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삶


제목 : 주님의 삶
본문 : 막 10:45


   우리는 분명한 삶의 목표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삶의 목표가 어떤 것이냐가 중요합니다. 자기 인생을 망치는 것이라면 삶의 목표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아마 그런 사람은 삶의 목표가 없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건전한 우리의 삶의 목표는 우리 인생을 살립니다.

   공동묘지 관리인에게 수년 동안 한 주일도 거르지 않고 한 여인으로부터 편지와 우편환이 동봉되어 왔습니다. 죽은 자기 아들의 무덤에 신선한 꽃다발을 갖다 놓아 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병색이 완연한 늙은 부인이 커다란 꽃다발을 안고 와서는 조용히 말했습니다. \"오늘은 제가 직접 아들의 무덤에 꽃다발을 놓으려고 왔습니다. 의사선생님은 제가 앞으로 몇 주일밖에 더 살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해서 말입니다.\" 관리인은 말없이 그 여인을 쳐다보다가 드디어 결심한 듯이 말했습니다. \"부인, 저는 꽃을 사라고 부인이 계속 돈을 부쳐 주시는 걸 보고 늘 유감으로 생각했습니다. 이곳에서는 어느 누구도 그 꽃을 보거나 향내를 맡을 수가 없으니까요. 하지만 주립병원이나 정신병원 같은 곳에 있는 사람들은 정말 꽃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꽃을 볼 수도 있고 그 향내를 맡을 수도 있습니다. 부인, 그런 곳에는 살아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무덤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부인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잠깐 동안 앉아 있다가 한마디 말도 없이 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몇 달이 지난 뒤 그 부인이 다시 찾아왔습니다. \"당신 말이 맞았어요. 나는 직접 꽃다발을 다른 사람들에게 갖다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사람들이 몹시 기뻐하더군요. 그리고 저도 기뻐지고요…. 의사는 어떻게 해서 내가 이렇게 다시 건강해졌는지 그 이유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지금 저는 삶의 목표를 다시 찾았습니다.\"

   삶의 목표가 분명하면 우리의 인생은 활력이 넘칩니다. 예수님은 자기 인생이 70년이나 80년이 되지 못하고 33살 때 끝날 줄 알았습니다. 그랬는데도 예수님의 삶에는 활력이 넘쳤습니다. 돈도 모으지 못하고, 여행도 제대로 가보지 못하고 젊은 나이에 죽게 되었는데도 예수님의 삶에는 늘 활력이 넘쳤습니다. 그 이유는 삶의 목표가 분명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삶의 목표를 생각해보며 우리의 삶의 목표를 더욱 분명히 하기를 원합니다.

희생의 삶
   예수님의 삶은 처음부터 고생길이었습니다. 태어날 때도 헤롯 때문에 죽을 뻔하였고, 성인으로 사실 때도 많은 사람들이 죽이려고 했고, 십자가를 지시기 전과 십자가를 지실 때는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을 당했습니다. 예수님의 인생 길은 고생의 연속이요, 고통과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고생하러 태어난 사람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인생을 비관하지도 않았습니다. 더 활력 있는 삶을 살았습니다.

   사람들은 고생 끝에 낙이 오기를 기대합니다. 아니 처음부터 고생은 없이 낙으로 인생이 짜여지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따라 다니는 제자들 중 야고보와 요한의 형제도 예수님에게 편안하고 영광을 누리는 삶을 살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여짜오되 주의 영광 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마가복음 10:37). 이들 형제의 마음은 모든 사람들의 마음입니다. 다 편하게 살고 싶고 인생 길이 고속도로처럼 뚫리길 바랍니다. 예수님은 야고보와 요한의 형제의 질문을 받고 진짜 영광을 누리는 삶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가복음 10:43∼45). 진짜 영광을 누리는 삶은 모든 사람의 종으로 사는 삶이어야 한다는 말씀이셨습니다.

   독재자는 통치할 때는 모든 사람이 다 자기를 따르는 것 같지만 통치가 끝나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봅니다. 억지로 사람들의 무릎을 꿇리는 것 같았지만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은 본래 자기 위에 누가 자기보다 더 높은 권세로 군림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사람들은 누구든지 왕이 되고 싶어하고 왕으로서 다스리?싶어합니다. 그래서 왕의 자리가 자연스럽게 자기에게 오지 않으면 억지로라도 왕의 자리에 앉고 그 자리에 있기를 원합니다. 그 사람들이 바로 독재자들입니다. 예수님도 그 사실을 야고보와 요한에게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소위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마가복음 10:42). 예수님 당시에 헤롯이라는 자가 그렇게 이스라엘을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다스리심의 방식은 그것이 아니라, 희생과 섬김이었습니다.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종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섬김을 받으려는 삶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아낌없이 주는 삶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사람들 위에 강제로 군림할 능력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힘이 없어서 사람들에게 쩔쩔매는 그런 분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섬기고 희생하는 삶이 바로 자기에게 주어진 삶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삶 때문에 신세 타령을 한 적도 없고, 한탄한 적도 없고, 자살하려고 비굴하게 군 적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런 삶을 기쁨으로 누리며 사셨습니다. 창피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당당한 모습의 삶을 사셨습니다.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걱정하지도 않았습니다.

