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믿음은 행위를 통해서 역사한다.
야고보서 2:17
지난 주일 저는 여러분에게 믿음과 행위는 동전의 양면과 같이 필요하고 둘 다 강조되어야 한다고 말씀드렸다.
그러나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믿음만 강조되어야지 행위가 강조되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왜냐하면 구원은 우리가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고 이미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만들어 놓으신 죄에서 구속함과 값없이 의롭다 하신 선물을 믿음으로 받아 가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믿는자의 삶에서는 행위를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다고 말씀드렸다.
오늘 야고보서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했다.
이 말은 야고보서 전체의 핵심이 되는 말씀이다.
이 말씀은 피상적으로 보면 우리의 행위만 강조하는것 처럼 들린다.
그러나 이 말씀은 믿음을 전제로 하고 행위를 강조하는 것이다.
이미 믿음으로 구원 받은 자들에게 진정한 믿음의 행위를 보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도 행위 자체가 강조가 아니라 행위를 통한 믿음을 강조하고 있다.
여러분, 죄가 무엇인가? 거짓말, 도둑질, 음행, 살인, 미워하는것... 이런 것들은 죄의 열매다. 그러면 어떤 분들은 좀 더 나아가 죄는 한 마디로 불순종이다 라고 할 것이다. 그렇다 한 마디로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것이 죄다. 그런데 불순종의 원인이 무엇인가?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아담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은 것은 분명히 하나님께 불순종한 것이다. 왜 불순종했는가? 하나님 말씀을 전적으로 믿지 않고, 나아가서는 하나님 자신에 대해서도 전적으로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죄의 뿌리는 불순종이 아니라 불신앙이다.
우리가 강조해야 할 모든 행위는 한 마디로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순종의 뿌리가 무엇인가? 바로 믿음이다.
하나님 말씀을 믿고, 하나님 자신을 믿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 온전한 십일조를 드려라. 내가 너희를 쌓을 곳이 없도록 축복하리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씀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십일조하면 복받는다는 것 쯤은 예수 믿는 사람들은 다 인정할 것이다. 그러나 그 말씀을 확실히 믿는 자는 온전한 십일조를 바칠 것이다.
십일조를 바치는 우리의 행위가 상급을 받는 것이라기 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우리의 전적인 신뢰가 상급을 받는 것이다.
이것은 같은 말 같지만 아주 다른 말씀이다.
하나님의 모든 축복은 이미 우리를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준비 되어 있다.
그 축복을 받는 것은 믿음으로 받는다. 그런데 진정한 믿음은 행위로 나타나게 마련이다.
이와 같이 야고보서에서 행위로 믿음을 보이라고 하신 것은 진정한 믿음을 역설적으로 강조한 것이다.
이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음 믿음이라는 하신 교훈이 무엇인가가를 말씀드리려 한다.
1. 행위가 믿음의 증거가 된다.
진정한 믿음은 행위를 수반하게 마련이다.
예를 들어서 누가 중병이 들었는데 어떤 분이 좋은 약을 소개했을때 그것을 확실히 믿는다면 어떻게 해서라고 그 약을 구해서 먹을 것이다.
요즈음처럼 경제가 어려운 때에 만약 어떤 일에 투자해서 돈을 벌것을 확실히 믿는다면 어떻게 돈을 마련해서라도 투자할 것이다.
만약 제가 오늘 밤 2시에 여기서 나를 만나면 삼만불을 주겠다고 하면, 제 말을 확실히 믿는 사람은 틀림없이 나타날 것이다. 피곤한 것이 문제가 아니다. 아예 초저녁부터 와서 기다릴 것이다.
이와 같이 참된 믿음은 행위를 수반하는 것이기 때문에
행위가 없으면 참 믿음이 아니라고 하신 것이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것이 아니냐? 고 반문한다.
이 말씀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는 행위 자체를 강조한 것이 아니라
이삭을 바칠 정도로 그가 하나님을 신뢰 했음을 강조하신 것이다.
