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강해 [4]
베드로전서 ④
제 목 : 벧전2:1-10
본문 2:1-10 갓난아이에 머물지 말고 계속 자라가십시요.
우리의 신앙이 자라야 함에 대한 당위성은 다 가지고 있고 사모하고 있습니다.
교회마다 양육에 대한 프로그램이 왠만하면 다 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무작위로 훈련시키는 것을 봅니다.
일정한 교재를 가지고 훈련시키면 다 되는 것으로 생각되는가 봅니다.
그러나 훈련에서 중요한 것은 훈련시키는 사람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훈련시키
느냐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어떤 정신을 가지고 있느냐가 훈련의 성패를 좌우합니다.
수레바퀴예화를 통해 다시 말씀드리면
수레바퀴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축\'입니다.
; 우리들의 마음 중심에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지 않고
수직적인 삶과 수평적인 삶을 살려고 한다면
이것은 부실하기 짝이 없는 것이죠. 얼마 가지 않아 무너질 수 밖에 없는 것입
니다.
그래서 훈련을 기껏시켜 놓았는데 여전히 삶이 변화지 않고,
때로는 신앙에 대해 엉뚱한 소릴하는 것입니다.
순종의 삶이 오히려 \'부담\'으로 느끼고
신앙생활을 할 수록 \'자유와 기쁨\'의 측면은 누리지도 못하고 어렵다고만 푸념을
늘어 놓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주님이 나의 주님\'이시라는 확고한 믿음이 없이는
그 어느 것도 사상누각인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우리의 축이 견고할 수록 우리는 \'자원하는 마음\'으로
비록 고통이 있지만 인내하는 가운데 기쁨으로 순종의 삶을 \'저절로\' 살아 갈 수
있습니다.
문제는
\'주님의 주님되심\'이 없기에 순종의 삶이 \'의무\'로 비추어 지게 되는 것입니다.
의무감으로 하는 곳에는 꼭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 법입니다.
항상 순종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살라\'보다는 먼저 \'너의 정체성\'을 먼저 생각하
라는 것이 중요함을 우리는 잊어서는 결코 안됩니다. 왜냐하면 정체성이 있는 곳
에 삶이 따라오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사도는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
우리가 \'계속 자라가야 할 것\'을 권면하고 계십니다.
1-3절에서는 어린아이와 같이 신령한 젓을 사모함으로 자라가기를 권면하고 있
고
4-10절에서는 산돌들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짐으로 자라가기를 권면하고 있습
니다.
1-3절이 말씀을 통한 개인적인 성숙이라면,
4-10절은 공동체적인 성숙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즉 개인적인 성숙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공동체적인 성숙으로 나아가야 함을 강
조하고 있고,
더 나아가서는 세상속에서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할 수 있수 있도록 자
라가기를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먼저 1-3절을 통해 개인적인 성숙에 대해 살펴 보기로 합시다.
처음 서론에서도 강조했듯이 \'성숙\'을 논할 때, \'성숙만\'을 가지고 논해서는 결코
안됩니다. 3절이 반드시 언급되어야 할 부분인 것입니다.
3절을 한 번 읽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3절이 전제가 되지않고 개인성숙을 논해서는 결코 되지 않습니다.
; 3절은 \'말씀의 진가\'를 재 강조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말씀을 통해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다면, 당연히 계속 맛보면서 살 수 밖에 없
다는 말입니다.
말씀의 맛을 보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가 어려서부터 \'김치\'맛을 보았기에 \'김치\'가 없으면 밥을 먹은 것같이 느껴
지지 않는 것처럼 말씀의 맛을 한 번 보면,
그 맛을 잊을 수가 결코 없는 것입니다.
다른 것이 아무리 맛있게 보이게 보여도 말씀을 사모하게 되는 것입니다.
정근두목사님이 우리 수련회에 처음 오셔서 한 말씀이 있습니다.
