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5장 강해

창25장 강해


지난 시간에는 이삭이 리브가와 결혼했던 사건을 중심으로 몇가지 중요한 사실들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오늘 이시간에는 그 아들 에서와 야곱에 대해 말씀드리고져합니다. 우리가 바로 일주일전에 이삭과 리브가의 결혼에 대해 생각했는데 어느덧 그 아들들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실로 세월이 빠르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사이에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사실 그의 한평생은 파란 만장한 굴곡을 거치면서 계속 이어지다가 어느 종착역에 도착하여 인생의 마지막 길을 걸어간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 기자는 그의 죽음을 가리켜 ‘아브라함이 수가 놓고 나이 많아 세상을 떠났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많은 함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175세, 이사야는 180, 욥은 140세, 여호야라는 130세까지 살았는데 그때따라 동일한 표현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가 나이 많아 주었다는 것은 만족한 삶을 살아라 죽駭募?의미을 지니고 있습니다. 사실상 아브라함은 만족한 사람처럼 행동합니다. 삶을 위해 어떤 절박한 몸부림을 지니지 않았고, 가야할 곳에 마지 못해 억지로 가는 일도 없었습니다. 그는 식탁에서 배불리 먹고난 후 잔치를 베푸신 사람에게 정중히 감사를 드리고 의자를 뒤로 빼면서 일어나 소리없이 떠나는 사람처럼 그렇게 만족한 상대에서 눈을 감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나이많아 ‘기운이 진하여’자기 영조에게로 돌아갔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무슨 큰 병이나 사고로 갑자기 세상을 떠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수명대로 장수하다가 기운이 진하고 노쇠해서 세상을 떠났다는 것입니다. 이 질병과 사고와 재난이 많은 땅 위에서 이러한 사고를 당하지 않고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을 다하고 눈을 감는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이 될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갔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자기 조상들이 가 있는 무림으로 돌아갔다는 말이 아니라 조상들이 가있는 나라, 즉 하늘나라로 돌아갔다는 뜻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의 수를 누리다가 죽는것은 축복이지만 죽을때 돌아가야할 고향이 있다는 것은 실로 더 큰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바라기는 우리 성도님들은 이 세상에서 신앙생활을 잘 하시다가 큰 사고나 질병없이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을 잘 누리시며 사시다가 돌아갈 하늘나라를 바라 보시면서 평안히, 즐겁게 눈을 감으시는 여러분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이삭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이삭은 리브가와 결혼해서 사는데, 역시 그 아버지 아브라함처럼 슬하에 자녀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삭은 리브가가 잉태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 간구하였더니 하나님께서 이삭의 기도를 들으시고 리브가가 잉태하도록 은혜를 구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이삭이 지니고 훌륭한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전에 아브라함은 사라가 자식을 낳지 못할때 양자로 삼으려 하거나 혹은 사라의 여종 하갈을 취하여 이스라엘을 낳았으나 이삭은 다른 여자를 취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 간구하였습니다. 그래서 응답을 받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때론 어려움이 닥쳐올 때에 하나님께 기도하려고 하지 않고 사람의 수단과 방법에 의지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방법을 사용하면 잠시는 해결되는 것 같지만 근본적인 치료는되지 않습니다. 통증이 오래가 진통재를 먹으면 잠시는 해결되는 것 같지만 약기운이 떨어지게 되면 다시 아품이 오는 것처럼 인간적인 처방은 잠시 효과는 있을런지는 모르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를 못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의 모든 문제는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셔야만 완전 해결이 됩니다. 이삭은 비록 아버지 아브라함처럼 큰 용기와 담력을 가진 신앙인이 되지는 못했지만 언제나 조용한 가운데서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살아갔던 믿음의 참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활동적이고 적극적인 사람을 들어 사용하시지만 그래도 이삭과 같이 조용한 성품의 소유자도 사용하십니다. 아니 오히려 하나님은 지혜없고 약하고 멸시받는 것을 택하셔서 그의 역사를 이루시는 것을 성경말씀이 강조해주고 있습니다. 오히려 값지고 귀한 그릇은 장식용 정도로나 쓰이고 큰 그릇은 무슨 큰 일이 있으면 쓰이지만 오히려 작고 볼품없는 그릇들을 알아야만 하겠습니다. 기도의 응답으로 리브가는 잉태를 하게 되는데 리브가는 자기 복종에 쌍태가 있어서 서로 싸우고 있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많이 염려를 하였습니다. ‘이같으면 내가 어찌할꼬?’ 리브가의 말을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두 국민이 네 태동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종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쪽 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자를 섬기리라’고 예언하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혜와 국권적인 섭리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지금 태동에 있어서 나지도 아니하였고, 아직 선이나 악을 행하지도 않았는데 하나님께서는 벌써 형이 동생을 섬기겠고, 동생의 족속이 형의 족속보다 강하겠다고 하였으니 도대체 그것이 어떻게 된 일입니까? 말1: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에서는 미워하였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우리의 좁은 지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하지 못합니다. 보통 사람의 생각으로는 장자가 더 많이 사랑을 받는다고 하는데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생각과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는 것은 누가 나이가 더 많고 잘 생겼고, 지식이 많은가에 근거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단지 자기의 기쁘신 뜻대로 그 주권리를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편의 어떤 선이나 악에 조건을 두시지 않고 다만 하나님께서 구원코져 하는 사람만을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에 하나님만이 지니고 계신 예정의 깊은 섭리가 있습니다. 바로 이 예정적인 주권 섭리를 통해 무조건적인 은혜로 여러분과 나는 구원함을 받았습니다. 얼마나 놀랍고 감사한 일입니까? 하나님께서는 한번 택한 사람을 결코 버리지 않으십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확신은 우리의 믿음을 더욱 확고이 붙잡아 주며 어떤 시험과 역경에 처할지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용기를 북돋아 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이 세상, 아니 전 우주 굴래 중에서 하나님께서 택해주신 귀한 하나님의 아들 딸임을 늘 마음속에 새겨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미래를 떠나 환난에 처할때나 항상 하나님의 택한 자녀임을 믿고 담대히 신앙생활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결국 에서와 야곱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미리 말씀하셨던대로 이스라엘과 아랍 두 민족의 나누게되고 복동에서 싸우신 것과 같이 지금까지로 무서운 혈통 싸움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영원한 진리임을 우리들에게 현실적으로 보여주고 실예요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된다하면 되고 준다하면 주시고 이루리라 하시면 꼭 이루어 주십니다. 우리는 이 말씀안에서 하나님께서 나를 택하신 자녀답게 믿음을 가지고 살도록 노력해야만 하겠습니다. 헛되고 무의미하게 잘따라 살아갈 것이 아니라 하나님앞에 보람된 삶을 이루어 나가도록 매일매일 힘써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오고가는 모든 세대에 약속된 후손의 반영에 영광스럽게 참여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