 예수님과 십자가 죽음을 하나님의 뜻으로 깨닫고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죽으심에 자신의 전부를 투신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어떤 제자들도 수용할 수 없었던 예수님의 죽음을 조용히 그리고 겸손히 받아들였고 자신까지 바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참 자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위하는 진정한 봉사와 열심입니다. 바로 이 같은 이유 때문에 마리아는 복음이 전파될 때마다 믿음과 헌신의 정신이 무엇인지를 역설하는 대명사로 기념되어야 하며 어떻게 하는 것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잘 섬기고 따르는 것인지를 실증하는 하나의 선명한 본보기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