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세기 10장의 말씀을 상고해 보십시도. 이제 그다음 제 10장은 온땅에 퍼지게된 노아의 세아들과 그 후손의 역사를 상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역사는 현존構?있는 그 어떤 역사보다도 훨씬 앞서있고 그 소개된 내용도 세밀하고 구체적입니다. 처음에 많은 학자들이 이 역사기록에 대해 의문을 가졌으나 오늘날 지리학과 고고학, 인류학 등이 발전하면서 더욱더 이 말씀의 진리성이 입증되고 있습니다. ???=‘인류 학상 가장 확실한 기록’이라고 말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지 앟으십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이 없으십니다. 마치 값비싼 진주나 보석이 아무리 오래되어도 그 빛을 잃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가짜는 겉으로볼때 똑같이 보이나 시간이 흘러가면 그 허구성이 드러나게됩니다. 본문의 역사 내용들이 세밀하게 언급되고 있는 것은 성경외 역사적 신뢰성을 강하게 드러내 보여줍니다. 성경은 그것이 사실인가를 따지면서 묻기전에, 그것이 곧 하나님의 말씀임을 겸손하게 믿고 인정해야만 합니다. 둘째로 이 역사의 족보기사는 인류의 조상이 한 사람임을 유명한 학자들도 결국에는 성경안에서 말해주고 있습니다. 1절에서 ‘노아의 아들 셈과 할과 야벳의 후예는 이러하니라’ 이것은 우리모든 인류가 아담 이후에 노아를 ? 다시 시작되었음을 나타낸 것입니다. 즉 종족이나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모두가 똑같은 한 조상의 후예임을 나타내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결코 자신의 높음을 자랑하거나 낮아짐을 실망해서는 안됩니다. 더구나 약자를 억누르고 올라서는 폭력이나 죄인을 멸시하는 일과 같은 것은 결코 행해서는 안됩니다. 온 인류가 한 조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서로가 인식한다면 오늘날 이 지구상에서 종족간의 피비린내나는 싸움이나 나라와 나라, 개인과 개인간의 분쟁이나 차별로 사라지고 있씁니다. 3. 모든 인류의 조상이 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전도와 선교를 하도록 합니다. 우리가 전도해야하고 다른 나라에 가서 선교해야만 하는 것을 그들도 나와같은 조상을 가진 친척이요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성이 다르더라도 몇천년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거기에는 한 조상이 있고, 또 나라가 달라도 더 올라가보면 한 조상이 있으므로 전 세계는 거대한 한 가족이 살고 있다는 결론이 납니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지구촌이라는 말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지 않는 이웃, 믿지 않는 다른 민족의 사람들도 내가 직접가서 전도해야할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제부터는 노아의 세아들 셈과 할과 야벳의 자손들에 대해 살펴 보기로 하겠습니다. 첫째는 셈의 자손입니다. 창세기9:26에 보면 셈은 노아로부터 ‘셈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라는 칭찬을 받고 있습니다. 셈은 노아의 맏아들이었습니다. 셈이란 곧 ‘이름’이라는 뜻.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사는 민족이라는 뜻이며, 그러한 이름때문에 훌륭한 사람이 될 것임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과거나 오늘이나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사랑하는 개인이나 민족을 축복하셔서 이름위에 뛰어난 이름을 갖게 하십니다. 그 아들은 5명인데, 그들은 시날 평야에서 유브라데강 동기린, 즉 에덴의 동편으로 건너가 살았는데 오늘의 중동사람이나 아시아 사람들이 그 부류에 속하며 황인종 계통의 민족이 한주로 셈족! 그런데 후에 아브라함은 다시 그 유브라데 강을 건너와 가나안에서 살았는데 유브라데강을 건너온 사람이라는 뜻에서 ‘아벨’ 즉 히브리란 이름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즉 히브리란 말은 ‘건너온 사람’이라는 뜻이며 아브라함의 믿음은 건너가는 믿음 이었고 후에 여기에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가 나시게 되었습니다. 셈족은 종교심이 많고 농경문화의 꽃을 피웠습니다. 이 셈족에게서 세계 종교가 비롯되었는데 중동에서는 이스람교, 인도-불교, 중국-유교가 각각 발생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종교들은 원래 하나님께서 의도하셨던 유일한 하나님에 대한 참된 예배에서 벗어나 인간중심의 예배종교로 바꾸어가고 말았습니다. *오늘날 심지어 기독교 안에서도 다른 종교들로 원래는 한 종교였으므로 대화를 하여 서로 합쳐 보자는 연합운동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 목사가 불교의 예불에 참석하기도하고 서로 만나 대화한다는 모임을 갖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우리가 개인과 개인, 국가와 국가 사이에 대화를 가지자는 것은 조상이 같다는 이유에서 가능하지만 따라서 기독교와 타 종교와의 대화는 그 믿음외 대상이 전혀 다르기 때문에 도저히 불가능한 일입니다. 