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오바마 대통령 당선자 |
미국이 ‘변화’를 선택했다. 이민자의 나라라고 하는 미국이지만 유색인종이 겪는 눈에 보이지 않는 어려움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가운데 아프리카 케냐의 피가 흐르고 있는 반(半)흑인인 버락 오바마(Barack Hussein Obama) 민주당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실로 역사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다.
2008년 11월 4일 미국은 1961년생, 47세의 젊은 유색인종을 미국 제 44대 대통령의 자리에 올려놓겠다고 결정을 했다. 서로 다른 인종간 결혼이 불법이던 시절, 18살로 하와이 대학에 재학 중이던 오바마의 어머니는 최초의 아프리카 출신 유학생인 버락 후세인 오바마와 결혼을 했고, 47년 후 미국대통령에 당선된 오바마가 태어났다.
6살이 되던 해 이혼한 어머니와 함께 인도네시아로 가 어린 시절을 보낸 오바마는 10살 되던 해인 1971년 호놀룰루로 돌아와 외조부모 곁에서 소년기를 보냈다.
하와이의 명문 사립학교 푸나후로 전학했지만 백인 아이들의 인종 차별적 태도 때문에 상처를 받은 오바마는 고등학교를 마친 후 LA의 글렌데일 인근 옥시덴탈 컬리지를 거쳐 81년 아이비리그 소속 컬럼비아대로 편입했으며 88년 9월, 하버드대 법과 대학원에 입학했다.
법대 입학에 대해 오바마는 “세상을 변화시키려면 권력과 기업, 은행 등의 속성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밝힌 바 있는데 이후 ‘하버드 로 리뷰(Harvard Law Review)’의 편집장으로 일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면서 일리노이주 연방상원의원에 입성했으며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한편, 오바마의 대통령 당선에 대해 한인을 비롯한 소수민족들은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는데 침체의 늪에 빠진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이라크전과 아프가니스탄 전쟁등을 해결해야 하는 과제들을 풀어나갈 것으로 기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미연합회는 오바마 대통령 후보에 대한 한인들의 관심을 조사한 결과 “무엇보다도 이민정책의 변화를 기대하는 목소리가 높은 가운데 대선 기간 중 오바마 후보가 내세웠던 ‘희망과 변화’가 어떤 모습으로든 실생활에 반영되어오기를 바라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미국에 처음으로 변화의 물꼬를 튼 남북전쟁의 링컨 이후, 민권법이 통과된지 44년이 지난 오늘 변화의 거대한 물줄기가 워싱턴DC 포토맥강을 지나 백악관에서 하나가 되었음을 실감하는 가운데 미국민들은 링컨과 존슨이 염원하던 ‘Post-Racial Society(인종의 벽을 뛰어넘는 사회)’의 현실을 맛보게 된 것이다.
버락 오바마 후보의 대통령 당선 소식을 접한 한인들도 저소득층 감세와 부자에 대한 증세, 불체자 구제방안에 대한 호의적인 반응들을 보여 온 오바마의 이민 경제정책을 한껏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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