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요구하는 영성

 주님이 요구하는 영성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난 주 태풍의 영향으로 서늘한 가운데 한 주간을 지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그 서늘해진 머리를 가지고 오늘 이 본문을 통해 이 시대가 요구하는 영적인 사람, 예수님이 바라시는 수준의 영적 사람이 되는 길에 대해 말씀을 증거 하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느껴지는 마태의 영성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현존을 느끼도록 초대하고 있습니다. 초대에 응하는 것 혹은 거부하는 것은 여러분에게 달려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본문 어감에서 우리에게 명령조 로 강하게 헌신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그 분의 지상 사역은 우리에게 무엇이든지 요구할 만한 일을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먼저, 살펴볼 것은 주님이 우리에게 전 인격적인 헌신을 요구하신다는 점입니다. 예수님 자신이 하신 일을 두고 볼 때 이 요구는 당연한 것입니다. 예배, 충성 모두 주님께 돌려야 한다. 신명기 6:4-5절이 이스라엘의 영적 모토인데, “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여호와는 유일한 여호와시니...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이 말씀은 이스라엘의 삶이 어떠해야 할지를 요약하는 구절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온 인격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요구하셨다. 이는 그 분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정도 이상의 온전한 사랑을 베푸시기에 그러하다. 목숨을 다해 헌신한다는 의미를 날마다 하루하루를 사는 우리들의 일상 가운데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먼저 이와 같이 요구된 수준의 헌신에 도달하기 위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훈련이다. 오늘은 육체의 금식, 절제를 통한 훈련, 내면의 훈련을 말씀드리려 합니다.




1) 금식을 통한 훈련: 육체적인 필요를 제어하면서 하는 금식을 예로 들 수 있다. 성도는 금식을 통해 삶의 주관자이신 주님의 주권 하에 자신의 목숨도 맡기면서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일치시키는 훈련을 할 수 있다. 주님은 40일간을 주야로 금식하면서 자신을 유지시키는 양식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손수 모범을 보이셨다. 금식은 개인의 영적 결박을 풀어주며 보다 자유로운 신앙의 삶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그러나 기독교는 금욕주의를 표방하는 것은 아니다. 제가 금식을 통한 훈련을 먼저 말씀드린 것은 다음에 언급할 내용에 가장 적합하기 때문입니다.




2) 성적인 절제를 통한 훈련: 세상 많은 종교에서는 아직도 성적인 절제를 지적하지 않는다. 이슬람의 테러리스트에게 교관들은 만일 테레에 성공하여 죽게 되면 이슬람적인 천국론, 70여명의 처녀와 환상적 생활을 누리게 된다고 잘못 가르칩니다. 이슬람의 천국 윤리 수준이 바로 여기 밖에는 이르지 못합니다. 주님은 천국 헌신을 위해 독신으로 지내셨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간음을 금지하고 일부일처제적인 사회와 십계명에서 제시하듯이 법적 관계 외에서의 남녀 관계를 엄격히 하고 있다. 마태복음에 사람의 신체 가운데, 눈으로 보는 것을 조심하라 교훈하며 손, 등과 같은 지체 부분에 대한 엄격한 통제를 강조 한다 (5;29-30). 미국 안에서 가정의 불화와 이혼의 이유 가운데 배우자에 대한 정절을 지키지 못하는 부분이 높은 비율을 나타내고 있다. 30% 정도 이상의 결혼한 배우자가 상대 배우자를 속이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자동차와 통신의 발달로 인하여 거리와 공간이 좁혀짐으로 인해인간은 이를 교묘히 이용해 죄를 짓는데 사용하고 있다.




