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를 받으십시오



- 변화를 받으십시오 - 롬12:2절

매우 장수하는 조류로 알려져 있는 솔개는 약70세의 수명을 누릴 수 있는데 이렇게 되려면 약40살 즈음에 매우 고통스럽고 중요한 결심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솔개는 약40살이 되면 부리와 발톱이 노화하고 깃털도 두텁게 자라 하늘로 날아오르기가 나날이 힘들게 됩니다. 이즈음에 솔개는 그대로 죽기를 기다리든가 아니면 약 반년에 걸친 고통스런 갱생의 과정을 수행해야 합니다.

갱생의 길을 선택한 솔개는 산 정상 부근에 둥지를 짓고 머물며 고통스런 수행을 시작합니다. 먼저 부리로 바위를 쪼아 부리가 깨지고 빠지게 만듭니다. 그런 후 새로 돋은 부리로 발톱을 하나하나 뽑아냅니다. 새로 발톱이 돋아나면 이번에는 날개의 깃털을 하나하나 뽑아냅니다. 실로 눈물겨운 사투입니다. 이렇게 약 반년이 지나면 새 깃털이 돋아난 솔개는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하여 다시 힘차게 하늘로 날아올라 30년의 수명을 더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변즉생, 불변즉사(變則生 不變則死, 변하면 살고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의 진리입니다.

우리는 인생이란 필드에서 경주하고 있는 경주자들입니다. 경기가 잘 풀리지 않고 연패를 당하고 있습니까? 지금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변화’입니다. 경기가 잘 풀려나가고 승승장구하십니까? 당신에게 필요한 것 역시 ‘변화’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본능적으로 변화를 주저하며 가능한 한 안주하려고 합니다. 스스로 변화를 시도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변화를 받으라’고 권면합니다. 누군가가 당신 삶에 개입할 때 비로소 변화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 권면을 하는 이는 ‘바울’은 흠이 없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며(빌3:5-6), 당대 최고 학파인 ‘가말리엘’의 문하생이었습니다(행22:3). 뿐만 아니라 자신의 생각과 판단에 대한 강한 신념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마음에 평안이 없고 늘 불안, 두려움, 초조함이 엄습했습니다. 그는 절규합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롬7:24)\"

심리학자 ‘폴 투르니에’는 인간에게는 존재의 불안, 도덕적 불안, 영적인 불안이 있다고 말합니다. 영적 공허가 누구에게나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강자와 약자’라는 책에서 약한 자는 감추고 싶은 자신의 약점을 지나치게 의식하는데 반해 강한 자는 자신의 약함을 가리기 위해 남의 약점을 정죄하는 성향이 나타난다고 말합니다. 한마디로 정죄지향적인 인간이 된다는 것입니다. 남을 정죄하는 사람은 예외 없이 불안, 초조함에 사로잡힙니다.

우리는 바울에게서 이런 성향을 발견합니다(행9:1). 그러니 그 마음에 평안이 있을 리가 없습니다. 그 즈음 소위 예수를 믿는다는 이상한 사람들이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라는 자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났으며, 그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고 메시야이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어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외치며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사울은 이들을 용납할 수가 없었고 그들을 모조리 잡아 죽이는 것이 하나님을 위한 일’이라고 믿었습니다. 때문에 그런 자를 돌로 쳐 죽이는데 자원하여 증인으로 섰을 뿐만 아니라(행7:56) 다메섹이란 동네에 그런 자들이 많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그곳을 향해 거침없이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환한 대낮, 갑자기 태양과는 전혀 다른 빛이 하늘로서 그를 비취기 시작했습니다. 예수, 분명히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던 그 예수가 살아 눈앞에 나타난 것입니다(행9:40-46). 그 순간 그는 형언할 수 없는 충격과 함께 그동안 자신을 지탱했던 이성, 경험, 학식 등이 한 순간 와르르 무너지고 가치관이 완전히 바뀌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는 자신이 송두리째 변화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야말로 재창조가 된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그때부터 마음속에 평화가 임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롬7:2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내가 확신하노니 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8:35-39)”라고 외쳤습니다. 이제는 죽음조차도 두렵지 않은 사람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이는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이 놀라운 변화를 경험한 바울이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여러분들도 저와 같이 변화를 받으십시오. 변화를 받는 길 만이 살길입니다. 당신도 변화될 수 있습니다\'라고 말입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도 이런 변화를 경험할 수 있을까요? 본문은 ‘그러므로’라는 접속사로 시작되는데 바로 앞 문장을 받고 있습니다. 바울이 여기에서 세 번이나 반복하여 소개하는 한 분이 있습니다. 주(主), 이분은 바울이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만났던 바로 그 ‘예수’라는 분입니다. 바울은 그분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모든 것은 그분에게서 나오고 그분으로 말미암고 그분을 위하여 있습니다. 영원토록 영광을 그분께 드립니다(롬11:36)” 이 주님이 계심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이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시인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10:9)\" 여기 ‘구원’은 단지 죽은 후에 천국에 간다는 뜻을 넘어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그분께서 내 삶을 변화시켜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바꾸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이 시간 그분을 나의 주님이라고 시인만 하면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심령에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세상 그 어디에서도 맛보지 못했던 참 평강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두려움이 사라지고, 불안과 초조함, 걱정이 다 사라질 것입니다. 나에게 일어나는 변화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삶의 현장, 가난, 직장, 사업장, 육체의 연약함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그 주님이 지금 내 마음문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계3:20).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은 주께로부터 나와 주로 말미암고 결국은 주에게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히9:27). 중요한 것은 그 날이 언제일지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내일이란 없습니다. 오늘 이 시간이 나의 시간입니다. 이 주님을 이 시간 나의 구주로 영접하고 변화의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요1:12).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전1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