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강해[2] -2


베드로전서 ② - 2


제 목 : 벧전1:3-12(B)
본문 1:3-12 산소망을 가지고 사십시요.
여러분은 어떤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까?
소망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많은 소망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보면, 지극히 개인적이고 세상적인 것임을 봅니다.
하나님에 대해 소망을 품은 것이 기본이라고 하지만 실상을 그렇지 않음을 봅니
다.
성도들은 더욱 그러합니다.
말들은 그럴듯하게 말들을 하곤하지만
\'세상과 물질\'에 무척 연관된 소망들을 갖고 있는 것을 봅니다.
지극히 사소한 일에 목숨(신앙)을 겁니다.
신앙은 안중에도 없이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음을 봅니다.
조금만 어려우면 넘어지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안타깝기가 그지 없습니다.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은 \'산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산소망이 무엇입니까?
이 세상의 것이 아니라 하늘의 것이요,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입니다
자기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영광을 사모하는 것이요,
구원, 썩지 않는 기업과 동등어 입니다.
본문이 세례의식예배시에 하나님께 드려졌던 예배 찬송의 한 형식을 빌어 기록
했다고 해도 당시 고난받으며, 고난을 미리 준비해야만 되는 청중들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먼저 들어야 했던 하나님 말씀인 것입니다.
베드로는 지금 어떻게 보면,
청중들의 상황을 무시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 그들에게는 따뜻한 위로의 말씀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누군가가 어루만져 주고 토닥거려주기를 기대하고 있는 청중들입니다.
그런데 아니 왠 날벼락입니까?
\"찬송하리로다...\"
왠지 모르게 베드로는 자신들과 동떨어져 있는 사람과 같이 느꼈는지는 모르겠
습니다.
전혀 청중들의 상황을 의식하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있는 사람처
럼 보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첫 선입견과는 달리
베드로사도의 찬송의 내용에는 그 무엇보다도 고난을 당하고 준비하고 있는 청
중들에게
새힘과 위로와 확신을 주는 내용으로 꽉 차있음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마치 가을에 다 익은 밤 알처럼
베드로의 찬송에는 위로의 말씀이 꽉 차있음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이 찬송을 듣는 당시 청중들의 마음은 숨이 벅찼을 것입니다.
그것도 \'산소망\'으로 벅차 올랐을 것입니다.
그럼 \'산소망\'으로 벅차 오르게 하는 찬송의 내용들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설교 제목을 잡을 때,
본동사를 중심으로 제목을 잡고,
본동사가 많으면 본동사를 모두 내포할 수 있는 단어를 잡지만,
본문에서 \'찬송하리로다\'라고 시작하지만
본문의 결론이 \'산소망\'을 가지고 고난을 극복하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기에 제
목을 \'산소망\'으로 결정했습니다.
먼저,
찬송의 내용을 구원이라는 관점에서 본문의 구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3- 5절에 \'거듭나게 하시는=과거에 구원을 얻게 하시는\' 것과
여기서 거듭나게 하신 목적이 두개의 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즉, 3절에 산소망과 4절의 기업을 잇게하는 것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2. 6-12절에 \'미래에 구원을 얻게하실 것이다\'는 것입니다.
6-9절에는 현재의 구원이 내포되어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과거의 구원과 미래의 구원이 현재라는 장(場)에서 만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증거가 \'찬송하라\'이고
\'6절과 8절\'에 나타난 \'비록 고난 가운데 있지만 현재 기뻐하라\'는 단어들입니다.
신앙은 언제나 현재가 중요하지 않습니까?
참으로 베드로의 찬송 내용 전개는 놀랍습니다.
과거와 미래의 구원을 확신시켜 놓고
현재의 삶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그 관점이 놀랍기만 합니다.
즉 베드로의 처방은 눈에 보이는 부문을 베드로 자신이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라
청중 스스로가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에 의지하여
스스로 해결하려는 것이 놀랍다는 것입니다.
자생력을 키워주는 베드로의 위로방법이 놀랍기만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의지하게 함으로,
하나님을 직접대면하게 함으로
현재의 고난을 극복하게 하는 베드로의 권면을
오늘 우리의 것으로 받아 들여야 합니다.
