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치가 있는 삶

잔치가 있는 삶

(눅 5:27-35)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던 세상은 만만한 세상이 아니었습니다. 로마의 식민지 지배 하에서 백성들 은 착취당하고 배고프고 고달픈 삶을 살았습니다. 아무런 희망도 없는 캄캄한 암흑과 같은 세상이었습니 다. 누구 하나 마음 놓고 웃을 수 있는 세상이 아니었습니다. 되돌아보면 우리가 겪었던 고난의 역사와 비슷한 삶이었습니다. 일제 강점기의 나라 잃은 서러움, 육이오 한국전쟁의 비극, 군사독재의 강압과 폭 력정치에 하고 싶은 말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던 시대를 살아왔습니다. 저는 요즈음 벌어지는 촛불시위를 보면서 요즈음 같으면 데모도 할 만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물대포를 쏘아대었다고 인권탄압이라고 하지 만 군사독재 시대의 최루탄, 지랄탄, 백골단이란 말을 들어보기는 하셨습니까? 공무원들이 시위에 참가 하고 예비군복을 입고 나온다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었던 일입니다. 우리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가난이 라는 숙명적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배고픔, 집없음, 헐벗음의 고통 속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7, 80 년대 쉬지도 못하고 놀지도 못하고 짐승처럼 살았습니다.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밤낮없이 죽어 라 일하면서 살았습니다. 먹고 사는 일에 목숨을 걸고 살았습니다. 침울하고 웃음이 없었고 재미라고는 찾을 수 없는 심각한 삶을 살았습니다. 이때 누군가 깔깔거리며 웃고 산다면 제정신이 아닌 것으로 생각 했습니다. 역사의식이 없는 사람으로 무시를 당했습니다.

우리가 겪어왔던 고난의 세월을 생각해보면 예수님께서 사셨던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 짐작해 볼 수 있습 니다. 한 점의 희망도 보이지 않는 절망적인 상황, 가슴이 꽉 막히는 세상이 예수님께서 사셨던 세상이었 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웃음이 있을 수 없고, 즐거운 일이 있을 수 없고, 마음의 여 유를 가질 수 없습니다.

제가 며칠 전에 명지 대학교 김정훈 교수가 쓴 재미있는 글을 읽었습니다. 7, 80년대 암울한 시대를 살았 던 우리 나라의 중년 남자들에게 지금 5가지 공통적인 심리적 이상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첫 째 중년 남자들이 큰 가슴을 가지고 있는 김혜수라는 여자 배우에게 열광한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인생 을 재미없게 살아온 중년 남자들이 큰가슴을 그리워하는 것은 퇴행성 행동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은 자신 을 알아주지 않고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변화합니다. 세상에 자꾸만 소외되는 것 같은 불안함 당황스러 움이 푸근했던 어머니의 가슴을 그리워하는 것으로 나타나 큰 가슴을 가진 여배우에게 열광하는 현상으 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집단 자학증세입니다. 그 단적인 예가 중년 남자들의 마라톤에 대한 집착이라고 합니다. 우리 나라에 여러 종류의 마라톤대회가 있는데 마라톤 대회를 열기만 하면 수천 명의 사람들이 모여들어 한 번도 적자를 본적이 없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중년 남자들은 42.195킬로미터를 죽음을 각오하고 뛰어 야 하는 그 고통스러운 마라톤에 매달리는 것입니다. 전문적인 마라토너인 이봉조도 일 년에 3~5정도의 완주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마추어 마라토너들이 죽음을 각오하고 뛰는 마라톤에 열 번 스무 번씩 도전을 합니다. 건강 때문만이 아니라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기고 싶어서 한다고 합니다. 42.195킬로미터를 뛰는 고통을 통해서 자신의 존재감을 느끼는 것입니다. 사회 속에서 자신의 존 재를 확인하지 못하는 불안함을 마라톤의 고통을 통해서 느끼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집단자폐증 현상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남자들이 즐겨 마시는 폭탄주라고 합니다. 아닌게 아 니라 남자들이 모이기만 하면 빨리 취하기 위해 폭탄주를 마십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합니다. 한국 남성들은 오랜 세월동안 짓눌려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지 못해 집단자폐증에 걸려 술에 취해야만 자신의 속내를 이야기한다는 것입니다. 군사독재시절, 직장생활에서 먹고 살기 위해서 아무리 억울한 일이 있어도 말 한마디 못하고 숨죽여 살아왔습니다. 가정에서는 아내 에게 자식들에게 할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살아왔습니다. 폭탄주라도 마셔 술에 취하지 않고는 자기 속내를 털어놓지 못하는 것입니다.

