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경 : 민1 : 1 - 46절
제 목 : 싸움에 나갈만한 자
민수기는 본래 히브리 성경에서의 이름은 <베미드바르>인데
이는 ‘광야에서’ 라는 뜻입니다.
광야에서 라는 말은 이스라엘이 처하였던 공간적 배경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민수기가 70인 번역에 보면 <아리트모>라고 나오는데
그 뜻은 숫자들이라는 말입니다.
이를 우리 성경에서 민수기로 번역하였습니다.
민수기라는 말은 백성들의 嗤?세었다는 뜻입니다.
책 제목이 말해 주듯이 민수기는 우리들에게
광야 같은 세상에서 하나님 백성이 어떠해야 하며
하나님께서 하나님 백성인 교회를 어떻게 인도하시는가를 말씀하십니다.
오늘 민수기 1장을 통하여
세상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와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민수기를 통해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십니까?
1. 여호와 하나님께서 민수기를 통해서 무엇을 말씀하십니까?(1-2절)
1절을 보세요.
[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후 둘째 해 둘째 달 첫째 날에
여호와께서 시내 광야 회막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
그러니 이스라엘 자손이 출애굽 한 지 2년 2월 일일에
하나님은 시내 광야 회막에서 모세에게 말씀 하셨습니다.
민수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 광야를 출발하여 가나안 입경 직전
모압 광야에 도착할 때까지의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광야생활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광야가 어떤 곳입니까? 사막지역입니다.
물도 없고 쉴 곳도 없는 황량한 곳입니다. 뱀과 전갈이 있는 곳입니다.
이곳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도움심이 필요한 곳입니다.
광야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행7:38절에 스데반의 순교 직전 설교에서 광야 교회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광야는 세상을 의미한다면 이스라엘은 바로 신약교회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세상 속에 있는 우리의 교회생활은
광야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 백성과 마찬가지입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거쳐 가나안 땅에 들어가듯이
우리는 교회생활을 거쳐 하나님 나라에 들어갑니다.
민수기는 이런 과정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어떻게 처신해야 할 것을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습니다.
어떻게 처신해야 합니까? 본문이 그 답을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2절에
[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회중 각 남자의 수를
그들의 종족과 조상의 가문에 따라 그 명수대로 계수할지니 ]
즉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남자의 수를 계수하라고 합니다.
이것은 모세를 통한 이스라엘 백성의 인구조사는 바로 군대조사인 것입니다.
왜? 인구조사를 하라고 합니까?
광야생활과 가나안 정복을 위해서입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군대이기 때문입니다.
출12:41절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
여호와의 군대로 나왔다고 합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군대이니, 인구조사는 당연한 일인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군대가 되어야 합니다.
신학적으로도 교회를 전투적 교회라고 합니다.
세상과 악한 영들과 싸우는 전투적 교회만이
이 세상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통하여 인구조사를 하되 어떻게 하라고 합니까?
2.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인구조사를 어떻게 하라고 하며
이 명령이 신약교회에 주는 영적 교훈이 무엇입니까?(2-3절)
2절을 다시 보면
[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회중 각 남자의 수를
그들의 종족과 조상의 가문에 따라 그 명수대로 계수할지니 ]
1) 그들의 종족과 조상의 가문에 따라 계수하라고 합니다.
종족과 가문에 따라 - 민1장에서 13번이나 나오는 말입니다.
그만큼 중요하다는 말이지요.
본래 이스라엘 백성들 하나님의 군대로 출애굽 했습니다.
군대의 특징 중 하나가 바로 소속입니다.
소속이 없는 군인은 군인이라 할 수 없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군대입니다. 소속이 분명해야 합니다.
싱가포르 믿음공동체 교회 <로렌스 콩> 목사는
“ 셀에 소속되지 아니한 교인은 우리 교인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는 예친이 잘 되어 있습니다.
예친에 소속되지 아니한 교인은 내일교회 교인이 아닙니다.
2) 3절 [ 이스라엘 중 이십 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모든 자를
너와 아론은 그 진영대로 계수하되 ]
(1) 이십 세 이상인 남자를 계수하라고 합니다.
이십 세 이상은 성인들을 말합니다.
아무리 영특해도 어린아이는 싸울 수 없습니다.
영적 싸움은 신앙의 성숙한 자들의 몫입니다.
이십 세 이상 남자들은
애굽에서 종노릇 하면서 억압과 채찍 속에 고난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싸움에 나갈 만한 자들이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도 디모데에게
딤후2:3절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가 되기 위하여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고 합니다.
삶의 고난 속에서 더 강건해 지는
싸움에 나갈 만한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신앙이 성숙지 못한 교인들은
영적 싸움에 임하기 전에 자기들끼리 싸웁니다.
오늘 교회 현실을 보면
성숙치 못한 교인들 때문에 교회 안에서 싸웁니다.
그러나 교회는 세상과 마귀와 싸우기 위하여
신앙적으로 성숙한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2) 여기에 싸움에 나갈 만한 자 란 말도
민1장에서만 13번이나 나옵니다.
