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8장 강해
창28장 강해
이제 창28장으로 넘어가서 계속 말씀드리겠습니다. 본문 말씀에는 야곱이형 에서의 칼날을 피해 하란으로 도망가는 길목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집 아는대로 야곱은 처음 날때부터 형 에서와의 경장 관계에 있었습니다. 그는 형 에서의 발뒤꿈치로 붙잡았다하여 야곱이라는 이름을 얻습니다. 그러므로 야곱이란 이름 자체가 경쟁자, 야심가라는 의미를 풍겨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장성하여 에서는 익숙한 사냥군이 되고, 야곱은 종용하게 장막에 거하면서 가사일을 돌보았습니다. 그런데 아버지 이삭은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에서를 좋아하게 되었고, 어머니 리브가는 자연히 가사일을 도와주는 야곱을 더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말틴루터는 야곱이 종용하게 ‘구하였다’는 말은 야곱이 겸허하게 거하였다는 뜻이라고 해석을 하였습니다. 우리가 여기에서 한가지 알아야 할 것은 자녀의 편애는 때로 엄청난 가정의 비극을 초래한다는 사실입니다. 지난 주일 낮 설교에서 말씀드렸습니다만 사람에게는 본능적으로 어린 아이라도 갓난 동생이 얼마 젖을 먹고 있다면 못먹게 말리든지 운다는 것입니다. 만일 어떤 자녀가 있어서 다른 특출한 자녀와 비교를 하면서 말하게 되면 큰 심리적인 충격을 받게 되어 오히려 더욱 열등의식을 갖게되고 더욱 성적등이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녀를 기를 때는 비교의식을 통해 그 성격이나 자세등을 고치려고 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게 합니다. 더우기 학교 성적을 가지고 아무개는 맺등을 했으니 너는 그보다 더 잘해야만 한다는 식의 충격요법의 방식은 오히려 그에게 강박관념을 심어주게되고 더욱 부진아가 되게 만드는 요인이 됨을 명심합시다. 이삭과 리브가가 각기 에서와 야곱을 사랑한데는 각기 자기 자신이 좋아하는 고기나 가사일을 돌보아 주기 때문이었다면 이것처럼 이기주의적이고 다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사랑은 없습니다. 결국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이 나를 사랑하는 형태를 나타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누구를 사랑하는 것도 엄밀히 따지고 보면 나를 사랑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께서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로 지라’고 말씀하신것은 자기 자신을 포기함이 없이는 주님을 사랑할수도 따라 올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에서와 야곱 이야기에서 자신을 중심한 이기주의적 사랑이 얼마나 큰 불행을 초래하게 되는가를 다시한번 뼈져리게 생각해야 합니다.
*두번째 에서와 야곱의 결정적인 대결은 어느날 팥줄을 쑤고 있었던 현장에서 있었습니다. 어쪄면 이날 야곱이 팥죽을 쑤고 있었던 것은 형 에서의 약점을 알고 계획적으로 의도된 것이었다고도 볼 수 있지만 어쨋든 배고픈 형은 ‘팥죽 한그릇을 달라’고 말했습니다. 이때 야곱은 기다렸다는듯이 ‘형의 그 장사의 명분을 내게 달라’고 요구하였습니다. 그리고 다구쳐서 ‘오늘 내게 맹세하라’고까지 줄기차게 요구하였습니다. 에서로서는 당장에 장자의 명분보다는 시급한 배고픔을 해결하는 것이 최상의 방책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에서는 육신이 고통스러운 줄만 알았지 신령한 특권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생각하지도 못했습니다. 현재의 만족만 추구했지, 영원한 축복은 생각지를 못했습니다. 사실 죄짓는 것을 보면 영원한 축복은 생각지를 못했습니다. 사실 죄짓는 것을 보면 순간적이고 찰라적입니다. 어떤 사람은 집에 오다가 술집에 들려 술몇잔 들이키고 차를 몰고 오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크게 다치거나 죽기까지 하는 일도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순간적인 쾌락을 즐기다가 평생동안 후회와 슬픔속에 지내게 되는 일도 있습니다. 아무리 그것이 죄악이라도 경홀히 여기다가는 급기야 큰 문제를 야기 시키고 불씨가 될 수 있습니다. 때로 우리는 큰 산불이 일어나 수십만 조상의 임야를 한거번에 태우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는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분명히 그 불씨는 등산객이 버린 성냥 하나, 혹은 부주의하게 던진 담배불 한개에서 비롯된 것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믿음의 생활을 하는 자는 무릇 약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항상 성결하고 거룩한 생활을 하도록 늘 힘써야만 되겠습니다.
