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통하게 쓰임받으려면(행 16:1-5)

능통하게 쓰임을 받으려면 (행 16:1-5)

이 시간에 “능통하게 쓰임을 받으려면”이라는 제목입니다. 본문을 보면 바울이 제 2차 선교여행 중에 루스드라에서 디모데를 만나 그를 동역자로 삼게 됩니다. 그런데 디모데는 하나님 보시기에 그리고 쓰시기에 참으로 합당한 사람이었습니다. 보물이 따로 없습니다. 예수님이 보물이시고 예수 잘 믿고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사람이 보물입니다. 디모데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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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이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지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서 칭찬 받는 자라고 했습니다.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은 약 30km 떨어져 있는 두 큰 도시입니다. 이고니온은 루가오니아의 수도이니 큰 도시입니다. 학자들은 당시 디모데의 나이를 20세 전후로 봅니다. 그 어린 나이에 그 넓은 지역에서 유명했다는 것은 참으로 훌륭하고 인정받는 일군이었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가장 효과적으로 쓰시기 위해서 일군을 어떻게 준비해 오시는가를 배우게 됩니다.

그럼 능통하게 쓰임을 받으려면 어떠해야 합니까?

1. 기도의 배경이 튼튼해야 합니다.

1절에 그 조상들이 나옵니다. “그 모친은 믿는 유대 여자요” 디모데의 신앙적 배경을 보여주는 구절입니다. 디모데의 신앙적 배경은 조상적부터 내려온 것이지만 예수의 복음으로는 약 3대에 걸친 것이었습니다. 딤후1:5에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했습니다. 가문의 대수도 좋지만 얼마나 경건한 가문이냐가 더 중요합니다. 디모데에게는 믿음 좋기로 소문난 외할머니와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딤후1:4을 보면 대대로 눈물의 기도가 많은 가문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가문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은 그 축복을 대대로 내려 받기 때문입니다. 출20:5-6에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하셨습니다. 특히 기도하는 가문이라면 그 축복은 자손 대대로 미치고 교회를 변화시키고 지역을 변화시키고 민족을 변화시킵니다.


열두 번째 이사라는 이야기가 있더군요. 이집사라는 사람이 그 주인공인데 12번째 이사를 한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성령의 인도하심대로 어려운 교회에 와서 봉사하여 부흥시켜 놓고는 떠나는 사람입니다. 어느 교회가 건축을 앞에 놓고 어려움이 있을 때 겸손하고 신실한 이집사가 등록하여 건축비의 반을 부담하고 교회는 급속히 부흥되었습니다. 이렇게 한 이유는 아버지의 유언 때문이었습니다. 아버지의 마지막 유언은 “나처럼 교회 건축에 어려움 당하는 목사님을 도우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한 성도는 아버지가 논이 120마지기가 있었는데 교회 건축하고 주인 행세하다가 복도 받지 못하고 아들 하나 남겨 두고 비참하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런 신앙으로 보아 경건하거나 축복 받은 가문이겠습니까? 아니나 다를까 그 아들도 교회에서 무슨 큰 일만 하면 교회를 떠납니다. 그런데 그냥 조용히 가는 것이 아니라 믿음 없다는 말은 듣기는 싫어 무슨 척을 걸고 명분을 만들고 떠납니다. 그 때마다 교회가 난장판이 됩니다. 이 두 가문 중에 어느 가문이 더 복 받는 가문이 되겠습니까? 대대로 기도하는 경건한 가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육신의 가문이 없으면 영적 가문이라도 튼튼하게 만드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탄탄한 기도의 뒷받침이 있을 때 능통한 하나님의 일군으로 쓰임 받게 될 것입니다.

2. 문화적인 준비가 잘 갖추어져야 합니다.

1절 “부친은 헬라인이라” 어머니는 유대인이고 아버지는 헬라인이었습니다. 가족 구성부터 문화적 준비가 잘 갖추어졌습니다. 유대인 어머니에게서 낳았으니 유대말을 잘할 것이고 헬라인에게서 낳았으니 헬라어도 잘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유대인들에게도 전도할 수 있고 이방인들에게도 전도하는데 불편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디모데를 능통하게 쓰시기 위해서 이렇게 오래 전부터 준비해 오셨습니다.

이와 같이 선교사역에는 문화의 이중성이 필요합니다. 특히 언어문제가 중요합니다. 우리 성도들 해외여행 해보셨으면 알지만 언어가 통하지 않으면 얼마나 답답합니까? 바보도 그런 바보가 없죠? 우리나라가 세계적으로 뻗어나가기 위해서는 한글 보존은 물론 다국적 언어에 능통해야 합니다. 이 준비를 잘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본격적인 선교는 교포 2세들이 더 잘할 수 있습니다. 1세들은 언어에 어려움이 많아 기반을 닦는 정도에 만족해야 합니다. 그러나 2세들은 현지의 문화에 능통하기 때문에 아주 중요한 자원입니다. 우리 한국에 선교하시던 분들도 대를 이어서 충성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선교를 위해서 국제결혼도 필요합니다. 김장환목사님도 부인이 미국인입니다. 그러니까 김목사님은 영어가 생활화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빌리그래함 목사 집회 시도 김목사님이 통역했습니다. 이렇게 문화적인 준비가 잘 이루어지면 아주 능통한 선교 능통한 목회가 가능합니다.