사실, 모든 문제의 해결이 하나님을 대면하는데 있지 않습니까?
- 욥이 하나님을 대면하는 순간 그의 모든 고난이 끝났듯이,
우리 역시 하나님을 대면하는 순간 모든 고통은 다 지나가게 되는 것이 아닙
니까?
바로 이점을 우리 목회사역에 적용해야 합니다.
자생력을 키워주는 목회가 오늘 우리들이 해야될 목회방법인 것입니다.
좀더 본문의 구조를 살펴봅시다.
5절의 \'보호하심\'을 얻었다는 것은 4절의 \'너희를 위하여\'라는 단어를 설명하고
있고 6절이 로 시작되고 있는데, 가 번역되지 않았고
있습니다.
in this (which) you greatly rejoice,
* this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5절의 time을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그러나 8절에도 기뻐한다는 말이 있음을 볼 때,
마지막의 때를 포괄적인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좋다.
달리말하면,
베드로는 그리스도 안에서 받는 모든 복과 주님 자체
를 의미한다고 볼 수도 있다.
또한 3-5절의 전체적인 내용으로 볼 수 있다.
미래의 일을 현재 기뻐하는 것이 강조점이다.
10-12에서 10절은 (which) As to this salvation,
여기서 구원은 9절의 구원을 받고 있지만,
이것 역시 포괄적인 단어로 이해하는 것이 좋다.
저는 이런 본문을 \'오늘의 교역자들인 청중\'을 생각하면서
그리고 \'산소망\'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재구성해서 나누고
자 합니다.
3- 5절은 산소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먼저 생각합니다 - 과거
6- 9절은 산소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고난 속에서도 기뻐합니다 - 현재
10-12절은 산소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고난 속에서도 영광을 봅니다 - 미래
1. 산소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먼저
생각합니다(3-5).
산소망을 가진 사람은 \'고난이라는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를
다른 곳에서부터 해결하지 않고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해결하려고 합니다.
지금 베드로는 가장 근본적인 구원의 문제를 통해
청중들의 정체성을 재확립시켜 주고 있습니다.
이 관점이 중요합니다.
모든 문제의 해결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성에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성이 분명한 사람은
자신이 \'구원\'받았다는 사실에 대해 늘 감사하고 감격하고 찬송하게
되는 것입니다.
고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은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고난을 받기에,
바로 이 고난은
예수님을 믿음으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무엇 보다도 먼저 이해시키는 것과
구원의 의미를 설명함이 중요함을 베드로는 잘 알았던 것입니다.
고난 그 자체를 보면 고통스럽기 짝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왜 내가 고난을 받는가라는 그 이유를 안다면 그 고난은 고통스러운 것
이 아니라
고난 속에 하나님의 다스리는 손길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연계성이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도 이스라엘 백성에 늘 강조하시는 말씀이 무엇이었습니까?
\'나는 바로 출애굽시킨 만군의 여호와\'라는 말씀이 아닙니까?
이스라엘을 다스리고 위로하시는 그 근간을 구약의 하나님은 바로 \'출애굽\'이라
는 사건을 사용했던 것처럼
지금 베드로는 \'구원\'이라는 단어를 그대로 적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왜\'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 하셨는가에서부터 출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구원의 견고성\'이 제일 중요한 것이 아닙니까?
1) 그것도 \'그 많으신 긍휼\'대로 왜 구원하셨느냐 입니다.
긍휼은 구약의 헤세드를 대신하는 말입니다.
긍휼도 보통 긍휼이 아니라 \'그 많으신\' 긍휼이라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은 3,4절에 나와 있는 것처럼
\'산소망과 기업\'을 잇게 하려는 것이 아니냐고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산소망과 기업, 그리고 구원이라는 단어는 다 같은 차원에서 이해해야 하는 단어
들입니다.
\'소망\'을 가지라는 말입니다.
그 소망은 \'산\' 소망이라는 것입니다.
