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행하는 것도 성령으로 하라
지난 주일 믿음은 행함을 통해서 역사한다고 말씀을 드렸다.
오늘은 그 행함도 오직 성령으로만 할수 있다는 것을 말씀 드리려 한다.
로마서 6장에서는 우리가 죄에 대해서는 죽고 하나님에 대해서는 산 자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실 때 우리도 함께 죽은 자가 되고 예수님께서 부활 하실 때 우리도 함께 살아난 자가 되었다는 말씀이다.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아담이 범죄했지만 우리는 이미 아담 안에 있었기 때문에 그 안에서 함께 범죄자가 되고 죄인이 된 것처럼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예수님께서 우리를 그 안에 품으시고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 안에서 죄에 대해서는 죽고 하나님에 대해서는 산 자가 된 것이다.
로마서 7장에서는 우리가 율법에 대해서도 자유함을 얻었다고 말씀하고 있다.
한 여인이 율법이라고 하는 남편과 결혼을 했는데 그 남편이 너무나 완벽하므로 결점 투성이의 그 아내는 도저히 그 남편과 살수가 없었다. 그런데 은혜라고 하는 남자는 율법이라고 하는 남편보다 더 완벽하고 더 훌륭하지만 한 가지 다른 점은 아내의 약점을 책망하는 것이 아니라 아내를 도와서 함께 완벽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러면 율법과 결혼한 아내가 은혜라는 남자와 결혼을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남편이 죽어야 거기에서 해방될수 있는데 그 율법이라고 하는 남편은 완벽한 것이고 영원히 서있는 하나님의 율법이기 때문에 죽을수가 없다.
그래서 이 여인이 죽고 다시 살아나야 한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가?
해답은 다 같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예수와 함께 죽고 다시 살아난 자들이다.
이와 같이 죄에 대해서 죽은자요 해방 받은자요. 율법에 대해서도 죽은 자요 해방을 받은 자인데도 여전히 문제는 남아있다. 막상 새로운 삶을 살려고 시도해 보니 안되는 것이다. 여전히 죄 아래 있는 자처럼 의를 행하지 못하고 여전히 법 아래 있는자처럼 양심의 가책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로마서 7장 끝 부분에 이런 탄식을 하고 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당신도 이런 탄식을 해 본적이 잇는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는데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는 자신을 발견하고 고민해 본적이 있는가?
선하게 살려고 할수록 선을 행할 능력은 없고 죄 덩어리뿐이라는 것을 발견하면서 몸부림쳐 본적이 잇는가?
그런 당신을 위하여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무슨 말씀인가?
우리가 예수 믿을 때 우리 속에는 하나님의 생명을 받은 새로운 영적인 존재가 생겼다. 그런가 하면 옛 사람, 육체의 사람도 그대로 있다. 그래서 내 속에 있는 새로운 존재는 하나님의 법을 지키려 하고 내 육신, 곧 옛 사람은 죄의 법을 지키려 하는 것을 깨달앗다.
그리고 그 새로운 존재가 어떻게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일에 승리할수 있는가? 라는 비결을 로마서 8장에서 말슴하고 있다.
그 비결을 한 마디로 말씀드린다면 \"성령으로! \" 이다.
다 같이 해 보실가요? \"성령으로!\":
이제 우리가 성령으로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당신 안에 성령님이 살고 계심을 믿어라.
* 당신이 예수를 구주로 믿는 자면 당신 안에는 성령님이 계신다.
어떤 사람은 성령 받고 어떤 사람은 못 받은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는 자에게 성령님은 와 계신다.
예수님께서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고 하셨다. (요 7:38-39)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 성령은 누가 받는가? 예수를 구주로 믿는 자가 받는다
40일 금식기도? 철야기도? 한다고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구주로 믿을때 성령을 받는다.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남과 같이 충만히 받는다.
우리가 철야기도, 금식기도 하는 것은 사실 이미 받은 성령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는 것이지 성령 받는 유일한 조건은 예수 믿는 것이다.
당신이 예수를 믿는다면 당신이 느끼던지 못 느끼던지 당신 안에 성령님이 와 계신다.
