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0장 강해

창세기 40장 강해



이제 계속해서 창40장의 내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도 계속해서 요셉에 대해 생각하면서 은헤나누고자 합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팔리워 애굽으로 끌려가고 난 후 그 형제들은 이제 집으로 돌아갈 일이 걱정되었습니다. 그것은 동생요셉에 대해 상사여부와 사정을 이야기해야할 터인데 도무지 변명해야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할수없이 수염소를 죽여 그 피를 흰색옷에 발라서 그옷을 가지고 아버지께로가서 마치 악한 짐승에게 찢겨 죽인것 같이 위장하였습니다. 우리가 여기에서 한가지 생각나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전에 야곱이 연로한 아버지 이삭을 속여서 에서에 대한 아버지의 축복을 빼앗았던 사상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주석가는 ‘야곱이 이와같이 아들들에게 속임을 당한것은 그가 일찌기 자기 아버지로 속인 죄값이라’고 해석하였습니다. 갈6:7,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말슴은 모든 경우에 적용될 수 있는 원리입니다. 야곱은 속이는 씨를 심었으니 속이는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야곱은 요셉이 짐승에게 찟겨 죽은줄 알고 슬퍼하면서 ‘내가 슬퍼하며 음부에 내려가서 아들에게로 가리라’고 말하였습니다. 여기에 음부하는 뜻은 히브리어에서는 ‘스올’이라고 하는데 어떻해든 무림 결코 음부 사14:9에는 사람이 죽은 후에 가는 곳으로 모사리고 있습니다. 오늘날 여호와 증인을 비롯해서 소위 지옥의 존재를 부인하는 사람들은 구약에는 지옥이라는 말은 없고 음부라는 말만 나오니 사실상 심판의 장소로서의 지옥은 없다는 말들을 합니다. 그러나 사실상 이 스올이라는 말에는 진노하시는 하나님께서 마지막으로 심판하실 무서운 지옥과 같은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바로 이 음부라는 말은 누가 복음 16:23에 나오는 부자된 나사로의 비유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거기는 물한방울이라도 혀를 서늘하게 하고 싶은 영원한 고통의 장소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음으로 이 무서운 고통의 장소에 들어가지 않고 영운한 하늘 나라에 들어가게 도니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한편 애굽으로 내려간 요셉은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 팔여갔습니다. 하루아침에 사랑받는 아들이 위치에서 종의 위치로 전락되고 말았습니다. 즉 영광과 존귀의 신분에서 수치와 고통의 신분으로 바뀌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보리발의 집에서 충성하면서 살았습니다. 그가 충성할 수 있었던 것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살아게시며 언젠가 자신에게 보여주셨던 꿈을 이루게 될 그날이 올것임을 분명히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똑같은 일을 할지라도 공부를 할지라도 사명과 꿈을 가지고 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에는너무도 차이가 많이 있습니다. 그저 남의 눈치만 보고 그럭저럭 하는 사람은 내 일이 아니니까 시간만 때우다가 일당만 받고 가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소위 도급이라는 것을 맡겨주면 즉 어희만큼 일하면 얼마를 준다고 하면 3일 일할 것 하루에 다 해버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국인이 지켜서 있을때와 없을때에는 현저하게 차이가 있게 됩니다. 요셉이 충성스럽게 일하였다는 것은 그 일을 내 일처럼 알고 일했다는 것이고 또한 주인이 앞에 서 있는 것처럼 일했다는 것, 그런데 사실은 보리발이 늘 요셉 곁에 지켜서 본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에게는 참 주인이 계셨습니다. 그는 곧 여호와 하나님이셨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후에 그가 보디발 아내의 유혹을 받았을때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니이까?’라고 답변만 사실에서 찾아볼 수있습니다. 즉 내가 어찌 하나님이 보는 눈 앞에서 죄를 범할 수 있겠습니까? 하는 의미입니다. 이 말씀에 비추어 볼때 요셉은 마치 그의 일상생활까지도 하나님이 바로 곁에 서서 보고 계시는 것으로 생각하면서 살았다는
의미입니다. 이 얼마나 의미한 믿음이요 경건한 삶의 태도입니까?