잠시 있다가 없어지는 것에 소망을 두는 것이 아니라
영원이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변하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영원히 아름다움을 보존하는) 기업에 소망을 두라고 하십
니다.
이런 기업에 산소망을 두지 않고 있다면
그 누구도 현재 당하는 고난과 앞으로 다가올 고난에 대해 이길 사람은 아무
도 없는 것입니다. 산소망으로 무장되지 않는다면,
결코 불시험들을 통과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바울도 데살로니가 후서 1장에서 고난을 이기는 방법을 소망에 두게 한 장면이
설명하고 있는데 바울은 \'하나님의 공의\'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 당시 고난 당하
는 성도들을 위로했음을 봅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시기에 반드시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핍박하는 자를 핍박으로
핍박당하는 자를 안식과 영광으로 갚아 주신다고 합니다.
그래서 고난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앞으로 영광을 얻게하실 \'공의로운 하나
님\'을 바라보게 하고 소망을 바울은 당시 성도들에게 주었던 것입니다.
더구나 5절을 보십시요.
무엇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우리 성경에는 \'보호하심을 입었나니\'라고 해서 마치 과거형으로 이해되는데
계속 보호하심을 입고 있다고 번역하는 것이 옳습니다.
베드로는 5절의 말씀에서
너희의 구원은 마지막 때까지 하나님의 보호하심 속에서 완성될 것을 말씀함으
로 당시 청중들의 마음 속에 산소망으로 가득 차게 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도 \'보호함\'을 받고 있고 끝까지 보호하심을 받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을 것입니다.
비록 나그네의 삶 속에서 고난을 당하지만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를 \'예비된 구
원\'을 얻도록 하실 것입니다.
이 소망을 우린 붙잡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구원을 베푸신 분이 완성하신다\"는 진리는
우리의 연약한 무릎은 강하게 세우게 합니다.
동역자 여러분,
현실이라는 고통이 너무 커서 산소망이 희미해지신 분이 계십니까?
\'내가 겪는 고통을 나 외는 모른다고 하여 힘들어 하는 동역자 분이 있습니까?\"
고난이라는 현실 앞에서 자신을 보지 마시고
나의 하나님이 누구시며,
나에게 베푸신 구원을 생각하시고
산소망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절망 앞에 과거에 베풀어주신 구원과 현재 \'보호\'하시고 계신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하시고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시기 바랍니다.
2. 산소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고난 속에서도 기뻐합니다(6-9).///3번째로 설
교하는 것이 옳다.
6절과 8절에 보면, 라는 단어가 2번 나옵니다.
이것은 현재 중간태 직설법으로 \'현재, 지금\' 기뻐한다는 뜻입니다.
그것도 6절에서는 \'크게\' 기뻐한다고 말하고
8절에서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예수님에
대한 말이지만...
고난 당하는 지금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5장에서 보면, \"환난 중에도 즐거워 하나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환난과 고난을 다 겪어 난 후에 즐거워하는 것이 아니라
환난과 고난을 당하고 있는 바로 그 시점에서 즐거워 한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신앙고백입니까?
산소망을 가지고 있는 자들의 삶은
죽은 소망을 가지고 사는 자들과 충돌하게끔 되어 있습니다.
추구하는 삶이 다르고
바라보는 방향성이 다르기 때문에,
이 세상의 가치체계와 다르기 때문에 고난이 따르는 것은 당연한 귀결인 것입니
다.
그래서 가장 충돌이 많이 일어나는 곳이 가정이기에
주님은 친족들로 부터 핍박을 받는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고난을 당할 때,
어떤 생각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3-5절에서 살펴 보았는데,
그 생각은 6-9절에서도 중요합니다.
바울도 \"생각컨데 현재의 고난은 장차 올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고 했습니
다. 그러기 때문에 바른 생각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베드로는 참으로 \'고난\'에 대해 재미있는 생각을 합니다.
1. 고난에 대해서는 \'잠간 근심\'하게 된다고 했고(미래)
2. 고난을 금보다 더 귀한 믿음의 시련으로 보았고
3. 고난은 재림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며
4. 믿음의 결국은 곧 영혼의 구원이다.
