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행복

바울의 행복

(고린도후서6:3-10)

현대를 사는 많은 사람들의 공통적인 관심은 행복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실은 얼마 전까지 많은 사 람들의 관심은 출세였습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출세를 해서 가문을 빛내는 입신양명(立身揚名)의 꿈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출세의 지름길인 각종 고시에 매달렸습니다. 신림동에 가면 고시촌이 있어서 고시 를 준비하는 젊은이들이 몇 년씩 고시촌에 틀어박혀서 각종 고시를 준비를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일입니다.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에 고시를 준비하는 사람이 오만 명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최근에 이와 같은 생각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물론 아직도 출세지향적인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 지만 자기 적성과 특기에 맞는 직업을 선택하고 거기에서 행복을 찾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지금의 시대 풍조는 무작정 출세가 제일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적성에 맞는 일을 하면서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것으로 급격히 생각이 변하고 있는 것입니다. 행복이 우리들의 최대관심사로 떠올랐습니 다. 저는 아주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며칠 전에 어느 신문사에서 기자가 나와 인터뷰를 했습니다. 그 기자가 “목사님께서는 과거 사 회정의 민주주의 인권을 위해서 목회를 해오셨는데 지금의 목회의 최대관심은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습 니다. 제가 서슴없이 제 목회의 최대의 관심과 기도의 제목은 어떻게 하면 우리 교인들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 하는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예수를 믿는 것도 행복한 인생을 살기 위한 것입니다. 사실 어떻게 하면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을까 하는 것을 기록한 책이 성경입니다. 실제로 인생을 행복하게 살 았던 사람들의 삶이 기록된 책이 성경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행복한 인생을 살기를 원합니다. 오늘은 성경에 나오는 사람들 중에 사도바울의 인생에 대하여 살펴보려고 합니다.

세상적인 평가로 생각할 때 바울은 행복한 인생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 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고 최후에는 목이 베어져 죽임을 당했던 세상적으로 보면 불행한 인생을 살았 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본인 자신이 행복하게 인생을 살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디모데 후서 4 장 7-8절을 보면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 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 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후회없는 인생, 행복한 인생을 살았다는 것입니 다. 주위에 있는 사람 중 아무도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본인 스스로 행복한 인생을 살았다 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 참으로 행복해 보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도 몰라 서 그렇지 참으로 힘들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행복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행 복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사도 바울은 무엇 때문에 그렇게 힘든 상황에서도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일까요? 보통 세상에는 세 가지의 행복이 있다고 말합니다.

첫째 소유지향적인 행복입니다. 무엇인가를 가짐으로 오는 행복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가질 때 즐거 움과 행복을 느낍니다. 돈을 벌었을 때 원하던 것을 가졌을 때 행복을 느낍니다. 우리가 기억하듯이 한 달 내내 일한 월급 봉투에 받았을 때 행복을 느꼈는데 지금은 온라인으로 월급을 받게 되니 그때의 행복 을 다 잊어버렸습니다. 저도 때때로 강사료를 받으면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모릅니다. 총회에 참석하고 나면 차비로 25000원을 받는데 이것을 받으면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모릅니다.

자동차를 처음 가졌을 때, 처음 장만한 집에 누웠을 때의 행복을 기억하십니까? 소유를 통해서 무엇 인가 가졌을 때 우리가 얻는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행복이 바로 이런 소유지향적 인 행복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에게는 이런 행복은 없었습니다. 만일 행복이 무엇인가를 소유해서 얻 는 것이라면 사도 바울은 행복한 사람이 아니라 불행한 사람입니다. 사도바울은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 는 사람이었습니다. 행복이 소유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사도 바울은 절대 행복해질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 다.

