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이 자기 자리를 지킨다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자기 자리를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 때문에 사회는 더 혼란스럽습니다. 부모의 자리를 떠난 사람들 때문에 자녀들은 슬픔 속에 자라고, 자식의 자리를 지키지 못한 것 때문에 부모의 가슴은 멍이 듭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의 자기 자리를 지키지 못한 것 때문에 먼저는 자기 자신의 심령이 병들고, 더 나아가서는 가정이나 사회에 신앙의 환경을 조성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 사람이 자기 자리를 지킨다는 의미는 장소적인 의미도 되지만, 가치적인 의미도 됩니다. 내가 신앙의 사람으로서의 가치를 발휘하지 못하고 신앙이 없는 사람과 똑같다면 그 사람은 이미 신앙인으로서 자기의 자리를 이탈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하나님은 예나 지금이나 하나님처럼 자기의 자리를 지키는 신앙인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장소적으로 서 있을 장소에 서 있어야 하며, 가치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으로 가치를 드러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오늘 우리는 그런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를 원합니다.
왜 이탈했는가 하나님은 에덴이라는 곳에 동산을 만드시고 그 동산 이름을 에덴동산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동산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도록 하셨습니다. 근심과 걱정이 없이 평강이 넘쳤고, 건강을 유지시켜주는 먹거리가 풍성했으며, 언제든지 하나님을 눈앞에서 만나 함께 놀 수 있었습니다. 사람이 땀을 흘리며 무엇인가를 새롭게 개간하고 개척해야 하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다 하나님이 준비해 주셨으므로 하나님이 주신 것들을 누리기만 하면 되는 곳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동산에 하나님이 사랑하는 부부 아담과 하와를 세워서 하나님이 주신 즐거움과 풍요를 누리게 하셨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그 즐거움과 풍요로움을 맘껏 누렸습니다. 낮에는 동산을 거닐고 뛰며 즐거움을 만끽했습니다. 밤에는 아름다운 밤하늘을 보며 사랑을 나누었습니다. 에덴동산에는 공해도 없었고 도둑도 없었고, 강패도 없었고, 질병도 없었습니다. 아침이나 저녁에 하나님과 함께 산책길을 걸으며 담소도 나누었습니다. 하나님이 두려움의 존재가 아니고 친구였고, 모든 동식물들이 친구들이었습니다. 오로지 평강과 기쁨과 풍요로움만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 부부가 그토록 아름답고 풍요로운 동산에서 왜 이탈했는가?
우리는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에게 던진 질문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9절 말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지금 하나님이 아담을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아담을 찾으신다는 말씀은 아담이 자기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그 자리를 이탈했다는 의미입니다. 장소적으로도 그 자리를 이탈했고, 가치적으로도 하나님과 얼굴을 마주 대면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아담이 왜 이탈했는가? 욕심 때문이었습니다. 하와가 먼저 뱀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었는데 그 실과를 남편 아담에게 주었을 때 아담은 사랑하는 아내가 준 실과를 먹고 말았습니다. 그들에게는 \'먹지 말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기억하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부부의 사랑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여자가 그 실과를 따 먹고 자기와 함께 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 지라\"(창세기 3:6). 남편에게 실과를 준 하와도 잘못이지만, 그것을 덜컥 받아먹은 아담도 잘못이었습니다. 하와도 나무의 실과를 보고 생긴 욕심 때문이었고, 아담도 아내를 향한 사랑 때문에 잠시 하나님의 말씀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아내의 요구에 응한 욕심 때문이었습니다. 아마 아담은 사랑하는 아내 하와가 준 것이기 때문에 잠시 하나님의 말씀을 잊어버렸을 것입니다. 아내의 요구에 응하다보니까 말입니다.
