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4장 강해

창14장 강해



지난 시간에는 아브라함이 그 조차 롯을 구출했던 사실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그가 승리하여 돌아오는 장면이 창14장에서 서술되고 있습니다. 그가 승천하고 돌아올 그때 소돔왕이 사페 골짜기까지 나와서 영접하였고 실렘왕 멜기세덱로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와 아브람을 영접하였는데, 멜기세덱은 살렘왕이었을 뿐만 아니라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기도 했습니다. 이 제사장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을 영접하고 또 아브람에게 크게 축복도 하였습니다. 특히 아브람이 전쟁에서 돌아올대 살렘왕이오니 제사장인 멜기세덱을 찾아 간 것은 우리들에게 여러가지 교훈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흔히 전쟁에서 승리했거나 어떤 일을 성공적으로 성취한 사람은 거의 대부분의 자기 성취욕이나 교만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때그때 보면 사람들은 무엇을 얻고 성취하기 전에는 하나님앞에 열심히 엎디어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리고 무슨급한 일이 일어날때는 금방 깨닫고 교회를 찾거나 기도원을 찾아갑니다. 그러나 무슨 일이 잘 이루어지게 되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이 모든 것을 완전히 잊어 버리고 본래의 자신에게로 돌아가 버리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 나와 문둥병을 고쳤던 10사람의 이야기에서 그러한 사실들을 잘 읽어볼 수 있습니다. 분명히 그를 열사람은 그짐을 받았는데 그것을 감사하러 나온 것은 단 한사람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아홉은 어디 있느냐?’고 한탄하시는 음성을 들어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굳이 그들에게서 어린 감사를 받으려고 하신 것이 아니라 감사치 못하는 그들의 완악한 파문을 가슴 아프게 여기신 것입니다. 로마서 1장에 보면, ‘불신앙의 특징 중 하나가 감사치 못하는 마음’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만일 누군가가 은혜를 받았노라고 하면서 믿음을 가졌노라고 하면서 감사하는 마음이 그 생활과 행동에서 나타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 믿음을 다시 한번 점검해 보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 믿음을 다시 한번 점검해 보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믿음 가운데서 한가지 두드러진 특징을 발견하게됩니다. 그것은 아브람은 어디에 가서나 3가지 일을 합니다. 1. 장막, 2. 우물을 파고, 3. 제단을 쌓은 이것은 그후 족장들의 일상적인 상립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당시 장막과 ??은 인간상립에 없어서는 안될 필수적인 효소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에게는 한가지가 더 있었습니다. 그것은 제단을 쌓은 것입니다. 이 제단에서는 크게 두가지 제사가 드려집니다. 하나는 속죄제고 하나는 감사제입니다.
속죄제는 죄를 속하기위해 희생제물을 잡아 제사드리는 것이요 감사제는 속죄함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감사하면서 곡식과 과일등을 드리는 제사입니다. 이 돌은 꼭 필요한 제사입니다. 우리가 에배드린다는 말은 제단을 쌓는다는 말로도 표현하는데 우리의 예배는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피로 흘려 주심으로 모든 죄를 속해주신 사실을 생각하면서 우리의 감사기도와 찬양과 헌금 등에서 나타내고 구체적인 행동입니다. 아브라함이 먼저 대제사장인 멜기세댁을 찾아간 것은 속죄와 감사의 이유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여기에서 멜기세덱과 예수님과의 비교해 말할 수 있습니다.
1. 멜기세덱은 앞서 앞서 아브람에게 떡과 포도주를 주었는데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떡과 포도주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멜기세덱의 떡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성찬식을 이미 예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찬식은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 자신의 몸을 찢으시고 피를 쏟으신 것을 나타내 보여주고 있습니다.
2. 창세기 14:18을 보면, 멜기세덱은 살렘왕이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고 하였는데 히7:2에서는 의의 왕이요 평강의 왕이라고 하였습니다. 한 사람이 이와 같이 제사장의 직분을 겸하여 가지고 있는 것은 예수님을 방불케 하는 점이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제사장, 왕의 직분이외에도 선지자의 직분을 소유하고 계십니다.
3. 멜기세덱은 아브람에게 축복하였는데 축복하는 사람을 축복을 받는 사람보다 높다는 원리가 있습니다.