참으로 신기하다는 것입니다.
PBS와 GBS만 하고 있는데도 회비를 돌려달라는 사람들이 없고 모두 열심히 말
씀 앞에 앉아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회비를 내고 자기가 성경연구를 하는데도 불평하지 않으니 신기하다는
것입니다.
아나톨레의 수련회는 \'스스로\' 말씀의 맛을 보도록 하고,
같은 동역자들이 맛보았던 말씀을 나눔으로 같이 더 풍성히 말씀의 맛을 보도록
하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한 번 아나톨레의 수련회에 오면, 말씀의 맛을 보고 가기에 그 맛을 계속
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학기중에도 한 본문을 가지고 PBS하지요 GBS하지요, 그리고 설교를 또 듣지
요...
완전히 말씀에 푹 빠지게 하는 것입니다.
재학생시절에 20권을 연구하고 졸업하면 우리의 사역은 때를 따라 과실을 맺는
나무가 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교회교육에서도 이것을 적용시켜야 합니다.
말씀 자체를 가르쳐야 합니다. PBS하는 방법을 훈련시켜야 합니다.
스스로 말씀을 먹을 수 있도록 훈련을 시켜야 합니다.
대체로 스스로 말씀을 먹는 시기까지는 약 1년 6개월 걸리지만
인내하고 계속 가르치면 좋은 결실이 있을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 역시 말씀을 맛보았다면 계속 자라가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
다.
1,2절을 보면,
우리가 자라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버리고...사모하라\'고 말씀합니다.
1) 버리라는 것은 억제하라는 말도 아니고 줄이라는 말도 아닙니다.
악은 그 모양이라도 버리라는 말씀처럼 짤라 버리라는 말입니다.
무엇을 버리라고 하지요?
5 가지를 기록하고 있는데, 5 가지 모두는 거룩과 반대개념으로 이해하면 되는
데,
베드로도 바울처럼 죄를 구체적으로 나열하고 있다는 점이 같습니다.
예수님도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더럽다고 하시면서 여러가지 죄를 구체적으로
나열하고 계시는데,
실상
우리들의 죄에 대한 생각은 상당히 \'포괄적\'으로, \'추상적\'으로 사용하는 것 같
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성경에 나오는
죄에 대한 구체적인 나열과 그 뜻을 음미해 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보겠습
니다.
예를들면 롬1:18절이하의 죄들, 갈5:19절 이하의 육체의 일들, 딤후3:1절 이하의
죄들.....
성경에 나오는 죄에대한 묵상은 곧 성숙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교훈을 줄 것입
니다.
모든 악독 : 온 갖 악을 총 망라한 선의 반대 개념
모든 궤훌 :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모든 행동. 순전함과 반대
외식 : 사람의 영광을 구하는 것. 거짓없이...
시기 : 내가 없는 것을 남들이 가지고 있을 때 부러워 속으로 미워하는 것
모든 비방혜을 버렸음으로(=버렸기 때문에) 2절 사모하라로 해석할 수 있다는 말입
니다.
그래서 우리는 두 가지 모두를 포용해서 1절을 해석하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1절을 다 버렸지만 계속 버리라.\'
2) 우리가 자라가야 하기위해서는 버릴뿐만 아니라 사모해야 합니다.
무엇을 사모합니까?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 귀절은 1장 23절의 이하의 말씀과 연관해서 해석해야 합니다.
그리고 신령한이라는 단어가 로기콘으로 되어 있기에 \'말씀의 젖\'으로 번역함이
옳다고 봅니다.
\'순전하다\'는 말은 \'물을 타지 않은 것\'을 말합니다.
; 즉 \'물을 타지 않은 말씀의 젖\'을 사모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사모 앞에도 \' \'라는 말이 붙어 있어 \'깊이\' 사모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부정과
거(당위성)입니다.
아이를 길러 보았기에, \'어린아이 같이\'와 \'깊이 사모하라\'는 말과 연관성을 좀 이
해하게 됩니다.