베드로는 1) 부정적인 측면에서 고난을 본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측면에서 하나님의 입장에서 고난을 보았던 것입니다.
2) 내 입장과 나의 현실에서 고난을 본다면 \'이 잔을 내게서 떠나게 하
옵소서\'라고 하겠지만, 하나님의 입장에서 고난을 보면,
하나님이 고난을 통해 하시고자 하는 손길을 바라보기 때문에,
기뻐하되 \'크게\' 기뻐하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조금도 당시 청중들에게 딴 생각을 갖지 못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응석을 받아 줄려는 분위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강공법으로 고난을 타개해 나가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산소망이 있는가?
그렇다면
고난 속에서 다루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하고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는 \'고난\'을 좋은 기회로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니
고난을 기뻐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도들에게 고난의 본 뜻을 전하는 것에 대해 조금도 두려워해서는 안됩
니다
망설여서도 안됩니다.
고난을 기회로 삼을 수 있는 생각을 갖도록 훈련시켜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고난에 대한 올바른 생각을 해야만 하고, 실제로
기쁨의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예)
1) 적은 사례비를 받고 있다고 해서 궁색한 것이 아니라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크게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가운데 기뻐하는 것입니다.
2) 집이 지하에 산다고 넓은 집에 사는 성도들의 집을 부러워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지하에 사는 나지만 기뻐하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중고등부 아이들이나, 청년들이 전도사들과 결혼하고 싶을 정도로
그냥 막 달려와서 나 좀 전도사들과 결혼 좀 하게 해 줄 수 있느냐고 강청할 수
있을 정도로 우리들의 삶이 당당하고 포부 있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3) 기도하는 것이 얼마나 즐겁고
4) 봉사하고 주를 위해 헌신하는 삶이 얼마나 기쁘고 복된 일인가를 보여줘야
합니다.
모든 성도들이 나도 전도사님처럼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도록 행동해야
합니다.
안그렇습니까?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전도사로서의 지금 어려운 삶이 기회입니다.
내가 크게 기뻐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오늘 내가 살면서 겪는 어려움이 크게 기뻐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믿으십니까?
그리고 고난을 이기는 방법이 고난에 대해 올바른 생각을 갖게 하는 것과
아울러 당시 청중들의 신앙을 격려함으로 고난을 이기게 하고 있습니다.
8절을 보십시요.
8절에 당신들은 예수님을 보지 못하고도 사랑하는군요.
\'이제도\', 지금도 보지 못하나 예수님을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
거움으로 기뻐하는 군요.\'
베드로는 이런 격려를 통해
고난을 이기는 힘이 그들 속에도 있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당시 청중들의 신앙모습을 인정하고 격려함으로
양공법으로 고난을 극복하게 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언제나 사람들이 고난을 이기게 하는 방법이
고난을 당하는 당사자들에게서부터 출발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인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고난 당하는 당사자가 소유하고 있는 신앙에서부터 출발하고 격려하면 그만큼
고난을 잘 극복할 수 있음을 목회현장에서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는 고난에 대해 하나님의 안목을 가져야 합니다.
내가 고난 가운데서 기뻐하지 않고 슬퍼하거나 의기소침해 있다면
이것은 산소망을 가진 자라고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그에게 다루시는 기회를 져버리는 행위인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하나님의 안목으로 보는 훈련을 하십시요.
고난 속에서 크게 기뻐할 때까지
고난에 대해 묵상하고 생각하십시요.
우리와 같은 교역자는 이것을 먼저 살고 사람들에게 가르쳐야 할 사람이기 때문
입니다.
3. 산소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고난 속에도 영광을 봅니다(10-12).
왜 그렇습니까?
고난 속에 하나님의 영광을 볼 때 우리는 계속적으로 산소망을 가질 수 있기 때
문입니다.
베드로는 지금 10-12절을 통해 \'구원\'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6-9절에서 고난의 참된 의미를 통해 \'산소망\'을 계속갖게 하듯이
10-12절에서 구원에 대한 설명을 함으로 \'산소망\'을 계속 갖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은 어떤 것입니까?
