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인 바울
(고린도후서 6:3-10)
여러분, 경계인이란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우리가 흔히 듣는 말은 아닙니다. 경계인은 경계선에 서있는 사람 이쪽에서 보면 저쪽 사람 같고, 저쪽에서 보면 이쪽 사람 같은 사람을 말합니다. 얼마 전 독일 대학 교수인 송두일 교수가 우리나라에 들어왔다가 북한에 대해 이롭게 말했다가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되어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때 송교수는 나는 북한을 돕는 사람이 아니라 남북의 경계에 서있었던 경계 인이었다는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결국 이분이 무죄로 석방이 되었습니다.
경계인은 양쪽에서 오해를 받고 어느 쪽에서도 환영을 받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늘 외롭고 고독 하게 혼자 서있는 사람입니다. 양쪽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경계선에 서있는 경계인은 흔히 마지막에 양 쪽에서 다 배척을 받고 심지어는 배신자라는 소리를 듣게 되는 억울한 운명이기도 합니다.
성경 가운데도 경계인으로 평생을 살았던 사람이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바울입니다. 오늘 본 문 고린도후서 6장을 보면 바울은 자신이 경계인이라고 스스로 말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영 광과 욕됨으로 그러했으며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니 자신 만큼 영광을 받은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 다. 바울은 교회의 지도자로 사도로 전도자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의 인생이 참으로 영광된 인생이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바울이 눈이 나빠서 힘들어하자 자기의 눈을 빼서 바울에게 주고 싶다고 할 만큼 바울을 사랑했습니다. 최고의 영광스러운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사도 바울은 자신이 사도라고 불리는 것을 최고의 영광으로 생각했습니다. 교회를 핍박하던 사람 이 하나님의 거룩한 일꾼 그리스도의 사로라 칭함을 받는 것을 최고의 영광으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바 울의 삶이 그렇게 영광스럽기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의 삶에 핍박과 욕이 있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바울을 미워한 사람들이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밥을 먹지 않겠다고 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이 가 는 곳마다 따라 다니며 바울을 핍박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특별히 오랫동안 감옥생활을 했습니다. 감옥에서 죄수로 사는 것이 참으로 치욕적입니다. 수갑을 차고 포승줄에 묶여 푸른 수의를 입고 치욕적 인 삶을 살게 됩니다. 형이 확정되면 머리를 깎게 되는데 교도관이 머리를 깎을 때 울지 않는 사람이 없 다고 합니다. 바울은 죄수의 몸으로 손과 발에 착고를 차고 포승줄에 묶여서 여러 사람들 앞에 부끄러운 모습으로 오랫동안 배를 타고 로마로 호송이 되었습니다. 이것보다 더한 치욕이 어디 있습니까? 많은 사 람들에게 비난과 핍박을 받고 온갖 억울한 말을 들었습니다. 바울만큼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은 사람이 없습니다. 특별히 예수를 생전에 보지 못한 바울의 사도라는 자격에 대한 시비가 있었습니다. 또한 사도 바울이 돈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돈에 대한 시비가 늘 따라 다녔습니다. 신앙과 사상에 대해서도 시비 와 비난이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저런 일로 오해를 받고 핍박을 받았습니다. 이렇듯 사도 바울 은 어떤 사람에게는 눈을 빼줄 만큼 사랑을 받았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온갖 욕과 비난의 대상이었습니 다. 바울은 영광과 욕됨을 함께 지닌 영광과 욕됨의 경계선에 서있던 경계인이었습니다.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사도 바울은 어떤 사람에게는 아주 유명한 사람이었습니다. 특 별히 이방인들에게는 아주 유명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에게는 보잘것없는 사람이었습니 다.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죽은 자 같으나 살아있고 사도 바울은 죽음과 삶의 경계선에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성경 가운데 인생을 다산 죽음을 앞둔 모습으로 종말론적 인 사고로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 반면 어떤 면에서는 기개가 넘치는 열정과 꿈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죽음과 삶의 경계선에서 살았습니다.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사도 바울은 인생을 심각하고 진지하게 고민하고 염려하며 사는 모습을 살펴볼 수 있으며 또한 아주 긍 정적이고 낙관적으로 항상 기뻐하는 모습을 봅니다. 로마 감옥에 갇혀서도 늘 기쁘게 살았습니다. 근심 과 기쁨의 경계선에서 살았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가난하지 만 부자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부자같고 어떻게 보면 가난해 보이고 부와 가난의 경계선에 있던 사 람이었습니다. 또한 성경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사도 바울은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 의 경계인으로 살았습니다. 당연히 사도 바울은 유대인이었지만 많은 유대인들이 사도 바울을 이방인으 로 오해했습니다. 그러나 이방인이 보면 내 골육을 위해서는 생명까지 내놓겠다는 사도 바울을 유대인으 로 생각했습니다.