욕심은 탐욕이요 탐심입니다. 탐심은 우상숭배와 같은 것입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게 만들고, 하나님의 말씀을 잊어버리게 만듭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 지금 내가 신앙인으로 서 있어야 할 곳에서 이탈하고 마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우리를 신앙의 자리에서 이탈하도록 유혹하고 조장하는 것들이 많습니다. 그 모든 것들은 다 욕심 곧 탐심이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탐심 때문에 자기와 자기 가족의 삶을 망친 좋은 본보기가 성경에 있습니다. 여호수아 장군이 여리고 성보다 약한 아이 성을 공격했습니다. 쉽게 이길 줄 알았는데 지고 말았습니다. 왜 졌는지 그 원인을 분석하기 시작했습니다. 여호수아가 하나님 앞에 나가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전쟁에 진 원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것은 어떤 한 사람의 탐심 때문에 졌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사람을 색출하는 방법도 하나님이 가르쳐 주셨습니다. 제비를 뽑으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했더니 아간이라는 자가 뽑혔습니다. 아간을 데려다가 자세히 물으니 아이 성 공격 때 탈취한 물건은 이미 하나님에게 바쳐진 것인데 그 중에 좋은 물건이 욕심나서 챙긴 것이었습니다. 시날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 은 이백 세겔, 오십 세겔 중의 금덩이 하나, 이렇게 3가지였습니다. 다 귀하고 값진 물건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일로 아간 자기 뿐만 아니라 온 가족들이 다 아골골짜기에서 돌로 쳐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이었습니다. 탐심으로 하나님의 일이 무너진 것 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신앙인으로써 지금 서 있는 자리를 지키기 위해 애를 써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로 서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으로 서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신부로 서 있습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위치가 바로 신앙인의 위치요,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가 바로 신앙인의 가치를 자랑하는 곳입니다. 우리는 그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마치 아무리 비바람이 불어닥쳐도 바위처럼, 뿌리를 깊이 내린 나무처럼 서 있어야 할 것입니다.
내가 서 있을 곳 여러분, 우리가 신앙으로 서 있는 위치는 한 곳이 아닙니다. 먼저 교회에 서 있고, 다음으로는 가정에 서 있고, 사회에 서 있습니다. 그냥 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 서 있습니다. 크고 푸르른 나무처럼 항상 있는 곳에 든든히 서서 신앙의 삶을 나타내야 할 것입니다.
가끔 우리는 아름다운 자연을 찾아 여행을 떠나기도 합니다. 여행을 가서 늘 느끼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아름다운 자연은 항상 그곳에 아름답게 있고, 바위나 산들도 항상 그곳에 든든히 서 있고, 나무들도 항상 그곳에서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마치 그렇게 서 있어야 할 것입니다. 신앙인으로서 교회에서나 가정에서나 사회에서 항상 동일한 모습으로 든든히 서서 죽어 가는 영혼들에게 소망을 주고, 걱정 근심으로 힘들어하는 자들에게 위로를 주는 존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푸르른 소나무나 사철나무처럼 항상 변치 않는 신앙인으로 서서 사람들에게 언제나 소망과 위로를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그런 신앙인을 좋아합니다. 다윗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항상 하나님을 삶의 첫 자리에 모시고 늘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하는 신앙인으로 서 있었습니다. 언제나 변함이 없었습니다. 어떤 신앙인들은 기분이 좋을 때는 신앙이 하늘을 날다가, 삶에 근심 걱정이 찾아오면 신앙이 땅에 뚝 떨어지는 경우가 있는데 다윗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사울에게 쫓길 때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는 신앙은 여전히 동일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윗을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일에 적극적으로 사용하셨습니다. 사무엘도 그렇고, 여호수아와 갈렙도 그렇습니다. 그들은 위치적으로 항상 그 자리에 서 있기도 했지만, 신앙을 자기들의 삶의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살았습니다. 세상에 가치 있는 것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은 다 신앙의 삶의 가치 밑에 두어야 합니다.
여러분, 요즘 세상은 무너진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부모나 자식이 제자리를 지키지 못해서 가정이 파탄 나고, 국가나 사회의 공직자들이 제자리를 지키지 못해서 사회가 어지럽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신앙으로 우리의 자리를 잘 지켜야 할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의 가정은 건실하고, 우리 때문에 사회에 질서가 잡힐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의 자리 지키는 신앙의 삶을 통해 역사를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신앙의 자리 이탈이 온 세상을 죄로 뒤덮이게 하고 말았습니다. 성경은 아담 때문에 온 세상이 죄 아래 갇히게 되었다고 지적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이 신앙의 자리를 잘 지킴으로 인해 세상은 다시 소망을 바라보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신앙의 자리를 지키는 것은 매우 힘든 싸움입니다. 때로는 포기해야 할 것도 생길 것입니다. 그럴지라도 우리는 우리 자신과 우리의 장래를 위해 신앙의 자리를 굳게 지켜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도움을 손길을 입는 비결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지금도 아담에게 물으신 것처럼 묻고 계십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 \"너가 지금 서 있는 위치가 어디냐?\" \"지금 네가 신앙을 삶의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살고 있느냐?\" 우리의 대답은 아멘이어야 할 것입니다. 이 말씀을 잘 기억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는 삶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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