3. 조기 준비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2절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받는 자니” 이 사실에서 보듯 디모데는 어린 나이에 벌써 많은 교회와 사람들에게 칭송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만큼 그 영혼은 맑았고 진실했고 인격과 사랑이 넘쳤고 성령이 함께 했습니다. 그럴 수 있었던 원인은 조기 교육이 이룬 성과였습니다.

그래서 딤후3:15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한 것과 같습니다. 일찍 성경을 알았고 일찍부터 철저한 신앙교육을 받았던 것입니다. 신앙교육은 빠를수록 좋습니다.

통계에도 나오지요. 이 세계를 움직이는 위대한 신앙인들은 대부분 주일학교 출신이라고요. 큰 일군이 되려면 최소한 20세 미만에 소명감을 깨달아야 합니다. 잠22:6에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능통한 일군으로 쓰임을 받으려면 어릴 때부터 훈련시켜야 합니다. 나중으로 미루면 때는 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일학교가 중요합니다. 첫째는 어린이들이 복음을 잘 받아들이고, 또 그 아이에게 관심 써 줄 때 그 부모가 예수 믿습니다. 스펜서 박사가 미국교회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는데 그중 548명이 10대에, 340명 이상이 20대에 주님을 영접했지만 40대 이상의 경우에서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미국교회 재직의 86%가 유년 주일학교 출신이며 중직의 90% 이상은 주일학교 출신이었습니다. 비록 미국이 통계이지만 주일학교의 중요성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입니다.

우상의 천국 일본에도 전도할 길은 있을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 일본인은 아덴 사람들처럼 모든 것을 신으로 삼는 종교성이 풍부한 민족이기에 하나님도 받아들일 수 있는 가능성이 보였고, 젊은 세대들은 기성세대를 따르지 않는다는 점에서 주일학교를 겨냥한 선교를 펼치면 효과적이고, 특히 결혼만큼은 신기하게도 꼭 교회에서 하기를 희망하므로 젊은 세대나 부부사역을 중심으로 선교한다면 효과적일 것이라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릴 때부터 준비가 되면 아주 능통하게 쓰시는 일군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지 못하다면 날마다 반복적인 연습을 통해서 준비해야 합니다. 열심히 준비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4. 어떤 거침돌도 없어야 합니다.

3절 “바울이 그를 데리고 떠나고자 할새 그 지경에 있는 유대인을 인하여 그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하니 이는 그 사람들이 그의 부친은 헬라인인 줄 다 앎이러라” 당시 유대인들은 아버지가 이방인이어도 어머니가 유대인이면 자녀에게 할례를 행했습니다. 바울은 본래 할례 반대자입니다. 예수 믿는 믿음이면 부족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선교를 위해서 거침돌을 없애기 위해서 디모데를 할례를 행했습니다.

간혹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혜를 알지 못하고 원칙만 주장하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옳고 믿음 좋은 것 같아도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타종교의 불상을 망치로 쳐서 부수는 훼불사건을 저지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너 믿음 좋구나 칭찬하실까요? 성경에 우상을 쳐부수는 사건이 나오는데 우리도 그래야 잘하는 것일까요? 그렇게 하기는 해야 합니다. 그러나 먼저는 우리 마음의 우상부터 그렇게 쳐부수고 불살라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혈과 육이 아니라 기도로서 감화로서 전도로서 이 땅에 우상이 사라지고 하나님을 믿는 세상이 오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오면 문화제만 아니라면 훼불을 하든 무엇을 하든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전도길 마저 막히게 됩니다.

선교하는데 어떤 거침돌도 없도록 준비될 때 어느 곳에서도 거칠 것이 없는 능통한 사역을 펼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정통성 있는 큰 교단에서 사역하는 것도 하나님의 일에 큰 도움이 됩니다. 지금 실력은 있지만 군소교단에 소속하여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는 사역자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대교단 신학교를 다시 하고 이름 있는 협회에 가입하여 활동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믿음이 없어서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지혜로우시라는 교훈입니다. 개인의 거침돌만이 아닙니다.

5. 교회의 문턱도 거침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4절 “여러 성으로 다녀갈 때에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의 작정한 규례를 저희에게 주어 지키게 하니” 이 규례는 몇 가지 금지사항도 있지만 주요한 내용은 율법의 무거운 것이 필요 없고 이방인도 동일하게 주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무거운 규례를 두어 이방인들이 교회 오는 것에 장애를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여러 교회가 더욱 굳어지고 수가 날마다 더했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을 능통하게 펼치려면 이런 면도 다 박자가 맞아야 합니다. 교회의 제도도 따라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죄인들이 나오는 곳이지 의인들이 나오는 곳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떤 죄인도 쉽게 나올 수 있도록 하면서 그러나 내적으로는 강한 감화력을 나타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디모데를 능통하게 사용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능통한 일군으로 사용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모두 튼튼한 기도의 배경을 준비하고 문화적인 준비, 조기 준비, 그리고 어떤 거침돌도 없이 하나님께서 귀한 일에 온전히 쓰임 받을 수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