미국에서 교회 안에서 설교자 사이에 성에 대한 설교는 금기 사항으로 되어 있다. 성적 문제로 회개를 요구하면 많은 수가 교회에 다시 나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죄로 만연된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미국 TV를 보면 결혼과 가정의 모습을 비틀어 파괴적으로 몰고 가는 내용이 얼굴을 뜨겁게 할 정도로 아침 방송부터 심야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제 기독교인들이 미디어를 시청하는 것을 금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개인의 경건 정도에 달려 있는 문제이나 방치하기에는 심각하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이 부모가 없는 틈에 무분별하게 시청하는 내용물 가운데 정서를 해치고 더 나아가 비정상적 인격 발달을 부추키는 이 시대야 말로 음란하고 악한 시대인 것이다. 한국에서 온 사람이 요즘 돌아가는 소식을전하는 가운데 이혼을 3번 해야 친구 간에 ‘너 나쁜 녀석이야’ 라고 말을 듣는다고 한다. 어찌된 세상인지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소돔과 고모라의 무분별한 죄의 사망 냄새가 어느덧 우리 턱 밑에 까지 와 있습니다.




바울은 은혜 받은 자에게 천국을 위해 스스로 혼자 살 것을 권하기도 하였고 주님은  천국을 위해 스스로 고자처럼 살라 말씀하셨다 (19:12). 이 시대를 살면서 이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헌신, 선교에 대한 헌신으로 자신을 드리는 것에 깊이 생각해야 할 때다. 그러나 이 말씀은 받을 수 있는 자만 받기 바랍니다. 어려운 소명이기에 그렇습니다.





둘째로, 내면적 강건함을 강조하셨다. 여기서 내면은 개인의 의지, 감정, 충성, 애정의 영성을 말합니다. 죄 가운데 있다가 구원 받고 다시금 하나님의 자녀로 돌아온 가운데 다시금 회복되어져야 할 부분에 관한 것을 말합니다. 성도가 신앙생활의 거룩함을 유지하지 못하는 것은 마음이 무너지기 때문인데 이는 듣고 보는 것, 생각의 영향을 받습니다. 사람은 하루에도 수 만 번 이상 생각이 스쳐가는 존재 입니다. 스쳐가는 생각을 필터링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은혜 받았다 하더라도 불경건한 생각의 공격에 자신을 노출하면 마음이 혼돈스러워지고 주님을 향해 가졌던 갖었던 마음이 다 무너지고 이기적, 육체적, 세상적인 데로 돌아가고 맙니다. 악한 생각을 붙잡으면

악한 행동을 하게 됩니다. 맑은 물이 흐르는 개천 주변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더러운 탁류가 흐르는 개천을 보신 적이 있는지요. 그 주변에 어떤 것들이 자라는지 살펴보면 우리가 갖는 내면의 시냇가에 은혜가 흐르게 하고 은혜와 관련된 무수한 생각들이 자라게 해야겠다는 결단이 서게 됩니다. 악한 생각이 떠오르는 것으로 악한 사람이 되지는 않습니다. 마음이 이를 떨어 버린다면 건강한 성도입니다.



우리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과의 연합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우리의 마음이 주님의 말씀과 묵상에 점령당하지 않고 있으면 죄가 우리를 다시금 점령하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자신의 마음의 변화를 예민하게 관찰하여 오늘 듣고 본 것, 생각 중에 버릴 것은 과감하게 자르고 정리하여 자신의 마음에 착상하여 점점 크게 될 죄질 생각, 죄악된 장면은 마음에서 회개를 통해 지워 버려야 자신을 지키게 됩니다. 성도는 이와 같이 내면의 상태를 점검하며 자신을 죄악과 분리된 생활을 하도록 관리할 때 영적 생활이 활력이 넘치고 죄에 대해 지나치게 되고 보고 듣는 것을, 생각하는 것을 통해 우리를 유혹하는 세력에서부터 해방되어 질 수 있습니다. 이것이 영적인 자유입니다. 이 자유는 되는대로 살아가는 부류의 사람이 가지는 자유와는 현저히 다릅니다. 우리가 누리는 자유 안에는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내면을 건강하게 그리고 강인하게 만들기를 원하십니다. 마태 복음에 나타난 여러 부분에서 우리를 새롭게 빚으실 주님의 청사진을 봅니다. 주님의 교훈 가운데, 은밀한 구제에 대한 교훈은 주님이 우리가 어떤 내면의 모습을 가진 사람으로 거듭 태어나기를 원하시는지 잘 보여 줍니다(6:1-18). 감정을 다스리는 면에서 혈기와 화를 살인 수준으로 여기시고(5:21-22), 음욕을 품는 것만으로도 간음으로 간주하시고, 위선하는 바리새인들을 보고 나무라시는 장면에서 주님이 우리의 내면을 완성 하는 데에 얼마만큼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계신지를 알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을 지적하시는 곳에서 우리는 교회의 의례 준수는 부차적임을 알 수 있습니다. 기계적 헌금, 예배 참여 보다 바른 동기를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며 하나님의 뜻과 의도를 알고 섬기는 것, 하나님의 의와 이를 믿는 믿음 그리고 하나님에게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는 것이 우선함을 깨닫게 됩니다.