*어떤 면에서 볼때 야곱의 행동에는 실로 교활하고 간사한 면이 없지 않습니다. 형이 배고파 죽겠다고 하면서 달라고 하면 그저 한그릇 퍼서 줄 일이지 굳이 그것을 장자의 명분과 바꾸자고 흥정한 것은 아무래도 바람직한 행동은 아닌것처럼 여겨집니다. 그러나 야곱의 좋은 점은 하나님께서 장자를 축복해 주신다는 그 사실을 분명히 알고 그것을 소유하려 끝까지 노력하고 애썼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반면에 에서는 장자의 명분을 너무도 소홀히 여긴 나머지 그것은 경솔하게 팔아 버린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죄악으로 말미암아 마귀의 자녀가 되었었는데 십자가의 희생적인 보혈의 사랑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의 특권은 장자권과 같이 귀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누구에게나 다 주시는 것이 아니라 특별히 사랑하시는 사람들에게만 주시는 특권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이 하나님의 자녀된 특권을 에서와 같이 소홀히 여기고 값싸게 팔아먹는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재물과 믿음을 바꾸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권세와 믿음을 바꾸고, 명예와 믿음을 바꾸는 사람도 있습니다. 믿음은 버리고 재물을 취하며 권세와 명예를 얻기 위해 믿음을 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것은 모두가 현대판 에서입니다. 결국 야곱은 후에 아버지 이삭에게서 장자의 축복을 받아내고 말았습니다. 이것을 안 형에서는 야곱을 미워하여 죽이려고 했습니다. 사실 계약상으로 따진다면 에서는 비록 말로 하기는 했지만 자신의 장자권을 이미 야곱에게 양보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엄청난 실수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에서는 자신의 실수와 잘못은 생각지 아니하고 오히려 야곱을 죽이려고 한 것입니다. 우리는 본문 말씀에서 야곱이 브엘세바를 떠나 하란으로 향하던 길을 3가지 종류로 구분하여 말할 수 있습니다.
1. 야곱이 가는 길은 고독한 길입니다. 우리가 흔히 ‘고독’이라고 말하면 시인의 고독의 시를 쓰고, 여학생이 낙엽 떨어지는 소리에 고독을 발견한다는 등의 저으기 감상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날 혈안에서는 생의 근본적인 의미를 고독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날때 홀로 이듯이 살때는 죽을때도 홀로 고독한 인생을 보내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야곱이 지금 걸어가는 하란에로의 길은 그렇게 낭만적이거나 감상적인 길은 아니었습니다. 정든 부모 고향산천, 친구도 다 버리고 홀로 걸어가야만하는 괴로운 고독의 길이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볼때 이 고통의 길은 야곱 스스로가 택한 길입니다. 만일 그가 장자권에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면 굳이 이 길을 걸어갈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먼 미래의 축복을 바라보면서 이 길을 걸어 가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먼 앞날의 천국의 축복을 바라보면서 오늘의 외로운 길을 택해가는 성도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실로 주님을 따르는 길은 내게있는 모든것을 버리고 나 홀로 걸어가야만 하는 고독한 길인 것입니다. 이 고독의 길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려야 하며 때로는 큰 한숨을 내 쉬어야만 하는 것입니까?
2. 둘째로 야곱이 가던 길은 고난의 길입니다. 주석하라 들의 해석에 의하면 이때 야곱은 경에서의 칼날을 피해 사람들이 흔히 다니는 길이 아닌 험한 산길을 골라 낮에는 숨고 밤에만 걸아갔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사실 브엘세바에서 하란으로의 길은 실로 멀고도 먼곳이었습니다. 낮에는 뜨거운 태양의 열기와 밤에는 몸속까지 배어 드는 추위를 막아야 하고 때로는 맹수나 강도의 위험까지 무릎써야만 하는 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원래한 축복을 바라보면서 나아가는 자는 온갖 고난과 고통을 각오해야만 합니다. 여기에 바로 골고다 십자가의 진정한 의미가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현대적인 번영이나 축복받을 약속하지 않으셨습니다. 영광 이전에 고난, 웃음 이전에 애통의 눈물을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 내 안의 영광을 바라보고 걸어가는 성도들의 오늘의 고난의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3. 야곱이 가던 길은 하나님이 동행하는 길입니다. 야곱이 홀로 걸어갔어도 고난의 길을 갔어도 그는 결코 혼자 걸어간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가 걸어가던 하란의 길목에서 하나님께서 밤에 사닥다리의 환상을 통해 그가 언제나 야곱에게 가까히 하시며 그와 동행하신다는 사실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를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하는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이것은 하나님께서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야곱을 떠나지 아니하시고 지키시고 보호하시면서 약속하신 것을 다 이루게 하시고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해주신다는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뿐만 아니라 우리 성도들을 영원히 잊지 않고 버리지 않고 지켜주십니다. 시편 121편 3-4절 말씀에 보면, ‘여호와께서 너로 실족지 않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자가 좋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로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라고 하였고 시편 48편 14절에서는 ‘이 하나님은 영영히 우리 하나님이시니, 우리를 죽을때까지 인도하시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독한 인생길을 걸어가시면서 피곤함을 느껴 보셨습니까? 목마름과 배고픔을 맛보셨습니까? 그때는 남모르는 고통가운데서 눈물 흘리며 가슴을 쳐보신 일이 있으십니까? 그러나 우리는 결코 외로워 하거나 절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비록 그 모습을 눈에는 안보여도 우리 잎에 분명히 보이는 현재의 손길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섭리의 사닥다리를 우리 위에 걸쳐 놓으시사 언제든지 우리가 부를때에 응답하시려는 야곱의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이 하나님의 역사가 오늘도 우리 성도님들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섭리하신다는 사실을 분명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언제나 우리가 바랐던 그 영광을 그 약속을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실줄 확실히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이 약속, 이 성취, 이 영광을 바라보면서 오늘도 내일도 힘차게 하늘가는 밝은길을 걸어가시는 여러 성도님들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