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2장 강해

창32장 강해


지금 우리는 창세기에 나타난 족장들에게 특히 상고하는 중 지난시간에는 야곱의 생애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어쨋든 야곱은 형에서와 아버지 이삭의 눈을 속여 장자의 직분을 소유함으로써 그의 험난한 인생길을 걸어가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후에 야곱이 바로 앞에 섰을때에 그는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일백 삼십년이니이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라고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씀드린다면 야곱의 일생은 험악한 세월을 보낸 나그네 생애‘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는 에서의 칼날을 피해 천신만고 끝에 밧단 아람에 있는 삼촌 라반의 집에 가 있게 됩니다. 그는 무려 20여년 동안 그 집에서 머습의 일을 보게 되는데, 그 이유는 굳이 엄밀히 따진다면 두 부인 때문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옛날 우리 나라에서와 같이 데릴 사위 제도 비슷한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누구든지 자기 말을 아내는 삼기 원하면 미리 약조를 맺고 몇년 동안을 일해 주도록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이 약조를 따라 그는 라반의 땅 라헬과 결혼하기 위해 7년 동안을 머슴으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약조된 7년이 다 되어 결혼 했으나 이튿날 그 신부가 라렐이 아니라 그 언니 레인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전에 자신이 형과 아버지를 속였던 것 같이 감쪽같이 삼촌에게 속임을 당한것입니다. 이정도가 되었으면 아내가 저지른 죄에 대해 마땅한 벌을 받게되는 구나 생각하고 일찍 포기해야만 되었을 것이었는데 야곱은 다시 라헬을 위해 7년 동안을 일하게 됩니다. 어쨌든 그는 삼촌 라반의 집에 머물면서 두 아내와 두 여종에게서 열두 아들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많은 가축들을 거느리게 되었고 20년만에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야곱이 돌아오는 길목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자세히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사람이 한번 떠난 고향을 돌아온다는 것은 실로 가슴 벅찬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더우기 그것이 20여년 만에 돌아오는 고향길이라면 그 감회가 한층 더 할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야곱의 심정은 실로 차찹하게만 합니다. 아니 오히려 불안하고 두려운 생각마저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이내 자기가 속이고 온 형에서가 분명히 자기에게 보복의 기회를 엿보고 있을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상황으로 미루어볼때 자롬ㅅ해서 형과 맞닥드리기라도 하는 날이면 그의 소유물은 다 빼앗길 뿐만 아니라 자기의 생명과 가족들의 생명까지도 위태로울 것은 너무도 명확관하한 일이었습니다. 본문 32:18보녀 이 호조와 공포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고 있는 불안의 길목에서 야곱은 하나님의 사자들을 만나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사자들을 보고 이는 하나님의 군대라고 하면서 그땅 이름을 ‘마하나임’이라고 하였습니다. 전에 창28장에서 야곱이 가나안 땅을 그러나 바닷아람으로 피하여 갈때에 벧엘광야에서 꿈에 천사들이 나타나 사닥다리위에서 오르락 내리락 하였는데 지금은 바닷아담에서 가나안 땅으로 돌아올 때에 또 하나님의 사자들이 나타나서 야곱을 만나 주었습니다. 이내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약속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한번 약속한 것을 때로는 어기기도 하고 잊어 버리기도 하고, 해로우면 적당히 얼버무리고 말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와 더불어 맺은 언약을 일점일척이라고 고치거나 잊어버리지 않으시고 끝까지 지켜주십니다. 지켜주시리 강한 팔로 지켜주시고 책임을 지시고 지켜주시는 것입니다.
