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문에 수없이 밀려드는 일의 홍수 속에서 만남의 혼란 속에서, 우리는 흔히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한 가지 의무를 놓쳐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하기도 합니다.
그것이 제대로 되어지지 않으면 그 이외의 일들조차 불안하고 위태로워짐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그 일차적인 의무란 무엇일까요?
우리는 루터의 말 속에서 그것을 쉽게 깨닫게 됩니다.
“나는 오늘 할 일이 너무나 많다. 그러므로 3시간 이상 기도하지 않고는 그것들을 모두 다 할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그 모든 이차적인 일들을 할 시간을 주셨다면 1차적인 의무를 수행할 시간도 그만큼 주셨을 것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없으면 없을수록, 우리의 생활 속에서 기도의 부분들을 넓혀야 한다. 그것은 아무 것으로도 대체될 수 없으며, 또 그것으로 인해 어떤 것도 삭제시킬 필요는 없는 것이다.\"
할 일이 많을수록 더 많은 기도의 시간이 필요하다라는 고백은 너무 바쁘니 여유가 생기면 기도하겠노라는 핑계를 무색하게 한다.
(마 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1. 말세에 주님께서 미혹하는 영에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하셨습니다.
이단과, 사이비종파들, 배금주의, 세상적 쾌락, 음란의 영들이 하나님의 자녀와 교회를 미혹케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알곡 고르기 작업의 시작이 아닌가 싶습니다. 끝까지 견디는 자가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자신과 교회와 이 민족이 구원받는 알곡이 되도록 기도합시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 (마24:4)
특별히 개척교회를 하시는 목회자님들의 교회가 주님의 은혜로 부흥 성장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특별히 요즈음 사탄이 목회자들을 음란의 영으로 무너트리는 악령의 역사가 곳곳에서 들려오고 있습니다.
목회자님들은 더욱 기도하셔야 할 것이며 회원님들도 힘껏 기도해주셔서 악령의 역사를 물리쳐야 할 것입니다.)
3. 이영보(이치유)선교사를 위해 기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티벳지역의 선교의 사명을 가지고 사역하는 의료 선교사).
그동안 회원님들과 합심하여 기도하였던 이치유선교사의 비자의 문제가 대학에 입학 허가로 1년간 허락되었습니다. 기도에 응답하신 대단하신 하나님을 찬양드리며 회원님들의 기도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1. 의료로 최전방지역을 침투하여 마을마다 가정교회를 세우도록
2. 연합하여 아름다운 사역팀을 이루게 하시고 신변의 보호와 언어의 진보가 있도록 기도요청입니다
삿 16:19
제목: 성령의 능력을 상실하지 말라
구약의 사화 가운데서 가장 기이하고도, 한편 애상적인 것은 삼손의 이야기다. 그런데 여기에는 또 매우 큰 교훈이 들어 있는 것이다. 삼손은 그 당시에 살았던 출중한 사람들 중에서도 훨씬 뛰어난 인물이었다. 그의 앞길은 한 없이 양양하였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삼손 자신의 범한 핑계 못할 과실로 말미암아, 그는 유위한 앞길을 망쳐 버리고, 대수롭지 않은 업적 얼마를 남기고, 비극적인 종말을 고하고 만 것이었다. 성경 기록을 보면, 거듭 그에게는 여호와의 신이 크게 임했다고 했으며, 그는 처음 얼마동안은 이 힘을 의지하여 자기의 백성 앞에서는 경이의 표적이 되었고, 여호와의 원수들 앞에서는 공포의 대상이 되었었다. 그러던 것이 사사기 16장 19-20절을 보면, 그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의 능력을 상실하게 되어, 마침내 그 처참한 포로의 신세에 떨어지게 되었고, 이방 사람 앞에서 재주를 부리는 굴욕적 곤경을 당하고, 드디어 그 이방인들과 한 자리에서 난폭하고도 불명예스러운 최후를 고하였다. 그런데 오늘날, 불행하게도 삼손과 같이, 처음에는 성령의 능력을 소유했으나, 나중에는 그 능력을 상실하고, 하나님의 버리신 바된 사람은 비단 삼손 한 사람에 그치지 않고, 기독교사에는 실로 수 많은 삼손이 있음을 볼 수 있다. 또 추측컨대, 미래에도 많은 삼손-즉 한 때에는 하나님께서 귀히 쓰신 바 되었다가 나중에는 버림을 받을 사람이 무수히 나타날 것이다. 이와 같은 사람들을 보는 일이야 말로 지상에서 가장 큰 슬픔이라 아니할 수 없다. 자, 그러면 하나님의 능력은 대관절 어떻게 하여 사람에게서 떠나는가? 성령의 능력은 어떻게 상실되는가? 라는 문제를 살펴보자.
