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왔고, 나는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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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8월 3일 주일설교 - 너는 왔고, 나는 간다

 주님의 영성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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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수의 강 /

너는 왔고, 나는 간다

(삼하15:19~23절)

(19)그때에 왕이 가드 사람 잇대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도 우리와 함께 가느냐 너는 쫓겨난 나그네이니 돌아가서 왕과 함께 네곳에 있으라
(20)너는 어제 왔고 나는 정처 없이 가니 오늘 어찌 너를 우리와 함께 떠돌아다니게 하리요 너도 돌아가고 네 동포들도 데려가라 은혜와 진리가 너와 함께 있기를 원하노라 하니라
(21)잇대가 왕께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의 살아계심과 내 주 왕의 살아 계심으로 맹세하옵나니 진실로 내 주 왕께서 어느 곳에 계시든지 사나 죽으나 종도 그곳에 있겠나이다 하니
(22)다윗이 잇대에게 이르되 앞서 건너가라 하매 가드 사람 잇대와 그의 수행자들과 그와 함께 한 아이들이 다 건너가고
(23)온땅 사람이 큰 소리로 울며 모든 백성이 앞서 건너가매 왕도 기드론 시내를 건너가니 건너간 모든 백성이 광야 길로 향하니라


성경은 말세가 되면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무정하며, 쾌락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딤후3:1~3). 이런 자들은 점점 \'감각없고(엡4:19)\', \'화인맞은 양심\'을 가진 자(딤후4:2)\'로 변할 것입니다.

말세지말(末世之末)인 이 때에 이런 자들을 우리 주변에서 만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최근 나폴리의 평온한 해변가에서 비치타월에 덮인 두 집시소녀의 시신 옆에서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일광욕을 즐기는 피서객들의 사진이 온 유럽을 떠들썩하게 만들었습니다.

집시는 집도, 절도 없는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는 나그네들입니다. 이들에게 \'제일 두려운 것이 무엇이냐?\' 고 물으면 그들은 사람이라고 답을 합니다. 사람들의 냉랭함, 사람임에도 사람으로 취급해주지않는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 그래서 집시들에게 가장 두려운 존재는 사람입니다.

성경은 우리를 나그네, 즉 집시라고 합니다.(벧전2:11). 그래서 오늘 본문에 보면 \'쫓겨난 나그네(19)\', \'정처없이 간다\' \'떠돌아다닌다(20)\'는 표현이 연속적으로 나타납니다. 이 나그네 길에서 가장 두려운 것 역시 사람입니다.(창21:12, 27:41, 출3:11, 왕상19:2).

때문에 인간의 심리상태를 가장 적나라하게 펼쳐 보이는 시편은 사람 때문에 고통, 신음, 탄식하고 부르짖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시7편의 \'식가욘\'이라는 단어는 \'큰 소리로 부르짖는다\'는 뜻입니다. 저자 다윗은 지금 큰 소리로 부르짖고 있습니다.

옆에 있는 베냐민 사람 \'구시\'가 다윗을 몹시 괴롭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구시는 문자 그대로 흑인이라기보다는 다윗을 그렇게도 괴롭혔던 베냐민 출신 사울왕에 대한 시적 표현으로보입니다.

그런데 사울 문제가 겨우 정리되니, 이제는 자신의 아들 압살롬 때문에 고통스럽고 두려운 나날을 보내야 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압살롬의 반역에 왕위까지 버리고 허겁지겁 도망치는 다윗 행렬을 그리고 있습니다.

압살롬, 그는 인물이 출중하고(삼하14:25~26), 처세술도 기가 막혔습니다.(삼하15:5~6). 그래서 온 이스라엘이 압살롬에게 쏠렸습니다.(삼하15:13). 압살롬의 목표는 바로 아버지를 죽이고 왕위를 찬탈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급히 왕궁을 벗어나 도망을 칩니다.(삼하15:14). 그 화급한 상황에서 다윗이 가드사람 잇대라는 자와 주고받는 대화가 우리의 시선을 끌고있습니다.