히7:7은 멜기세덱에 관해 언급하면서 ‘폐일언하고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 복빎을 받느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축복을 받은 아브람은 축복을 하는 멜기세덱보다 낮다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멜기세덱은 하나님보다는 낮고, 아브라보다는 높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멜기세덱이 과연 누구냐에 대해서는 오늘날까지 신학적으로 명확한 답변을 해두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 부분에만 그의 기물이 고급회고는 있고 그외 성경 어느곳에서도 나타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히7:3에 보면 멕기세덱은 ‘아비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이 하나님의 아들과 방분하며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고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와같이 멜기세덱은 장차 오실 멜기세덱인 예수 그리스도를 상장적으로 예표적의 보내준 사람입니다. 우리 격언 가운데 ‘서리 온 다음에 눈온다’는 말이 있습니다. 먼저 멜기세덱을 통해 모형으로 보여주신 다음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위에 강림하셨습니다. 이미 예수님은 그가 오시기 몇천년에 분명히 언급됩니다. 얼마나 틀림없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약속의 성취입니까? 그데 오늘 이 말씀에서 우리는 십일조에 대한 언급을 볼 수 있습니다. 아브람이 십일조를 바쳤다는 이 사실에서 우리는 그의 물질 생활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는 먼저 하나님의 것과 자기것을 구별할줄 알았습니다. 십일조는 곧 하나님의 것과 내 것을 구별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십일조에 대해 이야기하면 그것은 다 구약시대의 율법에 정해진 것이기 때문에 신약에 와서는 굳이 율법적으로 드릴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전적으로 잘못된 생각입니다. 십일조는 분명히 성경에 하나님께서 드리라고 명하신 것입니다. 여기에는 그 어떤 이유나 변명이있을 수 없습니다. 십의 일은 하나님의 것이니 마땅히 하나님께 드려야 할 것입니다. 혹 어떤 사람은 십의 하나는 내것이교 열의 아홉은 우리 것이니 내 마음대로 다 써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사실입니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고보면 열의 아홉은 사실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 아홉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은혜로 주신 것입니다. 마치 아버지가 아들에게 돈 천원을 주면서 천원중 9백원은 네 마음대로쓰고 100원은 내가 필요한 것을 사달라고 할때 900원은 내가 마음대로 써도 되지만 그들의 원 소유주는 아버지십니다. 그러므로 아홉은 쓸때에는 내 것이라고 생각말고 하나님의 돈을 쓰는 심정으로 써야만 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요 우리가 돈을 어떻게 벌게됩니까? 첫째는 내게 건강이 있기 때문입니다. 건강 없으면 어떻게 일할 수 있겠습니까? 그다음에는 지혜입니다. 머리를 잘 써야만 합니다. 그러나 그보다도 더 근본적인 것은 하나님께서 생명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돈을 많이 벌다가도 갑자기 하나님께서 숨을 거두어가 버리면 그 순간에 모든것이 다 ??가 되고 맙니다. 바로 이 사실을 깨달은 자에게는 십일조는 내라 말라 내어야 하느냐 마느냐 더이상 따지거나 설명해야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둘째로 생각하는 것은 십일조는감사의 표식이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힘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 바친것은 싸움에서 이기기 전 사실과 많은 전리품을 얻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축복을 받기 원하거나 자기 이름을 내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이 십일조를 내기 이전, 멜기세덱은 이내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실로 엄청난 축복들을 많이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 은혜를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것을 구별하여 드려야만 하는 것입니다. 혹 어떤 사람은 십일조를 잘 바치면 돈 많이 받고, 사업도 잘된다고 말합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필요하시면 ‘돈도 많이 벌고, 사업도 잘되게 하실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이 축복이 아닙니다. 돈은 일반악의 뿌리나 ??하고 했습니다. 돈 없는 것은 축복이 될 수 있습니다. 즉 돈을 벌면 독약 등에 비유하는 사람이 있다. 이러한 복들을 언젠가 이 세상에 다 놔두고 갈 복들.
우리의 진정한 복을 이후에 저 하늘나라에서 받게 될 영원한 복입니다. 이 하늘의 복받은 자는 이 세상의 물질에 대해 그렇게 큰 욕심과 집념을 갖지 않습니다. 10의 1조, 아니, 10의 9조라도 하나님께 필요하다면 다 바쳐야 합니다. 아무쪼록 우리 성도님들은 아브람과 같은 믿음만 소유할 것이 아니라 물질상립에 있어서도 성경에서 명하고 있는대로 잘 실천이행함으로써 이후에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한 축복을 받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