1. 첫째로 사람이 하나님께 성별하여 바쳤던 그 몸을 자기의 마음대로 범하게 될 때 성령의 능력은 상실된다.
삼손이 바로 이 좋은 표본이다(삿16:19-,느6:2,5-을 비교) 삭도를 대지 않은 그의 머리는 그가 자기를 성별하여 하나님께 바친다는 특별한 서원 곧 구별(나실인)의 표적이었다. 그런즉 그 머리에 삭도를 댐은, 그가 하나님 앞에서 서약한 성별을 폐지하여 버리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 머리를 깍은 순간, 그의 성별은 끊어지고, 따라서 여호와의 능력도 끊어진 것이었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이를 범함으로 능력을 상실하고 있지 않는가? 한 때 자신을 거룩되이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렸었고, 세상의 야심, 정욕, 유혹에서 온전히 등을 돌리고, 오직 하나님의 종으로 몸을 드려, 주가 원하시는 일을 하고자 나섰던 사람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많으며, 하나님은 또한 그들을 기뻐하사, 성령과 기름으로 세례를 주시고, 귀한 기계로 쓰신다. 그런데 여기에 들릴라가 나타나고, 세상이 다시 그들의 마음을 붙잡게 될 때, 그들은 세속의 유혹에 귀를 기울이게 되어, 마침내는 그들은 그들의 성별의 표를 잘라 없이 하도록 그들의 몸을 세상에 내어 맡기게 된다. 그런 후에는 그들은 이미 성별된 사람이 아니고, 온전한 하나님의 기계가 아닌 즉 하나님은 그들을 떠나고 마는 것이다…. 그 원인은 성별을 충실히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욕의 꾀임, 세상의 유혹에 넘어졌기 때문이다. 이런 분들이여! 옛날의 그 힘을 다시 소유하고자 하는가? 길은 하나뿐이다. 삼손과 같이, 여러분이 머리를 다시 기르라. 다시 하나님께 여러분을 성별하여 바치라.
2. 죄는 능력을 상실케 한다.
이것은 기스의 아들 사울이 그 좋은 표본이라고 할 수 있다. 처음 사울에게는 하나님의 신이 크게 감동하여, 그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의 영광이 회복되었다(삼상11:6-). 그는 이스라엘의 두령이 되어, 오랫동안 이방인의 압제속에서 쇠퇴했던 국운을 바로 세웠다. 그러나 사울은 두 가지의 현저한 죄를 범함으로써 하나님을 배반케 되었고(삼상13:13-14,15:3, 9, 11, 23), 그리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그를 떠나게 되매, 그는 극도의 낭패를 당한 후, 절망에 쌓여 죽었다. 한 때 하나님께서 높이 쓰시던 많은 사람들의 말로가 이와 같은 것이 또한 많다. 죄가 그들에게 틈타게 되자 그들은 하나님께서 금하시는 것을 오히려 피했다. 그렇게 될 때 하나님의 능력도 그들의 곁을 떠나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능력을 소유하는 사람으로서 그 능력을 길이 보호하고자 할진대, 그는 마땅히 하나님 앞에서 고요히 걸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는 끊임 없는 주의를 기우려서 하나님께서 무엇을 명하시며, 무엇을 금하시는 가를 듣고, 분간해야 하겠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에서 끊어짐이 없이 항상 신령한 자리에 머물러 있으려면, 우리는 자주 하나님과 단둘이만 대하는 고요한 시간을 가져야 할 것이다. 적어도 하루에 해가 저물 때 한 번 씩은 하나님 앞에 나와서, 하루 동안에 하나님께서 원치 아니하시는 무엇이 내안에 스며들지나 않았는가를 하나님께서 친히 살펴주시기를 구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그런 것을 보여주시면, 즉석에서 그것을 고백하고, 버려야 할 것이다.