갓난아이에게 있어서 젖은 생명 줄입니다
그리고 갓난아이는 자기가 배부를 때까지 힘껏 사정없이 빨아댑니다.
그래서 애들은 젖을 먹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만족한 가운데 잠에 듭니다.
갓난아이는 만족할 때까지 젖을 먹죠.
그래서 베드로는 \'갓난아이 같이\'라는 말을 쓰고 있는 것 같습니다.
거듭난 자가 말씀을 사모하는 것은 마땅한 것입니다.
교회에서 보면,
틀림없이 구원을 받았는데 신령한이라는 단어가 로기콘으로 되어 있기에 \'말씀의 젖\'으로 번역
함이
옳다고 봅니다.
\'순전하다\'는 말은 \'물을 타지 않은 것\'을 말합니다.
; 즉 \'물을 타지 않은 말씀의 젖\'을 사모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사모 앞에도 \' \'라는 말이 붙어 있어 \'깊이\' 사모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부정과
거(당위성)입니다.
아이를 길러 보았기에, \'어린아이 같이\'와 \'깊이 사모하라\'는 말과 연관성을 좀 이
해하게 됩니다.
갓난아이에게 있어서 젖은 생명 줄입니다
그리고 갓난아이는 자기가 배부를 때까지 힘껏 사정없이 빨아댑니다.
그래서 애들은 젖을 먹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만족한 가운데 잠에 듭니다.
갓난아이는 만족할 때까지 젖을 먹죠.
그래서 베드로는 \'갓난아이 같이\'라는 말을 쓰고 있는 것 같습니다.
거듭난 자가 말씀을 사모하는 것은 마땅한 것입니다.
교회에서 보면,
틀림없이 구원을 받았는데, 말씀을 사모하지 않는 것을 봅니다.
그것은 1절을 버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1절을 버리지 않는 이유는 \'자신의 신분에 대한 분명한 정체성\'이 결여되
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지엽적인 문제들이 있습니다.
교회의 분위기가 말씀을 사모하게 하지 못한다든지,
말씀 인도자에 대한 관심과 신뢰감이 없다든지....
그러나 \'내가 누구인가를 안다면\' 말씀을 사모하기 마련인 것입니다.
내가 속한 공동체는 말씀을 사모하고 있는가?
사모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를 잘 분석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
니다.
2. 공동체 속에 자라가라(4-10).
4-10절의 문장을 잠시 보면,
6절 앞에 becauce가 생략되었습니다. 그래서 6-8절은 4,5절과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고,
9절 앞에 but 이 생략되었기에 독단적으로 본문을 처리해서는 안됨을 알 수 있
습니다.
우리의 성숙은 개인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는 교회론의 입장에서 본문을 설명하고 있는데,
저는 본문을 교회론적인, 공동체적인 성숙의 입장에서 보고자 합니다.
4,5절을 다 같이 읽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너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
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5)
본동사는 \'세워지다\'입니다.
4절의 \'나아와\'는 현재 중간태 분사입니다. 그래서 나오되 계속 나아와 세워짐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누구에게 나아오라는 말입니까?
\'산 돌이신 예수님께\'
이 산 돌이신 예수님은 사람들에게는 버린 바되었지만,
하나님에게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십니다.
4-10절에서 예수님은 \'심판의 기준\'으로 나타납니다.
즉, 산 돌이신 예수님을 \'믿고 순종\'하면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고(6)
\'믿지 않고 순종하지 않으면\' 그 돌은 부딪히고 거치는 반석이 되는 것입니다
(8)
그러나
산돌이신 주님에게 나아온 \'산돌들\'인 우리는 9절 말씀처럼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4-10절에서 중요한 것은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다\'입니다.
우리 신앙 성숙은 개인성숙에 머물러서는 결코 안됩니다.
함께 자라가야 합니다.