하나님은 싸움에 나갈 만한 자를 계수하여
광야의 행군 시와 가나안 정복 시에 전쟁에 준비하게 하셨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 백성의 수에 들어오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싸움에 나갈 만한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럼 싸움에 나갈 만한 자는 어떤 자입니까?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건강해야 합니다.
군 입대 아무나 할 수 없습니다.
신체검사를 받고 영장을 받아야 합니다.
신체검사는 일급에서 사급까지 매기는데
일급 이급은 현역 입영 대상이고
삼급은 공익 근무 요원이고 사급은 면제입니다.
싸우려면 무엇보다도 건강해야 합니다.
영육 간에 강건한 성도들 되시기 바랍니다.
마음에 우울증 열등감 상처 있는 사람
자기중심적인 사람, 부정적인 사람, 잘 다투는 사람
다 신앙적으로 건강치 못해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아와 십자가의 보혈로 치유 받으시기 바랍니다.
신앙적으로 건강한 사람만이 영적 싸움을 할 수 있습니다.
특히 고전16:13절에
“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라 ”
그런데 신20:5절 이하에 보면 싸움에 나가지 말아야 할 자를 언급합니다.
새 집을 짓고 낙성식을 하지 못한 자
포도원을 만들어 과실을 먹지 못한 자
약혼하고 결혼하지 못한 자
왜?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는 싸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딤후2:4절에도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는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그리고 두려워 하여 마음이 허약한 자도 돌려 보내라 합니다.
왜? 다른 사람들까지 낙심케 만들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삿7:에 이스라엘이 미디안과 전쟁하기 위하여
기드온 300 용사 뽑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기드온이 깃발을 드니 32,000명이 모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너무 수가 많으니 돌려보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이 스스로 자랑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함이라.
그래서 22,000명 돌아가고 10,000명이 남았습니다.
그 가운데서 두려워하는 자 다 돌아가라고 합니다.
왜? 다른 사람들까지 낙심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교회 안에 싸움에 나갈 만한 자가 얼마나 되나? 보십니다.
오늘 교회 안에 싸움에 나갈만한 자가 누구입니까?
하나님 백성의 수에 들어오는 자가 누구입니까?
물론 교회 출석하고 신앙고백하고 세례 받으면
교회법으로는 그 교회 교인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 보시기에 진정한 교인은
바로 싸움에 나갈 만한 자입니다.
그럼 싸움에 나갈 만한 자가 누구입니까?
바로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영적 싸움은 바로 기도로 싸우는 싸움입니다.
출17: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산위에 선 모세의 모습에서 잘 보여 줍니다.
모세의 팔이 들리어 지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모세의 팔이 내려오면 아말렉이 이깁니다.
바로 모세의 팔 기도의 팔입니다.
기도하는 교회만이 세상과 마귀와 싸우는 전투적인 교회입니다.
싸움에 나갈 만한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번 우생순 특새에 기도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제자입니까?’ 란 책을 쓴 <후안 카를로스 오르티즈> 목사님이 이런 말을 썼습니다.
“오늘 현대 교회의 모든 문제는 교회가 탁아소가 된데 기인한다”
교회는 그리스도 예수의 군사를 양성하는 영적 훈련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현대 교회는 교회라는 요람에 가두어 놓고
우유만 먹이는 탁아소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교회들이 세상에 영향을 기치는 스피릿이 없다는 것입니다.
맞는 말입니다.
초대교회는 무서운 핍박과 악조건 속에서도 영적 전투에서 승리했습니다.
행4: 과 12장에 보면
산헤드린 공회가 베드로를 옥에 가두었을 때
초대교회 성도들이 국회의사당 앞에 촛불 시위 하지 아니했습니다.
모여서 기도했습니다. 영적 전투를 치룬 것입니다.
우리는 할 수 있는대로 싸우지 않고 평안한 삶을 살기 원합니다.
땀 흘리지 않고 안전된 가운데 유유자적하며 살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영향력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생명력을 상실하고 쓸모없게 되어버리고 맙니다.
유럽이나 미국 동북부로 가보면
목사로서 너무 안타까운 광경을 볼 수 있습니다.
오래된 마을의 요지에 큰 건물들이 너무나 눈에 익은 것 같습니다.
자세히 보면 100년이 넘은 교회들로서 호텔 아파트먼트 쇼핑센터
심지어 어떤 교회들은 레스토랑으로 변모해 있습니다.
한 때는 다 싸움에 나갈 만한 자들이 모였던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안정된 생활을 하다 보니
교회가 생명력을 잃고 교인들은 떠나가고
도저히 건물 유지가 안되어 교회가 문을 닫은 것입니다.
유럽 교회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하여
싸움에 나갈 만한 자의 수에 참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20세 이상 남자 중
싸움에 나갈 만한 사람을 계수하라고 하신 하나님께서
각 지파의 우두머리 한 명씩 너희와 함께 가라고 합니다.
