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씨 비유

제목 : 겨자씨 비유
본문 : 막 4:3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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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물들이 자란 것이 우리 눈에 잘 보이지 않습니다. 분명 자라고 있지만 우리가 잘 느끼지 못합니다. 요즘은 온 자연이 며칠전보다 훨씬 더 푸르러졌습니다. 하룻밤 사이에 많이 자랍니다. 우리 집에 이모님 댁에서 파온 자그마한 동백꽃나무가 있는데 아무리 봐도 자랄 것 같이 않더니만 어느 날 자세히 보았는데 새순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아침에 동백꽃나무 새순이 얼마만큼 자랐는가보는 것이 상당한 낙입니다. 우리가 보지 아니한 밤새 더 자란 느낌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자연의 풀의 자람을 통해서 하나님나라와 교회의 자람을 비유로 가르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겨자씨의 비유에 대해서 생각하며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분명히 자란다는 사실
   겨자씨는 사람이 땅에 심는 가장 작은 씨앗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작은 씨앗은 한 알, 두 알 그렇게 세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는 \'겨자씨 한 알\'이라고 했습니다. \'한 알\'이라 한정함은 겨자씨의 작음을 더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처럼 작은 겨자씨를 한 알을 땅에 심었습니다. 여러 씨앗을 한꺼번에 심은 것이 아니고 고작 \'한 알\'을 심었습니다. 씨앗이 작은 것을 심을 때는 여러 개를 한꺼번에 심습니다. 그래야 다 죽지 않고 그 중에서 싹이 터 자랄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겨자씨는 한 알만 심었습니다. 그런데 죽지 않고 싹이 트고 자랐습니다. 31절과 32절 말씀입니다.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땅에 심길 때에는 땅 위의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심긴 후에는 자라서….\"

   고작 겨자씨 한 알을 심었는데 죽지 않고 자랐습니다. 그것은 아주 미미하게 시작한 교회이지만 죽지 않고 살아난다는 말씀입니다. 어쩌면 교회는 처음 출발할 때 마치 겨자씨처럼 세상의 모든 출발보다 미미하고 약합니다. 규모도 작고, 자본도 없고, 미래도 기대하기 힘들고, 세상의 사업을 시작하는 것에 비하면 겨자씨 한 알처럼 아주 약하고 작습니다. 세상의 사업이나 일들은 처음 출발 할 때 세상의 사람들로부터 대대적인 환영을 받습니다. 조만간 수입을 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수입을 내는 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고 관심도 없습니다. 세상에서 환영받지 못합니다. 도리어 세상의 질서를 해치고, 세상살이에 방해가 되는 쪽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교회가 출발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민감한 반대를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교회 출발은 심겨진 겨자씨 한 알과 같습니다. 겨자씨가 죽지 않?분명 자라듯이 교회도 분명히 자란다는 말씀입니다. 땅에 심겨질 때는 미미하고 약하여 곧 죽고 없어질 것처럼 보였지만 세상을 비웃기라도 하는 것처럼 싹이 트고 자란다는 말씀입니다. 교회는 자본으로 일어서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규모로 일어서는 것이 아닙니다. 심겨진 겨자씨 한 알로 일어섭니다. 심겨진 겨자씨 한 알은 싹을 트게 할 수 있도록 희생하는 씨앗을 말합니다. 겨자씨 한 알이 심겨질 때 싹이 틉니다. 아무리 작은 씨앗이지만 결코 헛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교회는 심겨진 겨자씨 한 알처럼 겨자씨와 같은 희생을 통해 자랍니다. 우리가 바로 겨자씨 한 알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를 위한 우리의 수고와 희생이 아무 표시도 없고, 아무 소득도 없고, 아무 성과도 없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겨자씨 한 알처럼 교회의 싹을 틔우고 자라게 한다는 말씀입니다. 기독교 역사를 보아도 그렇습니다. 역사 가운데 겨자씨와 같은 믿음의 사람들이 희생과 수고로 교회는 계속 존속되어 왔고 지금도 계속 존속되고 있습니다. 미미한 한 사람의 신앙인의 수고와 희생이지만 그 희생과 수고가 헛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교회가 세워진 것은 예수님이 겨자씨 한 알과 같은 존재가 되셨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서 자기의 목숨을 다 내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몸이 겨자씨처럼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심겨져 싹이 트고 자란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뿌리가 예수님입니다. 거기서 싹이 나고 줄기와 잎고 난 것입니다. 겨자씨가 심겨지듯이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죽으신 것이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보였고, 아무 성과도 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놀라운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예수님의 죽음 때문에 온 세상의 죄가 없어졌으며, 새로운 세상이 되었습니다. 아프리카 적도의 성자라고 불리는 슈바이처도 예수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멈추게 하려다가 역사의 수레바퀴에 갈기갈기 찢겨 허무하게 죽고 말았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죽음이 허무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죽음은 허무하지 않았습니다. 지옥 갈 사람들이 다 천국 가게 되었고, 마귀 손아귀에서 죽은 세상이었는데 예수님이 해방시켜 생명이 넘치는 세상으로 만드셨습니다. 온 세상 곳곳에 예수님의 죽음의 흔적들이 넘쳐 납니다. 결코 작지만 겨자씨 한 알은 죽지 않습니다. 분명히 싹을 틔우고 자랍니다. 그래서 지금도 여전히 교회는 자라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크게 자란다는 사실
   겨자씨는 1년생 풀입니다. 겨자씨 씨앗으로 본다면 결코 크게 자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나물보다 크게 자랄 뿐만 아니라 큰 가지를 뻗을 수 있을 만큼 자란다고 하니 분명 나무처럼 자란다는 의미입니다. 새들이 와서 집을 짓고 살 정도 되려면 나무처럼 크고 왕성하게 자라야 합니다. 겨자씨가 자라면 그 키가 3m 내지 4m까지 자란다고 합니다. 크게 자란 것은 무려 7m까지 자란다고 합니다. 그리고 줄기의 굵기가 사람의 팔뚝 굵기만큼 된다고 합니다. 1년생 풀이 어떻게 그렇게 크게 자랄 수 있는가 의문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렇게 자란답니다. 32절 말씀입니다. \"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나물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니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되느니라.\"