3. 방종은 능력을 상실케 한다.
신령한 능력을 보유하려는 사람이면 마땅히 절제의 생활을 해야 한다. 세상에는 처음부터 죄라고 부르기는 어려운듯한 죄악적 사물이 있다. 그것들을 가까이 하게 될 때, 조만간 그 죄악에 깊이 빠지게 되어, 마침내 성령의 능력을 빼앗기고 마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든지 본능의 요구를 절제 없이 따르며, 호의 호식을 하면서, 신령한 능력을 보유할 수는 없을 것이다. 육적 만족과 영적 충만을 병행할 수 없는 것이다. 성경에도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갈5:17)\' 하셨고, 또 사도바울은 기록하기를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한다 하셨음도 이것을 경계함에서였다(고전9:27,엡5:18).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는 육적 욕망에 대한 유혹물이 홍수 같이 넘치고 있다. 특히 주위를 환기할 만한 점은, 경건함과 호화로움이 또한 공존하기가 어렵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계속적인 능력 안에서 살고자 할진대, 모름지기 우리는 경계하여 방종을 피하는 생활을 하는 가운데, 항상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딤후2:3-)로서의 물심 양면의 태세를 떠나지 말아야 하겠다. 나는 내가 사치에 빠지지 않나 하고 두려워하는 바이다. 죄에 대함과 같은 두려움은 아니로되, 그러나 죄 다음으로 두려워할 것은 사치일 줄로 믿는다. 왜냐하면 이는 매우 적은 것 같으나, 매우 유력한 성령의 역사에 대적이기 때문이다. 오늘 세상에는 실로 기도와 금식이 아니면 나아가지 아니하는 사귀가 많다.
4. 물욕은 능력을 상실케 한다.
예수님 자신이 불러 세우신 열두 제자 중 하나가 배반을 한 원인이 이것이었다. 돈에 대한 욕망이 가룟 유다의 마음을 사로 잡게 되었을 때, 그 처참한 파국의 실마리는 일어났던 것이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악의 뿌리가 되나니…(딤전6:10-)\' 라고 하였지만, 그것이 뿌리가 되어서 생겨나는 모든 죄악 가운데서 제일 큰 죄악은 그것이 신령한 능력을 좀먹게 하는 죄악이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처음에는 신령한 능력을 소유했으나, 돈이 생김에 따라, 그 기묘한 매력에 본심을 빼앗기게 되어, 점점 축재에 열중하게 되고, 인색해지고, 마침내는 거룩한 능력을 모두 상실한 육의 사람으로 떨어졌던가! 비록 정직하게 그 돈을 모았다 할 지라도 그로 말미암아 그가 능력을 잃게 되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런고로 능력에 살고자 하는 자는 항상 예수님의 경계의 말씀-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눅12:15-)\' 하신 명구를 마음속 육비에 큰 글자로 깊이 새겨야만 될 것이다. 또 사람이 탐심에 빠지는 것은 반드시 부자에 한하는 것이 아니다. 극히 빈한한 사람도, 백만장자와 꼭 같이 심한 탐욕의 죄를 범할 수 있다.
5. 교만은 능력을 상실케 한다.