마태가 내면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앞에서 언급한 헌신을 위한 전제 조건이기도 하기에 그러하다. 헌신은 맘을 독하게 먹어서 2-3일 그렇게 하고 그만 둘 성질의 것이 아니라 일생을 지속적으로 해 나아가야 하기에 내면적으로 강인함이 없이는 어렵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온전하신 분이시다. 그 분을 따르는 우리가 온전해지기 위해서는 훈련이 요구된다. 은혜를 반드시 받아야 하는 이유는 시험과 유혹을 겪으면서 신앙을 지켜 나아가야 하는 우리에게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은혜는 가량 누군가 시험에 들었다고 하더라도 나 자신을 설득하여 ‘나는 하나님을 만나지 않았는가’ 하며 자신을 다시금 하나님 앞에 나가도록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체험이 없고 은혜를 경험한 적이 없으면 자신에게 주어진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한 때 자신이 흥분하여 감정적으로 치우친 것으로 생각하고 하나님을 떠나 방황하며 옛 생활로 돌아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영혼에 은혜를 받아야 삽니다. 내면에 하나님을 경험한 증거가 있는 영혼이 될 때 전적 헌신 앞에 다가오는 장애물들을 통과 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 적극적이고 실제적인 면의 훈련입니다. 신앙은 하나님의 의지, 곧 영혼을 구원하며 말씀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에 사로잡혀야 합니다. 성도의 삶을 성령님이 주관하시나 성도가 의지적으로 순종해 나갈 때 그 분이 일을 하십니다. 자신의 옛 습관과 옛 생각을 털어내는 것은 자신이 해야 하고 그것이 순종의 발로입니다. 내가 나 자신의  죄짓고 싶어 하는 마음을 죽이고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면 내 마음에 평안이 찾아옵니다. 예수님 안에서는 이러한 분열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분은 죄를 알지도 못하는 분이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훈련해야 합니다. 마음의 생각을 필터로 거르고 순결함만 지닐 수 있도록, 눈도 순결한 영적 가치만을 바라다보도록 훈련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의지를 가지고 거룩해 지려는 자를 거룩케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모두 그런 생각을 품으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바울이 빌립보에 있는 성도들의 성화 되어가는 모습을 보며 권면하기를 “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2:12-13).  개인의 영혼이 크기가 자라고 깊어지려면 세상 것에 사로잡히지 말고 침묵과 묵상을 통한 생각의 방향과 주제가 항상 예수그리스도 안에 있도록 해야 합니다. 말씀이 지시할 때 거부하지 말고 순종하는 연습을 통해 거룩함을 훈련 할 수 있습니다. 고독, 묵상, 침묵, 금식, 영성일기 쓰기 등과 같은 개인 훈련 목록을 가지고 정기적으로 조용한 곳을 찾아 훈련하고 이를 적용하기 위해 현장으로 나아가 이웃을 직접 사랑하는데 동참 할 때 하나님 사랑에 참여 하게 됩니다. 마태는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 라고 유일하게 기록하고 있으며 이웃 사랑을 하나님 사랑과 같은 것으로 묘사 합니다 (homoia). 이웃 사랑에는 용서와 화해의 윤리가 포함되어져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말씀을 통한 훈련으로 단련되어져 있기 전에 헌신하고픈 마음이 있어도 삶을 주님께 드릴 수 없습니다. 주님의 거룩한 초청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이 하자” (고후7:1) 성령님을 의탁하여 깨어서 말씀과 훈련으로 자신을 단련하고 거룩해지려고 하는 마음을 유지하면서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를 잘 보존하려는 긴장감을 가지고 순종하면서  주님이 부르심에 순종하여 달려 나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