네 번째는 끝없는 스킨십의 요구입니다. 한국 사회는 세계에서 유래가 없는 안마시술소와 퇴폐 업소가 많은 나라입니다. 한국의 외로운 남자들이 스킨십을 통해 외로움을 달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침 새벽 부터 저녁늦게 까지 쉴사이 없이 일만 했던 중년 남성들의 외로움을 근본적으로 고치지 않는 한 이러한 퇴폐업소는 없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다섯 번째는 독수리오형제 증후군입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특별한 현상입니다. 외국 사 람들은 모여 앉으면 연극, 영화, 음악, 음식 여행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나 한국 남자들은 초등학교를 나 온 사람이나 대학을 나온 사람이나 직업에 상관없이 모이기만 하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시국에 대 한 토론으로 밤을 새웁니다. 단적인 예로 우리나라 택시기사들의 세계정세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사회 전반에 대한 뚜렷한 주관과 문제점을 알고 있고 대안과 해결책을 가지고 있습니다. 쇠고기, 대운하, 사교육, 북핵문제, 미국 대통령의 선거 전망이 한국에 미칠 영향까지 알고 있습니다. 우 리나라는 물론이고 지구를 지켜나가는 독수리오형제라는 것입니다. 나라를 잘 다스릴 만한 준비된 대통 령의 식견을 가지고 있는 독수리 오형제제 증후군입니다. 그래서 텔레비전을 보아도 뉴스만을 봅니다. 이들은 지구를 지키는 독수리가 아니라 참새나 비둘기 등 조류 오형제라고 합니다. 세상을 뒤집으려고 큰소리치지만 세상은 뒤집혀지지 않고 독한 술에 이들의 위장만 뒤집혀진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한국의 중년 남자는 세상을 살아가는 재미가 없는 자신의 인생에 행복이라고는 없는 슬픈 운명 의 주인공입니다. 김정훈 교수의 마지막 결론과 충고는 ‘한국 중년 남자들이여 이제부터라도 재미있게 살 아라 자신의 인생에 투자하여 재미있게 지내도록 하여라. 아침에도 푹자고 시간과 돈도 쓰고 놀고 여유 있게 살라’는 것입니다. 근면 성실이 아니라 재미와 행복이 21세기의 새로운 화두라는 것입니다. 기는 놈 위에 걷는 놈 걷는 놈 위에 뛰는 놈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나는 놈 위에 노는 놈이라고 합니다. 인생의 여 유를 가지고 넉넉하게 재미있게 살라는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들으며 예수님의 마음을 생각해보았습니다. 예수님이 살던 시대는 만만한 시대가 아니었 습니다. 웃음이 없고 삶의 여유가 없는 시대였습니다. 그런데도 복음서에 단편적으로 나타난 예수님의 삶을 엿보면 심각하고 진지한 면이 없으셨던 것도 아니지만 -예를 들면 40일 동안을 금식하신 일이든 지 -그러나 때때로 여유와 재미가 있었고 잔치가 있는 삶이었습니다. 마11:19절에 보면 예수님을 반대하 던 바리새파 사람들 서기관들이 예수님에게 비난을 퍼붓고 있습니다.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 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예수는 인생을 진지하게 살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역사의식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세리와 죄인의 친구, 친구라는 말이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세리와 죄인들과 어울려 시국에 대한 의논을 했으리라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아마도 재미있게 노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마땅히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을 만합니다.

누가복음 5장에서도 예수님께서는 잔치를 베푸셨습니다. 레위가 예수를 위하여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하니 세리와 다른 사람이 많이 함께 앉아 있는지라 잔 치는 여유가 있을 때 베푸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삭개오의 잔칫집에도 마태의 잔칫집에도 참가 하셨 습니다. 천국은 마치 잔칫집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당시 나라는 빼앗기고 백성들은 핍박받고 고난받으 며 답답하고 심각한 상황에서 세례요한은 옷도 입지 않고 지냈으며 그의 제자들은 금식을 하며 기도했습 니다. 그런데 먹고 즐기고 사람들과 어울려 다니는 예수님을 비난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역사의식이 없다 심각하지 않다 시대정신이 없다고 말합니다. 본문 말씀을 보면 레위가 베푼 잔치에 참여한 예수님 을 바리새파 사람들이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 금식하며 기도하는 데 어떻게 예수님께서는 잔치에 참여하느냐고 크게 비난합니다. 예수님께서 이들의 비난에 이렇게 대답 합니다. 34절 말씀을 보면 혼인 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너희가 그 손님으로 금식하게 할 수 있느냐 신랑인 예수님이 있는데 금식이 있을 수 없고 심각한 일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신 랑인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삶은 혼인집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잔칫집이라는 것입니다.

사복음서 가운데 요한복음은 AD 100년 경 사복음서 중 가장 늦게 기록된 복음서입니다. 당시는 핍박이 심하던 시기로 예수를 믿는 것 때문에 붙잡혀 죽고 한 곳에 살지 못하고 여기저기 떠돌아다녀야 했습니 다. 요한은 이러한 고난의 역사를 사는 예수님이 어떤 분인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이 가 나의 잔칫집에 가셔서 물로 포도주를 만들어 사람들을 즐겁게 하신 일을 예수님께서 하신 첫 번째 기적 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빌립보서 4장은 사도 바울이 감옥에서 힘들게 살면서 보낸 편지입니다. 바울은 심각한 고난과 핍박을 당 하면서도 즐거워하고 기뻐하라고 계속해서 말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그런 말을 할 만한 처지가 아닙니 다. 여러분 이것이 믿음입니다.

우리나라가 처한 상황이 심각합니다. 나라도 목숨을 바쳐 이 나라를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가 살고 있는 지구가 처한 환경을 보며 나라도 나서서 지구를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우리 는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나라가 어렵고 우리가 걱정할 일이 많지만 하나님께서 선하게 이 나라 이 민족의 역사를 이끌어 가실 것을 믿는 사람들 입니다. 역사의식이 없는 무책임한 말이라고 할 수 있지만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고 신랑 인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곁에 있는데 어떻게 슬퍼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역사 한 복 판에 서 계시는데 무엇을 염려하고 걱정합니까? 마음의 여유를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지 켜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고생만하지 말고 재미있는 잔칫집과도 같은 삶을 살 기를 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생을 여유 있게 사십시오. 하나님은 선하시고 하나님의 주권을 우리들은 믿습 니다. 인생을 즐겁게 사십시오. 여러분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여유를 가지고 돈도 쓰고 시간을 쓰십시 오. 물론 복잡한 현실이지만 하나님의 선하심에 모든 것을 맡기고 마음 편하게 지내십시오. 심각한 상황 속에서도 여유와 잔치가 축제가 있는 삶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바라는 모습입니다. 이 귀한 은혜가 여러 분에게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