10절에서는 \"은혜\"라는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구원은 행위나 보상으로 와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주어진다는 절대 진리에 대해서는 조금도 양보해서는 안됩
니다.
1) 우리가 받은 이 은혜에 대해 선지자들은 예언을 했는데,
그 내용은 11절에 나와 있는 \"고난과 영광\"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눅24:27)하여 예수님의 고난과 영광을 설
명한 사건을 기억나게 합니다.
선지자들은 부지런히 \"성령님이 \'계속\' 지시를 받아서
계속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3가지 반복함으로 강조)\" 이 은혜를 알기를 원
했습니다.
선지자들은 당대를 위해 예언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위해 예언했던 것입니다.
12절에도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2) 그리고 이 은혜에 대해서는
복음전도자들이 전했던 것입니다.
벧전2:21-24절, 3:18, 4:1-2, 4;13, 5:1,4절 을 보십시요.
\'고난과 영광\'이 충만하게 깔려 있습니다.
\'고난과 영광\' 주제와 \'순서\'는 이처럼 연계성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3) 이것은 또한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이제 (그 구원은) 너희에게 고한 것\", 즉 우리들에게 임했다는 말씀입니다.
얼마나 구원에 대한 자긍심을 갖게 하는 말씀입니까?
바로 \'이제 너희에게 고한 것\'이라는 말씀을 들었을 때,
그들은 두 주먹을 불끈 쥐었을 것입니다.
\"그래 내가 어떻게 구원을 받았는가?\"
\"산소망을 갖자!\"
\"지금은 \'잠간\' 고난 당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고난은 내가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하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기회이다. 잘
선호하자\".....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역시 위와 같은 생각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으로 하나님께 찬송을 돌리려 하십니까?
우리가 \'산소망\'을 가지고 사는 삶을 통해 하나님께 찬송을 드려야 하지 않겠습
니까?
우리는 지금까지 고난을 극복하도록 하기 위해 베드로가 어떻게 노력했는가를
살펴보았습니다.
단지 위로의 말을 던짐으로 겉으로 들어난 어려움을 치료하기 보다는
과거와 미래의 구원의 문제를 현재 상황으로 끌고 와서
고난을 재해석하고 그들이 가지고 있던 주님에 대한 사랑을 인용하는
베드로의 세심한 배려를 살펴보았습니다.
이런 안목은 거져와진 것이 아닙니다.
복음에 대한 깊은 묵상의 결과 와진 것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고난에 대한 그 해결점을 다양한 측면에서 접근하는 그 모습에서 베드로 사도의
복음에 대한 깊은 성찰을 봅니다.
우리 역시 베드로의 안목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베드로의 방법들을 우리는 말씀에 대한 깊은 연구 속에
나의 것으로 만들고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청중들이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울 수 있는 복음의 총체성 있는 지식이 우리
에게 있어야 할 것입니다.
동역자 여러분,
우리는 성도들에게 \'산소망\'을 심어 주어야 합니다.
산소망 없이 고난 앞에 넘어지는 성도들을 보십시요.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제가 생각하기로는 왜 성도들이 \'산소망\'을 갖지 못하는가를 보면,
1) 하나님으로부터 택함받았다는 정체성이 분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손길을 못 본다.
2) 나그네로서의 삶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고난이라는 현실에 빠져있고
현실의 삶에 정신이 없기 때문이다.
3) 좋은 목자로부터 배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난의 의미를 모르고 고난을 기회로 삼지 못한다.
우리는 산소망을 심어 줘야 합니다.
고난 속에서 \'찬송하리로다\'라고 외칠 수 있도록 산소망을 갖도록 해야 합니다.
산소망 가운데 삶을 살도록 훈련해야만 합니다.
누가 산소망 가운데 사는 자입니까?
바로 고난 가운데 하나님의 도우신 손길을 보면서 찬송하고 장차 완성될 구원을
바라보며 크게 기뻐하고 있는자가 아닙니까?
오늘 이런 성도가 필요합니다.
이런 성도를 훈련시킬 동역자들이 필요합니다.
바로 여러분들이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