이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귀결입니다.
우리는 수직적인 삶과 수평적인 삶이 어우러질 때 잘 성숙하게끔 되어 있습니
다.
그럼 \'세워지는\' 그 목적은 무엇입니까?
5절에는 \'거룩한 제사장이 되는 것\'으로 말씀하고 있고
9절에서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는 것\'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둘은 모두 \'삶\'과 상호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이런 삶에 대한 구체적인 실례는 다음 2:11절이하에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의 인자하심을 맛본 자들은 계속 자라가야 함
을 살펴보았습니다.
1) 갓난아이처럼 신령한 젖을 깊이 사모함으로 자라가고
2) 산들들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짐으로 자라가야 하고
3) 그 결과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세우데까지 자라가야 함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목회현장에서 경험한바로는
대부분의 성도들이 공동체적인 성숙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훈련조차 받아 보지도 못한 사람들이 대다수인것 같습니다.
좀더 심하게 말하면 대체로 개인성숙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고,
기껏해야 개인성숙에 머물러 있습니다.
참으로 성숙에 관심이 적음을 봅니다.
왜 그런가?
저는 무엇보다도 교역자 자신들이 두 가지 안목이 없어서 이러지 않은가 봅니다.
하나는 올바른 안목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하고
또 하나는 열정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구원에 있어서도 개인구원론으로 끝나고 맙니다.
(여기서 개인구원론이라는 말은 부정적인 말임)
혼자 잘되고 천국가겠다는 생각입니다.
개인구원은 반드시 공동체적인 구원론, 교회론적인 구원론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부족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가르쳐야 합니다.
개인구원론에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은 바로 공동체에로 \'부름 받는 것\'이고, 부른 받은 이유는 \'다시 세상에 보
내기 위함\'이라는 진리를 잘 가르쳐야 한다고 봅니다.
2:1-10에 잘 나와 있는 구조를 반드시 가르쳐야 합니다.
세상을 향하여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할 수 있는 사람으로 훈련시켜야 합
니다.
요즈음은 좀 낫지만 예전에 성경공부교재를 보면
대체로 개인성숙에 촛점을 맞추어서 나온 것을 봅니다.
그러기에 교회론적인 공동체의 삶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음을 봅니다.
무엇보다도 교역자들이 이런 안목을 가지고 있어야 함을 이 시간 잊어서는 결코
안됩니다.
우리가 균형잡힌 시각을 가질 때
비로서 우리는 성도들을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할 수 있는 존재로 만들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동역자 여러분들은 자신이 얼마나 자랐다고 생각합니까?
여러분들은 어떻게 자신의 성숙 기준을 가지고 있습니까?
무엇을 보고 자신이 성숙했다고 판단합니까?
저는 이 시간에 수레바퀴의 예화를 통해 실제적인 평가들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수레바퀴의 삶을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은
균형잡힌 삶을 살고 있는가? 벧전2:1-10의 삶을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과 같
습니다.
1.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말씀과 기도를 통해 친밀감을 누리고
죄를 미워하면서 세속에 물들지 않도록 하는가?
왜냐하면,
축이 견고한 사람은 계속적으로 하나님과 교제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경외함이 늘 충만합니다.
2. 공동체와의 관계에서
말과 행동이 지체에 대한 \'배려\'가 있는가?
배려라는 말은 섬김이라는 말과 같습니다.
배려를 하되 세심한 배려를 하느냐 입니다.
배려속에는 모든 궤휼과 외식이없습니다.
상대방에 대해 시기와 비방의 말을 하지 않습니다.
상대방이 잘 하는 것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습니다.
있는 그대로 받아 줍니다.
동역자들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나타남을 기뻐합니다.
여러분, F.B.마이어를 아십니까?
당시 영국에는 스펄젼, 몰간과 함께 마이어가 있었는데,
마이어 목사는 다른 두 사람에 대해 시기하는 마음이 있었다고 합니다.