이처럼 사도 바울은 철저한 경계인으로 살았던 사람입니다. 영욕이 그의 삶에 있었습니다. 지극한 영광 이 있었지만 많은 핍박과 환란이 있었습니다. 또한 많은 사람의 지지를 받았지만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 리고 2000년의 세월이지나 오늘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삶을 살았다는 것을 모든 사람들이 인 정합니다. 특별히 우리 신앙인에게는 사도 바울의 삶이 우리의 목표요 모범이요 멘토가 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우리의 삶이 사도 바울과 같은 경계인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경계인으로서의 삶이 진 정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경계인의 삶 이것이 우리가 도달해야 할 성숙한 삶의 모습입니다. 문제 는 우리가 이러한 성숙한 삶을 살아가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한편으로 기울어져 경계선을 넘어 서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오늘 우리들이 몇 가지 면에서 경계인의 모습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세상과 신앙인 사이의 경계인이어야 합니다. 어찌 보면 세상 사람과 다를 것이 없는데 어찌 보면 예 수의 사상으로 무장된 철저하게 예수의 가치관으로 확신에 찬 삶을 살아가는 경지에 이르러야 합니다. 예수 믿지 않는 세상 사람에게도 거부감을 주지 않고 거침없이 다가갈 수 있지만 그의 정신은 무섭게 예 수로 무장되어 있어 예수의 가르침과 교훈으로 살아가는 사람, 세상과 예수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신앙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둘째 진보와 보수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경계인이어야 합니다. 어찌 보면 그의 생각과 삶이 보수적인 것 같으나 어찌 보면 진취적인 자유인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신앙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를 믿는 근본적인 신앙과 가치관은 보수적이고 세상을 향해 다른 사람을 향해 열려져 있는 넓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사회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을 향한 눈이 보수적이어야 하고 한편으로 진보적이고 진취적 이어야 합니다. 역사관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역사에 대해 자랑스러운 긍지를 가지고 역사에 어둡 고 부끄러운 면도 가슴에 새길 수 있는 균형 된 모습을 갖추어야 합니다. 역사의 어둠과 밝음의 경계에 서서 자유롭게 넘나드는 역사관을 가져야 합니다.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인간관계의 문제는 한 번 좋아한 사람은 무슨 일이 있어도 무조건 좋게 보고 한 번 싫어한 사람은 그가 무슨 일을 하 든 싫어하는 일방적이고 편향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그의 잘못에 대해 적당히 넘어가면 안 됩니다. 또한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라도 잘하는 일은 좋아하고 칭찬하고 박수 를 쳐줄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많은 경우 우리의 인간관계는 편향적이고 일방적입 니다. 좋아하는 사람은 모든 것이 좋고 싫어하는 사람은 모든 것이 다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 을 다 알면서도 사랑과 존경의 마음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가난함과 부함의 경계인의 모습을 살아야 합니다. 신앙인으로 살아갈 때 가장 중요한 것이 경제생활 입니다.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돈을 대하는가 하는 것이 신앙의 핵심입니다. 아무리 다른 일을 훌륭하게 한다 해도 돈에 대해 기독교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지 않는다면 신앙인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 다 른 사람에게 베푸는 데는 부자여야 하지만 자신에게 대해서는 한 없이 가난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돈을 절약할 줄도 알고 크게 쓸 줄도 아는 자세를 지닐 때 경계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억만금을 가진 부자처럼 그러나 나 자신에게 있어서는 절약하고 검소하게 살아야 합니다. 부자란 돈을 많이 가진 사람이 아닙니다. 돈은 얼마나 많이 가졌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다른 사람을 위해서 후하게 베 푼 사람이 부자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인색한 사람은 그가 얼마의 돈을 가졌든 가난한 사람입니다. 가난 함과 부함의 경계에서 살아야 합니다.
죽음과 사는 것에 경계에 서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날마다의 삶을 하루를 열흘처럼 일년을 백년처럼 희 망을 가지고 소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이 나그네의 삶이란 것을 알고 언젠가 죽음 이 찾아올때 피하지 않는 기쁨으로 맞이하는 죽음과 삶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 님이 삶을 허락하시면 기쁘고 즐겁게 살고 죽음이 닥쳐오면 두려움이 아니라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천년 만년 살 것같이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곧 죽을 사람처럼 죽음을 생각하며 사는 사람이 경계인으로 서 예수를 믿는 사람의 삶이라고 합니다.
정치적 견해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이 여당일 수도 야당일 수도 있습니다. 여당이 지만 잘못된 것에 대해 비판을 하고 야당이지만 잘하는 것에 대해 칭찬하고 지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 와 야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여와 야의 경계선에 설 수 있어야 합니다. 남북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 니다. 북에 대해 무조건 비판하고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남과 북에 가운데 서서 북에 대해 비판적이고 긍정적이고 남에 대해서도 긍정적이고 때로는 비판적으로 남과 북의 경계에 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경계인으로서의 삶을 살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도 경계인으로서의 삶을 사셨 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셨지만 하늘에 속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늘과 땅의 경계인, 사람과 신의 경계 인으로 사셨습니다. 의인과 죄인의 경계에서 살았습니다. 자유롭게 의인에게 다가갔으며 자유롭게 죄인 에게 다가가셨습니다. 예수를 믿는 우리들의 삶이 경계인으로서의 성숙한 삶이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 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여러분 모두에게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