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7장 강해

창세기 37장 강해


지난 시간에는 야곱이 생사를 걸고 하나님의 사자와 얍복강가에서 씨름과 같은 기도를 했었고 사실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그 이후 야곱은 무사히 압복강을 건너 가나안 땅으로 돌아와 형 에서와 화해를 하게 되고 헤브론의 마므레로 가서 아버지 이삭을 만나게 되고 계속해서 그 지역에서 살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우리는 창세기 기자가 아브라함과 이삭등 족장들의 죽음을 가리켜 ‘돌아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들도 흔히 사람이 죽는 것을 가리켜 세상을 떠났다, 혹은 돌아갔다고 하지만 분명히 어디로 떠났다는 말을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말씀은 그 돌아간 곳이 영조들, 즉 믿음으로 살다간 선진들이 이미 가 있는 영원한 천국임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전도서 12:7에 보면 흙은 영원히 땅으로 돌아가고 신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는 말씀있습니다. 이 말슴은 우리의 육신은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게 되고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께서 숨을 불어 넣어 주신것이므로 자연히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지 않지 않는 영혼들은 모두가 뜨거운 지옥불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이제 본문말씀으로 돌아와서 이제 야곱의 역사는 서서히 무대 뒤편으로 물러나면서 요셉의 이름이 점차 전면에 나타나게됩니다. 잘 아시는대로 야곱에게는 영주 아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각기 두 부인과 그 두 여종에게서 난 아들들이었는데 당시의 관습법에 의하면 부인의 여종에게서 난 자녀는 그 부인이 아들로 간주되어 자녀로서의 똑같은 대우를 받도록 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자녀를 많이 두고 똑같은 사랑을 한다고 할지라도 그 자녀들 중에서 특별히 더욱 애정이 가는 자녀는 있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야곱에게는 그누구보다도 특별히 더욱 사랑하는 아들이 있었는데 그가 곧 요셉이었습니다. 요셉은 이??이 그 누구보다도 더욱 사랑했던 아내 라헬이 낳은 아내의 소생이었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도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특별히 사랑했습니다. 그리고는 요즈음 말로 색동 저고리와 같이 여러색으로 수놓아 만든 당시로서는 고급옷을 입혔습니다. 그리고 채색옷은 특히, 상속자에게 입혀주는 것이기도 하였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형들은 요셉을 무척 시기하고 미워해서 그 언사가 좋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늘 시비와 불평을 늘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형들의 잘못을 아버지께 고한다고 해서 형들에게서 온갖 미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우리는 이 요셉에게서 예수님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마3:17에 보면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물위에서 올라오실 때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는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성부 하나님께서 성자 예수님을 이렇게 기뻐하신 사랑하신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형식적인 믿음과 거짓된 생활에 대해 책망과 비판을 하였음을 유대인들로부터 많은 미움을 받으셨습니다. 또한 요셉이 아버지 야곱으로부터 사랑을 받았노라 형들로부터는 미음을 받은 것과 같이, 예수님도 하나님께로부터는 사랑을 받았으나 유대인들로부터는 미음을 받았습니다. 또한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엄청난 은혜와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이를 시기 질투하고 마귀와 세상으로부터 미음과 핍박을 받게 될 것입니다. 더우기 우리는 하나님의 값진 영생의 예복 을 입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믿지 않는 자들에게서 조롱과 시기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이상하게 여길 필요가 없습니다. 요일 3:13에 보면 ’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이상히 여기지 말라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자녀들입니다. 후에 하나님께서 요셉을 높이 들어 애굽의 휘황찬란한 영에의 호니색 옷을 입히셨던 것처럼 언젠가 우리는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옷으로 갈아 입게 될 것입니다.
