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5장 강해
창세기 15장 강해
앞의 제14장에서는 아브라함이 북방의 왕들과 싸워 승리하고 돌아오는 길에 살렘 왕 멜기세덱에게 감사와 십일조를 드렸던 사실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본장에서는 하나님과 아브람 사이에 세워질 언약에 대한 여러가지 사실들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1. 1절 말씀에 보면, ‘이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는 귀절이 있습니다. ‘이 일후에’라는 것은 아브람이 북방의 4왕과 싸워 승리를 거두고 난 이후를 말합니다. 아브람이 승리를 거두기는 했지만 강력한 그들의 군대가 언제 또 다시 연합하여 보복을 하러 올른지 모르는 형편이었습니다. 더우기 소돔왕의 선물을 거절한 것도 어쩌면 그로 하여금 좋지 않은 인상을 주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두려워하는 아브람을 향하여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 黴탔?방패와 큰 상급이 되시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방패는 옛날 군인들이 전쟁에서 싸움할때 적군의 창과 활을 막아주는 방어의 무기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방패가 되셔서 아브람을 지켜주고 보호해 주실 것임을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여러가지 위험한 일들이 우리 앞을 스쳐가게 됩니다. 우리가 길을 걸어가거나 차를 타고 가거나 직장에서 무슨 일을 하게 될때 예기치 않은 일들이 생길 수 있습니다. 혹은 자녀들이나 식구중 하나가 무슨 변고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 때로는 나 자신 혹은 식구중 누구가 갑자기 몸에 이상이 생겨 병원에 입원하거나 위급한 수술을 받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사랑하는 자들을 실족치 않도록 늘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사실상 우리들은 이 땅 위에서 하루도 살 수 없을 것입니다. 더우기 우리들에게 있어서 가장 무서운 것은 우리의 영혼을 파멸에도 쓰러뜨리기 위해 원수 마귀가 쏘는 유혹의 화살과 죄악의 창칼입니다. 마귀는 할수만 있으면 성도를 엿보다가 헛점만 보이면 주깃 활시위를 당기며 칼날을 번득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더불어 늘 동행하는 성도는 하나님이 친히 방패가 되시사 이 모든 것들을 막아주심으로 두려워 하거나 겁낼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의 방패로 삼으시사 십자가에서 우리 대신 죄악의 창에 찔리게 하심으로써 우리를 영원히 마귀의 죄의 권세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2.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나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방패가 되신다는 것이 하나님께서 모든 위험에서 보호해 주시겠다는 소극적인 의미에서의 은혜의 약속이라고 한다면, 큰 상급이 되신다는 것을 적극적인 의미에서 축복과 은혜를 상급으로 주실 것임을 약속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가리켜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시라고 소개하고 계십니다. ‘전능하시다’는 것은 충분한 것을 나타냅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받는 상급을 너무도 제한되어 있습니다. 지난번 88올림픽에서 우승한 선수들에게는 금메달이 수여되고 그밖의 은메달, 동메달이 각기 수여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메달들은 만든 재료비등으로 계산하면 실제로 얼마되지 않는 것들일 뿐 아니라 그것도 세월이 흘러가면 서서히 사람들의 입에서 잠잠해지다가 결국 죽을때는 이 세상에 소리없이 다 놔두고 가야할 것들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장차 주실 상급은 충분한 상급이요 완전한 상급이요, 영원한 상급이 될 것입니다. 그는 온 우주만물을 상속자인 우리들에게 상급으로 주실 것이라고 분명히 약속하셨습니다. 그다음 하나님의 상급은 우리의 기쁨의 상급이 되십니다. 시편 기자는 ‘나의 묵상을 가상히 여기시기를 바라오니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 하리로다’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아름다운 것과 사랑스러운 것, 그리고 모든 기쁨의 근원이 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수고를 알아 주시며 이 수고에 대한 상금을 주실 것을 생각할때 무한한 기쁨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이 놀라운 기쁨을 생각할때, 찬송가 474장에 있는대로 ‘주 예수의 근원의 은혜로다! 참 기쁘고 즐겁구나. 그 은혜를 영원히 누리겠네, 곧 평안히 쉬리로다!’라는 찬송을 소리높여 부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다시 본문으로 돌아갑니다. 아브람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나는 너의 방패와 상급이 될 것이라는 말씀을 듣고 다음과 같이 답변하고 있습니다.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고 하십니까? 나는 자식이 없으므로 다 메섹 사람 엘리에셀이 나의 상속자가 될 것이니라’ 이미 하나님은 아브람을 부르실때에 ‘내가 너로 큰 만족을 이루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는 것을 많은 자손을 허락하실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이 약속은 가나안땅에 살면서도 거의 25년 동안 이루어지지 않게 되었을때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마음은 매우 초조했을뿐만 아니라 그의 체념상태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브람 자신은 이제 아이를 낳기에는 너무도 늙었고, 또한 사래는 이미 여자로서 아이를 가질 나이를 훨씬 넘기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할수없이 당시 습관을 좇아 자기의 종 가운데서 가장 신실한 종이었던 엘리에셀을 자신의 상속자로 청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엘리에셀이 너의 후사가 되지 아니하고 네 몸에서 날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네 몸에서 날작 네 후사가 되리라’는 말씀은 아브람에게 있어서 참으로 믿기 어려운 말씀이었을 것입니다. 또한 인간적으로 볼때에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말씀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15장 6절 말씀을 보면,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이 외로 여기시고’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아브람의 절대적인 믿음을 볼수가 있습니다. 이 믿음을 가리켜 사도 바울은 로마서 4:18절에서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고 믿었으니’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실은 아브라함은 믿을 수 없는 것을 믿었고,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랐습니다. 이 성주의나 합리론적으로 볼대 믿을 수 없는 것을 믿었다고 하면 그것은 희망한 것을 믿었다고 할 것이며, 또한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랐다고 하면 그것은 가능성도 없는 것을 바랐다고 일소에 붙여 보리고 말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서 기독교회 믿음의 본질, 소망의 실상을 다시한번 깊이 생각해 보아야만 하겠습니다.
