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24장 강해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이삭이 리브가를 만나 결혼하게 되고 과정이 상세히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미 사라는 127세에 죽어 마므레 앞 막벨라 굴에 장사되었고 아브라함은 나이가 많아져 이제 죽음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그는 인생을 마무리 짓는 시점에서 아들 이삭에게 배필을 정해 주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어느날 자기의 늙은 종을 불러 하늘의 하나님, 땅의 하나님께 맹세케하고 말하기를 ‘너는 이 가나안 족속의 랩 중에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9내를 택하지 말고 내 고향 내족속에서는 가서 거기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아브라함은 종에게 하늘의 하나님께, 땅의 하나님께 맹세케 했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은 곧 하늘과 땅 어느곳에라도 임재해 계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실로 하나님은 가나안 땅에만 계신것이 아니라 메소포타미아에게로 계시고 세계 어느 구석구석에도 임재헤 계심을 나타내 보여줍니다. 예레미야서 23:23에 보면,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가까운데 하나님이요, 먼데 하나님은 아니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하나님은 천지에 충산계시고 이것을 주관하시매 그 역사를 섭리하시는분! 그래서 어떤 사람은 우주는 하나님으 활동무대요 인류 역사는 하나님의 행동과정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혹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교회에만 계시고 집이나 직장에 가면 마치 하나님이 안계신 것처럼 혹은 하나님은 주인날에만 역사하시고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역사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봅니다. 흔히 외국에서 보면 한국에서는 신앙생활을 잘 했는데 연지에 와서는 잘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교회 나오라고 하면 잠시 쉬고 있다고 말하거나 여기서 공부나 마치고 가서 열심히 믿겠노라고 말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은 마치 한국에만 계시고 외국에서는 그 상황에 따라 적당히 내버려주시는 하나님인양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미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하늘과 땅을 주관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믿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우리는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결혼시키는데 문제에 있어서 보여준 몇가지 특징적인 점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1. 아브라함은 자기의 며느리가 될 여자를 가나안 족속의 땅 중에서 취하려 하지 않고 그의 고향에 가서 택하려고 했습니다. 그는 가나안 땅에서 살면서 그들의 타락한 우상숭배를 직접 보고 느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과 더불어 효인관계가 맺는다는 것은 그들에게 동조하고 결합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되면 굳이 우상숭배를 만연했던 그의 고향 갈대아 누르를 떠나야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후손에게 약속의 땅을 허락하신 것을 우상을 배척하고 하나님을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토록 하기 위함이었는데 또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는 것이요 자신의 후손을 타락시키는 엄청난 죄를 짓는 것입니다. 우리는 또한 왜 배필을 고르러 보내면서 당사자인 이삭을 데리고 가지 않았을가 하는 의문을 품게 됩니다. 그 당시에는 서로 중매를 통해 결혼하기는 했지만 소위 맟선이라는 것을 보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때 아브라함은 종만 보냈고 당사자인 이삭은 보내려고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이유에 대해 매튜텐리라는 주석가는 이렇게 추측하고 있습니다. 즉 이삭이 자기 배필을 택하려고 고향으로 돌아갔다가 어쩌면 거기에 정착하고 싶은 유혹에 빠지게 되지나 않을까하는 배려에서부터 비롯된것으로 알려지고있습니다. 그럴것이 아닙니까? 지형적으로나 당시 상황으로 볼때에 갈대아 우르는 가나안의 그것과는 도저히 비교되지 않고 부요한 곳입니다. 그리고 가나안에는 친척이라고는 롯의 식구와 자기들 밖에 없지만 갈대아 우르에는 역시 많은 친척들이 살고 있기 때문에 그곳에 가서 큰 환영과 접대를 받고 보면 마음이 흔들려 그곳에 머물러 살려는 유혹을 받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늙은 종이 아브라함에게 묻습니다. ‘만일 여자가 나를 좇아 이 땅으로 오고자 아니하거든 내가 주인의 아들을 주인의 나오신 땅으로 인도하여 돌아가리이까?’ 그때 아브라함은 ‘살다 내 아들을 그리로 데리고 가지 말라’고 또 호히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비록 육신은 늙었으나 믿음에 있어서는 아직도 푸르고 젊은 아브라함의 모습을 바라볼 수가 있습니다. 믿음에는 결코 양보나 타협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것이 만일 믿음이라면 그곳이 수천만리 갈대아 우르이든지간에 찾아 보내어야만 합니다. 믿는 성도는 무슨 일을 하든지 어느 곳에 있든지 믿음으로 시작하신 믿음으로 생각하고 믿음으로 바쳐야만 합니다. 자녀의 결혼문제만 해도 그렇습니다. 믿는 성도의 자녀는 될수있는 대로 믿는 성도와 결혼하도록 노력해야만 합니다. 어떤 경우는 내 아들은 별로 믿음이 없는데 며느리 만은 믿음있는 사람을 데려오려고 합니다. 또 내 땅은 별로 구원의 확신이 없는데 잘 믿는 사위만을 고르려고 합니다. 