3. 왜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인구조사를 하되
각 지파의 우두머리 한 사람씩을 함께 하라고 할까요?(4-19절)
4절 [ 각 지파의 각 조상의 가문의 우두머리 한 사람씩을 너희와 함께 하게하라 ]
그리고는 5-15절 까지
각 지파의 우두머리 이름들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이 족장들이 자신의 지파의 인구수를 계수하여 신고하였습니다.
족장이 바로서야 공동체가 건강해 집니다.
교회는 직분자 특히 장로님들이 바로 서야 그 교회가 건강해 질 수 있습니다.
나아가 소그룹의 지도자들
우리 교회의 경우 순장들이 바로 서야 예친이 건강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말씀을 보면 지파의 우두머리들의 특징이 있습니다.
1) 16절 [ 그들은 회중에서 부름을 받은 자요. ]
지도자는 부름 받은 자입니다.
조직신학에서 교회란?
하나님께 부름 받은 택한 자들의 모임이라고 합니다.
특히 교회는 지상교회와 천상교회가 있는데
천상교회는 승리적 교회라면
지상 교회는 영적 전쟁을 하는 전투적 교회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세상과 마귀와 싸우기 위해서 불렀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교회 지도자는
하나님이 나를 불러 주셨다는 사명감이 있어야 충성할 수 있습니다.
고든 맥도날드 목사의 <내면세계 질서와 영적 성장> 이란 책에 보면
하나님은 부름 받은 자가 아니면
하나님의 일군으로 사용하지 아니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부름받은 일군이 되시기 바랍니다.
2) 족장들의 이름에 ‘엘’ 이란 말이 붙어 있습니다.
대부분의 지파의 족장의 이름에 엘 이란 말이 나옵니다.
엘리술-하나님은 반석, 수르미엘-하나님은 평화, 느다넬-하나님이 주신다.
엘리압-하나님은 아버지, 가말리엘- 하나님은 나의 보수
엘리아삽-하나님이 더하신다. 아히에셀, 바기엘 등입니다.
즉 누가 교회 지도자냐? 지도자가 뭣 하는 사람이냐?
하나님을 나타내는 사람입니다.
그 삶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를 나타내 보여주는 사람이 지도자입니다.
우리 직분자들 특히 우리 순장님들 예친원들 보기에
하나님의 은혜, 주님의 사랑을 보여 줄 수 있는 리드가 되시기 바랍니다.
각 지파의 수령들이 즉각적으로 인구조사를 하여 모세에게 보고를 했습니다.
4. 각 지파의 인구조사의 계수 통계가
우리에게 주는 신앙적 교훈은 무엇입니까?(20-46절)
20-43절까지 보면 각 지파의 인구조사의 통계가 나오는데
46절에 보니 육십만 삼천 오백 오십 명이었더라 고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두 가지 신앙적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70여명으로 시작한 애굽에서의 야곱의 가족들이
400여년 만에 약 200만명이라는 민족으로 불어났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바대로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했듯이
애굽의 바로의 인구 억제 정책에도 불구하고
하늘의 뭇별처럼 바다가의 모래처럼 번성해 진 것입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신 사람은 결코 환경이 막아설 수 없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뿐이십니까? 어떻게 삭막한 광야에서 200만 명을 먹이셨을까?
만나로 메추라기로 먹이신 하나님
지금 세계적으로 경제 위기가 찾아왔지만
아무리 불경기가 다가와도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거두어주실 줄 믿습니다.
그리고 계수된 숫자를 보면 지파별로 차이가 있습니다.
가장 많은 지파는 27절에 유다 지파로서 74,600명이고
가장 적은 지파는 37절에 베냐민 지파로서 35,400명입니다.
그리고 요셉의 자손들은 에브라임과 므낫세 두 지파가 되어 나옵니다.
이것은 창49장에 야곱이 임종 시에
축복한 그대로 이뤄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축복 받은 가문을 이룩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레위 지파만큼은 인구조사에 계수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5. 레위 지파는 계수에 들지 않게 하고 성막 봉사를 하게한 이유가 무엇이며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주고 있습니까?(47-54절)
그리고 계수된 숫자를 보면 지파별로 차이가 있습니다.
49절 이하 레위 지파는 이스라엘 자손 계수 중에 넣지 말고
대신 성막을 운반하고 성막에서 봉사하게 하며 성막을 지키라고 합니다.
레위 지파 사람들은 전쟁을 하지 않게 했습니다.
대신 성막에서 봉사 하도록 했습니다.
성막이 무엇 하는 곳입니까? 성막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입니다.
이 성막이 이스라엘 진영의 중앙에 있다는 것
그리고 성막 중심으로 진을 치고 성막 중심으로 행군을 했다는 것은
바로 이스라엘의 중심은 하나님인 것을 말합니다.
즉 교회의 중심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구별된 레위인들로 하여금 성막에서 봉사하고 지키게 했던 것입니다.
왜 이렇게 성막중심의 진영, 그리고 행군을 하라고 하십니까?
이스라엘 군대의 조직이 아무리 잘 짜여지고 군대의 숫자가 많다해도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아니하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고 함게하시고 보호해 주셔야만 승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 성막이기 때문에
성막 중심의 삶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레위인들로 하여금 그 성막을 관리하게 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