이미 아브라함은 이삭이 나기도 전에 하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
(창 15:7)
그런데 아브라함이 이삭이 나기도 전에 의롭다 함을 얻었는데 오랜 세월이 지나서
이삭을 낳고 그 이삭이 장성한 후에 그 이삭을 제물로 바친 행위가 의롭다 함을 얻었다고 말하는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가?
그것은 아브라함이 의롭다 함을 받은 그 믿음이 이삭을 제물로 바칠수 있는 믿음이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친 것은 부활신앙을 가지고 바쳤던 것을 히브리서에서도 설명해 주고 있다.
야고보도 그러한 아브라함의 믿음의 실제를 지금 행위를 통해서 증거된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믿음은 믿음 자체가 이미 증거하고 있다.
그래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했다. (히 11:1)
우리의 마음 속에 그 무엇으로도 지울수 없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은 성령님이 주신 선물이기 때문에 그 믿음 자체가 확실한 증거가 된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은 우리가 믿음으로 행동함으로서 증거 되어져야 한다.
야고보서는 믿는다고 하면서 행함이 없는 자들에 대해서 교훈하기 위해서
기록된 말씀이다.
사랑도 말로서만 하지 말고 행동으로서 보이라고 하셨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면서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했다.
비단 사랑 뿐이겠는가?
행함이 없는 죽은 믿음이라는 것은 행함이 없는 믿음은 진정한 믿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2. 믿음은 행위를 통해서 역사가 일어난다.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믿음은 행위를 통해서 역사가 일어난다.
믿음의 행위를 통해서 열매가, 결과가 있다는 말씀이다.
지금 우리는 환하게 밝은 전등불 아래서 예배를 드리고 있다.
이것은 우리가 전기가 전등을 밝혀주는 것을 믿고 전기 스윗치를 켰기 때문이다.
전기에 대해서 믿기만 하고 스윗치를 켜지 않았다면 전기도 있고
전등이 있어도 우리에게는 빛도 보지 못하고 열도 없을 것이다.
만약 우리가 아무리 전기에 대해서 상당한 지식이 있고 발전소는 어떻고 우리 교회 전력을 몇 암페어고 .. 하면서도 전기 스윗치를 켜지 않으면 발전소에서 아무리 강력한 power 의 전기가 흐르고 있다고 해도, 우리 교회 전기 시설이 아무리 잘 되어 있다고 하더라고 아무 소용이 없다.
전기에대 해서 몰라도 스윗치를 켜면 된다.
믿음의 행동은 마치 스윗치를 켜는 것과 같다.
그래서 믿음의 행동이 따를때 역사가 있고 열매가 있고 축복이 잇는 것이다.
이와 같이 행함으로 믿음을 나타낼때 기적도 따르고
행함으로 믿음을 나타낼때 축복도 따르는 것이다.
믿음의 기도가 병든 자를 구원한다고 하셨다.
믿음으로 하나님이 고쳐 주실 것을 믿는 자는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기도의 행위가 따른다.
그래서 믿음을 가진 자는 병들었을 때에 기도해야 된다.
꼭 병 문제만 아니라 모든 일에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표현은 바로 기도이다.
당신도 믿음을 활용하라.
행위가 없으면 진정한 믿음이 아니듯이 행위가 없으면 믿음의 역사도 일어날 수 없다.
하나님은 홍해를 건널 때는 먼저 홍해를 갈라서 길을 내신 후에 건너게 하셨지만
요단을 건널 때는 먼저 믿음으로 첫 발을 딛게 하신 후에 길을 내 주셨다.
성경 역사를 보면 이 때 부터는 언제나 믿음이 기적보다 앞섰다.
하나님은 지금 당신에게도 믿음으로 요단을 건너라고 말씀하신다.
당신 인생을 가로막는 요단강이 있는가?
당신의 가나안 땅을 바라보면서도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요단강이 있는가?
하나님은 믿음으로 첫 발을 내디디라고 말씀하신다.