우리가 만일 인간이성으로 믿을 수 있는 것만 믿고 바랄 수 있는 것만 바란다고 한다면 그것은 기독교회 믿음은 아니고 소망도 아닙니다. 이성적으로 믿을 수 있는 것이야 누가 못 믿겠으며 바랄 수 있는 것이야 누군들 바라지 못하겠습니까? 거기에는 하나님의 계시도 필요없고, 말씀이나 능력도 필요가 없습니다. 오직 이성이 있을뿐이고 합리가 인정될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에는 인간의 이성을 초월하고 합리적인 자연법칙을 넘어서서 하나님의 절대적인 권위와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창세기 1장 1절에서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부터가 우리의 이성으로는 믿을수가 없고 오직 믿음으로만 믿을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백세에 이삭을 낳은 것이라든지,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육지같이 건넌 것이라든지, 다니엘이 사자굴에 들어 갔어도 무사했던 일이라든지,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 풍랑이는 갑절의 바다를 잔잔케 하시고, 죽은 사람을 살리시고, 자신이 친히 부활하시고, 하늘로 승천하신 일들은 다 ㅎ나님의 비밀과 능력 안에서 과학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기 때문에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기 때문에 소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이 믿을 수 없는 것을 믿는 믿음을 보시고, 이것을 그의 의로 여기셨다고 하였습니다. 의로 여겨 주셨다는 말씀은 원래 의인이 아니었지만 믿음을 보시고 아브람을 의로운 사람으로 ‘간주해 주셨다’는 의미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다’는 이신 창의의 교리 그 성명하면서 아브라함을 그 본보기로 소개히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의 믿음을 보시고 그를 의롭다고 해주신것같이 우리도 믿음으로 의롭다 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원리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로마서 3:28에서는 이 원리를 너무도 분명하게 밝혀주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회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하나님께 의롭다 인정함을 받은 아브람은 하나님께서 이르시는대로 각종 정결한 짐승과 새들 중에서 희생의 제물을 준비하여 하나님을 위한 단을 쌓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제사를 통해 자신이 아브라함의 의를 인정하신 사실을 확증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예배의 제단을 쌓는것은 하나님께 의롭다 함을 받기 위함이 아니라 아브람과 같이 이미 의롭다하신 사실에 대해 감사를 드리고 이에 대해 확증을 받은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 제사가 끝난 후 이상중에 아브라함에게 새로운 사실들을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고난을 당한 후에야 비로소 약속된 축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오늘날 믿음의 의롭다 함을 얻은 우리에게는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당해야하는 일이 남아있습니다. 우리가 이 십자가로 지고가는 동안 우리는 나그네와 객이 되는 고난과 역경을 겪게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를 부르신 성도에게는 언제나 영광과 축복에 대한 약속이 있습니다. 이 영광을 우리가 잠시 당하는 고난과 결코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에게 모든 축복이 보장되고 약속의 땅을 휴업으로 주리라는 약속이 후에 실헌된 것처럼, 아브라함과 같은 말씀을 가진 자에게는 하늘나라의 영접할 축복이 보장되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유??? ??릴 그날이 분명히 오리라 믿습니다. 이 사실을 여러 성도님들을 의심없이 그대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믿고 구하는 것이 그대로 응답되고 소망하고 바라는 모든일이 다 그대로 이루어지는 믿음의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