예수님께서 말슴하시기를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
분명히 말씀 드리거니와 성령님은 어떤 특수한 신자들의 독점이 아니라 에수 믿는 사람들에게 다 오셔서 그 안에 거처를 정하고 계신다.
믿는가?
* 우리 안에 와서 살고 계시는 성령님은 인격을 가지신 하나님 이시다.
막연한 어떤 개념이 아니다.
그 분은 지식도 감정도 의지도 가지신 인격적인 신이시다.
우리의 산 영혼과 지식을 나누고 감정도 나누고 의지도 같이 할 수 있는 분이시다.
그 분은 세상보다 더 크신 분이시다. 그 분은 바로 세상을 지으신 분이요
승리하신 분이요 인도하시는 분이시다.
바로 그 분이 우리 안에 와서 살고 계신다.
이 시간에 확실하게 성령님이 당신 안에 계심을 믿어라.
특별한 느낌이 없고 체험이 없어도 믿어라.
오직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믿어라.
당신의 느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더욱 중요하다.
하나님의 말씀이 당신이 예수를 믿을때 성령을 주신다고 하셨으니 그 말씀을 당신의 감성보다 앞세워라.
* 우리는 보화를 담고 있는 질그릇이다.
우리 속에는 세상이 감당할수 없는 지혜와 능력의 원천이 와 계신다.
우리가 이 보화의 위대함을 알게 되고 보게 된다면 우리는 자신을 더 이상 의지하려 하지 않고 그 분을 의지하려 할 것이다.
오늘 우리의 눈이 열리기를 바란다.
그 분이 우리 안에 있는 것을 확실히 알기 원하고 보기 원한다.
그 분은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도 가득 채워 주실수 있는 분 이시고 그 분은 우리가 어떤 존재이든지 변화시킬수 있는 분이시고 우리를 통해서 다른 사람까지 변화시킬수 있는 분이시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진 것은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고 하셨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 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는 것은 우리 안에 계신 그 분의 능력 때문이다.
우리가 성령님의 크심과 능력을 안다면 우리의 모든 인간적인 연약함이나 부족함을 염려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 분의 위대함을 안다면 우리가 기쁘기도 하지만 두려운 경외심도 가지게 된다.
그 분이 우리 안에 계시니 우리 자신이 그 분을 모신 성전이 되었기 때문에 거룩해야 되고 그 분이 다스림을 받아야 될 것도 알아야 한다.
우리는 그 분에 대한 경외심을 가지고 조심도 해야 한다.
우리가 조심하지 않는 것은 우리 안에 계신 그 분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서이다.
오늘 우리의 영안이 열려서 그 분에 능력과 거룩하심과 영광스러움을 볼수 있다면 당신 인생에 혁명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2. 매사에 성령님을 의지하고 순종하라.
성령의 내주하심을 확실히 알고 나면 그 다음에 해야 될 일은 그 분을 주인으로 모시고 그 분에게 복종하며 사는 것이다.
우리가 풍성한 생명을 누리게 위해서는 그 분의 주 되심을 인정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이다.
그 분의 주 되심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모든 권리를 포기하고 모든 주권을 그 분에게 위임해야 한다.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를 만난 후에 첫 번째 한 질문이 \"주여, 내가 무엇을 하리이까?\" 였다.
그 때부터 그의 인생은 예수님이 원하는 대로 순종하는 삶이었다.
당신은 성령으로 살기 원하면 모든 주권을 그 분에게 위임해야 한다.
당신 인생도 사업도 가족도 위임해야 한다.
작은 일을 할 때도 주여, 어떻게 할가요?
일상적인 일을 할 때도 주여, 어떻게 할가요?
내 아내는 늘 저녁 요리를 시작하면서 성령님, 함께 해 주세요 라고 한다.
우리가 밥을 먹을 때도 성령님 함께 하셔요 라고 해야 한다.
우리가 먹던지 마시던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해야 한다.