행한것은 먼저 내 자녀로 하여금 철저히 믿음 생활을 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자연히 그 자녀가 믿음 있는 사람과 결혼할려고 할것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그 자손을 통해 복을 주실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믿고 확신하였습니다. ‘이 땅을 네 씨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그가 그 사자를 네 앞서 보내실지라’-종이 가기전에 먼저 하나님께서 그 일을 다 정하시고 이루어질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적어도 믿는 성도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이 마는 일을 친히 간섭하시사 내가 무슨 일을 하기전에 이미 앞서서 그 일을 진행시키신다는 사실을 분명히 믿어야만 할것입니다. 그리고 책임을 맡은 종은 이 일을 감정하기 전에 기도했습니다. ‘우리 주 하나님 여호와여 만일 소녀가 당신의 약대도 마시 마시우라고하면 그 소녀는 주께서 주의 종 이삭을 위하여 정하신 아내인줄 알겠나이다’ 본문 15절에 보면 아브라함의 종이 이렇게 기도하는 믿음해 마치기도전에 히브리가 물항아리를 어깨에 매고 나왔다고 했습니다. 기도를 마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벌써 그 기도를 이루어주셨다는 말씁입니다. 하나님이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둘어주시는 시기는 대게 세가지 경우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 사65:24에 보면 ‘그들이 부르기전에 내가 응답하겠고’라는 말씀 바로 아브라함의 종과 같은 경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로 우리가 기도하기 전에 벌써 그것을 주시려고 작정하시고 이루어주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2. 사58:9, 65:24 이하에 보면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짓을 때에는 말하기를 내가 여기있다 하니라’-즉 기도하고 있는 동안에 이루어주시겠다는 말씀 어떤때는 내가 입술을 열어 하나님께 간구함으로써 하나님의 응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3. 때론 기도를 한 후 오랜후에 응답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혹은 마침, 맬립, 맻해후에 이루어주시는 때도 있습니다. 혹 여러분들 중에 목사님 저는 지금까지 결혼 문제를 놓고 기도해 왔고 또 저는 진심으로 믿음있는 배필을 구하고 있는데 아직까지 이루어지지 않아요, 또 저는 부모님을 열심히 새벽기도회, 철야 기도회 나와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그 본문에서 ‘기다리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목사님!저는 기다리기에는 이내 나이가 30혹은 40이 훨씬 넘었거든요.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만일 진심으로 기도했다면 지금 현재로서는 혼자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것입니다. 혹 앞으로 하나님의 뜻이면 결혼하게 될 것이고 또 안된다고 하면 그 안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 수도 있습니다. 결혼이란 언제나 우리에게 행복만을 약속해주지 않습니다. 혹 불행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미리 그 불행을 막아 주시기 위해 혼자 살게 하십니다. 가만히 보면 요즈음 세계 선교사로 나가는 분은 거의 그렇게 혼자사시는 분들이요 또 하나님의 일을 하시는 분들 가운데로 상당수가 그런분이 있을줄 압니다.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충현교회 당회장 목사님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서두를 것이 아니라 담담히 기다리면 언젠가 나타나게 될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제 아브라함의 종을 고향에 가서 당사자인 리브가를 만나게 됩니다. 이래 리브가는 몽둥이를 메고 와서 물을 긷고 있었고 종을 리브가에게 물을 요청하게 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두가지 사실을 막연케 됩니다. 하나는 리브가가 열심히 일하고 있었을때 종을 만나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어느 시인은 여자가 가장 아름다운때는 부지런히 가사일을 돌보면서 이마에 구술땀을 맺어있는 모습이라고 노래한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정을 택하실때는 대부분 일하고 있는 현장을 찾으셨습니다. 모레가 그리했고 다윗이 그랬고, 그밖에 여러 선지자를 마찬가지였습니다. 교회일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열심히 교회안에 충성 봉사하면 소문이 자연히 나게됩니다. 아! 아무게! 참 착실하다. 그러면 집사님 권사님들을 통해 뉴스가 흘러나가면 신랑감, 신부감이 줄을 지을 정도가 됩니다. 그러나 아무개는 교회일하라고 하면 늘 핑게대고 빠지고 게을리 안됩니다. 혹 결혼을 위해 준비할때 기도하고 있는 당사자나 부모님을 만일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하면 하나님께서 책임지시고 좋은 길을 주실 것임을 분명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한가지는 르브가의 인정입니다. 중동지방을 물을 길러 다닌다는 것이 매우 힘든 고역입니다. 그렇게 애써 길로 물을 낯선 나그네가 달라하니 그래도 아낌없이 쏟아주는 그 인정에 아브라함의 좋은 큰 갈등을 받았을 것입니다. 사람은 언제, 어디서 만나게 될지 모릅니다. 저는 오늘 16년전에 우리 교회 사무실에서 묘한 인연으로 어떤 분을 만났는데 제가 학교에서 가르칠때 너무 열심으로 가르치려다 좀 지나치게 했던점이 있지 않았나하고 스스로 반문을 해 보았습니다. 우리는 그 장소에 선항을 베풀어야 합니다. 흔히 듣는 바로는 길을 친절하게 안내해준 인연으로 며느리를 삼았다는 것, 무거운 짐을 들어다 주어 대접하다가 사위로 삼은 일도 많았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내 행동을 모든 사람들에게 감시가 되고 있음을 알고 항상 중요 평판을 들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결국 리브가는 아브라함의 종을 따라 찬송하니 가나안으로 와서 이삭의 나애가 되었고 약속의 자손들의 어미가 되었습니다. 아무쪼록 우리 성도님들은 아브라함과 같이 철저한 믿음을 지킴으로써 하나님께서 믿음의 사는자에게 주시기를 약속하신 축복을 하나도 남김없이 다 받을 수 있게 되기를 빕니다. 그리고 주인의 명령에 끝까지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의 역사를 수동되었던 아브라함의 종의 충성스러움과 부지런히 일하고 남선 나그네엑 친정과 호의를 베풀었던 리브가의 아름다운 마음을 본받음으로써 하나님께서 오늘도 나를 향하여 이루시려고 하는 놀라운 역사에 다함께 참여하시는 복된 성도님들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