두 번째 행복은 체험지향적 행복입니다. 사람이 무엇을 함으로 말미암아 느끼는 행복입니다. 여행을 하면서, 등산을 하면서, 노래하며 그림을 그리며 운동을 하면서 느끼는 행복과 즐거움이 있습니다. 음식 을 먹으며 행복을 느끼기도 합니다. 몸을 움직이면서 무엇을 함으로 느끼는 행복이 체험지향적 행복입니 다. 무엇을 가짐으로 말미암은 소유지향적 행복보다는 한 차원 높은 행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에는 이러한 행복도 없었습니다. 성경 어디에도 사도 바울이 이런 행복을 누렸다는 이야기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세 번째 행복은 가장 차원높은 가장 본질 적인 값진 행복으로 의미지향적인 행복입니다. 첫 번째 두 번 째 행복은 한계가 있는 행복입니다. 일시적인 행복입니다. 물건을 소유하고 취미생활로 얻는 행복은 한 계가 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수학여행 가면서 처음 버스를 타보았습니다. 제가 그 버스를 탔 을 때 느꼈던 그 행복을 지금 까지 잊을 수가 없습니다. 모든지 한참 지나면 시들해집니다. 체험을 통한 행복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삶에 내포되어 있는 의미를 깨달을 때 느끼는 행복이 진정한 행복입니 다. 우리가 하는 일에 의미를 깨달을 때 느끼는 행복이 진정한 행복이고 이것이 가장 값진 행복이고 진짜 이고 일급행복입니다. 자기가 하는 일이 비록 세상적 평가로 볼 때 실패요 불행한 일이라도 그 삶속에 들 어있는 의미를 깨닫게 될 때 거기에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바울을 행복하게 했던 행복이 바로 이러한 행복이었습니다. 우리가 알듯 바울은 고난의 삶을 살았습 니다. 핍박받고 매맞고 하루도 편한 날이 없었습니다. 감옥에도 오래 살았던 사람입니다. 세상적으로 말 하면 한숨을 쉬고 원망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바울은 행복을 느꼈던 것입니다. 빌립보서에 4장 4절을 보면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말합니다. 어떻게 바 울이 그런 힘든 상황 속에서 행복할 수 있었던 것일까요? 바울은 자신의 당하는 고난의 의미를 깊이 깨달 았던 것입니다. 아무리 좋고 즐거운 것이라도 의미가 없으면 겉핥기의 기쁨이요 행복이요 아무리 힘들 고 어려운 고난의 상황속에서도 그 의미를 깨달으면 거기에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그것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면 겉도는 행복이요 아무리 가난하다고 해도 그 속에 있는 하나님의 뜻을 깨 달으면 거기에 진정한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제 인생 중에 가장 행복했던 때는 노동자들과 함께 생활했던 때였습니다. 그때는 지하 셋방에서 살았으 며 세끼 밥도 못 먹었고 양복한 번 제대로 입지 못했지만 그때 행복했습니다. 세상적으로 불행한 삶이었 지만 노동자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에 대한 의미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행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감옥 에도 갔지만 내가 고생함으로 민주주의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고문을 당하고 매를 맞을 때도 예수 때문에 당하는 고통이라고 그 의미를 깨달으니 그것이 고통이 아니 라 기쁨이 되고 행복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의미가 있을 때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무엇을 가져서가 아니 라 어떤 일을 해서가 아니라 어떤 일이든지 거기서 의미를 찾을 때 행복해 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실패할 때가 있습니다. 시련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가 의미를 찾지 못하면 그것이 우리의 시련 이고 고통이지만 그것이 주는 하나님의 뜻과 의미를 찾을 때 세상적으로는 고통이지만 행복이 될 수 있 습니다. 병들어 아플 때 건강을 빼앗겨 실의에 빠졌을 때 세상적으로는 고통이지만 그것이 주는 의미를 찾을 때 오히려 기쁨이 있고 행복이 있습니다.

행복은 의미와 즐거움의 교차로에 있습니다. 의미가 있어야 기쁨이 있고 거기에 진정한 기쁨이 있습니 다. 바울이 많은 시련과 핍박과 고통속에서도 의미를 깨달아 알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깊은 섭리를 깨닫 고 행복한 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바울은 유명한 사람이 될 수 있었지만 그리스 도를 위해서 다 버렸습니다. 무명한 사람이 되었지만 그리스도를 위한 것이란 것을 깨닫고 바울은 기쁘 고 행복했습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지만 모든 것을 가진 자였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위해서 모든 것을 다 버렸습니다. 물질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있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것이 바울을 기 쁘고 행복하게 했던 것입니다. 바울은 이와 같은 높은 차원의 행복을 느끼며 살았습니다.

무엇을 소유해서 얻는 행복은 진정한 행복이 아닙니다. 한계가 있는 행복입니다. 있다가 없어질 행복입 니다. 체험지향 적인 행복도 잠시 기쁨을 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영원한 기쁨과 행복을 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진정으로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인생의 의미를 깨닫고 거기에서 느끼는 행복입 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삶에 바울과 같은 행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소유에서 얻는 행복을 바라는 유치한 마음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체험을 통해서 행복을 얻으려는 어리석은 마음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바울도 처음에는 그런 행복을 원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 과거의 무 의미한 행복을 다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누렸던 행복은 주어진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든 행복이 었습니다. 행복한 인생을 얻기 위해 무의미한 삶을 버린 것입니다. 행복은 누가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 로 만들어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렇게나 살면서 행복해지기를 바라서는 안됩니다. 진정 행복한 인 생을 살기를 원한다면 행복해질 수 있는 의미있는 일을 찾아서 그런 삶을 살아야 합니다. 지금의 무의미 한 삶을 버리고 소유지향적인 체험지향적인 삶을 다 버리고 의미있는 삶을 살 때 기쁨이 있고 진정한 행 복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의미있는 삶을 선택하여 살 때 진정으로 행복한 인생 사도바울과 같은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행복이 여러분 가운데 함께 하시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