우리가 먹어서 기운이 나서 주의 일을 하라는 뜻도 있지만 먹는 것 자체가 주님과 함께 하면 다 주님의 일이 되고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일상적인 것도 늘 성령님께 의지하고 순종하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성령은 당신이 인정하든지, 않던지, 당신의 주인이시다.
그러나 성령님은 너무나 신사이시기 때문에 당신이 순종하려고 할 때에 말씀하시고 인도하신다.
당신이 소원할 때에 그 분은 더 확실하게 말씀하시고 도와 주신다.
그 분이 당신 인생에 주인 노릇 하시기 위해서 당신이 해야 될 일은 지극히 작은 생각에서부터 큰 일에 이르기까지 그 분을 의지하고 그 분의 뜻에 순종하기를 소원하며 사는 것이다.
당신은 이 질문에 대답해 보라.
나는 내 뜻을 따라 사는가? 주인의 뜻을 따라 사는가?
당신이 확실하게 나는 주인의 뜻에 따라 산다고 말할수 있을 때에 당신의 모든 투쟁이 끝나게 될 것이다.
주님이 살아 주시므로 지혜와 능력과 생명력이 넘치게 될 것이다.
진정 자신을 종의 자리에 내려 놓아야 주님께서 주인으로서 편안하게 일하실 것이다.
우리가 성령으로 살려고 하면 성령은 우리가 할수 없는 그 것을 할수 있도록 도와 주신다.
성령은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는 분이시다.
심지어는 우리가 빌바를 알지 못할 때도 빌바를 알도록 도와 주시는 분이시고
우리가 기도하지 못할 때도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는 분이시다.
성령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다.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비록 고난을 당해도 , 경제가 어려워도 자유함을 누릴수 있다.
우리가 성령님과 함께 선을 행하면 자유함을 누리면서 선을 행할수 있게 된다.
끙끙 거리면서 억지로 선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넉넉하게 자유함으로 선을 행한다.
당신의 마음에 자유함이 없는 것은 문제나 죄 때문에가 아니라 육으로 살려고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그 어떤 문제에서도 자유함을 누리며 이길수 있게 된다.
예수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의 차이가 무엇인가?
그것은 성령을 모신 것과 모시지 않는 것에 차이다.
그러나 신령한 영적 삶을 사는 자와 그렇지 못한 크리스챤의 차이가 무엇인가?
능력 있는 삶을 사는 크리스챤과 그렇지 못한 크리스챤의 차이가 무엇인가?
그것은 성령을 모시고 모시지 않은 것에 차이가 아니다.
똑 같이 성령을 모셨으나 성령으로 사는 자와 그렇지 않는 자의 차이다.
거듭 말씀 드린다.
예수 믿는 사람은 다 성령님을 모셧다. 우리가 성령을 모시고 모시지 않은 것의 차이가 아니라
성령으로 사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다.
아무리 좋은 보화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사용하지 않으면 그 보화가 지닌 가치는 영향력을 나타낼수 없을 것이다.
아무리 큰 지식과 권세가 있어도 그것을 사용하지 않으면 그 가치와 영향력이 들어나지 못할 것이다.
당신은 어찌하여 위대하신 성령님을 모시고 살면서도 성령님으로 살려고 하지 않고 염려하고 걱정하고 탄식하는가?
스가랴 선지는 폐허가 된 예루살렘 성전 재건을 앞에 두고 현실을 바라보았다.
인적자원도 없었고 물적자원도 없었고 모든 것이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바라보았다.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그의 선하신 뜻과 하나님이 행하실 일을 바라보았다.
그는 힘으로도 못하고 능으로도 못하나 오직 여호와의 신으로 하리라고 선포했다. 그리고 그는 믿음으로 명령했다. 산아 네가 무엇이냐?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당신이 성령으로 산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다.
인간적으로 염려하고 걱정하고 불가능해 보이는 자신이나 현실에서 눈을 떼고 세상보다 문제보다 더 크신 하나님의 신의 능력과 거룩한 뜻과 행하실 일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 분을 믿고 선포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 분이 산을 옮기시고 평지 되게 하시고 그곳에서 거룩한 전의 지대를 놓게 하시고 그 일을 마치게 하시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