당신은 더 이상 주저하거나 기적을 기다리지 말고 먼저 믿음으로 첫 발을 내딛어라.
그러면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믿음은 사용하는 것만큼 자라고
사용하는것 만큼 역사가 일어나게 된다.
당신이 아무리 큰 믿음을 가지고 있어도 그 믿음을 사용하기까지는
아무런 역사도 일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지극히 작은 믿음을 가지고도 사용한다면 당신은
작은 믿음을 가지고도 빌립보 교회와 같이 하나님의 인내의 말씀을 지킬수도 있고
하나님이 원하는 뜻을 이룰수 있게 될 것이다.
구원도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믿고 영접하므로 받는 것이지 단순히 아는 것 만으로 받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롬10:10]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하셨다. 마음으로 믿을뿐 아니라 입으로 시인하는 행위가 따라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세례식을 행한다. 이것은 믿음을 공적으로 나타내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3. 믿음은 행함을 통해서 더 자란다.
처음에는 믿음이 부족해도 행하다 보면 점점 믿음이 확실해 진다.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바친 그 믿음은 하루 아침에 생긴 것이 아니다.
처음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갈 바를 알지 못하고도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하나님을 순종하고 신뢰하고 떠났다.
그것은 큰 믿음이었다.
그러나 완전한 믿음은 아니었다.
그래서 아내 문제는 하나님께 맡기지 못하고 늘 아내를 누이라고 속였다.
그러나 그가 한가지씩, 한가지씩 순종하며
하나님을 경험하다 보니 믿음이 점점 더해져 갔다.
사랑도 마찬가지이다.
별로 사랑의 감정이 뜨겁게 일어나지 않아도 사랑의 행동을 하다 보면 사랑이 구체화 되어가고
더 사랑하게 된다.
믿음이 자라는 것도 말씀을 듣고 삶에서 실천할 때 자라가는 것이다.
당신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행하다 보면 당신의 믿는 바가 확실해 지는 것이다.
당신의 믿음이 아무런 역사가 없는 죽음 믿음 같은가?
그렇다면 이제부터 당신은 믿음으로 행하여 보라. 그러면 당신 믿음도 역사가 있는 산 믿음이 될 것이다.
그 기도를 할 때에 교회의 장로들을 청하라고 했다.
우리는 자신이 기도해야 하지만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들의 기도를 받아야 한다.
장로들을 청하라고 하셨다.
단순히 기도를 부탁 할수도 있으나 그 보다는 청하라고 했다.
이는 만나서 함께 기도하는 것을 말한다.
당신이 그냥 기도를 부탁하는 것 보다는 당신이 청해서 기도를 받던지
찾아가서 만나서 기도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하라고 했다.
여기에 대한 여러 가지 해석이 있다.
기름이 치료제라는 말을 하기도 하고 기름이 성령을 가르킨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기름을 바르는 것이 믿음의 한 행위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병든 자를 고쳐 주실때도 말씀으로만 고쳐주신 때도 있고
그 몸에 손을 대시므로 고쳐주신 때도 있고
본인으로 하여금 어떤 일을 하게 하시면서 고쳐주신 때도 있다.
우리의 기도에도 어떤 믿음의 행동이 필요하다.
죄를 서로 고백하면서 기도하라고 하셨다.
기도를 해 주는 자나 기도를 받는 자나 다 같이 서로 죄를 고백하면서 기도하라고 하셨다.
이는 병을 고쳐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게 하실뿐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의 몸을 깨끗게 치료해 주시기 전에 먼저 우리의 마음을 치료하시기를 원하시는 것을 말씀 하시는 것이다.
죄가 우리 병의 직접적인 원인이 될수도 있고
죄가 기도의 응답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가 진정 죄를 회개하고 용서 받을 때는 의인의 기도를 할 수가 있게 된다.
엘리야가 우리와 꼭 같은 성정의 사람이었다.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사람이었다.
우리도 죄를 회개하면 엘리야와 같은 역사하는 힘이 많은 의인의 기도를 할 수가 있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다.