   사실 예수님은 자기 인생의 성공을 위해 살지 않으셨습니다. 다른 사람들, 곧 우리들의 성공을 위해 사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벗기시고 죄없이 거룩한 인생을 살도록 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다 쏟으셨습니다. 지금도 예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의 성공을 위해 하나님 앞에 중보기도를 하고 계십니다. 세상의 어느 누가 우리를 위해 그런 희생의 삶을 살겠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바울 사도의 고백처럼 혹 다른 사람을 위해 용감히 죽는 자가 있기는 하거니와 삶 자체를 예수님처럼 희생의 삶으로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로마서 5:7∼8).

목표를 위한 삶
   여러분, 예수님이 왜 그처럼 힘들고 힘든 삶을 살았는가? 하나님이 시켜서 입니까? 물론 그렇습니다. 다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의 일이니까요. 그러나 시켜서 하는 삶은 억지가 됩니다. 예수님의 삶은 예수님 자신의 목표였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그런 삶을 살 것이라고 자기 인생의 목표를 그렇게 정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이 땅에 왜 오시게 됐는지를 분명하게 아시는 분이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예수님이 모든 사람들을 위해 죽는 것이었는데, 그 삶을 거부하고 술과 담배와 음란한 삶으로 인생을 망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삶이 싫어서 자기 맘대로 사는 인생이 아니었습니다. 자기의 편안함을 위해 하나님이 주신 인생의 목표를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그 길이 힘들고 어렵고 고통을 당하는 길일지라도 그 길을 자청해서 자기 인생 길로 받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셨으니까 받는 정도가 아니라, 마치 자기가 인생의 목표를 세우고 정한 것처럼 그렇게 받았습니다. 그래서 일생의 목표가 분명했습니다. 예수님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자들이 많아도 예수님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삶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성공적인 삶을 살 것인 가만 생각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다 예수 믿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섬김과 희생으로 우리는 이처럼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로 세워졌습니다. 죄 때문에 당해야 하는 정죄의 심판은 이제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소원을 하나님께 기도하며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 예수님이 고난의 일생을 사시고, 더욱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다 쏟으심으로 우리를 위한 삶을 사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음으로 그 예수님의 삶의 열정과 목표가 우리 속에 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예수님처럼 멋진 인생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살아가야 합니다. 자기 자신만 먹고 마시는 삶이 아니라, 자기 배만 부르는 삶이 아니라, 지체들을 돌아보고 때로는 그들의 종이 되고 그들을 섬기면서 말입니다. 가끔 그런 삶이 아니라 그런 삶이 아예 우리의 인생의 목표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돈을 벌고, 학교를 다니며 공부를 하고, 직장이나 회사를 건강하게 잘 다니며 일을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의 평안함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더 넓은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곧 지체들을 돌아보고 그들을 위해 염려하는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의 삶의 목표가 그래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예수 믿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살릴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찮은 우리를 위해 허리를 숙였습니다. 종의 삶을 살았습니다. 희생의 삶을 살았습니다. 혹시 우리가 그런 삶을 살기 싫어도 억지로라도 그런 삶을 살도록 노력하고 애써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으로부터 그런 삶을 배우고 받았기 때문입니다.

   물고기 중 유일하게 둥지를 만드는 것이 가시고기랍니다. 가시고기는 주둥이로 강바닥의 모래를 퍼내고 그곳에 둥지를 짓는답니다. 모래집에 수초까지 덮어 완벽한 산란의 보금자리를 꾸민답니다. 가시고기 수컷은 이때부터 알을 보호하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기울입니다. 몸집이 큰 물고기들과 처절한 싸움도 불사합니다. 알에 산소를 공급하기 위해 부지런히 그것을 넣고 꺼내는 작업도 잊지 않습니다. 가시고기 수컷은 보통 15일 동안 아무 것도 먹지 않은 채 알을 보호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알이 부화할 무렵, 둥지 옆에서 장렬하게 죽는답니다. 영문도 모르는 치어들은 무심하게도 제 아비의 살을 뜯어먹으며 성장합니다. 가시고기는 치어를 위해 생명을 바치고, 최후에는 몸까지 다 내어놓는답니다. 그 부성애로 인해 가시고기의 부화율은 90%를 웃돈답니다. 우리는 지금 가시고기와 같은 삶을 사신 예수님의 삶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한 영혼의 부화를 위해 십자가에서 살과 피를 쏟고 계십니다. 철없는 치어 같은 우리들, 인류에 구원과 영생이라는 값진 선물을 주기 위해 말입니다. 예수님으로부터 구원을 선물 받아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었으니 이제 우리도 그런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쉽게 되는 삶이 아닙니다. 그럴지라도 우리 기도하고 노력해서 그런 삶을 살도록 애씁시다. 그런 삶을 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