요엘서 2:11에 보면 ‘여호와에서 그 군대 앞에서 소리를 발하시고 그 진도 심히 크고 두렵도다. 당한자가 누구이랴?’ 그렇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한대로 하나님이 만일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누가 우리의 정죄하겠습니까?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겠습니까?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입니까? 아니면 기근이나 헉신이나 위험이나 칼이겠습니까? 그러므로 이 위험할때 피할길을 주시고 불안할때 곁에 다가와 위로해 주시고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한 시편 기자는 시편 27편에서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 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 하리요.... 군대자 나를 대적하여 진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내가 오히려 안연하리로다. 여호와께서 환난날에 나를 그 초막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바위 뒤에 높이 두시리로다’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야곱은 형 에서를 바라볼때 두렵고 멀리는 마음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될때 그는 용감하게 얍복 나루를 향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해 말씀하십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여러 성도님들은 고난을 당할때 환난에 처해 있을 때 누구의 이름을 부르십니까? 여기에 분명히 하나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라’ 무릇 이 말씀을 듣고 환난날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그 환난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찬송하게 될줄 믿습니다. 이제 야곱 일생은 드디어 정든 고향땅이 보이는 얍복 나루 앞에 당도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는 에서가 400인을 거느리고 야곱을 만나니 놀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는 형 에서에게 예물을 보내기도 하고, 염소, 양, 악대소, 나귀 등 560마리를 골라서 맻 마리를 나누어 종들에게 맡기고 먼저 압복 나루를 건너도록 하였습니다. 이러한 행동을 자세히 보면 이해안가는 부분이 있는 듯합니다. 앞서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신자들을 보내어 그와함께 하겠노라고 약속하였습니다. 그럼에도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을 사용하는 것을 어떻게보면 비겁한 것 같기도 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곧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적은 것이라고 쉽게 단정할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도우심만 바라보고 우리일을 소홀히 해서는 안될것입니다. 내가 해야할 일을 내 조건에서 하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 만일 누군가가 빵을 위해 기도했다면 그 빵을 위해 수고해야 합니다. 만일 시험 합격을 위해 기도했다면 그 일을 위해 열심히 준비해야 합니다. 만일 전도를 위해 기도했다면 열심히 돌아다니면서 전도해야 합니다. 다시 말씀드린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누리는 노력을 다하고 심판의노력을 다하면서 또한 기도해야만 할것입니다. 기독교는 결코 어떤 기적이나 앉아서 바라보면서 기다리는 게으름의 종교가 아닙니다.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섬기고 봉사하는 일들을 통하여 그의 뜻을 나타내시며 축복과 은혜를 베푸실 것입니다. 그렇다고해서 너무 인간적인 방법을 써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거나 기도의 응답을 구하는 것도 잘못입니다. 하나님은 굳이 인간의 노력이나 도움이 없이는 그의 뜻을 이룰 수 있고 기도의 응답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과 도우심을 의심없이 믿어야만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어떤 방법을 통해서라도 반드시 이루실 것임을 분명히 확신해야만 될 것입니다. 야곱은 자기의 식구들과 소유물들을 다 먼저 얍복강을 건너 보내고 혼자 날아 있었습니다. 그 받에 어떤 사람과 더불어 밤새도록 씨름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어떤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이셨고 씨름을 했다는 것은 곧 그에게 기도했다는 의미입니다. 즉 씨름을 하듯 기도했다는 뜻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3가지 중요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 이 일은 야곱이 모든 처자와 소유물을 다 보내고난후 혼자 있을때 이루어졌습니다. 사실 하나님과의 기도는 대게 홀로 있을 때 큰 은혜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출3장-모세는 호렙산에 홀로 있을때 여호와의 유성들임
여호수아5장-여호수아로 여리고 성 밖에 와서 홀로 있을때 여호와의 사라를 마나게 되었습니다.
왕상19장-엘리야로 호렙산에서 홀로 있을때 여호와의 음성
막1장-예수님은 새벽에 생에 한적한 곳을찾음.
하오칼-사단이 고난에 빠지는 원인은 고요하지 못한데 있다. 사람이 고요하게 명상하거나 기도하지 아니하고 복잡하고 혼란하게 지낼 때에 문제가 일어나게 되고 시험을 만나게됩니다. 내 매일의 생활이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게 될때 모든 어떤 문제나 다 해결되는 것입니다.
2. 야곱은 밤새도록 씨름하다가 위골이 되었는데도 끝가지 놓거아니하고 붙들고 있다가 기필코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야곱이 모든 고난을 끝까지 참고 기도해서 기필코 축복을 받은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저드슨-‘어떤 희생을 내면서라도 기도를 유지하라’
사무엘 루더포드-‘나는 일곱 지옥을 건너서라도 하나님을 만나리라’ 우리가 참된 기도를 하고 신앙생활을 하려고하면 할수록 마귀의 방해는 더욱 거칠고 거세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환로뼈가 부러지는 아픔을 느끼면서라도 끝까지 쉬지말고 기도하면 언젠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분명히 들어주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할 것을 이유로 말씀하시면서 비록 불의한 재판관이라고 할지라도 과부나 와서 자꾸만 원한을 들어달라고 하면 들어 줄것이라고 말씀하시고나서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짓는 택하신 백성들을 원한을 풀어주시지 않겠느냐?’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낙망치 말고 끝까지 기도함으로서 기도의 응답을 받아야만 하겠습니다.
스릴죤 목사-‘사람이 기도하지 않고 크게 되면 크게된 그것으로 말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저 간사한 야곱이 압복강에서 하나님과 겨루어 이김으로써 ‘이스라엘’ 즉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 오늘날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 믿는 성도들의 믿음의 조상이 된 사실을 깨달아 알아야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얍복강은 어디에 있습니까? 바라기는 비록 우리는 하나님앞과 사람 앞에서 연악하고 부족한 죄인에 지나지 않지만 우리는 끝까지 확실히 붙드어 주시는 우리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환로뼈가 부러지기까지 기도로 매달리고 말씀으로 붙잡음으로써 오고가는 모든 세계에 영원히 변하지 않는 영광된 이름을 남겨 놓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