하루는 하나님이 이것을 회개시키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축복해 주라고 했
습니다.
그대로 순종했더니 자신의 목회가 그렇게 은혜스럽게 되더라는 간증입니다.
여러분들도 지금은 잘 모릅니다.
그러나 같은 동기들이 나중에 나와는 별로 차이가 없는 것 같은데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듣고 있다면 그 때는 좀 다를 것입니다.
예) 한 교회에서 동기들이 부교역자로 사역하고 있는데,
성도들이 자기보다 다른 동기를 더 높이고 있다는 생각을 들 때,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리고 \'말\'에 있어서도 성숙해야 합니다.
약3장에 있듯이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이 온전한 사람이기에,
말에 배려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동역자 여러분은 말과 행동에 있어서 \'배려\'가 성장하고 있습니까?
사실 가장 가까운 아내나 식구들로 부터 평가받는 것이 제일 정확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내는 나에 대해 무엇이라고 평가하고 있습니까?
혹시 \'자기 자신이나 신경쓰고 가정에서부터 잘 하라는 말을 듣지는 않습니
까?\'
우리의 신앙지식이 내면화되고 생활화되지 않는다면,
가정에서 좋은 소리를 못 들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가정의 생활은 \'배려\'의 생활이기 때문입니다.
공동체 안에서의 신앙성숙은 \'배려와 섬김\'을 통해 잘 알 수 있습니다.
지극히 사소한 부분이라도,
지극히 연약한 사람이라도,
돌봄과 격려와 용납과 인내함이 있는 것을 통해 우리는 자신의 성숙을 평가
할 수 있을 것입니다.
3. 세상과의 관계에서
선교와 사회봉사를 하고 있습니까?
전도라는 것은 하나님과 원수된 자들을 하나님과 화해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후5:17이하에서는 새로운 피조물인 모든 사람에게는 \'화목의 직책\'
이 부여되었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전도에 대해 부담을 갖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봅니까?
1) 전도를 하지 않았기에 전도를 못하는 것입니다.
2) 복음에 대한 부끄러운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혹시나 상대방이 거절하거나 무시하면 어쩐다지...
3) 기회를 얻고자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4) 전도와 인도를 구분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5) 전도를 영혼을 사랑한다는 입장에서 하기 보다는 \'의무\'감으로 생각하기 때
문입니다.
6) 전하는 자가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불량상품도 과대광고해서 팔아 먹는 현실인데...
혹자는 가장 가까운 식구들이 전도하기가 제일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제일 전도하기가 쉽습니다.
나의 생활이 투명성있게 공개되기에 전도를 잘할 수 있습니다.
전도는 \'먼저 상대방에게 나의 삶에 대한 신뢰성\'이 있을 때 잘 전달될 수 있
기 때문입니다.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가까운 사람을 전도하지 못하면 세상사람을 전도하기가 그만큼 어렵게 됩니
다.
속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는 지역과 함께 성장해야 한다는 생각을 잊어서는 결코 안됩니다.
지역속의 교회로서 자리를 잡아야 합니다.
어떻습니까?
균형있게 잘 자라가고 있습니까?
약1:26,27절에서도 보면 3가지 영역속에서 자기의 경건을 살펴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고\'
세상과의 관계에서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개인과의 관계에서 \'자기 혀에 재갈을 먹이라\'
결론적으로
베드로는 당시 고난 가운데 있는 성도들이 계속 자라기를 권면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의 성장은 균형있는 성숙이요,
삶과 괴리되지 않는 성숙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런 균형잡힌 성숙이 우리 자신에게 뿐만 아니라 목회현장에서도 있어야 겠습
니다.
* 다음에 설교할 때 :자라가라의 주제 속에서 1-3절은 신령한 젖을 사모함으로,
4-10절은 신령한 집으로 세워짐으로
그 결과 하나님의 덕을 선전하라로 설교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