   겨자씨 씨앗의 크기에 비하면 생각보다 크게 자랍니다. 그것도 1년 동안에 그렇게 자랍니다. 그것은 처음 씨앗이 심겨질 때하고는 비교가 안될 만큼 크게 자란다는 의미입니다. 아무리 미미하게 시작한 교회일지라도 처음 시작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크게 자랄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폭발적인 확장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처음 교회가 시작할 때는 너무 미미하여 도대체 세상을 향하여 무슨 일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하고 의문을 품기도 하겠지만 언젠가는 그 생각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자란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공중의 새들이 풀들 사이에 깃들일 수 있겠습니까. 여기 공중의 새라는 표현은 땅 위에 집을 짓는 새를 말함이 아니라 높은 가지에 집을 짓는 새를 말합니다. 높은 가지에 집을 짓는 새들이 어떻게 풀들 위에 집을 짓겠습니까. 겨자씨는 풀인데, 풀이 자라고 자라서 공중의 새들에게는 나무처럼 보이고 공중의 새들을 받을 수 있을 만큼 자란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교회가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사람들이 와서 쉬고 집을 삼으며 살 수 있는 곳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교회가 처음 출발할 때는 상상 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겨자씨처럼 자라고 또 자라므로 그렇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비록 세상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무시당하고, 환영받지 못한 교회지만 자라고 또 자라 세상에서 깜짝 놀랄만한 일을 감당한다는 말씀입니다. 세상이 감당 할 수 없는 일들도 감당한다는 말씀입니다. 사실 교회서 못할 일이 무엇이 있습니까. 교회는 모든 일을 다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이 포기한 일들도 다 할 수 있습니다. 교회가 처음 시작할 때는 아무 일도 못할 것처럼 보였지만 교회가 자라고 또 자라면 완전히 다릅니다. 상상을 초월한 일들을 합니다.

   여러분, 이 땅의 모든 교회는 겨자씨 한 알과 같습니다. 그 겨자씨가 자라 공중의 새들이 집을 지을 수 있을 만큼 자라는 것은 교회가 자라 거대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것과 같습니다. 교회는 사실상 지역적이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온 우주적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이 상상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닙니다. 미미하게 시작된 교회가 자라고 또 자라 그처럼 거대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룬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렇게 이루어져 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겨자씨와 같은 교회가 결코 죽지 않고 자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교회의 자라는 것도 우리 육안으로 확인하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우리교회도 어떻게 보면 자란 것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자라지 않는 것 같기도 하지만, 분명 자랐고, 지금도 자라고 있습니다. 먼저, 성도들 개인적으로 신앙이 자랐고, 교회 전체적으로 감당하는 일들을 봐도 더 자랐습니다. 우리가 교회를 마귀의 손에 팔아먹지 않는 이상 교회는 계속 자라고 또 자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겨자씨 비유에서 제일 중요한 진리를 꼭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은 \'자란다\'는 말씀입니다. 건너뛴다는 것이 아니라, 차근차근 자란다는 말씀입니다. 씨앗을 심으면 싹이 나고, 잎이 나고, 줄기가 생겨 가지를 내고, 푸르러진 다음에 열매를 맺는다는 말씀입니다. 중간에 건너뛰는 법은 없습니다. 순서적으로 자란다는 말씀입니다. 교회의 자람도 그렇습니다. 차근차근 자랍니다. 우리의 믿음의 자람부터 출발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자라지 않으면 교회는 자라지 않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분량이 교회를 크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분량을 키우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우리는 개인적으로 교회이며 다 한 알의 겨자씨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심겨져야 합니다. 그래야 싹을 틔우고 자랄 수 있으니까요. 여러분의 교회를 위한 수고와 희생이 교회를 자라게 할 것입니다. 다 겨자씨로서의 삶을 멋지게 살아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