교만은 가장 기묘하고도 위험한 성령의 대적이다. 그것은 이에 말한 여러 가지 원인을 다 합한 것보다도 더 많은 해독을 성령의 능력에 끼치는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여기 어떤 사람이 있어서, 양심적으로 자기의 성별을 범한 일이 없고, 하나님의 뜻을 어긴 일도 없고, 방종에 흐르지 아니하고, 물욕에 대해서도 절제하고, 부단한 경계를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실패했다 하자. 그 원인이 무엇일까? 교만이 그를 넘어뜨린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능력을 주시고, 그를 귀히 쓰신다는 것을 자긍하는 마음이 고개를 쳐들 때, 내 생활은 결실하고, 충성되고, 헌신적이라고 느끼고, 스스로 자랑하는 마음이 생기게 될 때, 하나님은 그를 떠나신다. 하나님은 교만한 사람을 쓰시지 않는다.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벧전5:5-)\'고 성경은 똑똑히 말하고 있다. 바울은 자기 안에 이 위험이 있음을 깨달았다. 하나님도 이를 아시고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 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었다(고후12:7-)\'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교만 때문에 넘어지는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능력을 구하여, 그것을 받고, 큰 은혜를 체험하기 까지 하였으나, 교만 때문에 그 축복을 다 잃고 마는 것이다.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한 사람이었다(민12:3-). 그러나 그가 실패한 원인이 바로 이것이었다. 패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고 그가 부르짖자 하나님은 그 자리에서 그를 버리셨다(민20:12-). 하나님께서 나를 얼마간이라도 쓰시는 줄 알거든 우리는 그 앞에 극히 겸손하자. 더 크게 쓰실수록 더욱 겸비하자.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 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벧전5:5-)\' 하신 성경의 말씀이 항상 우리에게 쟁쟁 울리게 할 것이다.
6. 기도를 소홀히 하면 능력은 떠나간다.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을 받는 것은 특히 기도를 통하여 받게 된다. 하나님의 신이 강하게 임하시는 사람이란 많이 기도하는 사람이다. 존·리빙스턴이 동지들과 더불어 철야의 기도를 한 다음날, 1630년 6월 20일, 어떻게 능력있는 설교를 하였던지, 청중 가운데서 500여명 이란 수가 새로 믿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이것은 기도로 말미암아 능력을 받는 무한한 예들 중에 단 하나에 불과하다. 덕이나 능력은 그것이 예수님께로부터 흘러 나오는 것 같이(막5:36-), 우리에게서도 끊임 없이 흘러나가는 것이다. 그런고로 늘 충만함을 유지하려면 이것을 기도로서 구하여 보충해야 한다. 마치 축전지에서 전기가 다 소모되면 다시 충전을 하듯이 우리의 신령한 능력도 계속 보급을 받아야 하는데, 이것은 기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접촉에서 이루어 질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귀히 쓰시던 사람들도 차차 기도를 등한히 하게될 때, 하나님은 그를 떠나고, 능력은 간곳 없이 되는 일이 매우 많다. 여러분 중에도 하나님과 접촉하는 시간이 줄어짐에 따라 능력을 상실하고 있는 형제는 없는가?
7. 성경을 멀리하면 능력은 떠난다. 하나님의 능력은 기도를 통하여 얻을 수 있음과 동시에, 또한 성경을 통하여 얻어진다(시1:2,3; 수1:8). 성경을 규칙적으로 깊이 명상하는 가운데서 상고하며, 연구함으로써 신령한 능력을 얻게 되고, 반대로 사업에 열중하거나, 교회 봉사에 너무 분주하거나, 다른 공부를 한다든가 해서, 성경을 멀리하게 될 때, 거룩한 능력은 상실하게 된다는 것은 많은 사람이 체험하는 사실이다. 우리가 능력을 유지하고자 할진대, 빠짐 없이 기도하는 가운데, 깊이 명상하여, 성경을 읽고 기억하기를 힘써야 할 것이다. 성경을 등한히 함으로서 많은 사람의 마음이 식어가고 있다. 이상에 말한 일곱 조항이 성령의 능력을 상실케 하는 중요한 원인들인 줄로 나는 믿는다. 나는 지금 남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내게 자주 오는 두려움이 있다면 그것은 이 거룩한 힘을 잃으면 어찌할까 하는 두려움이다. 나는 영생을 잃어버린 근심은 그다지 하지 않는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이미 그것을 소유하고 있다. 나는 그리스도의 수중에 있으니, 아무도 나를 그분의 수중에서 빼앗을 자는 없다(요10:28-29). 그러나 과거에는 그렇게도 귀히 쓰시던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버리시는 것을 볼 때, 나의 걸음은 두려움에 떨리게 되며, 날마다 주께 부르짖으며, 하나님께서 내게서 능력을 취하여 가게 할 모든 것에서 나를 지켜주시기를 간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