다윗이 잇대에게 말합니다. \"너는 어제 왔고 나는 정처 없이 가니 오늘날 어찌 너로 우리와 함께 유리하게 하리요 너도 돌아가고 네 동포들도 데려가라 은혜와 진리가 너와 함께 있기를 원하노라(삼하15:20)\" 다윗의 말의 핵심은 \'너는 왔지만 나는 간다\', \'너는 왔냐? 나는 간다\'입니다. 댓구법입니다. 잇대는 다윗이 있는 곳으로 왔습니다.(삼하15:21).

당시 그 지역의 맹주로 군림하며 승승장구하던 다윗의 주변에는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삼하15:18). 잇대도 뒤질새라 \'막차\'를 타고 저 남쪽 블레셋 땅 가드에서부터 다윗에게로 달려왔습니다. 이런 잇대를 향하여 다윗은 \'너는 어제 왔고\'라고 말합니다. 연약하고 보잘 것 없는 인간을 의지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를 이 짧은 한 마디를 통해 들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너는 어제 왔고, 나는 정처없이 가니\'라고 말합니다. 이를 직역하면 본문과는 달리 \"너는 어제 왔다. 하지만 나는 내가 가고 있는 곳으로 간다\"입니다. 정처없이 가는 것이 아니라 방향과 목표가 뚜렷하다는 뜻입니다. 지금 예루살렘을 빠져나와 도망치고 있는 다윗이 가는 곳은 \'기드론 시내\'입니다.(삼하15;22~23).

기드론 시내는 예루살렘 동쪽에 있는 말라비틀어진 시내입니다. 물도 구할 수가 없어 언제부터인가 \'흰놈\'골짜기, 즉 죽음의 골짜기로 불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시내를 건너면 겟세마네 동산과 감람산이 버티고 서있습니다. 때문에 나이 많은 도망자 다윗이 선택한 이 코스는 악수였습니다.

\'기드론 시내\'란 지명은 구약과 신약, 각각 한 번씩 등장하는데 신약에서는 예수님이 자기를 따르는 제자들과 함께 십자가를 앞에 놓고 기드론 시내를 건너고 계십니다(요18:1). 이 시내를 예수님이 건너시는 이유는 기도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기드론 시내를 건넌 그곳에서 땀이 변하여 피가 되기까지 통곡하며 부르짖었습니다. 그리고 이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만났고, 하나님을 만난 그는 죽음의 골짜기에서 벗어나 영광스런 부활로 승리하셨습니다. 다윗이 기드론을 건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는 오실 메시야 예수님의 그림자였기 때문입니다(시22편).

그러므로 다윗이 기드론 골짜기를 건넜다는 것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하나님께로 향했다는 뜻입니다. 구체적 \'여호와앞(25)\', \'은혜의 보좌 앞\'(히4:16)입니다. \'너는 왔고, 나는 간다!\' 그는 지금 하나님께로 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변함없이 하나님을 찾았던 것처럼, 이 고난과 고통 가운데서도 변함없이 하나님을 찾는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찾았다는 말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끝까지 신뢰했다는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허물과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징계를 받고 있을 때에도 하나님을 떠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도리어 찾았습니다. 하나님의 가슴팍을 파고들며 그품에 안기기를 원했습니다.(삼하24:14). 바로 이것이 다윗의 강점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다윗을 기뻐하셨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그의 기막힌 상황들이 어느 날 한 순간 기가 막히는 방법으로 해결되어지는 기적과 축복의 주인공이 됩니다. 빼앗겼던 왕위도 되찾게 해주시고, 원수까지도 간단히 처리해 주시는 은혜를 입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다윗\'에게로 오는 사람과 \'하나님\'에게로 가는 사람입니다. 예외없이 모두 발자취를 남깁니다. 여러분은 어떤 발자취를 남기고 있습니까?

베들레헴과 모압 사이로 난 길 위에 엘리사벳, 그의 아내 나오미, 아들 말룐과 기룐, 두 자부 룻과 브닌나가 각각의 발자취를 남기며 걸어갔듯이, 오늘 우리도 어디서부턴가 와서 어디론가 정처없이 걸어가고 있는 집시들입니다(벧전2:11).

그래서 \'너는 어제 왔고, 나는 가고 있는 곳으로 간다\'(20)는 다윗의 말은 우리가 두고두고 새겨야할 명언입니다. 당신은 지금 \'사람\'에게로 오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에게로 가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