2. 요셉은 그의 문 때문에 형들에게 크게 미움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우리가 밭에서 곡식을 묶는데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라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곧 언젠가 요셉은 높아지고 형들은 다 그 앞에 와서 엎드려 절하게 될 조임을 의미합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형들의 표정과 태도가 과연 어떠했었을까는 능히 짐작이 되고도 남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렇지만 요셉은 또 다시 비슷한 꿈을 꾸게 되고 그것을 형들에게 말하였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더욱 더 큰 시기와 미움을 당학 됩니다. 무릇 꿈과 진리를 말하는 사람은 예나 지금이나 미움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한편 현실에 민감하게 처세함으로써 쉽게 동화되고 적당히 살아가는 사람들은 결코 큰 고난이나 박해를 받지 않습니다. 신실하신 순교자 스데반은 진리를 솔직하게 말함으로써 결국에는 돌팔매질을 당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죽음의 절박한 상황 가운데서 하늘을 우리의 하나님의 영광과 빛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보여주신 진리의 계시와 원대한 하늘나라의 꿈을 말함으로써 요셉이나 스데반, 예수님께서 당하신 것과 같이 세상 사람들에게 미움과 핍박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말씀하셨스니다(요6:33).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느니라. 그렇습니다. 우리는 예수 때문에 받은 환난을 두려워 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에수님께서 이내 이 고난을 극복하고 이기셨으매 그의 길을 따르는 자들에게 이김을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3. 요셉의 형들은 요셉을 잡아 구렁이에 던졌으나 그안에 물이 없었습니다(24절). 이 세상은 우리가 ??하여 유혹의 덫에 돌리게하고 멸망의 구렁텅이에 빠뜨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혼을 죽이거나 파별시키지는 못합니다. 로마의 원망주장에서 성도들을 이세상 집권자들과 믿지 않는 무리들에 대해 사자에게 찢기거나 불에놔 죽임을 당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영혼까지 죽을 수는 없습니다. 순교자들은 오히려 마지막 순간까지 저들의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고 기도하면서 오히려 미소가운데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그때는 하나님께서는 필요할때 사명자들에게 세상의 풍복불이 그 열기를 품어 내지 못하도록 하신 적도 있습니다. 히브리의 세청년 사르락, 내삭, 아벳느고는 불속가운데 있었으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머리털 나라도 상하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사명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빌립보 관원들은 바울과 살라만감옥에 집어 넣으면 복음의 역사가 끝나는 것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지건을 통해 감옥문을 열게 하셔서 그들의 사역을 계속케 하십니다. 또한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음으로써 기독교가 완전히 끝나는 것으로 생각했지만 오히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승리의 십자가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코 이 세상이나 이 세상에 있는 어떤 것들을 두려워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보수극의 신학이나 찰스하지는 말하기를 모든 사건이 하나님이 지배하시기에 너무 크다든가 나무 작다든가 나무 많다든가, 이렇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한곳에 계신것과 같이 모든 곳에 계시고 한 일에 속외하시는 것같이 모든 일에 속외하십니다. 풀잎 하나 하나를 아시고 부듀찰성을 운 행동 인도하시고 별들의 대군을 통수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께서 만일 우리에게 필요하시다면 온 우주를 다 동원하시더라도 영두영리되는 천사들과 별들의 대군을 인솔하시고 우리의 도우제 오실 것을 분명히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4. 요셉은 노예와 같이 힘내 갔으나 형통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단은 잠시 고난이 오는 것 같게됩니다. 우리주님 노예의 값에 해당하는 온 30세 빌리셨으나 오히려 죄의 노예가 해방시켜 주시는 주인이 되셨습니다.
5. 요셉은 애굽에 내려가서 말할 수 없는 모함을 당하였으나 우리 하나님께서는 그와 함께 하십니다. 음란한 보리바의 아내는 자기의 뜻이 성취되지 않음을 인하여 오히려 그를 모함하여 간후에 집어 넣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변명이나 불평 안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이 세상에 계셨을 때에 온갖 거짓과 모함하는 말로 중상모략을 당하였습니다. 이 성전을 헬라 내가 3일만에 일으키리라는 말씀을 교묘하게 책망과 예루살렘 성전을 헐어 버리겠다고 말햇다는 모함을 받으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밖에 안식일을 범하는자 등의 온갖 죄명을 다 쒸움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곤욕도 당하여 괴로울 때에는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거늘 도수장도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털깎는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습니다. 진실은 언제나 하나님께서 아시므로 믿음이 정직하고 깨끗한 자는 언젠가 하나님께서 의롭다 하시고 판단해 주실것입니다.
6. 관원당 그를 잊었으나 하나님은 그를 끝까지 기억하셨습니다. 우리는 때론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봅이다. 이 세상사람들은 요?를 쉽게 잊어버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잊지 아니하십니다. 우리를 손바닥위에 세겨 놓으시고 기억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셉이 걸어갔던 길은 왕날 우리 성도들이 걸어가야할 것입니다. 우리 신앙의 선배들이 걸어갔고 우리 주님이 친히 걸어가신 길입니다. 바라기는 오늘 요셉처럼 오디든 시험이나 환난이 올때 사람을 바라보거나 외거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면서 끝까지 찾고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면 언젠가 여맨과 나는 모든 고난과 수고가 끝나는 그날 하나님의 영광된 보좌 앞에 우릴 서 있게 된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는 한없는 찬송과 영광을 주님께 돌릴 수 있게 될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