기독교이외의 다른 종교들은 사람이 곧 하나님이기 때문에 우상을 숭배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이유에서든지 기독교와 타 종교와의 대화는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는 안됩니다. 그러기에 기독교는 우상에게 절하지 않고 타협하지 않음으로써 숫한 죄를 흘리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나 다른 종교는 핍박이 올때 언젠 쉽게 타협해 버렸고 그로 말미암아 종교 고유의 형통성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 한국을 제2의 이스라엘, 혹은 하나님께서 이제는 선민의 자격을 유대인에게서 한국인에게 넘겨주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세계를 선교해야 합니다. 세계의 어머니 교회 역할은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세계적인 선교의 비죤이나 확신을 가진다는 것은 결코 잘못된 일은 아니며 오히려 바람직한 일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성경적인 조건을 보면, 한국은 이스라엘 단지파가 우리를 알 나이 산맥을 지나와서 세웠으므로 단군이라고 했다고 하는지, 셈족이므로 선, 즉 옛날 고조선이나 조선의 선을 사용했다든지 혹은 영어로 선택되었다는 ‘Chosen\'(츄준)이란 단어가 ’조선‘이라는 말이 모든 한국은 ’선민이다‘하고 맣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 아닐수 없습니다. *국가적으로 볼때 유대인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지만 그 택했다는 의미가 그들 만을 구원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이러한 편견적인 생각때문에 유대인은 교만하게 되었고 하나님으 버림을 받았습니다. 유대인이 택한 백성이란 이 민족을 통해 전 인류를 구원하는 구속의 역사를 이루시며 하나님의 섭리를 모본적으로 나타내 보여주려는 목적이 있게했다는 것입니다. 그들로 말미암아 성경, 메시아가 약속되고 그들의 역사속에 하나님의 역사가 어렵게 나타났었는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믿는 자가 다 택한 백성이요 성도들입니다. 여기에는 특히 민족이나 국가의 일원은 전혀 의미가 없습니다. 믿는 백성이 곧 셈족이요 믿는 사람이 곧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2. 할의 자손임-할은 아버지의 수치를 형제들에게 고하는 흉을 봄으로써 저주를 받은 민족의 조상이 됩니다. 함이란 ‘검다’ ‘뜨겁다’의 뜻을 가지고 있을때 노아가 저주할때를 뜨거운 아프리카 열대지방에서 새까맣게 탄 흑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또한 가나안 7족속=이스라엘을 괴롭혔습니다. 그들도 종이 된다고 했는데 실제는 얼마전까지만해도 흑인은 노예생활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또한 이 한 조상이 지은 죄는 대대손손 엄청난 비극의 역사를 만들어 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할의 자손을 바라보면서 내 자신을 하나님앞에서 늘 살피면서 내 후손들에게 아름다운 기업을 물려줄 수 있어야만 하였습니다. 3. 야벳의 자손 ‘열린다’ 야벳의 후손은 10:2-5에 나오는데 그리스, 로마 등이 있습니다. ??지중해 연안도시와 고멜(색슨)=영주, 마곡, 야완(그리흐), 두발, 메섹 등의 조상이 되었고 백인종이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야벳에게는 창대케하는 축복이 주어졌고 야벳의 후손은 후에 땅을 넓히고 기계문명을 이루어나가 한때는 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를 자기의 식민지로 삼았습니다. 셈족속이 종교적, 정적이라면, 야벳족속은 문화적, 동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시간까지 세계운명을 지배해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창10장에서 한 사람의 순종하는 믿음이 그 후손들에게 얼마큼의 축복을 가져다 주고 있는가와 또 한 사람의 상수와 잘못이 그 후손들에게 얼마나 큰 비극을 가져다 주었는가를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바라기는 우리는 이 역사를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셈의 후손들이 받았던 신앙적인 축복, 야벳의 후손들이 받았던 물질적인 축복을 다 받아 누리시는 성도님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자손만대에 셈과같이 아름다운 신앙의 이름을 새겨주며, 야벳처럼 날로 창대케하는 ‘열리는’역사가 이어지게 되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