*왜 우리가 때로는 실수하고 범죄하고 넘어지게 됩니까? 그것은 나 혼자다, 아무도 안본다, 누구도 모른다는 의식이 잠재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불꽃 같으신 하나님의 눈이 지금 나를 주시해놓고 있고 감찰해 계신다는 사실을 안다면 우리가 어떻게 겸손하게 거짓된 행동을 할 수 있으며 죄악의 자리에 앉아 있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기에 칼빈은 언제나 Coram Deo(하나님 앞에서)하는 말을 즐겨 사용했습니다. 즉 하나님 앞에서 모든 일을 생각하고, 게획하고, 말하고, 행동한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자체는 처음부터 Coram Deo이어야 합니다. 한편 생각하면 하나님께서 보시는 눈 앞에서 살아가라는 것은 당할때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나타내 보여줄 것입니다. 만일 우리에게 궁핍한 우리가 어렵거나 위험한 일을 한 일이 생긴다면 하나님께서 언제나 이것으 ㄹ보시고 우리곁에 오셔서 도우시고 위로해 주실 것이며 또한 우리에게 위험한 일을 당할때면 그 모든 위험에서 우리를 건져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보다도 요셉에게서 배울 수 있는 것은 그는 진실로 소겨의 사람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어떤 의미에서 종의 신분인 요셉이 고관의 부인의 관심과 사랑을 받게 되었다는 것은 행운이라고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그로 말미암아 자신의 출세와 같이 열릴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젊은이로서 불타오르는 정욕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외국에서 종으로의 받는 고독은 잠시 달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결코 보리발의 아내의 음란한 눈길에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감히 종으로서 상전의 아내의 명령조의 유혹도 끝까지 뿌리쳤습니다. 아니 옷까지 벗어던지면서 그 끈질긴 유혹을 거절한 것입니다. 사실 이러한 행동이란 혈기 왕성한 젊은이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으리만큼 대담하고 훌륭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시119:에 보면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게 하리요 주의 말씀으로 살아갈지니이..’청년은 그 행실을 깨끗게 하기란 매우 힘이 듭니다. 아니 소년이라도 넘어지며 장정이라도 이 세상의 육축앞에서는 속수무책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능히 극복하고 삼갈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힘들지만 하나님께서 도우시고 성령께서 힘을주실때 능히 이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벼랑 아래가 가파르고 위험하다고 할지라도 오직 다리 위로만 곧장 걸어간다면 결코 떨어지지 않고 위험이 없는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 말씀이 가리켜주는 길과 방법을 따라서 걸어간다면 결코 상촉하지 않을 줄 믿읍시다. 은헤는 결국 보리발 아내의 어처구니 없는 모함에 빠져 감옥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 감옥은 주로 정치벌들을 가구는 왕궁 감옥으로서 대부분은 시체가 되어 나올 수 밖에 없는 무서운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이 감옥에 들어가게 된 것을 후에 바로 왕 앞에 서게되고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게하는 길복이 되었습니다. 요셉이 퇴색옷을 형들앞에 자랑하고 꿈꾼것을 자랑이야기할때 하나님은 교만한 그를 형들의 손을 빌어 구덩이에 잡아놓고 노예를 가리게 했습니다. 만일 그가 아버지앞에서 계속 귀여움을 받으면서 살았으면 가난이 무엇이고 감사가 무엇이며 인생이 무엇인가를 알지 못하고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온갖 고난과 시련을 통과하면서 하나님의 은총에 감사할 수 있었고 자기와 같이 어떤고에 처한 술맡은 관원을 도와줄 수 있었습니다. 즉 그는 이러한 시련을 당하였기에 한 민족의 지도자로 싸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헬라어에게 시편이라는 말 Sokiuapw 혹은 ????? 등은 체로 골라내거나 불로 녹여서 찌꺼기를 골라낸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 불같은 시험이나 고통이 오는 것은 하나님께서 보다 큰 그릇으로 만들기 위한 목적이 있음을 반드시 알아야만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야고보서 1:2에 보면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순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이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시험은 신앙의 눈으로 볼때는 놀라운 축복의 서?? 그러기에 기쁘게 여기라! 그러므로 성도 여러 분들에게는 찬송가 가사대로 똑같은 시험 많으나 겁내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구주의 전능 크시니 이기심을 받은 줄 믿습니다. 바리기는 성도 여러분들은 혹 어려운 시험이나 고난이 닥쳐올때 마다 주님께서 이미 이 고난의 과정을 거치시고 승리하셨음을 생각하면서 오히려 더욱 목소리를 높혀 감사와 찬송을 돌려 보내시길 빕니다. 언젠가 하나님앞에 영광된 모습으로 서?? 내 자신을 바라보면서 오늘로 주어진 시험의 날들을 찾으시고 내일도 어쩌면 닥아오게될 모든 고통과 고난을 이기시고 승리하시는 여러분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